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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의 시네마 크리티크] 위험한 시대, 희망을 희망한 영화들
[이현재의 시네마 크리티크] 위험한 시대, 희망을 희망한 영화들
  • 이현재(영화평론가)
  • 승인 2023.01.25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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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란즈베르기스〉와 〈내가 꿈꾸는 나라〉의 정치적 유토피아
"Merry Crisis and a Happy New Fear"는 2008년 그리스 반정부 시위 중 일부가 아테네 대학교의 그레고리우스 5세 동상 주변에 그래피티를 그려놓은 것에서 유래됐다. 이 구호는 인터넷을 통해 퍼지며 빠르게 밈(Meme)화된 사례 중 하나로써, NYT에서 2008년 12월 19일 처음으로 보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은 인터넷 아카이브 WayBack Machine에 의해 International Hearld Tribune 버전으로 보관되고 있다. (출처 : Wikipedia)
"Merry Crisis and a Happy New Fear"는 2008년 그리스 반정부 시위 중 일부가 아테네 대학교의 그레고리우스 5세 동상 주변에 그래피티를 그려놓은 것에서 유래됐다. 이 구호는 인터넷을 통해 퍼지며 빠르게 밈(Meme)화된 사례 중 하나로써, NYT에서 2008년 12월 19일 처음으로 보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은 인터넷 아카이브 WayBack Machine에 의해 International Hearld Tribune 버전으로 보관되고 있다. (출처 : Wikipedia "Merry Crisis")

환상을 내던진 다보스 포럼의 유력 국가들

뵈르게 브렌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하 ‘다보스 포럼’) 총재는 지난 1월 20일 폐막식에서 “올해 행사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균형 있는 성장, 첨단기술 증진 등의 현안을 푸는 데 우리는 진전을 봤다”며 이번 포럼의 의의를 설명했다.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이라는 올해 포럼의 주제에 걸맞는 해설이었다. 그러나 포럼에서의 성과와 실재를 되돌아보면 그가 폐막식에서 선포한 포럼의 의의는 무색하며 공허할 뿐이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이었다. 그러나 세계는 다보스 포럼에서 분열된 세계를 위한 협력 방안은 둘째치고, 명분만 덩그러니 남게 될 구속력이 없는 선언조차 어떤 방식으로도 구해내지 못했다.

20세기 말부터 끊임없이 언급되어온 기후위기에 대해 세계 석학과 정치 지도자들은 그 실재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올해 다보스 포럼을 통해 세계는 공동성명문을 비롯한 어떤 실질적인 규약이나 조치도 구해내지 못했다.[1] 그들은 여전히 ‘우려된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The Economist』가 지난해 11월 기념비적인 「Say Goodbye to 1.5℃」를 내놓으며 세계 경제 인사들의 이목을 UN 환경 보고서 『Emissions Gap Report 2022』로 돌려놓았음에도, 정작 전 세계가 주목한 것은 미국의 IRA 법안이 자국에 어떤 이익과 피해로 다가올지 논의하고 토론했을 뿐이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의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주요국들의 태도를 생각해본다면, 기후위기에 대한 논의는 그나마 양호한 수준이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는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다양한 세션을 열었다. △아프리카 민간 경제 성장 방안을 위한 토론 △긴축 경제 시기의 신흥국 투자 방안 △저소득국에서의 코로나 19 백신 접종률 등 포스트 코로나로 인한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해보자는 취지의 세션을 열었으나, 세계의 유력인사는 이러한 세션에 참가하지 않았다. 세계의 주목이 이러한 세션으로 향하지 않은 것은 둘째치고, 타임의 다보스 포럼 페이지에서조차 불평등과 양극화 세션을 직접적으로 다룬 저널리즘 콘텐츠는 찾아볼 수 없다.[2] 올해 다보스 포럼은 유력 국가들이 지구촌 사회를 이끌만한 환상이나 비전을 내던졌음을 보여주는 현장에 가까웠다.

분열된 세계 속에서 그나마 실질적으로 한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한 부분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규탄이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유세계가 생각하는 시간을 테러국가는 살인하는 데 이용한다"며 즉각적인 지원을 요청했고, 서구 세계 또한 이러한 목소리에 호응했다. 폰데어라이덴 EU 집행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180억 유로의 장기 차관 계획을 밝혔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 물자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3]를 냈다. 이는 복합 위기와 경기 침체로 인한 비관적인 전망 속에서 전 세계가 거의 유일하게 한목소리를 낸 부문이었다.

