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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이 짧다고 노동자 천국은 아니다
노동시간이 짧다고 노동자 천국은 아니다
  • 세드릭 위그레, 에티엔느 페니사, 알렉시 스피르 | 사
  • 승인 2017.06.3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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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기사, 매표원, 운전사, 돌보미 등등. 유럽 서민층의 지형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영국은 물론 루마니아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많은 서민층이 경제위기로 인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그러나 프랑스의 정책입안자들은 저임금 노동자의 삶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그저 표를 얻기 위해 동정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모호한 사회집단 정도로 인식할 뿐이다.

 
몇 해 전부터 불평등 심화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자유주의 성향의 국제전문가들마저 경종을 울릴 정도다. 심지어 세계은행조차 상위 1% 부유층의 소득증가 현상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세르비아계 미국인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가 ‘글로벌 금권집단’이라 표현한 상위 1% 부유층의 과도한 소득 집중 현상이 중산층의 미래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1) 그러나 정작 서민층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자본의 국제화, 노동자 간 경쟁 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서민층인데 말이다.
 
프랑스 서민층 vs 프랑스 외 서민층
 
프랑스의 서민층은 다른 유럽국 서민층과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를까? 현행 통계조사가 그 해답을 제시해준다.(2) 먼저 프랑스 서민층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3차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점이다. 특히 대인 서비스, 가택 돌봄 서비스의 비중이 높다.(3) 즉 전체 서민층 중 간호조무사, 어린이집 보조교사, 아이돌보미, 노인 및 장애인을 위한 가택 돌봄 서비스 등에 종사하는 사람이 무려 16%에 이른다. 스페인(7%)과 이탈리아(5%)의 경우 이 직군의 종사자 비율이 훨씬 더 낮고, 독일(4%), 그리스(1%), 폴란드(1%)로 가면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서민층 인구(전체 서민층의 15%) 역시 프랑스가 다른 유럽국보다 많다. 물론 프랑스의 서비스 산업 종사자는 다른 유럽국의 동일 업계 종사자에 비해 임금 및 교육수준이 높다. 그러나 서비스직으로의 과도한 집중 현상은 프랑스 서민층의 지형도를 바꿔놓고 있다. 가령 서비스직의 여초현상(46%)은 다른 나라, 특히 독일(39%), 폴란드(37%), 그리스(35%), 이탈리아(34%) 등에서보다 더 도드라진다. 그러다보니 대개 강요되는 시간제 노동 비율도 높다. 또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는 청년층이 주를 이루며, 다른 직군에서 일하는 서민층에 비해 외국인 비중이 높다.
 
이 신흥 프롤레타리아 외에도, 남성이 대다수를 이루는, 실업과 구조조정 여파를 가장 심하게 받는 산업계 종사자의 상황도 나날이 악화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산업계에 종사하는 고숙련 블루칼라 노동자의 감소는 모든 유럽국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유독 프랑스에서는 그 감소 추세가 더 가파르다. 프랑스에서는 서민층 인구 가운데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를 망라한 저숙련 노동자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저숙련 노동자 비율은 1990년에도 이미 높은 편이이었는데, 2000년에서 2009년 사이, 15년 이상 근속 노동자 중 저숙련 노동자의 비율이 10%에서 12%로 증가했다. 이는 유럽 평균증가율의 2.4배에 달한다. 물론 아직까지는 블루칼라 노동자 중 고숙련 노동자가 더 많다. 그러나, 고숙련 노동자 비율이 21%에서 16%로 점차 감소 추세다.(4)
 
이런 구조적 특징은 정부가 그동안 모든 임금노동자들 중에서도 유독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국제경쟁의 고통을 떠넘기는 정책을 시행해온 탓이다. 뿐만 아니라, 특화성이 떨어지고 중급 제품에만 집중된 프랑스 산업이 국제경쟁에 내몰린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가령 자동차산업의 경우, 프랑스의 제조업체들은 생산기지 전반을 중유럽(슬로베니아로 이전한 르노의 노보메스토 공장)이나 남유럽(포르투갈로 이전한 PSA 푸조시트로엥의 망괄데 공장)으로 이전시킨 반면, 다임러, BMW 등 독일의 경쟁사들은 부품 제조만 해외로 이전했을 뿐, 조립공장은 자국에 유지시키는 선택을 했다.
 
