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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 눈에 깃든 에드거 앨런 포
창백한 푸른 눈에 깃든 에드거 앨런 포
  • 김경 l 영화평론가
  • 승인 2023.01.3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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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일 블루 아이 (2022)>
영화 <페일 블루 아이> 포스터 (출처 : 넷플릭스)

<페일 블루 아이(The Pale Blue Eyes)>는 미국 작가 루이스 베이어드(Louis Bayard)가 2003년에 쓴 소설을, 스콧 쿠퍼(Scott Cooper) 감독이 각색한 동명의 영화다. 에드거 앨런 포(해리 멜링 분)가 청년 생도였던 1830년 웨스트포인트 아카데미(미국육군사관학교)에서 살인과 시체 훼손 사건이 발생한다. ‘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조용히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교장은 ‘전설적인 뉴욕 형사’ 밴더(크리스찬 베일 분)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1830년 웨스트포인트 괴담

밴더가 사건 조사를 위해 도착한 허드슨 벨리는 <갈까마귀(The Raven)>, (1845년)의 ‘암울한 12월’처럼 희다 못해 푸른 눈이 내리는 엄동설한이다. 나무에 목이 매달린 시신의 실루엣에서 밴더가 얼음 강물에 손을 씻는 모습으로 ‘디졸브’ 되는 도입 장면은 후반부에서 살해에 사용됐던 곤봉의 피를 씻는 모습과 같은 앵글, 같은 장소, 같은 화면구성을 사용하며 수미쌍관으로 강조된다.

이 수미쌍관 사이에서 밴더는 줄곧 살인자로 그곳에 드러나 있었다. 물론 사관학교 생도를 나무에 목매달아 죽인 살인자가 이 사건을 해결하러 온 형사 밴더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은 전형적인 추리 드라마의 반전, ‘뜻밖의 인물이 살인자’라는 공식이지만, <도둑맞은 편지>(1844년)와는 달리 그가 살인자라는 단서를 애써 숨겨 놓진 않았다. 

이제 이 공식은 더 이상 반전이랄 것도 없을 정도다. 스릴러는 이미 관객에게 정보를 노출하고, 서스펜스를 느끼게 하는 장치이니 추리와 스릴러를 함께 교과서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런데, 눈의 푸른색이나 심장의 붉은색을 에드가 앨런 포와 함께 정치하게 배치한 것은 꽤 완성도가 높다. 창백한 푸른 눈의 은유는 후술하는 바와 같이 죽음과 삶의 모호한 경계선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 영화나 원작소설이 실존했던 에드거 앨런 포에게 영감을 받아 쓴 글과 영화라는 점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눈 내리는 웨스트포인트 역시 희푸르다. 미국 독립전쟁이 끝난 지 채 5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 군기가 바짝 잡힌 1830년대 육군사관학교에서 벌어진 흑마법 사건은 중세 수도원의 그것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이 속에는 억압과 명예가 흑마법과 범죄로 범벅돼 있다. ‘학교’라는 이데올로기 생산처에서 자행되는 태생적인 억압은 흔히 괴담의 기원이 된다. 웨스트포인트 이데올로기 역시 에드거 앨런 포 식 고딕 공포 괴담이 된다. 

랜더는 웨스트포인트 교장에게 이 억압에 대해 “이곳에서 청년들이 이성이 꺾이고, 규칙과 규제로 그들을 옭아매며, 이성을 박탈해 인간성을 잃게 한다”라고 설파한다. 그 억압적 이데올로기가 양산해낸 어떤 비틀린 생도들은 랜더의 딸을 성폭행했다. 그들은 결국 목이 매달렸고 거세됐으며 심장을 잃었다. 웨스트포인트 이데올로기는 위대한 작가 앨런 포를 조롱했던 곳이다. 1830년도 웨스트포인트는 억압과 죽음과 흑마법이 있는 곳이며,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고, 심지어 죽음이 삶을 지배하고 있는 곳이다. 포의 고딕적 작품 세계에 반영된 암울한 시대의 모습과 펜데믹과 전쟁으로 힘겨운 이 시대와도 중첩된다. 

생도들의 푸른 제복이 전하는 메시지는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명확해진다. 푸른색은 병증과 죽음에 대한 색이고 삶 속에 공존하는 죽음의 색이며, 삶과 죽음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의 색이다. 포와 리아는 푸른 제복과 푸른 드레스를 입고 희푸른 눈이 덮인 ‘무덤’을 산책하며 그에 어울리는 죽음과 신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리아는 포의 시심을 ‘병적 상태’, ‘제복’과 견주며, 자신의 오빠도 우울한 내면을 가져 ‘제복’과 어울린다면서 우울한 증상과 푸른색을 연결해 규정한다. 연신 기침하던 리아가 결국 간질 발작으로 희푸른 눈밭 위에 쓰러진다. 그녀 역시 푸른 드레스로 상징되는 병적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게 된 것이다. 영화 시작부터 등장하는 심장이 도려내진 섬뜩한 사체는 전신에 푸른 멍이 든 것처럼 기괴하게 푸르다. 

