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중국 자동차 산업 경쟁력은 ‘임기응변’?
중국 자동차 산업 경쟁력은 ‘임기응변’?
  • 클레망 루피에|사회학자
  • 승인 2010.01.06 13: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식 산업' 통념을 넘어선 등펑

‘복제·비숙련·저품질’ 편견 너머엔 뛰어난 유연성
 르노트럭 엔진 인수한 뒤 중국식 기술혁신 성과


1990년부터 10년간 르노의 고급 트럭 엔진에 기술적 결함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르노는 브랜드 이미지 실추를 막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1) 엔진 제조에서 검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자동화되었고, 공정 표준화가 이뤄졌다. 90년대 항공산업이 그러했듯이, 르노의 경영진 역시 수작업보다는 기계가 우수하다고 인정하였고, 기술자들에 대한 신뢰도는 낮았다.(2) 한 엔지니어는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2000년) 파업이 한창이었고, 제조 설비 파괴가 잇따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기술자들의 역량이 어떤지 잘 몰랐을 뿐 아니라, 기술교육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뒤떨어져 실수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자동화로 인한 초기 생산비 상승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에 르노는 엔진 품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부 과정에만 자동화를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사람이 직접 작업을 하는 공정에는 ‘오류탐지기’라는 자동 검수 기기를 도입했다. 예를 들어 각 조립 부품대 앞에 센서를 설치해 사람이 부품을 집어올릴 때마다 이를 확인하거나, 정확한 나사 조립이 가능하도록 나사 회전 횟수와 사용 횟수를 기록하는 기기를 설치했다. 기술자들은 단순한 작업 수행만 하도록 한정되었고, 기계가 이들의 역할을 관리했다.

하지만 제조 공정을 철저한 관리 아래 두려는 르노의 계획은 뜻하지 않은 장애에 부딪혔다. 비자동화 부분의 조립 공정이 결국 기술자들의 속도에 달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기술자가 작업을 마치고 기계가 확인을 해야 하는 만큼 조립 공정의 진행 속도가 생각처럼 빠르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제품 생산이 늦어지곤 했습니다.” 한 공정 책임자가 한탄하듯 말했다. 할당된 생산 수량을 맞추기 위해 기술자들은 공정 책임자의 암묵적 동의 아래 표준 공정을 변경해야만 했다. 생산 라인 책임자는 이를 ‘오류탐지기 속이기’라 불렀다.
 

▲ , 2000-피터 스탐플리
르노, 자동화 함정에 빠진 품질 저하
프랑스 생산 라인이 폐쇄되기 직전인 2006년에는 기계의 유지·관리가 부실해 부품 수급이 원활하지 못했다. 공장 기술자들은 조립 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검수 기기들과 끝없이 머리싸움을 벌여야 했다. 빈 부품대 앞에서 손을 휘저어 마치 부품을 집어간 것처럼 센서가 인식하게 하고, 무게로 감지하는 센서에는 해당 부품과 무게가 비슷한 것을 갖다놓았다. 심지어 공장 기술자들이 필요한 부품을 직접 만들어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품 조립 검수 기기 앞에 놓을 금속판을 만든 것이 한 예다. 그 결과 이들은 본업인 엔진 조립보다 자동화 기기에 더 전문가가 될 정도였다.

