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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보국의 어설픈 북한 간첩 만들기
프랑스 정보국의 어설픈 북한 간첩 만들기
  • 목수정 l 작가, 프랑스 거주
  • 승인 2022.06.3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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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판 유오성 사건’의 무죄 전모

2018년 북한 간첩 혐의로 수사를 받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프랑스 고위 공무원 브누아 케네데(Benoît Quennedey)가 예비 수사판사(1)로부터 4월 29일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으며 마침내 누명을 벗었다. 3년 6개월 만이다. 예비 수사판사가 지휘하는 수사는 1년을 넘지 않는 것이 상례이나, 그 어떤 변명도, 이유도 없이 프랑스 정보국(DGSI)이 상상 속에서 지은 간첩 혐의는 즉각 벗겨지지 않았다. 

 

2013년 출간된 브누아 케네데의 저서 『2012년 북한의 경제』

재판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를 유예당하던 브누아 케네데는 올 6월부터 전직장인 상원(Senat)에 다시 출근하며 일상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으나, 짓밟힌 그의 명예와 이 사건이 무너뜨린 사회적 원칙은 회복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남한 사회에서 시시때때로 출몰하며 너와 나의 사상의 자유 없음을 상기시키던 북한 간첩(조작) 사건은 마크롱 시대에 들어 프랑스 정부까지 숟가락을 얹는 공안 정국 조성의 아이템으로 등극한 셈이다.

 

“냄새”로 사건 날조한 프랑스 정보국

2018년 초 파리 검찰청은 정보국(DGSI) 간첩 대응팀으로부터 한 부의 보고서를 전달받았다. 북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한 40대 고위 공무원에 관한 보고서였다. 래디컬좌파당(PRG)(2)의 당원이자,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상원의 고위 공무원, 동시에 불한친선협회의 회장 노릇을 하는, 어딘지 불협화음을 이루는 그의 프로필은 새로 들어선 마크롱 정부 정보국의 관심을 끌었다. 그들의 엉성한 조사를 바탕으로 얼기설기 작성, 검찰에 넘긴 보고서에 따르면, 브누아 케네데는 <국가 반역죄>를 저지른 자로,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중대한 사법적 통제하에 놓여야 하는 대상이다. 정보국은 보고서에서 그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위한 정보를 얻어 북에 전달하기 위해 프랑스 연구원에게 접근하려 했다고 했고, 그가 파리 건축학교에서 공부하다 사라진 북한 출신의 청년과 친분이 있었다는 이유로, 그의 실종과도 관련이 있다고 의심했다. 그가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했고, 북한 경제에 대한 책을 썼다는 점을 그들의 의심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하며.

그러나, 3년 반 동안 이어진 수사에서 그의 반역 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깃털 하나 나오지 않았다. 정보국은 “냄새”와 “추측”만으로 보고서를 썼고, 그것을 바탕으로 2018년 11월 25일 그의 파리 자택과 상원 사무실, 디종의 부모님 집까지 압수수색을 하였으며, 방송과 언론은 “대어”를 낚았다는 듯이 체포 사실을 간첩 색출인 양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정보국에 연행된 그가 사흘간 조사를 받는 동안, TV에서는 브누아 케네데와 김정은을 나란히 붙여놓은 대형 사진이 무대 배경으로 세워지고, 초대된 패널들은 흥분한 어조로 괴성을 지르며 자극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송들이 전파를 탔다. 언론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보도 윤리, 무죄 추정의 원칙은 깡그리 폐기한 모습이었다. 때는 마침, 시민 위에 군림하며 지배계급의 이해만을 도모하는 마크롱 정부를 정면 타격하겠다는 <노란 조끼>의 봉기(11.17 시작)가 전국적으로 불붙은 직후였다. 여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소재가 필요해서 미완성의 탄환을 엉겁결에 던진 걸까? 권력의 수족이 된 언론은 직업 윤리 따위 내던진 치어리더가 된 걸까?

 

선동에 가세하던 국내 언론, 무혐의 사건 종결엔 침묵

북한과 관련하여 <조선일보>는 브누아 케네데를 수차례 지면에 등장시킨 바 있다. 2014년 파리에서 열린 파리 교민들의 반(反) 박근혜 집회에 브누아 케네데가 참석했다는 이유로, 그가 속한 협회의 이름을 “북한-프랑스 친선협회”(3)라고 대범하게 왜곡해가며, 따라서 그 집회는 “친북 세력에 의해 조직되었다”라고 보도했다. 2020년에는 윤미향(전 정대협 대표)과 관련한 보도에서 “그간 정대협과 희망나비가 공개한 다수의 '유럽평화기행' 관련 사진에는 브누아 케네데라는 프랑스 인사가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프랑스 공무원 출신인 케네데는 2018년 11월 프랑스 기밀을 북한에 넘긴 혐의로 체포됐고 현재 국가 반역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기사에서 “윤미향, 북에 핵 개발 정보 넘긴 프랑스인 접촉”이라고 적기도 했다. 재판은커녕, 기소조차 이뤄진 적 없고, 북에 핵 개발 정보를 넘겼다는 정보국의 보고서는 소설이었으니, 이 모든 기사는 완벽한 오보인 셈이다. 

6월 중, <르몽드>, <르파리지앵>, AFP, <리베라시옹> 등 프랑스 주요 언론이 브누아 케네데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됐다는 소식을 타전했지만, 프랑스 공무원, 북한 간첩 체포로 제목을 뽑으며 자극적 어휘로 지면을 장식했던 국내 언론 중, 이 소식을 알린 언론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다. 

