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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에 새로 등장한 좌파 이데올로기
발칸반도에 새로 등장한 좌파 이데올로기
  • 장아르노 데랑스 외
  • 승인 2021.06.3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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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 발칸반도의 정치적 쟁점은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에 한정됐었다. 그런데 공공재산을 수호하고, 불평등 심화에 저항하는 ‘반(反)자본주의 좌파’가 새롭게 등장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녹색좌파연합 소속 정치인이 수도 자그레브의 시장이 됐고, 코소보에서는 주권주의 좌파가 정권을 잡았다. 

 

 

“민주사회주의는 크로아티아에서 30년간 금기시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정치적 논점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2019년 12월 22일 대선에서 노동전선을 대표하는 카타리나 페오비치 후보의 득표율은 1.12%에 불과했다. 그러나 6개월 후인 2020년 7월 5일 총선거에서 노동전선은 다른 정당들과 녹색좌파연합을 구성한 결과, 7%의 득표율과 151개의 의석 중 7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올해 5월 지방선거에서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녹색좌파연합은 1차 투표에서부터 자그레브 시의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했고, 2주 후에 토미슬라브 토마셰비치 후보가 65%의 득표율로 자그레브 시장에 당선됐다. 노동전선은 탈퇴했지만, 녹색좌파연합은 풀라, 스플리트 등 여러 도시에서 마찬가지로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

민주사회주의에 대한 열망은 슬로베니아에서 시작됐다. 슬로베니아 좌파연합은 2014년 총선거에서 처음으로 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크로아티아는 민족주의와 전쟁으로 모든 게 붕괴된 반면, 슬로베니아는 좌파 주간지 <믈라디나>, 토론장, 슬라보이 지제크 등 뿌리 깊은 좌파적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 루카 메세츠 의원은 이같이 설명했다. ‘슬로베니아의 치프라스’라 불리는 이 젊은 의원은(2014년 첫 출마 당시 27세) 좌파 지식인을 양성하는 핵심 프로젝트 ‘노동자와 펑크 대학(The Workers and Punks University)’의 활성화에 주력했다. 메세츠 의원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우리 세대는, 일자리가 모두에게 주어지지도, 상황이 저절로 개선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라며, “우리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를 개선해야 한다고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세계주의에 매몰된 사회적 권리를 살리자”

슬로베니아의 새로운 좌파 세대는 2012년 겨울 ‘시민’ 봉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보수 성향의 야네스 얀샤 총리(2012~2013년 재선, 2020년 3월 3선)는 혹독한 긴축정책을 시행하고, 공무원 임금과 보건·교육 예산을 삭감했다. 그러나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서 시위가 몇 주째 이어졌고, 결국 2013년 2월 말에 사임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판도를 뒤엎고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학생들은 유럽연합이 주장하는, 고등교육의 자유주의 모델을 규탄했다. 주된 요구사항은 어린이집부터 박사과정까지의 전면 무상교육이었다.” 2009년 크로아티아 학생 봉기의 주도 세력이자 작가인 이고르 스틱스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운동은 몇 년 후 슬로베니아처럼 전 세대가 참여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플레넘(총회)’ 운동으로 발전했다. 

2014년 2월, 플레넘 운동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도 불을 지폈다. 북서부에 위치한 기업도시인 투즐라가 시발점이었다. 민영화된 공장의 직원들은 체불임금 지불을 요구했고 주민들까지 합세해서 지자체 건물을 포위했다. 시위대는 “굶주림이라는 단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어, 크로아티아어, 세르비아어 모두 같다”라고 강조하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추구하던 신자유주의 모델과 국가적 분열을 동시에 규탄했다. “이 운동을 통해 직접민주주의를 체험했다.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의 ‘총회들의 총회’처럼 각 도시에서 ‘플레넘들의 플레넘’이 열린다.” 이고르 스틱스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어떤 정치적 세력도 성공적인 결실을 맺지 못했다. 플레넘 운동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정계의 민족주의자들이 인종적 정치 분열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투즐라 출신으로 독일 좌파당(Die Linke) 소속인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의 남동유럽 지부장을 맡고 있는 크루노슬라브 스토야코비치는 “세르비아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당국은 사회운동이 국가반역과 같다면서 전염을 막기 위해 방역선을 쳤다”고 말했다. 

