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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을 둘러싼 ‘과학정치’ 논쟁들
천안함을 둘러싼 ‘과학정치’ 논쟁들
  • 홍성욱
  • 승인 2010.08.06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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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ée]

▲ <레오니 도네를 위한 수수께끼>, 1858 - 빅토르 위고
천안함, 정치적 기술

7월 말에 천안함 침몰에 대한 러시아 자체 조사단의 보고서가 국내 언론에 공개됐다.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파괴되고 침몰됐다고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였다. 천안함 침몰사고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에서 발표한 침몰 시각 이전에 미지의 위기 상황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고, 역시 합조단이 제시한 어뢰라는 증거, 특히 ‘1번’이라는 유성 매직으로 쓴 글자가 결정적 증거로 보기 힘들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이 기사는 진보 언론에 의해 크게 보도됐음에도, 보수 언론은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그 며칠 뒤에는 반대 상황이 연출됐다. 합조단이 제시한 ‘1번 어뢰’의 신뢰성을 의심하던 사람들은 페인트가 녹아내릴 정도의 고열 상태에서 페인트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증발하는 매직 글씨가 남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송태호 교수는 시뮬레이션 실험을 통해, 어뢰가 폭발해도 고온의 열이 순간적으로 발생해 주변에 거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기 때문에 1번 글씨가 있는 어뢰 후부는 온도가 0.1도도 올라가지 않는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보도는 진보 매체에 비해 보수 매체가 더 비중 있게 보도했다.

여기서 보듯이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여러 논란에는 과학적 실험에 대한 논쟁은 물론, 한국 정부나 북한을 어떻게 파악하고 평가하는가라는 정치적 차이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이 논쟁의 지형은 그리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현 정부와 보수 언론, 그리고 보수적 성향이 강한 개인이나 집단은 합조단의 발표를 받아들여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반면에, 진보 언론과 진보적 성향이 강한 개인이나 집단은 합조단의 과학적 설명에 회의적 태도를 견지한 몇몇 과학자와 함께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도발로 보기에는 그 증거가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논란의 시작, 그리고 끝?

지난 3월 26일 밤 9시께, 해군 1200t급 초계함인 천안함이 백령도 근방 해상에서 침몰했다. 승조원 104명 가운데 58명은 구조됐고, 46명이 실종됐다. 침몰 직후부터 천안함이 왜 침몰했는지에 대해서는 암초에 좌초됐다는 좌초설, 노후로 인한 피로파괴설, 외부 타격에 의한 폭발설 등이 제기됐다. 천안함이 침몰하고 3일 뒤에 벌써 사람들은 천안함을 둘러싼 십수 가지 의혹을 제기했고, 이 중에는 원인 모를 속초함의 발포가 있었던 것처럼 보통 사람들이 들어도 고개가 갸우뚱할 만한 의혹도 있었다.

함미가 인양되고 조사가 진행되면서 초기 의문점 중에 해소된 것도 있었지만, 새로운 의문점도 추가됐다. 이런 상황에서 1·2차 발표를 거쳐서 합조단은 5월 20일에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 때문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는데, 여기서 이를 입증하는 증거를 여럿 제시했다. 합조단은 바다 속에서 독일제 어뢰를 만들 때 사용되는 금속 파편을 수거했고, 천안함 함체 절단면에서 북한·중국·러시아 어뢰에 사용되는 화약 RDX를 찾아냈다. 그런데 첫 번째 증거는 어뢰와 연관이 되지만 그것이 북한의 어뢰라는 결정적 증거와는 거리가 멀었고, 극미량의 RDX도 북한의 소행임을 확신하는 증거가 될 수 없었다.

합조단이 제시한 ‘스모킹 건’(Smoking Gun·결정적 증거)은 북한제 어뢰 프로펠러(추진부)의 발견이었다. 여기에는 ‘1번’ 글씨가 쓰여 있었으며, 세상에서 한글을 사용하는 곳이 남한과 북한 두 나라밖에 없음을 감안하면 이 어뢰 프로펠러는 결정적 증거로 손색이 없었다. 합조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에너지분광기와 엑스선회절기를 이용해 함체에서 발견된 흰색 분말(A)과 어뢰의 프로펠러에 붙어 있는 흡착 물질(B)이 같은 물질임을 보였다. 그런데 이것이 같은 물질일지라도 어뢰의 폭발과 직접 연관이 있으리란 근거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합조단은 여기에 어뢰에서 사용하는 화약 물질을 수조 안에서 폭발시켜 흡착물(C)을 만드는 실험을 한 뒤, 이 C를 A, B와 비교해보았다.

실험 결과는 조금 엉뚱했다. 에너지분광기나 엑스선회절기 모두 A=B를 보여주었지만, 엑스선회절기를 썼을 때 흡착물 C는 A나 B와는 다른 성질을 가진 물질로 드러난 것이다.

에너지분광기 기법 A=B=C
엑스선회절기 기법 A=B≠C

수조에서 화약을 터뜨려서 생긴 흡착물 C는 결정질 알루미늄과 알루미늄 산화물이었다. 그렇다면 A와 B는 무엇인가? 에너지분광기를 썼을 때 A=B=C가 나온 것을 보면 A와 B도 알루미늄 성질을 갖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왜 엑스선회절기 기법을 썼을 때, A와 B에서는 알루미늄 성질이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

합조단은 엑스선회절기를 사용했을 때 A와 B가 C와 다르게 나타난 이유가 A와 B는 비결정질로 산화된 알루미늄이지만 C는 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질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왜 수조 폭발 실험에서는 결정질로 산화된 알루미늄이 어뢰 폭발에서는 비결정질로 산화됐을까? 다시 합조단의 설명은 어뢰 폭발이 알루미늄을 고열로 용융했다가 이것이 바닷물에 의해 급랭되면서 알루미늄 산화물이 100% 비결정질로 변했다는 것이다. 즉, 앞의 표에서 보는 에너지분광기와 엑스선회절기 결과의 불일치는 사실 수조 실험과 어뢰의 차이와 다름없으며, 이런 차이는 제한된 수조 실험이 어뢰 폭발 상황을 100% 재연하지 못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합조단의 설명이었다.

