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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에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권한다
사법부에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권한다
  • 이유진 | 변호사
  • 승인 2017.12.2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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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건 판결 그후

‘돈도 실력이다’ ‘나를 주주님이라고 불러라’, 모두 2017년을 달군 청춘들의 발언이다.  같은 해 구의역에서 스무살 청춘이, 공장과 콜센터에서 미처 청춘이라고 부르기도 어린 고등학생들이 참고 참다가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다르게 만든 걸까. 

 
자본주의는 인류역사상 그 효용성과 효율성을 입증한 가장 ‘우수한’ 정치체제지만,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시장만능주의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한국사회를 이루는 두 가지 축은 자본주의와 법치주의다. 두 바퀴가 잘 맞물려야 사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 유달리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 많았던 것은 이 두 바퀴가 어긋나면서, 시장만능주의로 치달았기 때문은 아닐까. 
 
어떤 체제도 비판과 성찰 없이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최근 자본주의의 고유영역으로 인식돼온 기업 부문에서조차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도입 등 미숙하나마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본주의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은 물론, 제도와 법률을 해석해 판단하는 사법부의 자체적인 성찰도 필요하다. 자본의 논리가 지닌 속성상, 그 자체만으로는 분명한 공백이 있기 때문이다. 법이 허용하는 ‘한계’를 세우고, 한계를 넘는 행위에 대해 심판을 통해 규범의 선을 그어줄 수 있는 주체는 법의 해석을 담당하는 사법부가 유일하다.
 
‘보이지 않는 손’은 도덕감정을 전제로 한다
 
때로 경제 주체인 기업들은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소액 주주를 속이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비윤리 경영을 시도한다.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유주의적 경제논리라며, 이를 정당화한다. 이런 경제주체들의 부도덕은 경제학에 대한 편향적 시각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모든 학문이 그렇듯, 경제학도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고의로 무시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을 주창한 애덤 스미스는 윤리철학자로서,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의무를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그가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하면서 내세운 기본전제는 ‘정의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1)이다. 그가 말하는 ‘정의’는 개인의 이기적인 행위가 보편적 도덕감정 내에 제한되는 것을 의미한다.(2) 애덤스미스의 경제학은 그 전제가 도덕감정이며, 나아가 모든 국민의 부를 늘려 자립적으로 생활하게 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한다. 따라서 그의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투자 대비 수익의 양 같은 ‘효율성’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행복감의 합, 즉 ‘효용’이 탐구대상이다. ‘보이지 않는 손’을 위시한 자유경제는 도덕감정을 전제로 구성원들의 만족감 최대화를 위해 도출된 논리일 뿐이다. 전제조건인 도덕감정이 부정될 때, 자유시장 경제의 논리적 당위성 또한 사라진다. 
 
쌍용차 사건, 사법부의 도덕불감증이 빚은 참극 
 
쌍용자동차(이하 ‘쌍용차’) 사건은 경영진의 회계조작과 고의적 부도, 부당 정리해고 등 경제공동체를 위협한 중대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결(2014.11.13 선고: 2012다14517)은 사법부가 자본주의에 대한 감시인 역할을 외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이하 ‘상하이차’)는 2005년 1월 쌍용차를 인수한 후 약속했던 투자와 신용공여한도계약에 대한 최소한의 지급보증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개발기술 전수대금 1,200억 원도 지급하지 않았다.(3) 오히려 당시 상하이차는, 쌍용차를 흑자로 전환하고 워크아웃을 종결시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소진관 쌍용차 사장(4)을, ‘실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했다. 그 이면에는 정리해고 이후 매각추진을 위해 껄끄러운 투자 약속 이행과 고용보장을 요구한 소 전(前) 사장을 해고했다는 분석(5)이 지배적이다. 
 
