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2049> 10월 12일 개봉
1. 미래사회에 대한 불안과 SF영화
지난 5월 바둑 세계 랭킹 1위 커제 9단이 알파고를 상대로 3전 전패를 당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알파고(AlphaGo)는 ‘구글’의 인공지능(AI) 전문 자회사인 ‘구글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이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의 기술 수준이 이 정도로 높다는 것에 기뻐해야 하는지 아니면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세계 바둑 랭킹 1위 인간마저 진 것에 슬퍼해야 하는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SF영화에서는 이러한 인공지능, 복제인간 등 미래의 기술이 오히려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저주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중심으로 리플리컨트와 죽음의 의미작용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블레이드 러너>와 <블레이드 러너 2049>
SF 소설가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의 꿈을 꾸는가?』를 영화화한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1982, 미국, 리들리 스콧 감독)는 미래사회에 대한 인간의 불안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블록버스터 <E.T.>(1982, 미국)와 맞붙어 흥행에 참패하지만, 나중에 비디오를 본 평론가들과 영화 애호가들에 의해 걸작으로 재평가된 작품이다. 완성도 있는 원작 영화에 대한 부담감으로 속편이 나오기까지 35년이 걸린 작품으로, 오는 10월 12일 2편인 <블레이드 러너 2049 (Blade Runner 2049)>(2017, 미국)가 드디어 개봉된다. 1편 감독이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제작을 맡고, 1편 시나리오를 쓴 햄턴 팬처가 스토리를 만들고, <다음 층 (Next Floor)>(2008, 캐나다)으로 칸 영화제에서 까날 플뤼(Canal+) 상을 받은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을 맡아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1편 <블레이드 러너>는 2019년 블레이드 러너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른 행성의 식민지화를 위한 노예 복제인간 리플리컨트 6명이 탈출하여 지구로 잠입한다. 그들은 넥서스6 모델로서 유전공학자들의 두뇌와 대등하고 힘과 민첩성은 그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수명이 4년으로 제한되어 있어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창조주 과학자를 찾아 나선다. 인간과 복제인간을 구별하는 능력을 지닌 경찰인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는 그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리플리컨트 레이첼(숀 영 분)과 사랑에 빠진다. 타이렐 사에 침입한 로이(룻거 하우어 분)를 비롯한 복제인간들은 4년의 수명이 연장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타이렐 회장과 세바스찬 박사 등을 죽이지만, 위기의 순간 데커드를 살려주고 수명을 마친다. 이에 데커드가 복제인간의 처절한 아픔과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고 레이첼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넥서스6의 탈출로 이 모델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고 4년이 지나 모두 폐기처분된다. 넥서스7은 자연수명을 보장하고 안구 인플란트를 장착하지 않은 시험모델로서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자연수명을 보장하고 안구 인플란트를 장착한 넥서스8이 반란을 일으키고, 블랙아웃(대정전)으로 기록이 소실된다. 2023년 복제인간 금지령이 내려지고, 도망자로 분류된 넥서스8 모델은 모두 찾아 사형에 처하도록 조치된다. 2025년 과학자 니안더 월레스가 혁신적인 유전자 기술의 개발로 세계 식량난을 해결하고, 2036년 부도난 타이렐 사를 인수한다. 2036년 복제인간 금지령이 폐지되자, 타이렐 사 회장인 월레스는 순종적이고 통제 가능한 넥서스9 모델을 생산한다.
2편 <블레이드 러너 2049>는 2049년 블레이드 러너 K에 관한 이야기이다. 리플리컨트 넥서스9 모델인 K(라이언 고슬링 분)는 넥서스8 모델을 추적하여 처단하는 일을 한다. K는 리플리컨트 여자인 레이첼이 낳은 아이와 자신이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과거 블레이드 러너였던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를 찾게 된다. 한편 타이렐 사의 회장인 니안더 월레스(자레드 레토 분)는 리플리컨트 러브(실비아 획스 분)를 시켜 리플리컨트의 생식 기술에 대한 단서를 갖고 있는 K를 뒤좇게 한다.
3. 리플리컨트와 기억, 정체성, 생식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리플리컨트 K의 내적 갈등, 사적 갈등, 공적 갈등은 기억의 문제, 정체성의 문제, 생식의 문제로 이어지며, 종국에는 죽음의 문제로 귀결된다.