오늘날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활발한 기류는 세르비아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2020년에 급진좌파당(PRL)이 창당되면서 기존의 사회민주연맹(SDU)을 흡수했다. “우리는 SDU가 1990년대에 전쟁과 밀로셰비치 체제에 반대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2000년대 정권에 참여하고 민영화를 지지했던 것은 반대한다.” 이반 즐라티치 PRL 당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평가에 의하면, 민족주의와 전쟁에 용감하게 맞서는 거대 세력인 ‘또 다른 세르비아(Druga Srbija)’는 구 연방과 공화국들의 연계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 

“유고슬라비아 시절, 두 가지를 경험했다. 하나는 서로 다른 국민들의 유대와 단결, 즉 세계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권리이다. 자유주의적 전통은 전자를 수호했지만, 후자를 희생시켰다. 우리는 후자를 우선순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반 즐라티치에 의하면, 2000년 10월 5일 밀로셰비치 축출 이후 정권을 잡은 ‘또 다른 세르비아’는 자유주의 개혁 프로그램에 만족하지 않았다. “밀로셰비치 정권에 맞서지 않았던 노동자들을, 민영화를 통해 처벌하려 했다. 그러나 간과된 사실이 있다. 2000년 10월 노동자 파업이 밀로셰비치 정권을 전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슬로베니아 좌파당(Levica)은 유럽좌파당(ELP)의 일원이다. 프랑스 공산당, 독일 좌파당, 그리스 진보좌파연합(Syriza)도 유럽좌파당 소속이다. “우리는 유럽연합 차원에서 활동하지만,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보다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의 동지들과 더 가까운 관계다. 우리는 공통된 기준들을 공유한다.” 루카 메세츠 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크로아티아의 페오비치도 유고슬라비아와의 관련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민족주의자들은 유고슬라비아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배척한다. 하지만 많은 크로아티아인들이 이 시절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사회적 권리, 모두를 위한 휴가 등). ‘유고노스탤지어’ 바람까지 불고 있으며, 연방국가의 붕괴 원인에 대한 토론도 끊이지 않고 있다. 많은 크로아티아인들의 머릿속에 유고슬라비아와 사회주의의 연관성이 계속 남아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유리하다.”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은 수정주의자들이 2차 세계대전을 두고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우파를 자극시키려 했던 시도를 비판한다. 그리고 노동자 자주경영 등 사회주의적 경험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토대로 기념비적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세르비아는 2012~2014년에 알렉산드르 부치치가 독재적 신자유주의 정권을 공고화하기 전까지 수많은 노동운동을 겪었다. 한 예로 중부 도시인 즈레냐닌에서는 유고레메디야 제약회사 노동자들이 2003년 12월부터 2004년 9월까지 장기 파업을 벌였다. 노동자들은 민영화를 막기 위해 공장을 점거했다. 결국 노동자들이 대부분의 자본을 통제하게 됐다.” 즐라티치는 이처럼 노동자 자주경영에 대한 경험이 유고슬라비아 노동계층의 기억 속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교차점에 선 새로운 좌파세대

새롭게 싹트기 시작한 좌파는 두 전통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노동운동이라는 전통과, 공공재산 보호에 중점을 둔 지방자치주의 경험에 기반한 전통이다. 크로아티아 수도인 자그레브 시장직을 차지한 녹색좌파연합은 ‘자그레브 예 나슈(자그레브는 우리의 것!)’라는 정치적 플랫폼에 기반한다. 최근의 승리는 ‘네 다비모 베오그라드(베오그라드를 익사시키지 마라)’ 운동에 활기를 더했다. 이는 세르비아 급진당과 가까운 부동산개발업자들이 수도인 베오그라드를 훼손하는 것을 막으려는 운동이다. 주민을 이전시키고 도심을 싹 밀어서 다뉴브강을 따라 고급 복합단지를 세우려는 ‘베오그라드 워터프론트’ 도시개발프로젝트의 주요 자금원은 아랍에미리트지만, 실상은 대대적인 돈세탁에 불과하다. 

2016년 봄, 베오그라드 주민 수천 명이 ‘네 다비모 베오그라드’의 마스코트인 초대형 노란 오리 ‘러버덕’을 앞세우고 거리를 행진했다. 시위는 아발라 영화스튜디오 철거, 코수트냐크 녹지 파괴 등 다른 수도개발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확대됐다. 고급주택화 반대투쟁은 퇴거 반대운동의 형태로 진행됐다. 세르비아 법에 의하면 빚이나 체납 임대료가 있는 경우, 또는 1945년 이전 소유주에게 재산을 반환해야 할 경우 퇴거명령을 받기 쉽다. “몇몇 극우파가 시위에 동참하려고 했지만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공권력과 한패인 경비원들과 경찰에 대치할 만큼 결심이 확고해야 한다.” ‘크로브 나드 글라봄(피난처)’ 운동가인 이시도라 페트로비치는 웃으며 말했다. 

