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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두 번 죽이는 기호와 담론의 통치
희생자 두 번 죽이는 기호와 담론의 통치
  • 이영주
  • 승인 2010.05.10 15:1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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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천안함 진실을 덮은 장막들

1. 대중매체를 위한 진혼곡에서

대중매체는 “응답을 영원히 금하는 것, 교환 과정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에 기반을 둔다. 대중매체는 응답이 들려올 수 없게 말해지고 행해진다. 따라서 대중매체 영역에서 근본적 혁명은 ‘응답 가능성’의 복원에 있다. 반면 다른 혁명의 전략은 없다. 즉 대중매체 내용을 민주화하려는, 내용을 전복하려는, 약호의 투명성을 복원하려는, 보도 과정을 통제하려는, 또는 대중매체에 대한 지배력을 쥐려는 모든 ‘어설픈 의지’에는 희망이 없다. 발언권의 독점이 깨지지 않는다면, 때때로 발언이 교환되고 주어지고 돌려질 수 있게 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발언이 사회과정의 어떤 측면에 정지·고정·저장되거나 재분배되는 상태를 바꾸지 못한다면 말이다. 이렇게 보드리야르는 대중매체의 무응답, 그럼으로써 야기하는 사회적 무책임성 시대를 우울하게 조망한다.

천안함 사건에서 우리는 정확히 보수 언론의 무응답과 무책임이라는 우울한 그림자가 다시 한번 우리 사회에 짙게 내려앉은 풍경을 보았다.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보수 언론의 보수적 경향성이 아니라, 그들의 무응답과 무책임, 즉 언론의 기능 상실이다. 한 달이 넘게 우리는 아직 이 사건의 정확한 원인과 실체를 모른다. 그럼에도 이미 이 사건은 보수 언론에 의해 결론 내려졌다. 북한의 도발이며,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북한을 철저하게 응징해야 하는 사건이다. 그리고 북한의 도발에 희생당한 장병들은 적과 맞서다 산화한 국가의 ‘영웅’이다. 이 영웅들의 이름 하나하나는 대통령의 입을 통해 ‘호명’된다. 보수 언론의 결론은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등의 모호한 진술과 공명한다. “천안함 원인이 나오면 모든 국가에 알리겠다”는 대통령의 매우 상식적인 진술의 시작은 “모든 국가에 알리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 “안보특보 신설, 국가안보 총괄점검기구 구성”, “천안함은 단순한 사고로 침몰하지 않았다는 것”, “군의 정신 재무장”, “세계 유일의 적대 분단 상황에 있다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우리 군 전력도 구축해야”, “군의 긴급대응 태세와 보고·지휘 체계, 정보 능력, 기강 등 모든 측면에서 비상한 개혁 의지” 등 기호적 연쇄와 진술은 상식적 진술의 시작점을 급격하게 변형시킨다. ‘사실’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며, 보수 언론은 왜 자신들이 이렇게 보도하고 단정짓는지에 대한 응답 대신 일방적인 발언만 확대재생산한다. 보수 언론의 단정적 진술을 뒷받침하는 것은 확인할 수 없는 ‘고위 관계자’나 ‘군 핵심 당사자’ 또는 여기저기 떠도는 극우 인사들의 추측성 해설이다.

2. 잔인한, 너무나 잔인한 보수 언론

 

▲ 천안함 희생자 영결식이 열린 4월 29일 국회에 내걸린 조기. <한겨레> 탁기형 선임기자
보수 언론은 북한에 대한 응징 방식을 논한다. ‘34년 전 도끼 만행 사건’을 거론하며 “북한이 다시는 도발을 할 수 없게 미국과 연합해 전투준비 태세를 정비하고 일전을 불사하는 자세로 대비해야 한다”는 충고를 전달하거나 “북한이 발뺌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 뒤 군사적 보복보다는 국제사회와 함께 외교 경제적인 제재를 하자”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 “이번 기회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연기해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 북한이 원하는 대남 적화통일, 전작권 환수, 주한미군 철수를 좌절시키고 안으로는 내부의 적을 소통해 지난 10년간 뿌리 깊게 퍼진 안보불감증도 척결하자”는 보수 진영 공통의 목소리를 모아내기에 이르렀다. 보수 언론의 대표적인 칼럼니스트는 “우리가 그동안 무엇에 심취했던지, 또는 누구에게 세뇌되었던지, 너무 안이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지난 10년 세월 동안 우리 안보 상황에서 우리 의식을 지배해온 개념은 햇볕, 포용, 지원, 민족, 화해, 평화들이었다. 그 가운데서 우리의 군은 속된 말로 나사가 빠져버렸다”고 구원자적 자기고백을 털어놓는다. 북한의 공격 앞에 무능하게 대응하는 군·정부·정치권도 천안함과 함께 침몰된 것이고 북한의 도발이 명백한데도 가타부타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정신나갔다며 분노에 찬 일성을 내지른다. 그리고 군을 향해 외친다. “군, 항상 전장(戰場)의 각오와 기강을 보이라!”고. 변함없이 이번에도 다수의 네티즌은 보수 언론에 의해 ‘나라의 품격을 갉아먹는 인터넷 들쥐들’로, 민주당은 ‘북한의 대변자’로 규정되었다.