리플리컨트 K의 내적 갈등은 진짜/가짜, 자신/타인, 인간/복제인간, 기억/망각 등을 중심으로 기억의 문제를 제기한다. K는 목각말 장난감을 다른 아이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어두운 화로의 잿더미 속에 숨겨두는 어린 시절의 “심겨진” 기억을 갖고 있다. K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목각물 장난감에 새겨져 있는 숫자 ‘6, 10, 21’이 리플리컨트가 낳은 아이의 출산일인 2021년 6월 10일과 일치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우연한 일치”인지 아니면 자신이 “특별한 아이”인지에 대해 알기 위해, K는 업그레이드센터로 찾아가 최고의 메모리 메이커인 애나 스텔린 박사(카를라 주리 분)를 만난다. 그녀는 리플리컨트의 기억은 심겨진 기억이며 진짜 기억을 심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K의 기억을 들여다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진짜 기억임을 인정하고, 이 사실로 K는 혼란에 빠진다. 여기에서 기억은 진짜 기억과 가짜 기억으로 구분되고, 자신의 기억과 심어진 기억으로 구분된다. 그래서 진짜 기억을 심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K는 자신의 기억이 진짜 자신의 기억이고, 자신이 기적의 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기억이란 과거의 경험을 인간의 정신 속에 간직하고 되살리는 것이다. 리플리컨트 K는 성인으로 만들어진 넥서스9 모델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 과거의 경험은 없다. 그에게 기적의 아이의 진짜 기억이 심어져, 실제로는 경험한 일이 없는데도 전에 경험한 일이 있는 듯한 불가사의한 느낌을 갖게 되는 ‘기시감’과 유사한 상태가 된다. 기억은 인간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K는 자신에게 심어진 기적의 아이의 진짜 기억으로 인해 자신도 그 아이에게 동일시를 느끼게 되면서 기억과 존재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리플리컨트 K의 사적 갈등은 인간/리플리컨트/홀로그램 여성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일어나며, 진짜/가짜, 인간/복제인간/홀로그램, 복종/불복종, 주인/노예 등의 경계가 허물어짐으로써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LAPD 경찰국장인 인간 조시(로빈 라이트 분)는 인간/복제인간, 심어진/좋은 기억, 공적/사적 영역의 경계를 흐릿하게 한다. 인간 조시는 K에게 ‘네가 인간이 아니란 걸 자꾸 까먹어’라는 말을 하고, K의 “심어진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좋은 기억”이라고 말해주고, “술을 다 마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며 K를 유혹한다.
창녀 리플리컨트 마리에트(맥켄지 데이비스 분)는 인간/복제인간/홀로그램, 복종/불복종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K에게 자신을 “현실의 여자”로 지칭하고, 조이의 부탁으로 자신의 육체와 조이의 홀로그램 이미지를 싱크하여 K와 성행위를 하고, 타이렐 사에서 보낸 용병들에 의해 다친 K를 구해내고, 리플리컨트 반란군에 가담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홀로그램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 분)는 가짜/진짜, 인간/리플리컨트/홀로그램, 만들어진/태어난, 일련번호/이름 등 정체성의 경계를 허문다. 조이는 타이렐 사의 제품으로 남자를 “착한 조”로 호명하며 “당신이 듣고 싶은 모든 것”, “당신이 보고 싶은 모든 것”이 되어주는 맞춤형 연인/아내 홀로그램 이미지이다. K는 조이에게 육체로 체현되어 어디에나 갈 수 있는 기계장치인 애니메이터를 선물해 준다. 조이는 자신이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마리에트의 육체를 빌어 K와 성행위를 한다. 나중에 K가 기적의 아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러 떠날 때, 조이는 자신으로 인해 위치가 추적되지 않게 안테나를 부러뜨리라고 K에게 말한다. K가 기적의 아이일 수도 있다는 증거가 나왔을 때, 조이는 K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태어났지”라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는, “특별한 아이”인 K에게 “조”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조이는 안테나를 부러뜨려 애니메이터로만 존재하는데, 러브가 나타나 조이와 K에게 분노해 “나쁜 강아지”라고 말하며 애니메이터를 부셔버리고, 조이는 비명을 지르며 사라진다.
