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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그리고 미국에서도 성적인 것은 정치적이다
[리뷰] 그리고 미국에서도 성적인 것은 정치적이다
  • 정지형
  • 승인 2016.06.2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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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그리고 미국에서도 성적인 것은 정치적이다

 

세상을 둘로 나누면 무엇보다도 일단 편하다. 운동회를 할 때 참가자를 청팀과 백팀으로 나누는 것은 편리함 때문이다. 초등학교 운동회라고 하면 으레 1반부터 5반까지는 청팀, 6반부터 10반까지는 백팀으로 나뉜다. 생전 교류도 없던 다른 반 친구와도 그 순간만큼은 하나가 된다. 운동회가 끝나기까지는 같은 팀을 이루고 있는 친구들 사이의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대회가 끝난 후 승리한 팀이 발표되면 강제적인 통합으로 만들어낸 균형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승리한 팀 내부에서는 서로 자기반 덕에 이겼다며 논쟁이 일어난다. 진 팀도 다를 건 없다. 패배의 원인을 다른 반으로 떠넘기기 바쁘다. 이렇게 되면 한 팀을 이루던 다섯 개의 반은 다시금 분열되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성별에도 이분법이 작용한다. 유전적 차이는 남성과 여성을 낳았다. 전통적으로 아담과 이브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남녀 사이 구분은 명확했고 경계는 철저했다. 이분법적인 구조는 균형을 이루며 안정적이었다. 부여된 성역할은 개개인을 속박했고 예외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 견고하던 구조에 파열음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러한 구분이 전통이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월호에 실린 ‘그리고 미국에서도 성적인 것은 정치적이다’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성의 분화와 통합에 대해 말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분법적인 성 구분은 전통이었다. ‘아랍 아이돌(Arab Idol)’ 시즌 2 최종 우승자인 무하마드 아사프가 “전통을 지키자는 취지로 여동생이 대중 앞에서 노래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한 것이 놀랍지만은 않은 이유다. 아사프를 지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은 남녀 구분 없이 하나가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성차별적인 분리장벽을 세워 자신을 지지해준 절반을 차별했다. 그렇다고 아사프에게 마냥 손가락질을 할 수만은 없다.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질지 몰라도 다문화 시대에 전통은 내재된 문화적 배경의 상대성과 다양성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는 차이를 인정하며 가치 판단을 유보한다. 서로 다름을 중요시하지만 상대성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아사프를 비판한 팔레스타인 랩 가수이며 영화의 작가이자 배우이기도 한 타메르 나파르는 문화적 다양성도 보편적 인권을 빼놓고 바라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지젝은 이 지점에서 이데올로기의 혼돈이 생긴다고 보았다. ‘전통을 존중’한다는 미명 아래 반인권적 현상을 방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서구적 가치를 강요할 수만도 없다. 다시 말해 여성이 대중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금지하는 이슬람 전통을 문화적 다양성을 이유로 인정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거기에 개입해 여성이 마음껏 노래 부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도 없다. 보편적 인권을 중요시하는 서구적 가치는 이분법적 성 구분에 균열을 일으킨다. 남성과 여성을 생물학적으로 구분하는 것을 넘어 규범적인 성적 차이를 극복한다. 남성과 여성은 각각 부여된 고정된 성역할에서 벗어나게 되며 새로운 성정체성을 주체적으로 확립할 수 있다. 성적 차이에 대한 관점은 정치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슬람 국가와 러시아가 각각 서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사프와 나파르 사이의 논쟁과 무관하지 않다. 전통적인 성적 차이를 고수하던 국가가 서구적 가치에 따른 성적 차이를 풍기문란이라고 규정한 것은 새로이 유입된 문화가 사회를 불안정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반대는 곧 반식민주의 투쟁의 일환이 된다. 얼마 전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화장실 분리를 둘러싼 논쟁은 규범적인 성적 차이의 논리가 해체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이슬람 지도자와 푸틴의 걱정이 괜한 것이 아니다. 노스캐롤리나 주에서 생물학적 성에 따라 화장실, 샤워실 등의 공공시설을 사용할 것을 명시한 법이 나왔다. 예를 들어 남성이 성전환 수술을 받았더라도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는 남성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성소수자를 차별할 수 있는 이 법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일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 애플의 팀 쿡을 중심으로 한 80명의 기업 임원들은 주지사에게 보내는 항의 서안에 서명했다. 보편적 인권에 대한 관심은 트랜스젠더리즘(Transhenderism)으로 이어진다. 트랜스젠더리즘은 다양한 하위 구분으로 나뉘는데 핵심은 비(非)이진법적인 성적 구분이다. 따라서 성적 정체성의 구분이 불명확할 수도 있고 여러 개의 성을 갖는 것도 가능하며 아예 성이 없을 수도 있다. 포스트젠더리즘을 기반으로 한 트랜스젠더리즘은 생명공학기술과 보조생식기술을 이용하여 인간 종 내에서 젠더를 자발적으로 없앨 것을 주장한다. 젠더 구분이 사라지며 모든 성이 통합된다. 성별구분 자체가 필요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모든 금지에 저항하며 관습을 거스르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지젝은 트랜스젠더리즘 내의 자기 모순을 비판하며 앞서 말한 화장실 논쟁에서 그들의 태도를 꼬집는다. 트랜스젠더리즘은 모든 범주를 뛰어넘고자 하지만 자신들만의 공간을 요구하면서 새로이 범주를 만들어 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따라서 그들이 목표로 하는 바를 지향한다면 트랜스젠더를 위한 화장실을 새로 만들어 달라고 할 게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성에 따라 화장실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통합을 주장하면서도 스스로를 분화시키고 있는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지젝은 기존 성적 체계를 극복할 수 있는 ‘일반 성별’ 화장실을 추가하자고 제의한다. 모든 종류의 정체성을 만족시킬 수 없는 불완전한 분류보다 실질적으로 모든 범주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지젝은 글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성적 차이로 인한 갈등으로부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이분법적 성적 관념을 한 축으로 한 극단과 비이분법적 성적 관념을 한 축으로 한 극단이 공유하는 점을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해 성을 계층적으로 구분하되 명확하고 안정적으로 하거나, 성 구분이 없는 세상에서 자유로운 성별 선택을 허용하는 것이다. 평화로운 운동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청팀과 백팀의 구분을 없앤다. 이후 명확하고 안전하게 계층별로 반을 나누면 다른 반과 불필요하게 갈등을 일으킬 원인이 없어진다. 아니면 아예 반 구분을 해체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고서 반 선택을 개인의 자유에 맡긴다면 운동회가 끝난 후 다른 반 친구와 얼굴을 붉힐 이유가 사라진다. 태생적으로 결정되는 성별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 어떤 성별 구분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평화를 가져올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문화적 배경과 이질적인 전통이 개입되어 더욱 복잡한 문제지만 지젝의 제안은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본지는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www.baram.news) 공동 기획으로 청춘의 꿈과 글을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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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형 바람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