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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탄천 동행] 작고 아름다운 것의 시련과 승리
[안치용의 탄천 동행] 작고 아름다운 것의 시련과 승리
  • 안치용/ESG연구소장
  • 승인 2023.05.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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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빈둥 플로깅과 강과 함께 흐르는 세상 엿보기’ 4

들꽃이 승리했다. 지난 편[안치용의 탄천 동행3]에서 빗물로 늘어난 강물에 절체절명 위기에 처한 강가의 붉은토끼풀 이야기를 전했다. 물이 불어나며 물속에 고립된 붉은토끼풀꽃들이 강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려 버티는 모습. 비와 바람까지 가세하고 있어 붉은토끼풀이 곤경을 이겨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붉은토끼풀이 강물과 비바람에 뽑혀 나가지 않는 쪽에 상대가 없긴 하지만 내기를 걸었다. 그 비가 그친 뒤에도 붉은토끼풀이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생존에 내기를 걸었지만,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붉은토끼풀

 

물속에 고립돼 사투를 벌인 들꽃은 비록 잠시이겠지만 생명을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걱정과 달리 그 꽃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큰 싸움에서 이겨낸 자부심 같은 게 풍기는 듯했다.

강을 메워놓은 바로 밑 공사장에서 물살에 흙이 쓸려 내려가 휑한 물의 길이 만들어진 광경과 비교하니 들풀이 얼마나 대단한지.

 

너희는 왜 그렇게도 믿음이 적으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에게야 얼마나 더 잘 입혀주시겠느냐?”(누가복음 1228)

 

들꽃에 건 내기는 우리 삶에 거는 기대를 반영한다. 작고 아름다운 것이 큰 시련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 설령 그 들꽃이 강물에 휩쓸려 뿌리째 뽑혀 사라졌다 하여 그 마음과 기대가 소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작은 우연한 증거가 삶에 거는 기대가 종종 무너지곤 하는 우리 현실에 살뜰한 위로가 될 수 있다. 위로가 없다고 무너지지 않겠지만, 있다면 기뻐하게 된다. 원래 성서 본문은 χόρτον”(헬라어)로 들꽃이 아니라 들풀이다. 개역개정 등 어떤 번역본에는 원문대로 들풀로 돼 있다.

들풀로 돼 있는 것보다 들꽃으로 돼 있는 게 위로의 살뜰함은 더한다. 꽃은 단어의 위계에서 최상급에 속한다. 들풀도 나쁘진 않다. 들풀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위로의 크기가 더 커진다. 결국 우리 간사한 마음은 진심으로 들풀을 걱정한다기보다 들풀에 우리를 투사하기에 이 문맥에서 대상과 우리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기대를 더 품게 될 수 있다.

아무튼 그 꽃은 살아남았고, 생존을 확인하고 탄천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신났을 것이다. 아마 다음엔 나에게 감동을 준 그 꽃들을 찾지 못하지 싶다. 다른 풀 사이에 섞여들어 분간이 잘 안 되리라고 핑계를 대지만, 더 정확하게는 내가 찾아볼 마음을 먹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글·안치용

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로 문학·정치·영화·춤·신학 등에 관한 글을 쓴다. ESG연구소장이자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로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을 주제로 활동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분당한신교회 전도사이다.

 

분당한신교회
분당한신교회
운중천 들어오는 물
운중천 내려가는 물
탄천 들어오는 물
탄천 내려가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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