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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3주년 연중기획 (2) - 한류에 가장 늦게 올라탄 영화의 비상(飛翔)
창간 13주년 연중기획 (2) - 한류에 가장 늦게 올라탄 영화의 비상(飛翔)
  • 김중기 l 영화평론가
  • 승인 2021.10.29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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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3주년 연중기획 2]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K-문화콘텐츠는 어디로?
총론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팝 : 임진모 음악평론가 
영화(애니메이션 포함) : 김중기 영화평론가, 영화공간 ‘필름통’ 대표
드라마 : 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웹콘텐츠(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등) : 신정아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기획위원장, 방송작가 
문학 : 유성호 한양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월간 ‘쿨투라’ 편집주간 
출판 : 김성신 출판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출판위원장 
게임 : 남기덕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 
미술 : 김원숙 미학박사, 예술 비평가 
연극 : 이은경 연극평론가 
무용 : 정옥희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무용 연구자 
뮤지컬 : 최여정 문화평론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트코로나 콘텐츠기획단 팀장 
전통공연예술 :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 예술위원 
클래식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오페라 : 이소영 솔오페라단 단장 
제언 – 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학부 교수

 

2021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봉준호X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스페셜 대담/ 뉴스1

칸 영화제에 맞춰 열리는 ‘2021년 칸필름마켓’이 내놓은 ‘최근 5년간 세계 영화시장 톱10 국가의 제작 현황’ 통계에 의하면, 2020년 세계 영화제작 편수는 전년인 2019년 대비 25.1% 감소했다. 국가별로 보면 영국 55.8%, 미국 45.1%, 독일 42.6% 그리고 중국 37.3%의 감소세를 기록했다. 팬데믹 사태 속에서 예상했을 법한 결과다. 

그러나, 놀랍게도 증가세를 기록한 나라가 단 하나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2020년 국내 영화제작 편수는 2019년 대비 22.5%, 최근 5년 대비 16.1% 늘어났다. 2019년 502편이던 것이 2020년에는 615편이 제작됐다. 놀라운 일이다. 대규모 고예산 영화의 경우 제작에 차질을 빚었지만, 독립영화와 저예산 영화는 팬데믹 사태에 전혀 위축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영화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는 소위 ‘바람’을 탔다.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등의 이름과 함께, 한국영화의 높은 완성도와 차별화된 스토리텔링이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한국영화를 즐기는 외국관객들이 늘면서 자막에 대한 장벽도 허물어지고 있다. 한류가 형성된 지 20년 만이다. 영화는 한류에 가장 늦게 올라탄 장르다. 음악, 드라마에 비해 접근이 어렵기에 한두 편의 흥행작으로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런 한국영화가 마침내 장기전에 성공했다. 나는 그 비결로 특유의 묘한 매력과 ‘뚝심’을 꼽고 싶다.

한국영화에는 ‘우리 이야기’라는 고집스런 진정성이 담겨 있다.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가 지난 7월 개봉해 1개월 만에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영화는 1990년 아프리카의 소국 소말리아에서 벌어진 남북 외교관들의 목숨을 건 탈출극이다. 전쟁이나 테러로부터 탈출하는 영화들은 많다. 그러나 <모가디슈>는 한국의 사연과 특징이 진하게 담겨있다. 타국민보다 더 증오하는 하나의 민족, 두 개의 나라. 그들이 고난을 겪고 협동하며 짙은 휴머니즘을 선사하는 스토리는 다른 나라에서 흉내낼 수 없는 한국만의 이야기다.

동남아 국가의 시위 현장에서 영화 <변호인>, <택시 운전사>, <1987> 등이 언급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 영화들은 상업적인 목적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영화들이다. 한국의 제작자들은 시대의 의무감을 가지고, 민주화의 변곡점을 영화로 그려냈다. 고난의 역사가 스토리텔링의 자산이 된 것이다. 한국영화에는 강렬한 독창성을 지닌 작품들이 많다. <부산행>은 미국영화의 전유물인 좀비를 마치 예비군복을 입혀놓은 것처럼 한국화한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영화로 옮겼지만, 원작은 흔적만 비칠 뿐 깊이와 인식의 흐름 측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이창동표’ 영화가 돼 세계 영화작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극한직업>은 잠복근무 형사와 한국 먹거리의 선두주자인 치킨을 접목해 유쾌하면서 통쾌한 형사물로 성찬을 차렸다.