상하이차의 퇴거 이후 안진회계법인은 쌍용차가 고정자산 감가상각 비율을 임의로 변경해 부채비율이 168%에서 561%로 급격히 늘어난 것을 감사과정에서 묵인했다. 또한 컨설팅을 맡은 삼정 KPMG는 2009년 컨설팅 직전 발행된 한국감정원의 재평가 보고서(부채비율 187%)를 무시한 채 안진의 회계처리만을 기초로 해 매출추정액과 대출가능액을 과소평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쌍용차의 정리해고를 쉽게 했다. 보고서 발행 두 달 전 법무법인 세종이 법원에 제출한 ‘쌍용차의 회생절차 개시 명령 신청서’ 상의, “인력감축이 아닌 투자와 기술개발이 필요하다”는 의견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다. 
 
안진회계법인은 입장표명(6)을 통해 “쌍용차의 개발자금이 없는 탓에 신차 생산에 의한 현금흐름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을 개진했으나 최대주주인 상하이차가 채권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였고, 자금조달이 가능한 크레딧라인과 담보로 제공할 수 있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자금조달 불가”라는 가정에 기초한 해당 감가상각은 부당하다. 같은 가정에 기초한 어음부도 또한 작위적이다. 이런 유동성 흐름의 단절은 감가상각 비율을 급격히 높이고, 동시에 단시간 채권회수와 대출을 미루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것이다. 
 
주주와 경영진, 분리된 주체로 볼 수 있을까?
 
대법원의 판시는 크게 다음의 두 가지를 논거로 한다. 첫 번째, 인원감축은 객관적으로 합리성이 있어야 가능하고, 인원감축의 규모는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두 번째, 인원 정리해고 당시, 피고(쌍용차)가 처한 경영위기는 기업구조 개선작업 및 주주의 적극적 투자 미비로 인해 상당 기간 신규설비 및 기술개발에 투자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지속적·구조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두 번째 부분에서 대주주가 경영진을 선임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쌍용차의 ‘경영위기’는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투자와 대금지급의무를 고의로 늦춰서 창출한 것이다. 다만 외부인인 안진회계법인이나 삼정KPMG 입장에서는 역시 대주주를 회사경영에 직접 관여하는 주체가 아니라, ‘외부’ 조건으로 본 것일 수 있다. 대주주로부터의 투자자금 유입 및 신용공여를 단순한 채권관계로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대주주가 고용한 경영진의 경영판단에는 대주주의 의도가 반영돼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주주는 경영진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경질시킬 수 있으므로 경영진의 판단은 당연히 주주의 입장에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24조1항의 ‘경영상의 이유’에는 대주주의 경영권 행사도 포함해 해석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영권 행사의 주체인 대주주 스스로가 만들어낸 경영상의 위기는 그 스스로 인지하고 창출해낸 것이므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없어 해고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해석함이 타당할 것이다.
 
대법원의 판시대로라면, 앞으로 투기자본이 회사를 매수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경영진을 고용하고, 회사의 위기를 인위적으로 조작한 후, 자신들이 대리로 내세운 경영진을 내세워 위기를 빙자한 정리해고가 가능해진다. 대법원은 대주주와, 대주주가 선임한 경영진을 따로 분리하는 논리 전개를 통해 사실상 대주주의 이익만을 좇은 경영진의 부도덕한 경영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면죄부를 준 셈이다. 만약 이와 반대로, 대법원이 쌍용차 사건처럼 대주주의 고의적 투자 불이행과 경영진의 경질 등 ‘주주의 고의로 인한 회사 위기’로는 경영상의 정리해고가 불가하다는 판결을 내놓았다면, 경영진은 대주주가 스스로 위기를 조장하려 할 때 대주주의 이익만을 좇지 않고, 이런 대주주의 행위에 제동을 걸며 소신껏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주주가 정리해고 등의 무리수를 두려 할 때, 경영진은 ‘법적으로 불가하다’고 방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도덕 감정을 무시한 채 기계적인 판결에 치중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국민에 전가된다. 쌍용차를 인수한 상하이차는 자사가 보유한 쌍용차의 기술을 모회사로 지속해서 이전하면서 기술료를 지급하지도 않고,(7) 약속했던 투자액을 지급하지 않아 어음을 부도나게 했다. 게다가 신규기술 개발을 게을리 함으로써 기업 경쟁력을 약화했다. 정상적인 주주라면 이와 같은, 회사를 부실하게 도산시키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하이차는 쌍용차의 대주주이자, 또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경쟁사였기에 이런 결정이 가능했다. 쌍용차는 경쟁력 약화로 인한 경영상의 위기를 이유로 직원 40%의 해고를 단행했다. 앞으로도 투자를 빙자한 ‘투기자본’에 의해 쌍용차의 예처럼 노동자와 소비자의 권리가 부당히 침해 당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사법부의 “안타깝다”는 표현에 담긴 의미
 
