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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켠 촛불] - 27. 어쩔 수 없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바람이 켠 촛불] - 27. 어쩔 수 없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 지속가능 바람
  • 승인 2016.12.2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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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년 동안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주는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보통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거나,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만 심하게 엉켜 풀어내기 귀찮은 일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해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은 대개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 가족이 돌보는 길고양이들의 안위와 관련되었다.

가령 여자인 내가 밤길을 맘 놓고 다닐 수 없는 것이나 장애인인 아버지가 길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는 것, 고양이들이 길거리에서 죽는 것과 같은 일에 대해 말할 때면 대부분 즉각적으로 내뱉는 말이 “네 맘은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잖아”였다. 나와 내 측근이 겪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겠다는 의지도 없을뿐더러 내게도 고민하기를 포기하라고 하는 그 게으른 대답은 항상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요즘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무를 떠올린다. 7년 전 겨울, 나무는 차 밑에 웅크리고 앉아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 날 내 품에 안겨 우리 집으로 들어온 나무는 그때부터 우리 가족과 한 지붕 밑에서 살게 됐다. 얼결에 눌러앉게 된 고양이에 온 가족이 적잖이 당황했다. 고양이를 기르는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고양이 용품을 구비하고 고양이의 습성을 공부했다.

나무는 가족들의 곤혹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거실 한 가운데 배를 뒤집고 누워 뒹굴거나, 절절매며 인터넷으로 고양이를 검색해보는 가족들의 무릎에 한 차례씩 올라앉아 모두에게 아양을 떨었다. 온 가족이 고양이 한 마리에 홀린 채로 한 달을 보냈다. 고작 한 달이었는데도 나무가 없던 때의 집안 모습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은 나무가 집밖으로 뛰쳐나갔고, 일주일 만에 돌아온 나무의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올랐고 두 달 뒤 새끼를 7마리나 낳았다.

새끼들이 젖을 뗄 무렵 중성화수술을 위해 데려간 동물병원 앞에서 나무를 잃어버렸다. 이동장이 없어 엄마 품에 안겨 병원 앞까지 온 나무가 겁에 질려 품에서 뛰쳐나간 것이다. 울면서 돌아온 집엔 아직 걸음이 서툴러 고물대는 새끼 고양이들이 있었다. 슬퍼할 새도 없이 고양이들의 분양처를 알아보고, 분양되지 않은 고양이들을 기르다보니 한 해가 지나있었다. 한 해가 지나고서도 나무의 새끼들을 돌보고, 혹시나 나무가 집으로 돌아올까 집 근처에 먹이를 두기 시작하며 만난 동네 고양이들까지 챙기다 보니 7년이 지나 있었다.

7년이 지나 새삼 나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나무 덕에 ‘어쩔 수 없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나무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 가족에게 고양이들이 길에서 죽는 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죽이는 건 아주 잘못된 일이지만 내가 그걸 일일이 감시할 수 없는 노릇이며, 한 겨울 먹이가 없어 굶는 고양이들은 불쌍하지만 사람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들을 내쫓는 건 꽤나 당연한 처사로 여겨졌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내가 고양이에게 관심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내가 “어쩔 수 없다”고 하던 그 순간 누군가는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길고양이에게 해코지하는 것이 동물보호법 위반임을 알렸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반려동물이 법적으로 ‘재산’취급 받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이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은 “귀찮다”는 말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최근 주말마다 광장에 모이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의 나태함에 신물이 난 건 아닐까. 색색의 깃발 아래 각자의 촛불을 들고 모인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체념하는 대신 각자의, 또 모두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던 그 날, 사람들이 들고 있는 촛불 하나하나에서 각각의 ‘나무’를 보았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바람 대학생 기자단이 11월 27일부터 매일 연재하는 [바람이 켠 촛불] 기획기사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 중인 촛불에 동참합니다

 

 

박예람 / 바람저널리스트 (http://baram.news / baramy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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