그리고 이 창백한 푸른색에 대조되는 붉은 심장은 드라큘라의 핏빛 망토처럼 고딕 장르다운 화면구성을 보여준다. 리아가 흑마법을 시행하며 심장의 붉은 피로 얼굴에 피칠을 하는 대목에서 이 두 가지 색의 대비는 그 정점을 보여준다.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선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어셔 가의 몰락』, 『고자질하는 심장』 그리고 『검은 고양이』 등 세계적인 작품들의 저자이자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는 이 영화의 키워드다. 역사 속에 실재하는 포는 1830년 7월 1일 사관생도가 됐다. 많은 관객은 이 영화가 포에 관한 실화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실화인지 허구인지 사실관계를 묻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 작품은 주제와 형식과 중층적 의미들이 포의 작품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것만 가지고 재구성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포의 일생과 죽음은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에드거 앨런 포라는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작가 루이스나 감독 스콧 혹은 이를 수용하는 관객을 통해 공존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실화와 허구 혹은 삶과 죽음, 의식과 무의식의 모호한 경계가 여러 가지 변주를 통해 강조된다.

먼저,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라는 주제어는 영화 도입부 자막 <성급한 매장>(1844)의 인용문을 통해 강조한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공존도 동일한 맥락이다. 죽은 자가 말이 없다면 공포가 아니다. 죽은 자들이 심심찮게 말을 하는 순간 공포가 된다. 그런데 포의 작품 세계와 이 영화에서는 죽은 자들의 존재감은 공포가 아니라 일상이다. 랜더는 억울하게 죽은 딸의 이름으로 복수하며, 포는 죽은 어머니가 잠결(비몽사몽, 역시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에 불러준 시로 예지력과 통찰력을 갖는다. 

포는 죽은 어머니와의 교감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 어머니는 여전히 내 삶에 존재해요. 망자가 나타나는 건 우리 사랑이 부족해서예요. 의도치 않게 그들을 잊고 살거든요. 잔인하게 버려졌다고 느껴서 우리에게 항의하는 거죠.” 산 자는 죽은 자를 대변하고 위로하고 사랑한다. 리아 가족은 마녀 사형 집행자였고 본인도 화형당했던 고조부 망자와 소통하며 리아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해 사람의 심장을 도륙하는 흑마법을 사용한다. 심장이 상징하는 죽음과 부활은 뫼비우스 띠처럼 끊임없이 계속된다. 리아는 죽은 자의 심장을 먹고 살아 있었고 죽게 되지만 포의 시 속에 영원한 처녀, ‘레노어’로 다시 살아남는다. (레노어는 <갈까마귀>라는 시 속 화자(포)가 사랑하던 여인이다. 화자(포)는 그녀를 잃은 슬픔을 까마귀에 투사한다.)

 

‘죽음의 푸른 눈’과 ‘고자질하는 심장’

포의 단편 소설 <고자질하는 심장(The tell-tale Heart)>(1843년)에 등장하는 ‘창백한 푸른 눈’과 살인사건이 드러나게 한 ‘심장’은 영화를 통해서도 반복되는 모티브다. 포의 소설 속 모티브는 소설과 영화를 통해 푸른색 화면구성으로, 심장은 그로테스크한 흑마법의 상징으로 재해석된다. <고자질하는 심장>에서는 살인자 주인공이 자기 귀에만 들리는 죽은 시체에서 들리는 ‘심장’의 요동치는 소리로 인해 경찰에게 모든 범행을 자백한다. 

이 영화에서 랜더 형사는 심장만 도려내 사용하려던 리아 가족의 흑마법에 관여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심장’을 시인의 메타포라며 의미심장하게 해석했던 시인 포에게 자신이 살인자라는 것을 자백하게 된다. 포가 리아에게 시를 통해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포는 더욱 직접적으로 ‘창백한 푸른 눈’에 대해 언급하며, <고자질하는 심장>처럼 심장이 쿵쾅거리며, <갈까마귀>의 레이븐처럼 리아를 숭배하며, 기꺼이 리아에게 자기 심장을 바치겠다고 고백한다. 

영화 <페일 블루 아이>를 통해 에드거 앨런 포는 관객에게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를 환기시킨다. 죽고 사는 것의 경계는 언제나 점선이었다.

 

 

글·김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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