다보스 포럼의 풍경은 분열된 세계 속에서 환상을 내던진 국제 사회가 협력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조건을 요구하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소셜 네트워크>의 포스터가 웅변한 유명한 구호처럼, 국제 사회는 “적을 만들지 않고는 친구를 만들 수 없는”[4] 지경에 이르렀다. 국제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그들의 무지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 보인다. 협력을 위해서는 적을 필요로 한다는 올해 다보스 포럼의 풍경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국제 사회 계몽이 필요한 무지 속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지식의 저주에 걸려 분열된 현실 속에서 꿈꿔야 할 모든 비전과 환상을 내던졌다.

협력의 조건으로 적을 규정하기를 선행한 이번 풍경은 유력 국가들이 본인들의 힘을 어떤 것으로 인지하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게 만든다. 허울 뿐이었던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세션과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기후위기 세션 등 환상을 내던진 많은 풍경은 그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목하고 있다. 그들은 실재적인 성과를 도출하지는 못했을망정, 해결책을 찾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에는 합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노력할지언정 책무를 지고 싶지는 않아 했다. 그들은 힘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요구받는 일에 대해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 힘이 요구하는 대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힘이 요구하는 대가를 잘 파악하고 있다면, 그 대가를 치루는 것 또한 두려울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 두려움이 다포스 포럼을 ‘각계 지도자들이 가득 찬 스키 리조트’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의 책임 회피에는 ‘비합리적으로 제국주의를 재현하려는 러시아’라는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이는 새롭거나 놀라운 모습이 아니다. 책임이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위험한 아이디어는 방어적 현실주의의 거장 스티븐 월트가 내세운 위협 균형의 바탕이자, 동시에 “밤비보다 고질라가 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는 공격적 현실주의의 거장 존 미어샤이머의 바탕이기도 하다.

필자는 그들의 비겁함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제 사회의 유력 국가들이 분열된 세계 속에서 유토피아를 꿈꾸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직무유기로 보인다. 더불어 우크라이나 전쟁 이외에도 크고 실재감 있는 위기들이 산적하고 있음에도 어떤 이상적인 모델을 공동으로 언급조차 하지 않는 일은 비겁하다고 지탄받아 마땅한 태도다. 이러한 위험한 시대에, 환상을 포기한 국제 사회가 만든 공백을 우리는 어떻게 매울 수 있을 것인가?

 

〈미스터 란즈베르기스〉 포스터 (출처 : 다음 영화)
〈미스터 란즈베르기스〉 포스터 (출처 : 다음 영화)

정치로부터 가장 멀리, 탈정치의 정치적 유토피아

올 한 해 우크라이나 영화작가로서 많은 시네필과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은 세르게이 로즈니차는 리투아니아의 정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의 전성기를 담은 전기영화 <미스터 란즈베르기스>(Mr. Landsbergis , 2021)를 공개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미스터 란즈베르기스>는 4시간이 넘어가는 초장편 영화로써 영화제 서킷을 중심으로 관객에게 전달된 수밖에 없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미스터 란즈베르기스>는 사유디스 개혁 운동[4]를 중심으로 발트 3국의 독립에 있어 한 축을 담당했던 정치 지도자의 전기영화로써 영웅 서사에 가까운 대중적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로즈니차의 극영화 <나의 기쁨> <안개 속에서> <젠틀 크리쳐>보다도 훨씬 친절하지만, 로즈니차는 무슨 이유에서 이 영화를 ‘굳이’ 4시간이 넘어가는 초장편으로 만든 것인가?

