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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음모론의 가벼움과 가짜뉴스의 끔찍함
영화속 음모론의 가벼움과 가짜뉴스의 끔찍함
  • 성일권 (문화평론가)
  • 승인 2020.05.04 12: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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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음모론의 가벼움과 가짜뉴스의 끔찍함

성일권문화평론가

영화에서 다뤄지는 음모론은 늘 재미있다. UFO에서부터, CIA, 프리메이슨, 유대인, 예수, 모하메드, 재벌과 권력, 그리고 전염병과 다국적 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음모론 영화들의 전개과정을 숨 가쁘게 쫓다보면 하루 일과에 퍽이나 지친 심신이 자연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넷플릭스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 줄 알면서도 주말 이틀간 날밤을 꼬박 새면서 음모론 시리즈물을 즐겨 보는 것은 적당하게 뇌를 긴장시키며 상상력을 키울 수 있고, 뒤끝이 가벼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등산, 자전거 타기나 골프 같은 동적인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필자는 주말이면 거의 신문·잡지 읽기나 독서로 소일하지만, 요즘엔 시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영화보기를 즐겨한다.

넷플릭스에는 음모론 콘텐츠만 따로 분류해놓고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영화들이 음모론적이다. <UFO의 은폐된 진실>, <베르사유>, <프리메이슨>, <메시아>, <킹덤>, <2차 세계대전>, <지정생존자>, <더 패밀리: 신이 내린 권력> 등이 필자가 아침까지 눈을 비벼가며 머릿속에 가득 채운 영화들이다. 최근에는 때가 때인 만큼, <바이러스> <아웃브레이크>, <12몽키즈> 등 전염병 관련 음모론 영화들도 내가 즐겨본 장르들이다.

아웃브레이크의 한 장면
아웃브레이크의 한 장면

 

음모론적 영화들을 보고서 그 내용이 진짜라고 믿는 순진한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걸 즐겨 보는 이유는 다소 허무맹랑한 내용을 접하며 심신의 피로감과 일상의 무미건조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서다. 특히 전염병 관련 영화들은 대단히 시사적이고 현실적이다. 예를 들면, <아웃브레이크>는 군에서 바이러스를 생화학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치료제를 일부로 은폐하고 숨겼다는 사실을 밝히는 내용이고, <바이러스>는 용감한 여의사가 에볼라 바이러스와 관련된 미 의료계의 개입 음모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현실로 돌아오면, 최근의 코로나 19 사태는 각종 음모설의 최절정을 이룬다. 음모설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팩트처럼 느껴진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만들었다'라는 소문이 대표적이다. 은퇴 이후 감염병 등 세계 보건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빌 게이츠는 지난 20154TED 강의에서 "앞으로 몇 십 년 사이, 무엇인가 천만 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다면 그건 아마 전쟁이 아니라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일 것이라며, 전염병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극우세력 사이에서는 코로나19의 발상지로 거론되는 중국 우한 연구실이 빌 게이츠의 투자를 받아 바이러스 만들어냈다는 소문이 퍼져있다.