 

한 달이 흘러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어떤 것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장 강력한 냉전·안보의 기호가 부활하고, 그 기호는 실제 정치를 움직인다. 여당의 엄숙한 조문 행렬과 이들의 한결같은 대북 강경발언, 건군 이후 최초로 대통령 주재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 개최와 전군 정신 재무장의 구호, 북한에 대한 보복이나 응징 조치를 위해 필요한 국제법의 검토, 천안함 침몰 원인을 밝혀보려는 여러 시도에 대한 친북 색깔론 입히기, 지방선거 국면에서 반북·안보 정국 활용, 북한 공작원 체포와 천안함 사고의 연결 등 바쁜 정치적 행보가 거칠게 전개된다. 그 누구도 진실성에 대해 질문하지 않으며 이같은 거친 행보가 가져올 결과에 책임 있게 사고하지 않는다. 참으로 이들은 잔인하다. 결정적인 증거나 근거가 없음에도 혼란스럽고 일관성 없는 진술과 구호로 고통스럽게 죽어가야 했던 장병들과 그 가족을 에워싼다. 바닷속에서 죽음이라는 절대 공포에 직면해 마지막까지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며 고통에 몸부림쳤을 바로 그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발견하기 힘들다. 오히려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비판자를 비판하고, 비판자를 포함해 우리 전체를 강력한 안보의식을 가지지 못한 공동 책임자 혹은 공범자라는 죄책감 속에 밀어넣으면서, 더 높은 차원의 충성심에 호소하는 정치적 수사 전략에 충실하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정치와 공적 담론의 규칙에 길들여진 결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진술은 수동형으로 가해자가 어디엔가 있고, 우리는 이들에 의해 ‘당했다’고 표현된다. 이같은 진술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가장 좋은 방법임을 우리는 모를 리 없다. 여러 의혹을 푸는 단서는 ‘안보’나 ‘국가안위’라는 이름으로 공개가 거부되고, 공개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반국가적 행위자’로 낙인찍을 ‘상시적 전장 태세’가 돼 있다. 이러한 거친 호흡과 욕망에 동참하고 이를 부추기며, 이런 상황을 자제시키려는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하는 보수 언론은 참으로 잔인하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 의견을 정당화하거나 입증하려는 어떤 언론적 노력도, 복합적 사고의 원인과 실체에 접근하려는 태도도 이들에게는 없다. 만약 보수 언론이 내부의 공개되지 않은 취재원과 정보 소스를 통해 시민이 알 수 없는 정보를 가지고서 이런 주장을 계속한다면 이 엄청난 사태와 관련된 정보를 독점하며 정치와 사회를 좌우하려는 정치적 야욕이며, 소문과 억측 또는 과도한 부풀리기나 왜곡된 해석에 근거한 행위라면 이 자체가 가장 극명한 반국가적·반사회적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3. 보수 언론을 위한 진혼곡

‘인간어뢰’가 보수 언론의 지면과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 우리는 보수 언론의 실체와 대면하게 된다. 저널리즘이 아닌 픽션 창작자, 그것도 정치적으로 극편향적인 창작자로서의 실체. 외국 언론에 의해 제임스 본드가 웃을 일이라고 조롱받아야 하는 우리의 보수 언론.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왜 이들은 이토록 조급하고 무모할까? 저렇게 튼튼한 자본과 자원을 가지고 행하는 저널리즘이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일까? 정치 권력자도 자신 앞에서 눈치보는 마당에 누구에게 충성을 하려는 것일까? 사회적으로 소중한 보수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임에도 왜 그들은 보수의 가치를 스스로 위반하거나 무참하게 밟아 없애버리는가? 이 질문들 앞에 서면 우리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빨려든다.