우선 로즈니차의 직접적인 변론에 의하면 <미스터 란즈베르기스>는 ‘교육용 영화’이다. CIS와 발트 3국의 지역사를 넘어 유럽의 지형도를 변화시킨 변곡점에 진입하고 있는 역사적 변곡점을 마주하며, 로즈니차는 “거대한 세력에 맞서 자유인들이 저항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5]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어야 마땅하다. 최대한 많은 이들이 접한다면, <미스터 란즈베리기스>는 어떤 방식으로든 연약한 영화제 서킷의 네트워크를 넘어 정식 매체로 보존될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로즈니차가 이러한 가능성을 포기하면서까지 굳이 영화제 서킷을 중심으로 배급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로즈니차가 이야기한 “현명한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4시간이 넘는 <미스터 란즈베르기스>의 기나긴 기록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역사의 힘으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자국의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 음악애호가 란즈베르기스는 본인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을 훌륭하게 수행한 뒤 반자발적으로 음악애호가의 자리로 돌아간다. 즉, 정치와 상관없던 인물이 역사적 흐름으로 인해 정치로 끌려 들어갔지만, 다시 사회의 흐름으로 인해 본격 정치인은 되지 못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로즈나치에게 있어 <미스터 란즈베르기스>는 정치의 자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안착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영화는 아닐까? 만약 정치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행위라면, 로즈니차는 어째서 정치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된 란즈베르기스로부터 “현명한 방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일까?

<미스터 란즈베르기스>에서 비타우타스 란즈베르기스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운동가라는 본인의 위치만을 지키게 된 기구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것이 란즈베르기스의 의지였든 아니었든 란즈베르기스는 90년대 초 리투아니아에서 있었던 초인플레이션을 막지 못한 이상주의자이며, 궁극적으로는 사회로부터 다시 멀어져 음악애호가의 자리로 돌아간 학자다. 무엇보다 란즈베르기스는 그 스스로는 정치인의 자리에는 앉지 못하며 이 사실을 겸허히 수용한다. 영화 속에서 란즈베르기스는 오직 책임뿐인 자리에서 역사의 소용돌이를 짊어진 채 보상을 얻지 못한 일종의 정치 낭인[6]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에는 공식적으로 남겨지지 않았다는 바로 그 사실이 그를 ‘현명한 방법’을 알고 있는 인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리투아니아는 안정적인 국가 기반을 세운 나라로 보기는 어렵다. 리투아니아는 90년대 초까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허덕이던 나라였다. 리투아니아는 이를 극복하고 00년대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지만,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지역 양극화와 저소득층의 심각한 사회적 소회에 적절한 조처를 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보다 높은 자살률 등의 사회문제로 이어졌으며, 초저출산과 같은 고질적인 사회문제는 리투아니아를 다소 불안한 신흥국가로 만들었다. 이는 리투아니아 정부가 지닌 정책적 역량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정부의 역량만 두고 본다면 리투아니아가 유토피아적인 국가라고 보기는 다소 힘들다.

더욱이 역사적인 맥락은 리투아니아를 포함한 발트 3국을 민족주의 국가로 응결시켰다. 민족 자결권을 외치던 80년대까지는 발트 3국의 방식이 그럴싸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린 민족 자결권이 얼마나 민족 패권주의와 잘 결합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끔찍한 혼종을 낳게 되는지 트럼프의 시대와 푸틴의 러시아를 통해 목격했다. 그런데도 <미스터 란즈베르기스>에서 란즈베르기스라는 민족주의 바탕의 독립투사가 이상향을 꿈꾼 정치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이유는, (자의든 타의든) 그 자신만큼은 종국에 정치에 적(適)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스터 란즈베르기스>가 견지하는 이러한 탈정치의 정치성은 장 뤽 고다르가 어째서 베르토프 그룹의 “정치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들자”는 유명한 슬로건을 “정치에 대한 영화가 있고 정치적인 영화가 있다”는 문장으로 비틀었었는지 되새기게 만든다.

 

〈내가 꿈꾸는 나라〉 포스터 (출처 : 다음 영화)
〈내가 꿈꾸는 나라〉 포스터 (출처 : 다음 영화)

