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도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및 동성혼 허용 반대를 내건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집회 주체는 개신교라고 한다. 기독교를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도대체 한국 개신교는 왜 그렇게 정신 나간 짓만 하냐고 나에게 물었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지도 않은데 얼굴이 후끈거리고 창피했다. “모든 개신교가 다 그렇지는 않아”라고 말했지만 아마 개신교 다수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기는 하다.
통계를 통해서 확인된다. 한국리서치에서 지난 9월에 ‘성소수자에 대한 개개인의 포용 수준’을 조사한 결과 국민 10명 중 3~4명은 성소수자에 적대적 감정이 있었다. 아직 미흡한 수준이지만 우리 사회의 포용 수준이 심각한 수준으로 낮은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개신교다.
개신교 신자의 60%가 남성 동성애자에 적대적 감정을 가진다고 답했다. 같은 신을 신앙하는 천주교 신자에서 이 비율은 34%에 그쳤다. 레즈비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개신교인 54%, 천주교인은 25%였다.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를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개신교인의 66%가 포용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개신교가 왜 이런 혐오의 종교가 됐을까.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조직위원회’가 예배에서 발표한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기 위한 1000만 기독교인 1027 선언문’에서 “창조 질서를 부정하는 성 오염과 생명 경시로 가정과 다음 세대가 위협받고 있다”며 “가정을 붕괴시키고 역차별을 조장하는 동성혼의 법제화를 반대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놓고 기독교의 이름으로 혐오를 선포한 셈이다.

이들이 특별히 문제 삼은 건 지난 7월 18일 사실혼 관계인 동성 배우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다. 이날 집회에서 박한수 제자광성교회 담임목사는 ‘대한민국의 하나님, 응답하소서’라는 제목으로 열왕기상 18장 36절을 전하면서 설교를 했다. 박 목사는 “2021년 2월 동성동거 커플 중 한 명이 자신의 파트너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해달라고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1심에서 패했지만 2심과 대법원에서 이겼다. 법적으로 부부가 된 것”이라고 분노했다. 그는 “행정소송 3년 5개월만에 이런 일이 생겼다. 그 뒤로 지난 10월 11일 11쌍의 동거커플이 서울 가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며 “미국은 사법부가 뚫린 후에 정확히 2년 후에 동성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졌다. 이제 우리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나라에서는 동성애가 죄라고 선포한 목사가 교회에서 해임됐다”며 개탄했다. 나로서는 보도로 접한 박 목사의 설교에서 새겨들을 내용이 딱 그것 하나였다. 만일 그런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야말로 정말로 멀쩡한 교회가 아닌가. 한국에 그런 교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겼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공공연하게 동성애 혐오를 설교하는 목사들이 해임된다면 한국 개신교의 위기 극복이 더 빨라질 것이다. 동성애를 개인적으로 반대할 자유는 누구나 있지만, 공론의 장에서 죄라고 규정할 자유는 없다.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찬양과 큰 기도회’를 내건 이날 집회에는 경찰 추산 23만명(주최 쪽 추산 110만명)이 모였다. 놀라운 숫자다. 저 많은 개신교인 모여 자신들의 허위와 위선, 목사들의 탈선과 비위부터 회개했으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더 좋았을까. 그들의 집회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고 사람에 대한 혐오만이 가득했다. 예수의 이름으로 혐오를 쏟아내는 그들의 죄는 그들에 그치지 않고 한국 기독교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
뉴스를 보면 ‘일부’ 개신교 단체가 이날 집회를 비판했다고 한다. 교회개혁실천연대, 느헤미야 교회협의회 등은 “(저들이) 차별과 혐오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며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의 온상이 되어 버린 한국교회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공동 기도를 올렸다. 전체 개신교가 혐오의 종교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아니면 멀쩡한 기독교가 ‘일부’인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야 할까. 가장 큰 문제는 저들이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며 그런 식으로 혐오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사실이다.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ㆍ전 경향신문 기자, 한신대 M.div 및 신학박사 과정 수료. 협동조합언론 가스펠투데이 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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