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3월의 제주도
3월의 제주도
  • 서지윤 | ‘3월' 이달의 에세이 당선
  • 승인 2017.03.31 1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부분 수학여행은 개학 후 한두 달 후에 간다. 그런데도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3월에 수학여행을 떠났어야 했나 보다. 아이들이 더 빨리 친해질 수 있게? 혹은 남들 안갈 때 가는 게 좋아서? 사실 이유는 모른다. 우리는 33만 원을 내야 했고, 어색한 반 아이들과 수학여행을 가야 했을 뿐.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1년 3월 11일 일본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까지 이어지는 지진이 났다. 우리는 수학여행지 투표를 했고 그래, 경주보단 낫지 해서 제주도를 가게 됐다. 장소가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수학여행인데 하며 새 옷도 사고 행복한 마음으로 짐을 쌌다. 원래 3월의 제주도가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2011년 3월 제주도는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도착한 날 저녁부터 구름이 몰리기 시작하더니 그 이후에는 해를 본 기억이 없다. 비만 오면 다행인데 바람은 어찌나 세차게 불던지. 섭지코지고 뭐고 우산을 제대로 들고 있기도 힘들었다. 

대부분의 수학여행이 그렇듯 관광버스를 타고 애들보고 내리라고 하고, 또 모여서 버스 타고 이동하는 식이었는데, 날씨에 지친 선생님들조차 버스에 남겠다고 한 애들을 내리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 나는 제주도까지 와서 관광버스에서 피엠피로 영화를 보던 아이 중 한 명이었다. 덧붙이자면 때는 심지어 3월 초였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잘 몰랐고 아 쟤는 노는 애, 쟤는 공부하는 애, 나는 그 중간의 어정쩡한 무리에 끼면 되겠구나, 할 뿐이었다. 또 우리 방은 낯을 가리는 아이들이 많아 어색하게 게임을 하다 조용히 잠들었다. 날짜 선정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3월의 제주도는 내게 이런 기억으로 남아있다. 2017년 3월 제주도 날씨를 확인해보니 오늘도 비가 오고 있고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단다. 맞다. 제주도는 따뜻하고 살기 좋다, 3월 빼고. 

평소와 다르게 하늘은 흐리고, 비바람이 쳐서 저 멀리 가야 하는 곳은커녕 당장 바로 앞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봄은 원래 이런 게 아닌데, 제주도는 원래 이렇지 않은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더 나은 내일을 바라보지만 일기예보에 한동안 해는 없다 한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상황의 꿀꿀함을 조금이나마 털어보려 하지만 뜻처럼 되진 않는다. 겨울은 아닌데 이 낯설고 어색함에 지쳐 겨울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남들은 다 봄맞이 단장을 하는 데 나는 우비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비를 막으려 하고 있을 때, 3월은 더 이상 겨울도 봄도 아니다.

맞아, 젊음은 따뜻하고 살기 좋다. 꽃이 피거나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 3월 같은 시기는 찾아온다. 젊음은 아름답고 완벽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그 비바람을 더 세차게 느껴지게 한다. 봄을 갈망하는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비겁함을 피할 수 없다. 벚꽃과 장미는 멀게 느껴지고 지금 내리는 비는 곧 얼 것처럼 차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해님은 봄이 왔다고 방긋방긋, 하면 좋겠지만 같은 제주도라도 3월의 제주도는 그렇지 못하다. 나는 세상과 함께 후회와 번복, 낯섦과 혼란의 3월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행복해야 할 수학여행이 끔찍했던 만큼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과 그 얘기를 하면 웃음이 끊길 줄 모른다는 것이다. 뒤돌아보니 그때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여행하기에 최악의 조건이다 보니 중간중간 우리끼리 울고 웃었던 순간들이 더 빛나서다. 갔다오고 나서 내 친구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고 나에게 남은 건 버스 안에서 작은 화면으로 봤던 <파수꾼>이란 영화밖에 없지만 각자의 수학여행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우리는 돈독해진다. 이 지독한 3월은 지나가고 나서야 추억이 되고 우리는 각자 또 봄을 기다리며 견뎌낼 뿐이다. 

구름은 움직였고 끝없는 바닥에 머무를 줄 알았던 배는 다시 햇빛을 봤다. 하늘의 움직임만으로 지금이 겨울인지 봄인지, 봄이 있기는 한 건지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비가 그친 그 찰나의 햇빛을 회상하고 기억해내며 우리는 3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물결을 달래줄 따사함을 기대하며 이곳은 사실 이런 경험만 주는 곳이 아니라고, 더 좋은 기억도 만들 수 있다고 외치고 싶다. 3월의 제주도가 제주도 전부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제주도는 푸른빛이 감도는 생명의 섬이라고 설득당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영원히 도착하지 못한 4월의 제주도로 가고 있다고.  


글·서지윤
휴학생. 모든 게 어설프지만 젊다는 이유로 허세를 부리고 있다. 사실 모든게 무섭다. 그래도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