90년대 이후 등장한 국내 감독들이 한국 영화계에 신선함을 더해주며, 인기의 근간이 됐다. 관객의 높아진 수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귀명창이 명창을 만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다”라며 일본 우익들의 비난을 받았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환영받지 못했다. 최근 한국 드라마도 일부 관객으로부터 비난받았다. <오징어 게임>은 ‘양극화된 한국의 어두운 상황’을 부적절하게 묘사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으며, 일부는 <기생충> 속 ‘반지하’라는 한국의 특수한 빈곤 풍경에 집중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한때 5세대 감독의 활약으로 주목을 받은 중국영화계는 이런 틀 속에 갇혀 더 이상 <패왕별희> 같은 수작이 나올 수 없게 됐다. 이런 한계와 스스로 가하는 자기 검열은 창작자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점이다. 

다행히 한국영화는 이런 한계와 제약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많은 한국관객들은 선구안을 갖춰, 작품성이 인정되면 창작자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관객들의 높아진 안목은 평론가를 넘어서기도 한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은 제작비 80억 원을 투입해 1,1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후속편인 <반도>는 190억의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관객은 380만 명에 그쳤다. <반도>가 관객의 외면을 받은 것에 대해, 나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좀비물로 기울면서 독창성을 잃은 탓이라고 본다.

창작자의 필수 덕목이 독창성과 진정성이다. 한국영화는 이에 충실한 창작자들이 영화를 만들고, 수준 높은 관객이 한 번 더 걸러주니 외국관객들도 믿고 보는 K콘텐츠가 된 것이다. 하나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한국영화 캐릭터의 서사 구축이다. 한국영화는 캐릭터를 스토리에 녹여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승화시키는데 탁월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에 등장하는 순자(윤여정) 캐릭터를 예로 들어보자. 순자는 지극히 한국적인 캐릭터다. 아칸소의 외진 농장에 정착한 한국 이민 부부는 벼랑 끝에 다다른다. 저축한 돈도 떨어지고, 부부의 갈등도 깊어진다. 이때 친정엄마 순자가 한국에서 온다. 

순자는 멸치, 고춧가루와 함께 미나리 씨앗을 가져온다. 그리고 버려진 땅에 그 씨앗을 뿌린다. 척박한 이국땅에 뿌리를 내리는 미나리는 이렇게 한국인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식물이자 희망이 된다. 순자는 가족이 무엇인지를 거침없이(?) 보여준다. 손주들에게 화투를 가르치고, 오줌싸개 손자에게 “고추가 고장났다!”라며 놀리기도 하면서 위기에 빠진 가족을 다시 하나로 뭉친다. 그녀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한국 할머니지만, 미국 관객에게는 역사와 문화가 녹아든, 신선하고도 입체적인 캐릭터로 느껴졌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 영화산업의 판도가 다소 바뀌었다. OTT의 출현이 대표적인 변화다. 미디어 플랫폼이 확장된 것이다. 팬데믹으로 극장가가 침체되자, <승리호>(2021년 2월) 외에도 <사냥의 시간>(2020년 4월), <콜>(2020년 11월) 등이 넷플릭스로 직행했다. 또한 <서복>(2021년 4월)은 OTT 티빙과 극장에서 동시 공개됐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영화는 극장에서 개봉하고, 이후 부가시장으로 넘어가는 방식을 취했다. VHS가 DVD로, 다시 블루레이로 물리매체의 형태는 바뀌어도, 틀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코로나19로 인해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강자로 떠올랐다. OTT는 배급의 변화를 앞당기기도 했지만, 영화인들에게는 글로벌화로 향하는 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는 올해 다섯 편의 한국영화를 오리지널로 방영했다. 드라마까지 영역이 넓혀져 박찬욱 감독이 미국 드라마의 명가 HBO와 함께 스파이물 <동조자>를 준비 중이며, 윤여정 배우도 애플TV플러스의 드라마 <파친코>에 합류해 촬영 중이다.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 제작을 위해 올 한 해 동안 5억 달러(약 5,5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들이 국내에서 번 돈(4,155억 원) 보다 쓰는 돈이 더 많은 셈이다. 결국 영화관 비중이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팬데믹 이전 한국 영화시장은 76%가 극장 수입이고, 21%가 부가판권 시장, 3%가 해외 수출 시장이었다. 극장 수입이 무려 3/4을 차지했던 것이다.