정치로부터 가장 가까이, 일상의 유토피아적 정치

로즈니차가 정치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을 통해 정치적 유토피아를 꿈꾼 작가라면, 파트라시오 구스만은 정치 속에서 유토피아적 정치를 꿈꾼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칠레의 다큐멘터리 거장 파트라시오 구스만은 초창기부터 정치와 함께 다큐멘터리 작업을 수행해온 작가다. 그는 칠레의 정당 인민연합(Unidad Popular)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다큐멘터리 활동을 하며,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과 그 속에 녹아든 좌파적인 정치 방향의 균열을 포착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첫 해>(El Primer Año, 1971) 등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작업했다. 현재는 증언 영화(Testimonial Cinema), 더 넓게는 제3영화(Tercer Cine)의 모범 사례로써 평가받는 구스만의 초기작은 그의 관심이 초기부터 얼마나 일상과 정치적인 것에 천착해왔는지에 대한 증거가 되어주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제무대가 그의 작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인민연합과의 협업할 수 없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구스만은 살바도르 아옌데가 군부의 쿠데타로 실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칠레 전투>(La Batalla De Chile, 1975~79) 3부작을 통해 다큐멘터리 작가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파트라시오 구스만은 <칠레 전투>에서 칠레의 사회주의와 좌파가 어떤 과정과 방식을 통해 무너지게 되었는지 기록하며 개인적인 소회와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파트라시오 구스만에게 있어 <칠레 전투> 이후의 10년은 고난의 시기였다. 군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피노체트 정부는 “민주주의란 때로는 피로 목욕을 해야하는 것”이라는 구호와 함께 칠레 국민의 인권을 극심히 탄압했다. 피노체트 정권은 구스만 뿐만 아니라 칠레의 수많은 유력 작가에게도 고난의 시기였으며,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와 운신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구스만을 포함한 많은 작가가 정치적 난민이 되어 칠레를 떠났고, 구스만 역시 칠레 밖에서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작업 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기에 만든 <신의 이름으로>(En Nombre De Dios, 1987)는 구스만이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고난의 시기를 헤쳐 나갔는지 추측할 수 있게 돕는다.

<신의 이름으로>에서 구스만은 칠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대신 라틴아메리카가 지닌 지리적인 특성이 어떻게 정치와 연결되기 시작했는지 묻는다. 그는 <신의 이름으로>에서 지리적 여건이 어떻게 원주민에게 터전을 제공했고, 어떤 이유에서 북아메리카와 유럽 열강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라틴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는지 사유한다. 구스만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과거까지 눈을 돌림으로써 훗날 본인의 작품활동에 주축을 이루게 되는 ‘노스텔지어’라는 판타지의 감각과 정신을 다진다. 그리고 이는 21세기가 지나서야 본격적인 작품의 형태로 구현되며 세상의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21세기에 들어서며 두 번의 삼부작 프로젝트를 작업한다. 그중에서도 ‘노스텔지어 3부작’으로도 불리는 <빛을 향한 노스텔지어> <자개단추> <꿈의 안데스>[7]는 수많은 평론가 및 시네필들의 호응을 얻었다. 구스만은 ‘노스텔지어 3부작’에서 구스만은 오브제와 셔레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사물의 이미지가 공적인 기억을 어떻게 자극하는지에 대해 1인칭 내레이션을 활용해 내밀히 해설한다. 구스만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노스텔지어를 정체성의 기본원리로 호명한다. 이러한 구스만에게 있어 가브리엘 보리치의 득세와 정권 수립은 역사적이며 기념비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스만은 이 과정을 <내가 꿈꾸는 나라>(MI PAIS IMAGINARIO, 2022)에 담았다. 구스만의 초기작 <첫 해>의 이미지로 시작하는 이 영화에서 구스만은 피노체트 정권이 수립한 시장 지향적인 신자유주의 체계에 왜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으며, 그 분노의 주체가 여성인지에 관해 성찰한다. 그리고 보리치의 승리와 정권 수립으로 마무리되는 이 풍경을 두고 구스만은 “칠레의 영혼이 깨어났다”고 평가한다. 물론 그에게 보리치의 당선은 두 번째 혁명이자 역사가 마땅히 가야 했을 방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칠레에 관심이 있는 인물이라면 구스만의 이러한 평가가 얼마나 조급한 언급이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보리치의 기념적인 당선사[8]와는 별개로 칠레는 현재까지 신자유주의, 더 심하고 노골적으로 본다면 칠레인들 자신에게 치욕적이었던 피노체트 정권을 용인했다. 보리치는 정권 수립 이후 (당연하게도) 피노체트 정부를 토대로 쌓아 올렸던 법안들을 개혁하는 개헌 안을 국민 투표에 부쳤다. 보리치의 개헌안에는 피노체트 독재 정부가 저지른 인권 유린 범죄의 공소시효 조항 삭제, 전국민 단일건강보험 제정, 국제노동기구(ILO)가 권고하는 초보적 수준의 노동자 권리와 토착 원주민 권리 보장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개헌안은 작년 9월 62% 대 39%라는 큰 표차로 부결되었다.