조이는 자신의 홀로그램 안테나를 부수게 하고 공간을 이탈함으로써 제품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한 대가로 죽게 된다. K는 “제품(=조이)”의 성능은 어떠냐는 러브의 질문에 “사실적”이어서 감사하다고 답변한다. 그리고 자신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하는 조이에게 “넌 내게 진짜야”라고 강조한다. 어린 왕자에게 자신의 별에 있는 장미가 지구 정원에 있는 5천 송이의 다른 장미들과는 다르듯이, K에게도 자신의 조이는 타이렐 사의 다른 제품 조이와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조이는 리플리컨트가 사용하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주인인 인간의 노예인 리플리컨트의 노예이다. 그래서 K와 조이의 관계는 타이렐 사와 K의 관계와 닮은 꼴이다. 홀로그램 조이처럼 리플리컨트 K도 제품과 노예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불복종함으로써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공적 갈등에 있어서 리플리컨트 K의 적대자는 세 단계에 걸쳐 달라진다. 타이렐 사 제품 리플리컨트이자 LAPD 소속의 블레이드 러너인 K는 전반부에서는 리플리컨트와 충돌하고, 중반부에서는 LAPD와 갈등하게 되고, 후반부에서는 타이렐 사와 적대적 관계가 된다.
전반부에서 껍데기 K는 도망자인 넥서스8 모델 리플리컨트와 충돌한다. 넥서스9 모델이자 블레이드 러너인 그는 사퍼에게 동족을 죽인다는 비난을 듣지만, 신모델인 나는 너와 달리 도망다니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그를 처치한다. LAPD에 귀환해서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감방”, “연결되다”, “방 안에 연결되다”라는 정해진 문구를 계속해서 반복함으로써 복종 검사의 기준선을 통과한다. 나중에 사퍼의 단백질 농장에 있는 나무 밑에서 여자 리플리컨트가 아이를 낳았다는 증거가 나온다. 결국 조시와 K는 사퍼가 죽음으로써 기적의 아이에 대한 비밀을 지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그를 “감상적인 껍데기”라고 평가한다. “넌 기적을 본 적이 없으니까”라는 사퍼의 말은 K에게 영향을 미치고, 인간들에게 “껍데기”라 불리던 K는 사퍼처럼 기적을 지키는 “감상적인 껍데기”가 되는 길을 택하게 된다.
중반부에서 감상적인 껍데기가 된 K는 자신이 복종해야 하는 LAPD의 상관인 경찰국장 조시와 갈등한다. 조시는 리플리컨트의 임신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질서 유지를 위해서 없었던 일로 하고 “아기” 문제도 덮는 거로 지시한다. 이에 K는 “태어난 리플리컨트는 영혼이 있을까요?”라며 문제를 제기하지만, 곧이어 “전 불복종이 불가능합니다”라고 답변한다. 이에 조시는 “넌 그거(영혼) 없이도 잘 살아왔어”라고 대답한다. 나중에 K가 기적의 아이에 대한 조사로 자신의 근무지를 이탈하여 체포되어 온 상태에서 복종 검사의 기준치를 통과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고 있던 조시는 그를 처치하지 않고, 총과 배지만 반납하게 하고 그의 이탈을 묵인해 준다. 또한 조시는 러브가 K를 찾자 “사라졌다”며 끝까지 K의 소재를 밝히지 않아 러브에 의해 칼로 찔려 죽는다. K는 조시와의 갈등을 통해 영혼, 불복종의 문제를 제기하지만, 겉으로는 복종하는 신체로 가장하는 연기하는 신체가 된다.
후반부에서 연기하는 신체가 된 K는 데커드를 지킴으로써 타이렐 사와 적대적 관계가 된다. K는 데커드와의 교감을 통해 진짜의 의미,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데커드를 만난 K는 그가 “혼자 되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가 “사냥감”이 되지 않도록 지켜주기 위해서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데커드는 K에게 일련번호가 아니라 이름을 묻고,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떠나야 할 때가 있는 법”이라고 말한다. 또한 데커드는 자신과 레이첼이 “만들어진 존재”라는 회장의 말에 “뭐가 진짜인지는 내가 알아”라며 반박한다. 데커드의 영향으로 K는 진짜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혼자 되는 것”, 즉 일탈하는 신체가 된다.
4. 리플리컨트와 죽음의 의미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일탈하는 신체 K는 결국 불복종하는 신체가 된다. K는 타이렐 사 리플리컨트이자 블레이드 러너인 K는 리플리컨트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타이렐 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리플리컨트의 기적을 지키려는 반란군의 요구도 따르지 않는다. 타이렐 사의 회장은 혁신적인 유전자 기술의 개발로 세계 식량난을 해결했듯이, 제품이자 노예인 리플리컨트의 생식과 번식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얻기 위해서 “아이를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반면에, 리플리컨트 반란군은 리플리컨트가 낳은 아이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기적”이라며 군대를 조직하여 동족을 해방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지도자 프레이사(히암 압바스 분)는 데커드가 기적의 아이에 대해 말하지 않도록 “데커드를 죽여라”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K는 양쪽을 다 거부하고 데커드를 구해내 기적의 아이와 만나게 해준다. 결국 불복종이 불가능한 K는 복종을 거부함으로써 죽음의 길을 걷게 된다.