기업은 경영진이 주주와 관계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주주와 경영진을 동일시해 주주가 발생시킨 경영상의 위기는 근로기준법 24조1항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포함하지 않고, 다만 예외적으로 경영진이 주주에 어떤 투자 약속 이행요구를 했는지, 채권회수를 어떻게 했는지 입증해 해결함이 옳을 것이다. 도덕의 기준을 법에서 세워줘야 경제활동의 주체들이 경제논리에서 도덕을 세울 수 있다. 법이 최소한의 방어선을 형성해 줄 때 경영진은 주주의, 회계와 컨설팅 법인은 경영진의 부도덕한 요구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와 투자자금의 회수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효율적 경영은 분명 사회와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작점에서 경제논리와 효율성이 과연 어떤 기준 아래에, 무엇을 절대적인 가치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사법부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법부는 쌍용차 사건의 판결을 내리기 전에 ‘안타깝다’는 표현을 기재하려다 수정했다고 한다.(8)
 
‘안타깝다’는 것은 사실상 경제영역에 대한 사법부의 심판을 사법부가 스스로 포기했다는 말이 된다. 즉,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법적문제가 아니라는 소리다. 재판부가 기업위기의 본질이 고의인지 혹은 정말 긴박한 위기인지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판결을 내놓았다면, 그 판례는 인용되고 인용되는 가운데, 조금씩 단 0.1%라도 복리를 붙여가며 자본주의의 폭주를 막는 장치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수동적으로 경제논리를 해석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경제주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자세가 사법부에서도 필요하다. 사법부가 법을 통해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는 중재자라면, 그 기본은 투자의 ‘효율’이 아닌 사회 구성원들의 ‘효용’을 지향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사회를 이루는 두 축은 자본주의와 법치주의이며, 이 두 바퀴가 잘 맞물려야 사회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수많은 체제들 사이에서 그 효용성과 효율성을 입증한 가장 ‘우수한’ 제도임이 분명하나, 그 자체로는 불완전하다. 그 어떤 체제도 비판과 성찰 없이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사법부가 자본주의에 대한 감시 역할을 포기한다면, 자본주의는 인간을 위해 기능하지 못할 것이며, 반대로 인간이 자본주의를 위해 기능하게 될 것이다. 
 
글·이유진
법무법인 지평에서 자본시장, 사모펀드 및 입법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프로 보노 활동으로 소셜벤처 및 임팩트 투자 자문을 맡고 있다.
 
(1) “사람들은 정의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 완전히 자유롭게 자기 방식대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1776
(2) <국부론>은 애덤 스미스의 윤리철학 강좌 중 정치경제학에 대한 내용으로, 이 ‘정의의 원칙’에 대해서는 윤리학을 다룬 <도덕감정론>에서 설명했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2부. 2편. 1장. 2.
(3) ‘상하이車, 쌍용차에 3,200억 先지원하라’, <한국경제신문>, 2008.12.26 
(4) ‘소진관 쌍용차 사장 금탑산업훈장 수상’, <Autotimes>, 2005.05.31.
(5) ‘소진관 쌍용차 사장 경질 진짜 이유?’ <이코노미스트> ,2005.11.14
(6) ‘쌍용차 항소심 판결관련 안진회계법인 입장’, <News1>, 2011.11.07.
(7) 비록 ‘그룹 간 기술교류의 범위 내이며’, ‘쌍용차의 기술가치가 크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임죄 부분에서 승소했더라도, 지급해야 할 기술료가 1,200억 원이었다는 사실은 산업은행이 입증한 바 있다. 
(8) ‘대법원은 왜 안타깝다는 말을 뺐을까?’, CBS 노컷뉴스, 201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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