2005년 볼보가 르노의 트럭 부문을 인수하면서, 르노는 유럽 시장 내 트럭 엔진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엔진 제조 라이선스를 매각했다. 라이선스를 사들인 둥펑은 다음과 같은 목표를 세웠다. 둥펑의 뒤처진 기술력을 단기간에 따라잡고, 중국 내 오염 방지 법안 개정에 선대응하는 한편, 프랑스 기업 수준의 제품 생산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 제2의 자동차 제조업체인 둥펑은 1969년 후베이성 시안에 설립되었다. 후베이성 안에 세 개의 공장 단지가 있고, 남부 및 동부 지역에 산업시설들을 갖고 있다. 닛산, 시트로앵 및 푸조와의 합작 투자업체도 소유하고 있다. 둥펑의 라이선스 매입은 현재 중국 시장의 흐름과도 일치하는데, 프랑수아 지풀루는 이같은 추세를 ‘자회사 신드롬’(3)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기술력은 그 자체로서보다는 발전의 도구로서 중요한 것이다.” 둥펑의 연구·개발 기술자는 이런 관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유럽 자동차 기업들은 최첨단 기술로 가장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했습니다. 둥펑이 뒤처진 기술력을 따라잡기만 하면 세계 어느 곳에건 트럭 수출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로봇보다 사람이 나은 경우 많아
현재 해당 엔진의 생산 비용은 중국 내 평균 생산가의 3배를 웃돌기 때문에 판매가 크게 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둥펑은 르노의 엔진 설계와 제조 방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라인을 구축하고 제품뿐 아니라 제조 공정에서 많은 수정안을 도입했다. 이렇게 볼 때, 둥펑의 라이선스 매입은 단순한 기술 복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력 이전과 같은 것이다. 일단 둥펑의 생산 라인 자동화 정도는 르노보다 낮았고, 로봇 활용도 최소한에 그쳤다. 물론 자동화를 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탓도 있지만, 로봇의 활용도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로봇에 의한 자동화는 수작업이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한정되었다.

또한 생산 라인에 설치된 기기들에 자동 검수 기능이 있었지만 이에 의존하지 않았다. 이 결정에 깊숙이 간여한  한 기술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동 검수 기기 사용은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많은 제약이 뒤따릅니다. 생산 라인의 원활한 가동을 막는 장애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검수 작업은 기계가 아닌 후속 공정 기술자가 맡았다. 프랑스 기업들은 후속 공정 기술자의 검수에 부정적이었는데, 동료 간에 서로의 잘못을 덮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둥펑은 작업 공정도 르노만큼 세밀하게 표준화했지만, 르노보다 좀더 유연하게 적용했다. “중국은 유럽과 다르다. 급작스럽게 터지는 일이 많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없애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한 공장 책임자가 덧붙였다. 다른 라인의 책임자는 한술 더 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규정은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이라고 봅니다. 그대로 이행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요.” 그의 생산 라인에 소속된 기술자들은 관리자의 동의만 있으면 대부분의 표준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역설적으로, 이런 자유는 기술자들에 대한 엄격한 관리·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생산 라인 기술직은 엄격한 채용 요건을 통해 선발되었을 뿐 아니라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예를 들어 관리직급이 노조 대표직을 맡는 단일 노조 체제라든가, 노동자의 권리 주장을 막는 구두 계약제가 존재했다. 또한 사회보장 혜택이 많고, 가족이 함께 근무하는 일이 많은 공기업 소속일 경우도 노동자의 행동을 제약하는 요인이었다. “둥펑은 가족과 같다”고 한 기술자는 말한다.
 
표준화 대신 유연성으로 대응
르노가 정교하고 표준화된 공정을 만들고 이를 철저히 지키는 것을 통해 오류와 결함을 예방하려 했다면, 둥펑은 유연성과 상황 대응력으로 생산 공정 여건 변화에 대처하려 했다. 대체로 프랑스보다는 중국의 규정이 모호하고 예외의 여지가 많은데, 이는 규정을 ‘선 시범 적용, 후 오류 수정·개선’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런 선택의 차이는 일부 중국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분명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다.(4) 그러나 ‘프랑스식 사전 예방 지향 모델’ 대 ‘중국식 상황 대응력 지향 모델’이라는 식의 이분법은 맞지 않다고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트렌드의 차이일 따름이다. 중국 기술자들에게도 사전 예방을 위한 관행이 분명 존재했으며, 프랑스 기술자들도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대응력이 필요했다. 덧붙이자면, 이런 차이는 두 기업의 개별적 발전사, 제품 혁신 방식은 물론 두 국가의 자본과 노동 비용 구성의 차이에서도 기인한다. 

한 예로, 르노는 오염 관련 법안이 새로 추가될 때마다 엔진 모델을 새로 바꿔나갔다. 르노의 절대적 품질 제일주의는 부분적으로는, 앞서 언급했듯, 미래의 제약에 사전 대응하려는 르노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반면 둥펑의 엔진은 기존 모델이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델이 겹쳐 판매되었다. 제품 상업화 1단계에서는 시장 출시가 곧 품질 향상을 위한 일종의 테스트일뿐더러 판매량도 적었으므로, 르노처럼 초기부터 품질 관리를 엄격히 할 필요가 적었다.