 

지적 호기심도 통제한다

2015년 출간한 본인의 저서 『파리의 생활 좌파들』에는 15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브누아 케네데도 거기 등장하는 인터뷰 대상 중 한 사람이다. 2013년 파리에서 처음 열린 수요집회에 참석했던 날, 갑자기 쏟아져 내리던 빗속에서 상당한 내공이 느껴지는 발언을 하던 한 남자를 처음 보았고, 그가 가진 이력, 그가 속한 불한친선협회, 절제를 모르는 인간애를 가진 그에게 호기심을 느껴, 인터뷰를 청했다. 파리정치학교 시절, 지도 교수의 추천으로 북한의 경제에 대한 석사 논문을 썼던 것이, 북한 + 한국이라는 신비하고도 골치 아픈 세계에 발을 내딛은 시작점이었다. 그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상원에는, 티벳, 베트남, 캄보디아 등, 다양한 국제사회와 교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한 동료를 통해, 불한친선협회가 존재하는 것을 알고 2004년에 가입했다.

1969년에 설립된 이 협회는, 에너지 넘치는 젊은 엘리트 브누아 케네데가 합류한 이후, 활발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다양한 계기(역사학자, 태권도 사범, 북한의 산에 관심 가진 트래킹 전문가 등)로 북한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종잡을 수 없는 정치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이 단체는 종종 단체로 북한을 방문했다. 협회의 부회장과 회장을 이어 맡았던 브누아 케네데는 그런 이유로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하고, 북한의 경제와 사회에 대한 저서도 출간했다. 정치학도이자, 정계에서 일하는 인물로서, 북한이 추구하는 독자적 정치 노선은 그에게 매우 흥미로운 관찰의 대상이었다. ‘닫혀 있는 세계’ 북한을 김정은에 대한 과장된 캐리커쳐와 함께 가장 후퇴한 사회의 상징적 모델로 위치시키는 서구 사회의 기계적 태도에 반감을 가진 그는, 북한 사회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살피고자 했고, 그걸 알려왔다. 더불어, 역동적으로 변모해가는 남한 사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다. 세월호 사건 이후, 단원고에 위로의 편지를 협회의 이름으로 보내기도 했고,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탄압받을 땐, 저항의 서한을 협회의 이름으로 주불 한국 대사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북한의 장성택이 처형되었을 땐, 사형제도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존재감 없는 시민단체일 뿐인 불한친선협회에 무덤덤하던 한국 정부가 달라진 것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였다. 이때부터 그들은 국정원의 적극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 덕후가 치러야 할 국가보안법적 운명이 종종 압박해와도, 그는 코웃음치며, 사상의 자유를 가진 사회 성원으로서의 여유를 보였다. 4년 전 어느 날 북한 간첩 혐의로 체포되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남북한을 오고 가며 남북의 사람들을 두루 만나 지적 탐구를 이어가는 그를 보며, 한국인이라는 태생적 조건이 내게 지운 족쇄의 무게를 실감했던 바 있다. 갈 수 없는 나라, 관심 가지면 의심받는 나라, 만나선 안 되는 사람들이 저 경계 너머에 있다는 사실은, 누구든 설명되지 않는 금지의 부당한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크롱 집권 이후 이어져 온 사회의 퇴행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프랑스 사회를 부식시켰다. 브누아 케네데가 지난 3년 반 동안 겪은 모든 일은, 더 이상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사회로 변모해 가는 프랑스 사회를 잘 대변하는 비극적 에피소드다. 국가보안법 따위 없어도, 그 어떤 증거가 없어도, 흔치 않은 지적 호기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당신은 사회적 타살을 당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금지의 그물에 프랑스 사회마저 포획되기 시작했다.

 

퇴행의 결말

6월 초 치러진 총선에서, 마크롱당(4)은 소위 집권 정당이면서도, 주변의 7개 군소 정당들을 끌어모아 “앙상블!(Ensembles!)”이라는 이름의 정당 연합으로 총선을 치렀지만, 독재를 합법화 시켜줄 의석 과반 달성에 실패했다(38% 득표). 무엇보다 54%의 높은 기권율은 정치 제도를 더 이상 믿지 않는 사람들을 프랑스의 다수파로 만들었다. 임명된 지 한 달 밖에 안된 총리 엘리자베스 보른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멀쩡한 서울시 공무원을 국정원이 증거 조작하여 간첩으로 둔갑시킨 것이 박근혜 정부 시절 공안 사건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2013)이다. 프랑스 정보국은 증거도 없이 공안 사건을 만들어 언론에 던져주긴 하였으나, 서류 조작으로 증거를 만들고, 협박과 고문으로 증인을 만들어 내는 데까진 이르지 못했다. 권력이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없을 때, 그들은 공작을 벌인다. 공작의 기술이 늘고, 횟수가 잦아질수록, 그들이 파는 무덤은 깊어지고 통치 기반은 무너진다. 이제 막 2기 임기를 시작한 마크롱 권력은 초반부터 자신 앞에 세워지기 시작한 무덤을 만나고 있다. 데카당스를 지은 자, 데카당스의 무덤에 갇히리라. 

 

 

글·목수정
한국과 프랑스의 경계에 서서 글쓰기를 하는 작가 겸 번역가. 주요 저서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야성의 사랑학』, 『파리의 생활 좌파들』 등이 있다. 


(1) 프랑스 형사제도는 주요 형사 사건에서, 본 재판에 앞서 수사 판사가 경찰을 통해 수사를 지휘하고, 기소 여부를 판단한다. 
(2) Parti Radical de Gauche : 당 이름과는 달리, 실질적 정치 위상은 사회당의 위성 정당, 중도 좌파 정당으로 분류된다. 
(3) 공식명칭은 프랑스-한국 친선협회(Association Amitié France-Corée)
(4) La Répubique en Marche(전진하는 공화국)이었던 마크롱 집권당의 이름은 5월부터, Renaissance(르네상스)로 개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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