K는 같은 리플리컨트 넥서스9 모델인 러브와는 다른 죽음의 길을 가게 된다. 넥서스9 모델은 세 가지 특성을 지닌다. 첫째, 순종적이고 통제가능하다. 둘째, 안구 인플란트가 장착되어 추적이 가능하다. 셋째, 인간을 위해 편의를 제공한다. 러브는 회장이나 자신이 리플리컨트를 죽일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는 점에서, 가슴으로는 반발하지만 머리로는 복종하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러브는 타이렐 회장의 노예로서 회장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지만, 결국에는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러브와 같은 넥서스9 모델인 K는 명령에 불복종하며, 자리를 이탈하며, 리플리컨트를 지키고자 한다. 그래서 K는 넥서스9 모델의 세 가지 특성을 모두 위반한다. 이 모든 것을 위반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일탈하는 신체가 된 K가 유일하게 선택 가능한 것은 죽음의 방식뿐이다. K가 데커드를 구한 후 딸에게 데려다주며 “따님의 기억”이라며 목각말을 건네자, 데커드가 K에게 “난 너에게 뭐지?”라고 질문한다. 인간 존재는 기억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그는 ‘기적의 아이’의 ‘진짜 기억’이 심어짐으로써 존재가 바뀌는 변이가 된다. 자신과 같은 기적의 아이,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데커드를 위해서 목숨을 바침으로써 위엄 있는 죽음, 명예로운 죽음의 길을 택하게 된다.
영화에서 사퍼의 죽음, 러브의 죽음, K의 죽음을 대조적인 모습으로 보여줌으로써 죽음의 차별적인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사퍼의 죽음은 제품의 죽음이다. 넉세스8 모델인 사퍼의 눈을 클로즈업하여 안구 인플란트의 번호를 인식한 후, 사퍼를 죽이고 안구를 적출하여 비닐봉지에 넣어서 가져가는 모습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다음으로 러브의 죽음은 복종하는 신체의 죽음이다. K가 러브를 죽이는 장면에서 K와 러브의 주관적인 시점숏을 각각 보여줌으로써 같은 리플리컨트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복종하는 신체의 슬픔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으로 K의 죽음은 상징적 죽음이다. 영화에서 K가 자신의 손바닥에 눈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K는 자신의 손바닥에 눈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눈이 쌓인 계단에 누워 눈물을 흘린다. 다 같아 보이지만 아주 미세한 수준에서는 ‘서로 다른’ 눈송이들이 손바닥 위에서 물로 녹아내리고 K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복제인간 K가 감상적인 껍데기, 연기하는 신체, 일탈하는 신체를 거쳐서, 불복종의 대가로 선택하는 ‘남다른’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죽음의식이란 죽음에 대해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며, 인간 존재의 마지막 관문이자 단정 지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삶의 끝은 항상 죽음이다. 프로이트도 셋째 딸이 항상 신화나 전설에서 주인공인 이유가 인생을 관장하는 세 명의 여신이 있는데, 첫 번째 여신이 탄생, 두 번째 여신이 삶, 세 번째 여신이 죽음을 관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으로 죽음을 관장하는 세 번째 여신, 즉 셋째 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음이 삶을 앗아가기 때문이 아니다. 죽음은 그것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삶을 앗아갈 수 없고, 죽음이 발생하고 난 다음에는 삶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 박탈하는 것은 바로 미래에의 가능성이다. 미래사회의 리플리컨트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은 바로 죽음을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만드는 리플리컨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삶의 끝에 항상 이르게 되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함께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5. 과거/미래의 혼합과 이중적 이미지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디스토피아적 색채와 상징, 통제의 시선, 과거/미래의 조합, 동양/서양의 혼합, 오버랩되는 이미지 등을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선 미장센에서는 디스토피아적 색채와 상징적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버즈아이뷰와 익스트림롱숏을 통해 미래사회의 거대하고 어두운 도시 풍경을 조망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아주 작게 표현되는 비행정으로 인해 환경에 의해 위축되는 피사체를 형상화함으로써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여 있고 쇠줄로 의해 지탱되고 있으며 기적의 아이에 관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퍼의 단백질 농장에 서 있는 죽은 나무는 죽음과 삶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다. 또한 타이렐 사의 리플리컨트 전시실은 마치 <에이리언 4>에 나오는 리플리의 복제인간 전시실을 연상시키며, 제품이자 도구로서의 리플리컨트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신제품 검수”라는 대사와 함께 비닐봉지에 싸여 있다가 바닥에 떨어지는 리플리젠트의 이미지도 제품으로서의 의미를 강화하고 있다.
