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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은 스포츠영화처럼 감동을 줄까?
도쿄올림픽은 스포츠영화처럼 감동을 줄까?
  • 임정식 | 영화평론가
  • 승인 2021.07.30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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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회 도쿄올림픽만큼 우여곡절이 많은 대회도 없을 듯하다. ‘세상에 없던 대회’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실제로 대회 개막 자체가 순조롭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1년이나 미뤄진 끝에 ‘겨우’ 개막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내년 3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 후보 선출, 코로나 4차 유행 등으로 인해 도쿄올림픽에 대한 열기가 낮은 편이다. 7월 중순에 터진 프로야구 선수들의 호텔 술 파티와 대표선수들의 자진 사퇴, 문재인 대통령의 개막식 참석 및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둘러싼 한·일 정부 간 신경전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스포츠가 주는 감동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한국영화 중에서도 올림픽과 관련된 작품이 적지 않다. 한국 최초의 스포츠영화로 일컬어지는 <꿈은 사라지고>(1959)는 올림픽 출전을 앞둔 국가대표 권투선수가 주인공이다. 이 선수에게는 아름답고 청순한 애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카바레 여급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 그는 실의에 빠져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코치의 끈질긴 설득과 격려로 마침내 재기에 성공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아쉽게도 이 영화의 필름은 남아 있지 않다.

올림픽이 배경인 국내 스포츠영화 중에서는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과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2009)가 흥행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박건용 감독의 <킹콩을 들다>(2009)는 88서울올림픽 역도 동메달리스트 출신 선수의 부상과 좌절, 시골 여자중학교 역도선수들을 위한 헌신과 희생이 스토리의 줄기를 이룬다.

이 스포츠영화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스포츠 자체의 극적인 서사성과 인물들이 보여주는 감동의 드라마, 두 요소가 합쳐진 영웅신화적 특징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런 특징은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정서적 몰입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또한 스포츠영화는 대중영화로서 제작 당시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꿈은 사라지고>의 여성 인물은 자신의 신분이 알려지자 ‘나는 가야지~’라는 내용의 주제가 속에서 쓸쓸하게 종적을 감춘다. 반면 2000년대 스포츠영화의 여성인물은 주체적, 능동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간다.

앞서 언급했듯 스포츠영화의 인물들은 대체로 영웅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때 영웅의 특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고대신화나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초인적인 영웅과 거리가 멀다. 고대신화 속의 영웅들은 보통 고귀한 혈통을 지니고 태어나,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과업을 달성한다. 반면 스포츠영화의 등장인물들의 혈통은 미천하다. 그들 중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과 환경이 뛰어난 인물은 극소수다. 오히려 가난, 부상, 질병, 사고 등으로 평균보다 못한 상황에 빠져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스틸컷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한미숙은 소속팀이 해체돼 대형 마트의 판매원으로 일하고, 남편은 빚쟁이에게 쫓겨 다니는 처지다. 김혜경은 ‘이혼녀’라는 이유로 국가대표 감독 대행에서 밀려나 선수로 변신하는 시련을 겪는다. 또 이들은 새로 부임한 남자 감독으로부터 “아줌마”라는 비아냥을 듣고, 후배 선수들과는 세대교체 문제로 갈등한다. <국가대표>의 차헌태는 입양아로서 어머니를 찾아 귀국했으며, 강칠구와 봉구 형제는 청각장애인 할머니와 가난하게 산다. 국가대표팀 코치 방종삼도 어린이 스키 교실 강사 출신이다. 게다가 두 영화는 비인기 종목인 여자핸드볼, 종목 이름조차 생소했던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실화를 다룬다.

스포츠영화의 인물들 중에는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가 드물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국가대표>의 인물들은 국가대표이므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국가대표>에서 차헌태를 제외한 인물들의 실력은 범인(凡人)과 비슷하거나 약간 뛰어난 정도다. 무엇보다 이들의 능력을 경쟁상대인 외국 선수들의 능력과 비교하면, ‘비범하다, 탁월하다, 초인적이다’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따라서 스포츠영화의 서사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스포츠영화에서는 인물이 비범한 능력을 지녔다고 해서 반드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고 해서 영웅이 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스포츠영화의 인물들은 능력 자체보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영웅의 위상을 확보한다. 이는 신화학자 노스럽 프라이가

『비평의 해부』에서 언급한, ‘현대에 올수록 현실적, 실존적 인물이 부각 되는’ 문학 양식(서사물)의 역사적 흐름과 일치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국가대표>도 선수들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킹콩을 들다> 스틸컷

그런 점에서 <킹콩을 들다>에서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출신 이지봉 코치가 어린 선수들에게 들려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지봉 코치는 선수들에게 쓴 편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금메달에 도전한다. 하지만 동메달을 땄다고 해서 인생이 동메달이 되진 않아. 그렇다고 금메달을 땄다고 인생이 금메달이 되진 않아. 매 순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그 자체가 금메달이야”라고 말한다. 이지봉의 이 말을 들은 학생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맨땅에서 대나무 봉으로 훈련하면서도 전국대회 우승을 일궈낸다. 영자는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에 출전한다. 

그렇다면 <국가대표>의 선수들도 진정한 금메달리스트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영화의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은 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급조된 팀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지도자도, 선수도, 연습장도 없다. 그래서 코치와 선수들은 공사장 먼지를 들이마시면서 직접 점프대를 설치하고, 오토바이 헬멧과 공사장 안전모를 쓰고 승합차 지붕에 올라탄 채 질주 훈련을 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998나가노동계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다. 하지만 위원장은 무주동계올림픽 유치가 실패로 끝나자 팀의 해체를 결정한다.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자비로 올림픽에 출전해 멋진 경기를 펼친다. <국가대표>에서 선수들의 활강 장면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다. 

 

<국가대표> 스틸컷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2004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여자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이야기다. 당시 여자핸드볼 국가대표팀은 결승전에서 덴마크와 2차례 연장과 승부 던지기를 하는 혈투를 벌였는데, AP통신은 이 경기를 ‘아테네올림픽 10대 명승부’에 선정했다. 국민들은 TV로 이 경기를 지켜보면서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최종 승부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다. 이미 보도된 사실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경기 결과보다 선수들이 은메달을 따기까지 겪은 갈등, 위기와 시련 극복, 그에 따른 인물의 내면 성장에 초점을 맞추려는 연출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국문학자 조동일은 영웅을 ‘상층영웅’과 ‘민중영웅’으로 분류한다. 상층영웅은 고귀한 혈통을 지니고 태어나 비범한 능력으로 승리를 쟁취한다. 민중영웅은 미천한 혈통으로 태어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아기장수와 우뚜리가 이에 해당한다. 스포츠영화는 영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타고난 혈통이나 능력, 표면적인 승리는 이제 영웅의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다. 진정한 영웅은 고난을 극복하고 과업을 달성하는 과정에 의해, 자아 발견이라는 내적인 성장에 의해 탄생하는 존재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국가대표>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진짜 이유다. 

제32회 도쿄올림픽에서도 수많은 스포츠영웅이 탄생할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영화에서는 금메달을 따거나 혹은 경기에서 승리해야만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국가대표>의 인물들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관객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이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는 스토리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제32회 도쿄올림픽에서는 과연 누가 스포츠영화와 같은 감동을 안겨줄까?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회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훈련하고 마침내 대회에 출전한 그들 모두가 이미 영웅인지도 모른다.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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