정부는 그동안 사회보장분담금 인하 정책으로 저숙련 노동을 부채질하고, 임금 인하를 촉진하며, 가택 돌봄 서비스 이용 가정에 다양한 세금 유인책을 시행하는 등 각종 정책을 통해 현 서민층의 구조적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그 결과, 오늘날 프랑스 서민층의 모습은 독일보다 영국에 더 가까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즉 서비스직의 확대, 노동계약 및 노동자 지위의 불안정성, 노동시간의 유연화 등의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등 유럽의 서민층이 사는 법
 
자유주의 성향의 논평가들은 틈만 나면 프랑스의 노동시간이 다른 나라보다 더 짧다고 성토한다. 그러나 그것은 프랑스 노동자가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발언이다. 노동조건만 놓고 보면 프랑스는 영국보다 오히려 그리스에 더 가깝다. 가령 서민층의 79%(그리스는 78%, 영국은 67%)는 무거운 짐 나르는 일을 하고, 또 역시 79%(그리스는 82%, 영국은 75%)는 종일 서서 일한다. 45%(그리스는 43%, 영국은 33%)는 연기나 먼지 속에서, 또 59%(그리스는 61%, 영국은 47%)는 극심한 소음 속에서 일한다.
 
어떤 이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의 원인을, 이민자들의 높은 비중에서 찾을지도 모른다. 대개 외국인 노동자는 처우가 열악하고, 기존의 노동자들에 비해 노동자 권익을 요구하는 데도 더 소극적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의미한 설명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프랑스(9%)에서는 서민층 가운데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여느 유럽국(독일 14%, 스페인 22%, 그리스 16%, 영국 12%, 이탈리아 19%)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가령 지난 20년 동안 프랑스의 경영자들은 생산성 향상만을 목표로 노동 강도를 더욱 높이는 한편, 고용이나 신기술 투자, 노동조건 개선 등에 대해서는 소홀해왔다. 오늘날 프랑스는 스페인, 포르투갈과 마찬가지로 미래가 어두운 저숙련 불안정 일자리가 너무 많아졌다.(5) 물론 남유럽 국가들의 경우 비공식적 경제의 비중이 높아서, 단순 비교가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법적으로 신고된 노동자 수만 따져 보면, 프랑스 서민층은 다른 어느 유럽국의 서민층보다 불안정성도 높고, 노동조건도 더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반면 프랑스 서민층의 학력은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보다 더 높고, 영국과는 비슷하다. 고학력자가 겪는 열악한 노동조건은 정치적으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다. 2006년 프랑스 생활조건연구조사센터(CREDOC)에 의하면,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거나 실직 중인 사람은 안정적인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에 비해 근본적인 개혁에 대한 요구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6) 그러나 그들의 요구가 진정한 개혁의 동력이 되려면 넘어야 할 벽이 만만치 않다. 가령 유권자명부 미등록 비율은 간부(관리자)의 경우 10%에서 블루칼라 노동자의 경우 28%까지 격차가 크게 나타났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높은 교육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민층의 선거 불참률이 높다.(7)
 
열악한 노동환경 속 서민층을 지켜주는 복지제도
 
비록 불안정한 삶에 시달리며 나날이 고된 노동과 공격적 경영방식으로 지쳐가고 있다지만, 다행히 프랑스의 서민층은 여전히 몇 가지 사회적 안정망을 누리고 있다. 먼저 사회복지제도가 서민층과 중산층을 경제위기로부터 막아주는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실시한 소득 및 삶의 조건에 관한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현재 많은 프랑스 서민층 인구(72%, 영국은 55%, 독일은 31%, 그리스는 95%)가 저임금으로 인해 매달 가계에 많은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정작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는 인구(17%, 독일은 23%, 스페인과 그리스는 각각 30%)는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독일과 영국의 사회지도층은 그동안 실업 감소를 핑계로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데 전력해왔다. 그런 만큼 두 나라에서는 2014년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이 무려 20%를 넘어섰다. 반면 프랑스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단 9%에 그친다.(8)
 
예산삭감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제도는 여전히 프랑스의 서민층 노동자가 의료시설을 이용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가령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의료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서민층 인구는 7%에 불과하다. 그러나 비활동인구나 무직자까지 고려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 의료정책재단 ‘커먼웰스펀드’의 조사에 따르면, 평균소득수준 이하의 서민층 가운데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프랑스 인구는 무려 17%에 달했다. 네덜란드는 13%, 독일은 27%로 나타났다. 더욱이 현재 여러 대선 후보들은 의료지출 삭감을 앞 다퉈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전국레지스탕스평의외(CNR)의 개혁안이 프랑스에 유산으로 남긴 사회복지제도는 한층 더 취약해질 우려가 높다.
 