 

▲ <폭풍>, 1899- 알베르 마르케
지금이 아무리 ‘시뮬라크럼’(Simula crum·복사품)과 ‘하이퍼리얼리티’(Hy perreality·과잉현실)의 시대라 하더라도, 보수 언론의 ‘국가’, ‘안보’, ‘북한’을 둘러싼 시뮬라크럼과 하이퍼리얼리티는 더 이상 신비롭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기호와 이미지가 자신이 표상하려는 사물이나 실재를 대체할 뿐만 아니라 기호가 기호를, 이미지가 이미지 자체를 대체하는 과정의 연속 속에서 천안함은 사라지고 우리는 잘 짜인 가상현실에 놓이게 되었지만, 가상현실임을 자명하게 발견해버리는 실패한 시뮬라크럼이다. 말과 글자, 사진과 영상, 동영상 등 재현의 기호가 바쁘게 움직였지만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보수 언론의 탄생을 재촉하는, 그야말로 보수 언론을 위한 진혼곡이다. 망자가 천국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진심으로 빌어주는 진혼곡 말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이 세상을 기호나 담론적으로 창조하는 언론의 창조성(Creativity)에 윤리적 책임성을 사고하게 하는 일에서부터. 잠시 바흐친을 주목한다. 바흐친은 이론주의(Theoretism)를 비판한다. 인간의 창의성을 하나의 이론 체계로 환원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이론주의다. 이론주의는 인간 삶의 복잡한 진실이나 주체성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고정된 지적 체계에 종속시킨다. 그래서 바흐친은 모든 최종적 결론의 불가능성, 즉 ‘비최종성’(Unfinalizability)을 강조한다. 우리 삶에서 최종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고 최종적으로 결말지을 수 없다. 삶은 과잉, 잔여, 허술한 빈틈, 변칙으로 가득 찬 수수께끼와 같고 그래서 충격과 당혹스러움, 변화와 혁명의 가능성에 항상 열려 있다. 따라서 삶의 윤리는 바흐친이 주장하듯이 ‘대화주의’(Dialogism)와 ‘대화적 진실’을 추구하는 데 있다. 모든 진술과 담론은 대화적이며 다양한 목소리의 상호교접이다. 모든 담론은 많은 목소리와 언어의 흔적이 기재된 혼합물이며, 모든 주체는 복합적인 목소리, 과거와 현재로 구성되는 대화 공간이다. 어느 누군가의 말하기와 글쓰기는 다양한 대화적 공간, 즉 ‘헤테로글로시아’(Heteroglossia)에서 나온다. 그래서 단 하나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말하기와 글쓰기는 독백의 진실로, 교황이나 대통령의 선언과 같이 모순과 반대의 목소리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반면 대화적 진실은 아직 통합되지 않은 여러 목소리가 서로 만나는 과정에서 나온다. 대화적 진실은 하나의 독백으로 합쳐지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향된 교차가 아니라 의식의 복수성을 노출하려는 과정에서 출현한다. 대화적 진실을 통해 나오는 진실이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의 특수성과 독특함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수 언론이 새로운 대화주의적 윤리를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정치적 보수성을 지니되 자신의 의견과 담론이 사회적 대화주의 틀에서 작동하기를 기대하며, 대화주의적 윤리가 자신에게 더욱 건강하고 튼튼한 언론의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를 기대한다. 모든 대상과 사건을 ‘비최종성’의 가능성 앞에 열어놓고 수많은 헤테로글로시아를 창조하기 기대한다. 자신의 창의성을 단 하나의 수렴 논리나 이념에 종속시키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다시 천안함으로 돌아와 보수 언론이 배반한 그들, 즉 죽은 이들 앞에 겸허하게 고개 숙이고 명복을 빌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천안함 사건의 원인과 실체에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접근하려는 언론의 기본적 노력을 해주기 기대한다. 북한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었음을 부디 보여주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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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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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010-05-27 08:35:27
역시 소총수였던 김택중(25•전북 정읍시)씨.“토목과는 건설현장에서 활동적인 일을 해야 하는데 몸이 그러니까 다분히 현실적으로 생각한 거죠. 몸 안에 파편이 4~5개쯤 있거든요.” 김씨는 “어느 날 밤인가는 우연히 서해교전 전사자 6명의 얼굴을 떠올렸는데 그중 한 사람의 이름이 생각이 안 나 밤새 울었다”고 말했다.

유 량 2010-05-21 04:07:47
이들 악의 요소가 교호적으로, 상승악화한게-물론 배경에 좁은 국토와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 지정요소를 무시할 수 없으나-현 사회-문화이 것으로 판단, 대응 전략이 마련되어야 할것. 모든 분야에서.

유 량 2010-05-21 03:53:54
북한의 체제의 특징이나 남한이 겉으로 민주화했다고 하면서도, 그 사회의 극단적이고, 타협이 어려운 특징을 갖는 것은, 쉽게 보아, 연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불란서, 영국, 미국의 그 과정을 역사에서 주의깊게 드려다보는 것에서 알게되는 것 처럼, 성급하게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 그러면서도 앞 부분에 쓴, 집요하게 자기주장이 강한, 경쟁이 강한 문화가, 언론이라고 예외는 될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