전국 영화관의 스크린 개수는 약 3,000여 개(2019년 기준 3,079개)다. 이미 스크린 포화상태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며 ‘스크린 축소’가 진행되던 중, 코로나19 사태라는 직격탄이 날아왔다. 스크린 축소는 가속화될 것이다. 향후 영화관 스크린수가 20%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 있다. 그래서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영화관 매출이 40%, 2차 부가판권 시장이 40%, VOD 등 10%, 해외 수출 10% 정도로 안착될 가능성이 높다.

팬데믹 상황에서 가장 색다른 풍경은 이제까지 보기 힘들었던 독립영화, 저예산영화를 영화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상업영화들의 전쟁터에서 독립영화들이 스크린을 잡는 것은 상당히 신선한 모습이었고, 그동안 독립영화 작가들이 꿈꾸던 일이었다. 향후 OTT에서도 이런 영화들을 플랫폼에 승차시키고, 독립·저예산 영화의 제작도 활발해진다면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조금은 확보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다만 가장 큰 우려가 남아있다. 바로 한국영화의 투자환경이다. 영화제작은 투자→제작→배급→부가시장의 사이클로 움직인다. 가장 중요한 것이 투자인데,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맞았다. 한 제작자는 “코로나19로 70% 정도 제작이 축소됐다”라고 말했다. 투자가 얼어붙으면서 한국영화 생산이 막힌 것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영화판의 인재들이 드라마와 방송, OTT로 빠져나가는 현상이다. 특히 시나리오 작가의 유출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는 온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한국영화가 새롭게 도전해야 할 분야는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는 에릭 오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가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아카데미 후보작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노미네이션된 것으로도 의미가 컸다. 또한 홍성호 감독의 <레드 슈즈>가 2019년 유럽과 호주 등 세계 123개국에 공개되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을 위한 콘텐츠’라는 선입견은 사라진 지 오래다. 올해 개봉된 <소울>은 설 연휴 내내 국내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며 15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소울>은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긴,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도 차차기작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한국 애니메이션에 거는 기대를 부풀린다. 봉 감독은 2~3년 전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 올해 1월에 작업을 마쳤으며 “늦어도 2026년에는 완성하고 싶다”라고 올해 칸 영화제 관객들과 만남의 시간에 말했다. 봉 감독의 국제적 명성을 감안하면 그의 애니메이션이 전세계에 미칠 영향력이 눈에 선하다.

봉준호 감독은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영화의 역사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지나갈 것이고 영화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했다. 심사위원장으로서 세계 영화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지만, 한국영화에 대한 바람과 염원도 녹아있을 것이다. 1980년대 이전 한국영화의 제작환경은 도제식이나 가내수공업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1999년 <쉬리> 이후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20년간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한 한국적 시스템을 구축하며 ‘한국영화’(Korean Cinema)라는 고유성과 독자성을 인정받았다.

코로나19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은 한국영화가 갈 길은 명확하다. 소재는 ‘한국적’이고, 완성도는 ‘정상급’이며, 보편성은 ‘세계적’인 영화의 제작이다. 전통적인 영화관을 뛰어넘어 이를 선보일 수 있는 길도 더 많아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영화는 이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그리고 반드시 그 길을 찾아낼 것이다. 

 

 

글·김중기
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원. 비평과 더불어 매일신문 기자, 대구문화재단 사무국장 등으로 활동했다. 22년째 ‘김중기의 필름통’을 운영하며, 대구에서 좋은 영화 감상과 나누기에 힘을 쏟고 있다. 강의와 신문평론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영화 평론서 『사랑, 계속 아프고 싶어』(200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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