합조단의 ‘결정적 실험’이 어떤 실험도 어뢰를 재연하지 못한다는 가정에 근거한다는 점은 아이로니컬하다. 수조를 사용해서 폭발 실험을 한 결과가 어뢰의 결과라고 추정된 것과 다르게 나왔다는 것이 오히려 어뢰임을 입증했다는 셈이니, 이에 이견을 표명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오히려 의아했을 것이었다. 이승헌 미 버지니아대학 교수(물리학)는 합조단이 제시한 어뢰의 폭발 상황을 그대로 재연해보려고 했다. 그는 알루미늄을 용융점보다 훨씬 높은 1100도로 40분 가열한 뒤에 이를 2초 동안 급랭시켰다. 그는 이런 조건이 합조단이 어뢰의 조건이라고 상정한 것과 동일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렇게 얻어진 알루미늄(D)을 엑스선회절기와 에너지분광기, 그리고 주사전자현미경을 사용해서 분석했다. 합조단의 주장이 옳다면 D=A=B가 돼야 했지만, 실험 결과는 D=C로 나타났다. 즉, 어뢰가 폭발하는 조건에 가장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서 생성시킨 흡착물도 수조 폭발에서 나온 흡착물과 동일한 결정질 산화 알루미늄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교수의 ‘결정적 실험’도 합조단이나 합조단의 설명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합조단의 반론에 의하면 이 교수의 실험 조건(1100도로 가열한 뒤 이를 2초 동안 급랭한 것)이 어뢰의 폭발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합조단은 어뢰가 3천 도 이상의 고온과 20만 기압 이상의 고압에서 수만분의 1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교수의 실험 조건과는 물리적·화학적으로 다른 조건을 구현한다고 논박했다. 세계적으로도 보고된 바가 없지만 이런 조건에서는 100% 비결정질 산화 알루미늄이 생성된다는 것이 합조단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논쟁, 그리고 과학기술자의 역할

논쟁 구도가 이렇게 된 이상, 어떤 실험이나 시뮬레이션도 어느 한쪽을 ‘결정적으로’ 지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어뢰 폭발로 100% 비결정질 산화 알루미늄이 얻어진다(합조단은 이를 두고 “산에서 고래를 만났다”고 했다)는 합조단의 주장은 교과서에 실린 지식도 아니며, 실험적으로 입증된 명제도 아니다. 단지 천안함에서 얻어진 분석 결과를 볼 때 그렇게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인데, 과학철학에 대한 기초 지식만 있어도 이런 주장은 그 인식론적인 토대가 취약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어뢰가 100% 비결정질 산화 알루미늄을 만들지 못한다는 증거도 얻기 쉽지 않아 보인다. 아마 어뢰를 직접 폭발시켜 실험해도 논란을 잠재우기는 힘들 것이다.

과학기술이 연관된 숱한 논쟁에서, 범인의 DNA 검사와 일치하는 혈액을 발견하는 것 같은 결정적 증거를 발견해 논쟁이 종식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험은 논쟁을 종식하기는커녕 더 큰 논쟁을 낳기 십상인데, 실험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얼마나 정확하게 재연했는지가 다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정부가 ‘평화의 댐’(1986)같이 전문가를 정치적 ‘북풍’ 목적으로 이용한 경우를 경험했다. 2005년 황우석 사태 때 많은 전문가들이 보여준 실망스러운 행태나, 2년 전 광우병 논쟁 당시 “홀인원을 하고 벼락 맞을 확률보다 적다”고 정부의 편을 들던 전문가들은 아직도 우리 뇌리에서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정부 쪽 전문가에 대한 낮은 신뢰는 이번 합조단의 공식 발표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 왜 그렇게 많고, 왜 이 논쟁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지에 대한 한 가지 이유가 된다.

이번 천안함 논란이 4개월 이상 지속됐지만, 합조단에 소속된 전문가를 제외하면 국내 과학기술자들이 이에 대해 견해를 표명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과학기술자들은 천안함 문제가 국가 안보에 직결돼서 조심했다고 말할지 몰라도, 국민의 눈에는 괜히 나섰다가 미운털이 박히면 앞으로 연구에 지장이 있을까봐 주저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합조단을 비판한 재외 전문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천안함에 대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낸 과학기술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과학자여, 논쟁에 뛰어들라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물리·화학·재료·기계 분야의 전문 과학기술자들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확실하게 규명하고 의혹을 해소하겠다고 나서야 한다. 물론 전문가들이 팀을 만들어 어뢰 프로펠러를 포함한 정보 공개를 요청한다고 해도 군부가 이를 수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설령 수락해서 실험적 조사에 착수한다고 해도 문제를 깨끗이 해결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정치적 불신은 과학에 대한 해석도 얼마든지 다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신뢰가 회복되기를 기다릴 수 있겠지만, 좌우 대립의 깊은 뿌리를 지닌 우리나라에서 이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유일한 방법은 과학적 의견을 모아 많은 전문가들이 합의하는 지식의 요체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정치적 신뢰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천안함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또 한 번의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다. 전문가들의 침묵을 보기 위해 국민이 세금을 내서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글•홍성욱
서울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토론토대학 교수를 한 뒤 2003년부터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최근 저서로는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홍성욱의 과학 에세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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