선거를 앞두고 지지세력 결집이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은 며칠 전, '우한연구실 유래설'에 힘을 싣는 발언을 했다. 그는 '현시점에서 코로나19가 우한 바이러스연구실에서 왔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 나는 (증거를) 봤다. 그렇다. 나는 (증거를) 봤다"고 두차례나 반복했으나, 그에 대해 부연하지는 않았다. 중국과 빌게이츠의 코로나 개입설은 미대통령 마저 개임함으로써 코로나 19는 음모론을 넘어 사실여부를 갈라야 하는 가짜뉴스설로 옮겨갔다. 음모설은 나중에 사실로 확인되면, 대단한 특종이 될 수 있으나 거짓이 되면 심각한 가짜뉴스가 된다. 현재로선 중국과 빌 게이츠의 코로나 개입설은 확인하기가 쉽지 않아, 음모설로 치부될 수 있으나 머지않아 진실여부가 가려질 것이다. 최근 코로나 19의 확산을 두고, 여러 갈래의 들이 난무했다. 러시아방송의 채널원은 미국의 군부와 다국적 제약회사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중국인 등 아시아인들만 골라서 병 주고 약 팔려고문제의 바이러스를 제조해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BBC방송은 뜬금없는 이 방송 내용을 인용 보도함으로써 코로나 음모론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했고, 프랑스 언론도 한 의학연구자의 발언을 인용하며 코로나 19를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가 백신판매를 위해 퍼트린 의도된 질병이라며 음모설에 가세했다.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같은 비밀조직들의 인구축소 음모론도 그럴듯하게 퍼진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코로나 19는 소설과 영화 등에서 많은 음모론적 상상력을 자극시킬 소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코로나 정국에 문화예술가들의 창작 욕구를 부추길 이처럼 가벼운음모론을 넘어 우리사회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선동적인 가짜뉴스도 적지 않다. 탈북자 출신 태영호, 지성호 미래통합당 당선자들이 20일간 장기간 공식활동을 삼간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우리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외신 인터뷰를 통해 ‘99.9% 사망설북한 이상설을 주장한 것은 음모설을 넘어 끔찍한 가짜뉴스다. 이 두 사람의 가벼운 입CNN 등 외신 뿐아니라, 국내 유력한 보수 언론과 SNS에서 대서 특필되어 국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증시 등 실물경제를 크게 왜곡시켰다.김 위원장이 지난달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 이후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뒤, 정부가 초기부터 특이동향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지만, 태영호, 지성호 같은 이들의 가벼운 입을 인용한 보수언론과 해외언론은 중병설, 수수설, 심지어 사망설에 이르기까지 온갖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퍼날랐다. 이는 잘못된 정보가 전염병처럼 확산되는 인포데믹의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었지만, 그동안 아니면 말고식의 북한관련 가짜뉴스의 살포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칭 탈북민을 대표하고, 나름 북한전문가라고 자평하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기도 전에 새로운 통일담론과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가짜뉴스 생산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킨 것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서될 수 없다.

가짜뉴스를 제조한 가벼운 입의 두 장본인
가짜뉴스를 제조한 가벼운 입의 두 장본인

 

그럼에도 야권에서는 "유고 의혹을 제기한 사람을 비난해선 안 된다"는 반박이 나온다. 차명진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김정은 유고 의혹을 제기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20일간 잠적 사건에 대해 의혹을 가지지 않는 자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고 했다. 차 전 의원은 "인민민주주의, 주체사상 체제에서는 수령이 직접 인민의 끼니까지 챙겨야 한다. 그 수령이 무려 20일 동안이나 사라졌다는 건 통치 포기요, 체제 스톱을 의미한다""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놈이 또 어디 숨어서 뭔가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행적을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전여옥 전 새누리당(통합당의 전신) 의원도 전날 블로그에 "·지 당선자는 잘못한 거 없다. 분명 정황은 매우 의심스러웠다""저도 김 위원장이 분명 변고가 있을 거라고 봤다. 그리고 뇌경색이 와서 20일 치료 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아무리 골든타임 걱정 없는 독재자라고 해도 심장마비나 뇌졸중 등 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라며 "대깨문들과 문빠, 달좀들은 광화문 나가서 꽃술 흔들고 생환잔치라도 벌이기 일보직전 같다"고 했다. 가짜뉴스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오히려 그 제조자와 유포자를 옹호하는, 즉 옳고 그름의 전도현상에서 기인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음모론은 두려움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을 달래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음모론은 원인 불명 및 불가사의한 사안에 대해 책임을 외부로 투사할 수 있게 해주거나, 변명거리를 제공해주는 등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불면의 밤에 우리가 음모론 영화들에 탐닉하는 이유는 심리적 위안을 찾아서다. 그렇다면, 가짜뉴스는? 우리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가짜뉴스는 심리적 위안 역할을 하는 음모론과는 전혀 다르다. 세계 각국이 가짜뉴스를 결코 용납지 않는 것은 명백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 성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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