구스만의 <내가 꿈꾸는 나라>가 한국에서 공개된 시점은 작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서였다. 구스만 역시 개헌안 부결을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칠레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인물이라면 그 원인이 보리치 정권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보리치 정권이 득세했던 요인은 칠레(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국가 전반의) 비인간적이며 살인적인 빈부격차 때문이었다. 그 빈부격차가 좌파 정권 때문이라는 말은 황당한 어불성설에 가깝지만, 어쨌거나 보리치 정권은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보리치 정권 또한 이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고, 타협과 양보를 통한 개혁을 취임과 동시에 약속했다. 그리고 그 실상은 구스만이 희망을 희망하며 바라보았던 민중을 위한 정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보리치 정부는 기준금리를 1년 동안 9차례 연속으로 올리며 폴 볼커를 상기하게 만드는 매파 기조 기반으로 경제 기반을 다졌으며, 그 과정에서 희생자는 (당연히) 보리치 정권을 선택한 노동계급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말 그대로 더는 버틸 힘이 없는 노동계급에 있어 지대한 실망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피노체트 정권 또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끌어내리기 위해 “피로 목욕”을 했음에도 5년 이상이 걸렸다. 즉, 구스만의 바램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유토피아’였을지도 모른다. 구스만 그 자신도 이를 알고 있는지 <내가 꿈꾸는 나라> 끝에서 자신은 불확실성에 대해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밝힌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본다면 <내가 꿈꾸는 나라>의 유토피아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는 어원 그대로 ‘유토피아’에 가까울 것이다. 좌파 정권이 수립되고, 더 나아가 노동자계급이 독재하는 정권이 수립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불평등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더 나은지를 고민하기 이전에, 지금처럼 나에게 무엇이 더 유리한가를 따지며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노동자의 이름으로 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구스만이 축하는 일상의 유토피아적 정치는 갈증을 풀기 위해 바닷물을 마시는 행위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구스만의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있다면, 그것은 유토피아라는 객체 그 자체에 있을 것이다. 구스만이 엄혹한 시대를 노스텔지어라는 판타지를 통해 버텼듯, 유토피아는 현실에서 무용할지라도 우리에게 방향을 일러주는 북극성 정도로 사용해볼 만하다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 있어 환상은 힘없는 자에게는 책무 없는 권리이지만 힘 있는 자에게는 보상 없는 책임인 법이다. 힘 있는 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책무라는 변명 속에 숨어 환상을 내던지는 사이, 힘없는 자들이 마땅히 채워져야 할 환상이라는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글·이현재
평론가.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2021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 신인상. STRABASE 객원연구원,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연구원. 경희대학교 문화콘텐츠전공 박사과정 재학중이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이현재의 시네마크리티크」에서 글을 쓰고 있다.


(1) https://www.reuters.com/business/davos-2023-key-takeaways-world-economic-forum-2023-01-20/
(2) https://time.com/collection/davos-2023/
(3) https://www.weforum.org/agenda/2023/01/the-story-of-day-five-at-davos-2023/
(4) Sąjūdis. 리투아니아어로 "운동(movement)"이라는 뜻이나, ‘사유디스’는 리투아니아 독립을 위한 비정부기구 단체로써 실체가 있는 주체다. 리투아니아 현지에서는 “Lietuvos Persitvarkymo Sąjūdis”라고 지칭되나, 개혁의 주체 단체를 소개한다는 의미에서 “사유디스 개혁 운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5) 2022 전주국제영화제 세르게이 로즈니차 마스터 클래스 중
(6) 물론 그의 아들 가브리엘리우스 란즈베르기스(Gabrielius Landsbergis, 1982~)는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여 정치인으로서 크게 성공했다
(7) <Nostalgia de la luz>(2010) <El botón de nácar>(2014) < La Cordillère des songes>(2019)
(8) 가브리엘 보리치는 당선사에서 “칠레가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의 요람이었다면,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의 무덤 또한 될 수 있으리라”고 소외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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