페트로비치는 2018~2019년 겨울의 ‘민주주의적’ 시위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자유주의 야당이 선거에 잇따라 실패한 이후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의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부치치 정권이 ‘사회적 폭발’을 피해갈 수 없다고 믿는다. 2020년 7월, 보건상의 이유로 대학 기숙사를 폐쇄하겠다는 결정에 학생들이 분노를 터뜨린 것이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발칸반도에서 공공재산을 수호하려는 운동은 시위의 형태로 진행됐다. 4월 초, 베오그라드에서 대규모 시위행렬을 일으켰던 것처럼 말이다. 정부의 측근들이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지원을 받아서 시행하는 소규모 수력발전소 사업에 반대하는 시위도 전국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변화는 우리에게서 일자리, 공장, 미래 등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이제 우리에겐 물, 공기, 자연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제 그것마저 가져가려 한다.” 몬테네그로의 부코비차 강을 보호하는 운동가인 알렉산다르 베미치는 이렇게 분노했다. 이런 전례 없는 운동들은 몬테네그로 사회에 혼재하는 다양한 정체성을 초월하고, 2020년 8월에 밀로 주카노비치 정권을 밀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1) 새로운 정부의 기둥이 된 통합개혁행동당(URA)은 유럽녹색당에 가입하고, 친환경·친시민 좌파임을 천명했다. 

노동자, 환경,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접합점은 여전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야네스 얀샤 슬로베니아 총리가 2020년 3월 다시 권력을 잡았다. 루카 메세츠 의원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에 버금가는 얀샤 총리의 극우 독재에 맞서, 기본권 보장을 쟁취하는 것이 반자본주의 좌파의 몫”이라고 역설했다. ‘네 다비모 베오그라드’ 운동가인 로버트 코즈마는 이렇게 강조했다. “유럽연합 소속 여부가 국가 간 격차를 만드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모두 반쪽의 지배를 받는 주변부에 속한다.” 

 

 

글·장아르노 데랑스 Jean-Arnault Dérens
로랑 젤랭 Laurent Geslin 

<발칸통신(Courrier des Balkans)> 기자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Clientélisme et vertiges identitaires au Monténégro 몬테네그로 정부의 정체성 혼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1년 2월호.

 

 

코소보의 주권주의적 좌파

 

코소보의 주권주의적 좌파가 2월 14일 총선거에서 50.3%의 유효표를 획득하며 코소보해방군(UCK) 게릴라 출신 사령관이 포진한 정당들을 제치고 압승을 거뒀다. 이에 카리스마 넘치는 알빈 쿠르티 자결당(알바니아어로 Vetëvendosje) 당수가 총리직에 올랐다. 그는 2019년 10월 총선에서 총리에 당선됐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 3월 미국 정부의 압력으로 인해 연립정부 파트너인 중도우파 성향의 코소보민주동맹(LDK)이 실각했고, 쿠르티 내각도 뒤이어 퇴출됐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영토교환 가능성을 전제하는 코소보-세르비아 평화협정을 밀어붙였지만, 자결당은 이를 거부했다.(1) 2020년 9월,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간의 단순 경제협정을 체결시켰다.(2) 1999년 봄, 세르비아 폭격 사건 이후 코소보에 친미 성향이 두드러졌지만, 유권자들은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의 피해자라 주장하는 지도자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쿠르티 총리는 세르비아와의 대화에 힘쓰기보다는 부패척결과 보건·사회·경제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그에게 무슨 여유가 있겠는가? 발칸반도의 좌파 세력들은 자신들의 민족주의적 기준 때문에 자결당을 유보시켰다. 그럼에도 그들은 진행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쿠르티 총리가 서구의 도움 없이도 급진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글·장아르노 데랑스 Jean-Arnault Dérens
로랑 젤랭 Laurent Geslin 

번역·이보미


(1) ‘Dans les Balkans, les frontières bougent, les logiques ethniques demeurent 발칸의 민족 동질성 집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8월호, 한국어판 2019년 12월호. 
(2) Serge Halimi, ‘Fausses indépendances 강대국에 종속된 유사 독립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0년 10월호.
(3) Jean-Arnault Dérens, ‘Essor d’une gauche souverainiste au Kosovo 코소보에 등장한 급진적 민족주의 좌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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