다음으로 두 개의 오버랩되는 이미지를 통해 인물들의 연관성과 이중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타이렐 사 회장 방의 어두컴컴한 분위기와 출렁이는 파도, 물고기 등의 홀로그램의 대비로 시각장애인이자 천재과학자인 인물의 대조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애나 박사가 K를 검사하는 장면에서 유리창 너머 보이는 애나 박사의 얼굴과 유리창에 비치는 K의 얼굴을 한 화면에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두 사람의 연관성을 암시하고 있다. 조이와 마리에트가 씽크되는 장면에서 조이의 홀로그램과 마리에트의 신체가 두 개의 이미지로 오버랩되어 나타남으로써 진짜/가짜, 리플리컨트/홀로그램의 혼재를 보여준다. 러브가 조시를 죽이고 K를 찾기 위해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러브의 얼굴이 두 개로 겹쳐 나타난다. 죽음과 살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러브는 감성과 이성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통제의 시선과 긴장감을 보여주고 있다. 특이한 점은 야외 풍경뿐만이 아니라 아파트 내부의 계단, K의 샤워하는 모습 등 실내 장면이나 인물의 행위를 묘사할 때도 버즈아이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버즈아이뷰를 통해 리플리컨트에 대한 통제의 시선을 보여준다. 안구 인플란트 번호 등 눈에 대한 클로즈업과 원형의 건축물을 연결하여 이미지의 유사성을 강조한다. 끓고 있는 주전자, 구더기 옆에 놓인 권총, 몰래 쥐고 있는 칼 등의 클로즈업을 통해 긴장감을 느끼게 하고, 미디엄숏, 바스트숏, 클로즈업 등 점차적으로 다가가는 카메라를 통해 이러한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마지막으로 음악과 글자를 통해 과거/미래, 동양/서양의 혼재된 사회를 드러내고 있다. 2049년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버려진 도시에서 1950년대 프랭크 시나트라, 1960년대 마릴린 먼로, 197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을 재현해 내고 있다. 2019년 블레이드 러너로 활동했던 데커드와 2049년 블레이드 러너인 K 사이에 197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가 서 있는 장면은 과거/미래를 함께 담아내고 있다. 과거의 악기인 피아노에서 기적의 아이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고, 대정전으로 컴퓨터 정보가 지워져 문서를 통해 정보를 얻게 되는 등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가 혼재되어 나타난다. 또한 미국 미래 도시에서 타이렐 사의 회장이 끼는 장치에 있는 중국어, 일본어와 거리의 건물 간판에 나타나는 한국어 등을 보여줌으로써 서양의 공간과 동양의 문화가 뒤섞여 표현되고 있다. 이밖에도 1편 <블레이드 러너>에 관한 기록, 대사, 사진, 인물이 나옴으로써 영화 텍스트 상에서 과거/미래를 잇고 있다.
6. <블레이드 러너 2049>와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 공장에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고, 진짜 기억을 갖고 있지만 자신의 기억이 아니고, 육신은 있으나 영혼이 없는 “껍데기” 리플리컨트 K. 하지만 리플리컨트가 낳은 아이, 만들어진 아이가 아니라 태어난 아이, 진짜 자신의 기억을 가진 아이, 즉 기적이라 불리는 아이를 지키기 위한 명예로운 죽음은 온전히 그의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이러한 리플리컨트 복제인간의 죽음에서 드러나는 의미작용을 통해 복제인간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를 감독하고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제작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에이리언: 커버넌트 (Alien: Covenant)>(2017)에서도 미래사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안드로이드 데이빗과 월터를 대조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이처럼 미래사회에 대한 낙관적 유토피아와 비관적 디스토피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SF영화에서 미래사회에 대한 인간의 기대와 두려움을 계속해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블레이드 러너 2049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88227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2016), 『영화와 N세대』(2017) 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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