또한 프랑스보다 중국에서 노동 대비 자본 비용이 저렴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둥펑이 생산 라인 자동화보다 수작업을 택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특히 르노의 자동화가 안고 있던 폐해를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도입 초 기대와는 달리, 로봇은 자동 검수기 등 곳곳에서 많은 오류를 일으켰다. “본업인 패널 조립보다 고장난 기계를 수리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고 조립 라인 기술자가 말한다.
 
르노 기술자들, 기계에 대한 역습
프랑스 기술자들은 중국 기술자들보다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 정도가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다. 특히 표준화된 공정을 우회하는 일이 복잡했기 때문에, 때로는 표준 공정이 오류를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대로 작업을 진행하곤 했다. 한 예로, 캠축 삽입  때 측면 틈새가 없음을 확인하려고 작업대에 설치한 오류탐지기가 계속 이상 신호를 보내자, 기술자들은 이를 멈추기 위해 망치로 두드리기도 했다. 조립 가이드북에는 망치 사용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또한 르노 기술자들은 실질적 작업 공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잘못된 업무 관행에서 비롯되는 문제점들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와 달리, 둥펑의 제1세대 엔진 모델은 품질이 현저히 뒤떨어졌지만, 둥펑은 공정에 대한 실질적 이해도가 높아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났고, 획기적 문제 해결 방식을 도입한 적도 있었다. 실린더에 밸브를 장착하는 한 기술자의 노하우를 살펴보자. 밸브가 설치 도중 충격으로 손상되는 것을 막고자 작은 천 조각으로 감싸는데, 이는 밸브를 장착하기 전에 깨끗이 닦는 용도로도 쓰인다. 이 천 조각은 밸브가 부드럽게 장착되도록 마찰을 막는 역할도 한다. 로봇보다는 천 조각 하나에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글·클레망 루피에 Clment Ruffier
사회학자. <기술제품 제조업종의 사회학: 프랑스와 중국의 기술 이전에 관한 트럭 사례 연구>(2008)의 저자.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각주>
(1) 연구는 2005~2008년 3년 동안 10개 부문(프랑스와 중국의 R&D 부서, 생산 공장, 매장, 정비소, 제품 운송처 등)을 대상으로 232회의 인터뷰와 107일간의 관찰로 진행됨.
(2) 빅토르 스카르디글리,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 에어버스 320 사례 연구’, <퀼투르 테크니크>, 24호,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출판부, 파리, 1992.
(3) 프랑수아 지풀루, ‘중국 정보통신 산업의 기술 이전’, <노동사회학>, 34호, 파리, 1992년  4~6월호.
(4) 다음을 참고할 것. 조셉 니드햄, <중국의 과학과 서구세계>, Seuil, 파리, 1973. 프랑수아 쥘리앙, <철학에 비쳐진 중국 사상>, Seuil, 2007. 앙드레 쳉, <중국 사상사>, Seuil, 1997.



 

중국인이라고 카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제조 공정 이전 단계에서 혁신을 추구하는 프랑스 기업과 달리, 중국 기업들은 생산과정에서 혁신을 이뤄간다. “복제냐, 적응이냐”라는 두 가지 모순된 논리가 만나 균형을 이루는 곳이 바로 생산 라인이기 때문이다. 복제에 대한 갈망은 국제적으로 용인될 만한 품질 수준을 달성하게 한다. 따라서 효율성과는 무관하게, 서구 자동차 기업들이 요구하는 기술표준을 준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둥펑에서는 일반 엔지니어들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된다. 둥펑의 문제 해결책 채택 기준은 두 가지다. 즉시 적용이 가능해야 하며, 비용 규모가 작아야 한다. 제조 과정에서 부품 한 개를 바꾸고 조립 방식을 조금 수정한 결과 제품 품질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물론 비용 절감 추구는 자칫 제품의 질을 저하시키기도 한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