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0
다리 난간 아래로 고개를 내밀자 여전한 환대. 그쪽 사정이야 정확하게 모르지만, 유유자적하는 듯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경고도 없이 온 존재를 휘어잡는 우울함, 불안, 격렬한 공황상태”(『앨프리드와 에밀리』, 도리스 레싱, 문학동네, 66p)가 없는 여일한 그곳. 내 착각일 수도 있겠다. 그곳이 여일한 게 아니라 내가 그곳을 여일하게 간주할 뿐이다. 여일하지 않지만, 이곳엔 장미가 한창이다. 다리가 가로지른 탄천 바깥에, 가끔 이용하는 동부간선도로 초입에 장미가 천국의 입구처럼 피어있다. “빨리 와” 다리를 건너는 아이가 친구에게 말한다. 남자 아이다. 다리 아래를 보느라 보지를 못 한다. 건너도 물 밖인 게 아이에게 의미가 있을까. 장미를 처음 본 잉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다리 아래 세상보다 내가 사는 세상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가?
글/사진 안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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