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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출근길 어쩌나”…밤사이 수도권 최고 15cm 폭설
[안치용의 프롬나드] “출근길 어쩌나”…밤사이 수도권 최고 15cm 폭설
  • 안치용 기자
  • 승인 2017.01.20 0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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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출근길 어쩌나”…밤사이 수도권 최고 15cm 폭설  

누군가 외출하면 개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동거인 중 누구인가 집을 나서게 되면 중문까지 따라가 야속하게 제 앞에서 문이 닫히고 현관문이 닫히며 그가 떠나는 걸 지켜본다. 약간의 예외를 빼고 개는 그곳에 남겨진다. 내가 출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신발에 발을 집어넣는 모습을 중문 뒤 유리를 통해 스콜은 가만히 지켜본다. 현관문이 닫히도록 지켜보기만 할 뿐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떠남에 동행하고픈 스콜의 욕망이 전해지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자신에게 떠날 차례가 오지 않았음을 자각할 뿐이다.

누군가 떠나도 스콜은 떠난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그 자리에서 떠난 방향을, 말 그대로 하염없이 바라본다. 바쁜 출근길에, 어수선한 운전대에 내가 떠나온 곳을 감감 잊고 지낼 때 거기서 여전히 떠난 자의 흔적을 사수한다. 서 있다가 설마 현기증이라도 나면 눕지만 누울 자리도 거기다. 망부석을 연상케 하는 개의 이러한 행태를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아마도 스콜이 나를 사랑해서 나를 기다리는 건 아닐 게다. 이종 생물의 동거에서 그의 역할이 기다림이고 나의 역할이 떠남이다. 굳이 나누자면 양 치는 개나 사냥하는 개가 유목민에게 필수 동반자였다면 집 지키는 개는 정주민에게 기본 사양이었다. 아무튼 스콜과 걸리버는 집을 지키는 개, 더 정확하게는 집에서 사는 개가 되었고 개들로 인하여 나는 정주민의 징표를 얻는다.

기다리는 데는 사랑 말고 여러 이유가 가능하다. 예컨대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칼을 들고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해도 분명 기다리게 된다. 사랑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떤 사랑에서 기다림은 필사적이다. 망부석이란 말에 들어있는 사생결단이 그렇다. 따라갈 수 있었으면 망부석(望夫石)이 되지 않았으리라. 단지 기다림만으로 부족하다. 망부(望夫)의 사랑이든 집착이든 불가피한 선택이든 모종의 기투(企投)가 없었다면 망부석은 그냥 돌이었을 테다. 문득 드는 의문이, 망부의 대상인 그는 그 기다림을 인식하고 있었을까.

나로 말하면 개의 기다림을 절절하게 느끼지는 않지만, 안다. 스콜과 걸리버의 기다림이 망부가 아님이 확실하고 투기가 아님이 여실하지만 기다림은 알 수 있다. 적어도 그 놈들이 돌이 될 운명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안다. 그런 기다림은 기대하거나 고마워해도 되지 싶다. 귀가에서 필사적 기다림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정주민임을 포기하지 않기가 쉬운 일이 될 수 없다. 어쩌면 스콜이 마냥 기다리는 게 당나귀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개와 인간이 함께 사는 이 공간에 당나귀가 살았던 기억은 없다.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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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기자
안치용 기자 carmine.draco@gmail.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