한편 또 다른 안전망으로 공공부문 및 준공공부문의 높은 비중을 꼽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서민층의 16~22%가 공공 및 준공공 부분에 종사한다. 영국(15~22%)보다도 높고, 특히 독일, 스페인 등의 나라들(7~12%)보다는 훨씬 더 월등한 수치다. 물론 공공부문도 최근에는 점차 파견직이나 기간제 등의 의존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는 다른 민간부문에 비해 고용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가령 병원의 간호조무사, 탁아소의 보조돌보미, 지자체 노동자, 가사돌보미, 환경미화원, 우체부 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공공부문 덕분에 프랑스는 서민층의 사회적 불안정을 걱정하는 불안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가령 프랑스는 향후 6개월 이내에 실직할까 걱정하는 서민층 인구가 12%에 불과하다. 독일이나 영국과는 비슷하고, 유럽 평균보다는 훨씬 낮다. 
 
극심한 경쟁 속에 흔들리는 안전지대 
 
요컨대 공공부문은 경제위기와 세계화의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서민층에게 최후의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안전지대 역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오랫동안 “공무원이 되는 꿈”은 화이트칼라나 블루칼라 노동자의 자녀들에게 계층 상승의 사다리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무원 시험이 더욱 어려워지고, 공무원직 수마저 감축되면서 이 역시 서민층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이 변하고 있다.
 
민간부문의 저숙련 노동자와 비교하면,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서민층 노동자는 노동자 권익 요구에 있어서도 더 높은 발언권을 누린다. 가령 병원의 간호조무사나 각종 행정직 종사자를 보면, 노동조합이나 시위에 참가하는 노동자 비율이 훨씬 더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대선후보인 프랑수아 피용과 에마뉘엘 마크롱은 현재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이 공공부문마저 손보겠다고 혈안이 돼 있다. 민간과 공공부문 간의 ‘불평등’한 노동자 지위를 비판의 표적으로 삼아, 공무원직을 대대적으로 감축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계층 사다리의 맨 아래에 위치한 사람끼리 경쟁시키는 수법을 널리 활용해왔다. 이는 내적 분열을 강화하며, 서민층이 자체적으로 노동자 지위, 활동영역, 성별, 출생, 문화, 혹은 더 나아가 세대에 따라서 서로 간에 대립하도록 부추긴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의 여러 현상의 원인을 설명해준다. 어떤 서민층은 왜 스스로 노동자 해방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저버렸는지, 또 어떤 서민층은 왜 이민자를 경쟁자로 간주하며 그들에 맞서 보호주의 성향을 가진 자국의 경영자들과 손을 잡게 된 것인지, 또 어떤 서민층은 왜 중산층과의 연대에 그토록 목을 매는지 등을 한몫에 깨닫게 해준다.
 
문제는 공통의 비전을 상실했을 때, 그들은 이내 정치에서 등을 돌려버리고 자신이 누리는 모든 의사결정권을 다른 누군가의 손에 쥐어줄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글·세드릭 위그레, 에티엔느 페니사, 알렉시 스피르
Cédric Hugrée, Etienne Penissat, Alexis Spire
사회학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Branko Milanović, <Global Inequality : A New Approach for the Age of Globalization(글로벌 불평등 : 세계화시대의 새로운 접근법)>,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Massachusetts), 2016년.
(2) 위 연구서는 2017년 9월 아곤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임.
(3) Christelle Avril, <Les Aides à domicile. Un autre monde populaire(가택 돌봄 서비스. 새로운 서민 세계)>, La Dispute, Corps Santé Société 총서, Paris, 2014년.
(4) Cécile Brousse, François Gleizes, ‘Les transformations du paysage social européen de 2000 à 2009(2000~2009년 유럽 사회지형도의 변화), <Insee Références - Emploi et salaires(프랑스통계청 기준자료 - 일자리와 임금)>, Paris, 2011년.
(5) Thomas Amosse, ‘Les conditions du travail en Europe dans les années 2000 : de fortes inégalités sociales(2000년대 유럽 노동조건 : 심각한 사회양극화)’, Annie Thébaud-Monty, philippe Davezies, Laruent Vogel, Serge Volkoff 공저, <Les risques du travail. Pour ne pas perdre sa vie à la gagner(노동의 위험. 먹고 살기 위한 목적으로 생명을 잃지 않으려면>, Les conditions La Découverte, Paris, 2005년.
(6) David Alibert, Régis Bigot, David Foucaud, 'Les effets de l'instabilité professionnelle sur certaines attitudes et opinions des Français, depuis le début des années 1980(1980년 초반부터 직업의 불안정성이 프랑스인의 태도와 여론에 미친 영향)', <Cahier de recherche>, 제225호, CREDOC, Paris, 2006년.
(7) Camille Peugny, ‘Pour une prise en compte des clivages au sein des classes populaires. La participation politique des ouvriers et des employés(서민층 내부적 분열에 관한 성찰.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정치 참여)’, <Revue française de science politique>, 제65권, 제5호, Paris, 2015년.
(8) Eutrostat, ‘Enquête sur la structure des salaires(임금구조에 관한 연구조사)’, Luxembourg, 2016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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