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9월호 구매하기
에이지리스, 당신은 몇 살을 살고 있나요?
에이지리스, 당신은 몇 살을 살고 있나요?
  • 김지연 l 예술에세이스트
  • 승인 2021.02.26 18: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26세가 더 늙어 보일 때가 있다.” 올해로 74세인 린다 로딘(Linda Rodin)은 당당하게 말했다.

 

박성연 개인전  <You are here> 씨알콜렉티브, 2020-2021

모델이자 스타일리스트였던 로딘은 SNS에서 ‘옷 잘 입는 할머니’로 유명하다. 그는 수많은 스타들이 팔로우하는 세계적 스타일 아이콘이다. 미국에 린다 로딘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시니어 모델 1호라 불리는 김칠두(67세)가 있다. 2018년, 64세에 데뷔한 그는 1년 만에 이름을 알리며 화제의 중심이 됐다. 놀랍게도 그에게는 1020 대상의 스트리트 브랜드 모델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를 시작으로 시니어 모델 열풍이 시작됐고, 최근 시니어 모델을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오래살고볼일>(MBN)이 시청률 2%라는 괜찮은 성적으로 방영을 마쳤다.

사실 우리 사회는 예전부터 나이에 매우 민감했다. 이름보다는 언니, 오빠, 형, 누나 등 나이로 서열을 가르는 호칭에 익숙하고, 처음 만나면 나이를 묻고 서열 정리부터 했다. 아이들의 사회생활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 <나의 첫 사회생활>(tvn)에서는, 5~7세 아이들조차 마치 어른들처럼 만나자마자 나이를 묻고 서열을 정리하며, 한 살이라도 어린 아이가 반말을 하면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서열문화가 유교문화에서 비롯됐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시대에는 학문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학문의 깊이가 맞으면 사귐이 가능했다. 오성과 한음이 5살이 차이에도 평생의 친구가 됐던 것처럼 말이다. SBS 스페셜 <왜 반말하세요>에서는 이런 서열 문화가 일제시대의 ‘사범학교령’(1886)에서부터 시작돼 해방 이후 점점 느슨해지다가 1968년에 개편된 교육 정책이 다시 ‘사범학교령’을 복제하며 강화됐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젊음이 필수 조건이라 여겨졌던 패션모델의 편견이 시니어 모델들의 출현으로 깨진 것처럼, 사회 곳곳에서 나이와 서열의 장벽이 깨지고 있다. 아직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스타트업을 시작으로 많은 대기업들이 직급을 없애고 수평적 호칭으로 변경하는 추세이며, 동호회나 소셜살롱 같은 사적 모임에서도 나이와 직업을 묻는 대신 닉네임을 사용하거나 이름에 ‘님’을 붙여 서로를 부른다.

대중문화에서도 나이로 역할이나 장르를 한계 짓는 움직임이 줄어들었으며, 10년 전만 해도 연상연하 커플이 꽤 파격적인 드라마 소재였던 반면 이제는 현실에서도 연상연하가 흔해서 나이 차만으로는 이야깃거리가 되기 어렵다. 주변에서도 과거엔 노인이라고 불렸던 60-70대가 다양한 장르의 문화를 즐긴다던가, 스마트기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이 이제 낯설지 않다.

 

임선이 개인전 <품은 시간과 숨의 말> 스페이스소, 2021

‘에이지리스’ 시대에는 정말 나이가 없을까

현대인은 실제 나이에 0.7을 곱해야 정신적, 생물학적인 체감 나이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65세부터 노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평균수명이 50세 이하였던 1880년대에 정한 개념이다. 현대인의 나이 계산법에 의하면 65세는 45.5세에 불과하다. 평균수명이 2배로 늘어난 현재는 생애주기도, 삶의 방식도 달라야 한다.(1) 그래서인지 최근 문화와 소비 트렌드에서 ‘에이지리스(Ageless)’라는 키워드가 자주 보인다. 특히 소비 트렌드에서 두드러지는데, 10~20대는 레트로에 열광하고, 40~60대는 스마트기기와 패션, 서핑보드나 전동킥보드 같은 활동적인 취미에 높은 구매력을 보인다고 한다.(2) 

분명 우리는 예전에 비해 나이에 덜 민감해졌고, 곳곳에서 나이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 그러나 세대 차이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방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과거에는 문화로 인한 연령별 세대 차가 극명했다면, 최근에는 같은 연령대 내에서의 세대 차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같은 나이라고 해서 같은 시대를 살지 않는다. 같은 나이임에도 전혀 다른 문화를 항유하며 다른 시대를 살 수도, 나이 차가 많이 나도 같은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동시대를 살 수도 있다.

2030 내에서도 경제력과 학력 격차, 그로 인한 정보 격차, 개인의 관심사와 삶의 방식에 따라 문화가 갈린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같은 연령대 내에서의 세대 차가 더 뚜렷해진다. 중장년층 이상의 경우, 경제력이나 사회적 교류 부족으로 인해 정보 접근성이 떨어질수록 변화에서 낙오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런 와중에 외적인 젊음까지 경제력으로 보완한다면, 중장년층 이상의 삶은 개인별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나이는 돈으로 교환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나이를 돈으로 살 수는 없다. ‘에이지리스’ 시대라는 말은 누구나 나이에서 자유로운 시대라는 뜻으로 들리지만, 사실 나이는 평등하지 않다. 과거에는 눈에 보이게 불평등했다면, 이제는 조금 더 교묘한 방식으로 불평등하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문제일수록 더 해결하기 어렵다. ‘에이지리스’ 시대의 한복판에서 나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임선이 개인전 <품은 시간과 숨의 말> 스페이스소, 2021
임선이 개인전 <품은 시간과 숨의 말> 스페이스소, 2021

모두가 젊어져야 한다는 욕망

우리는 나이와 세대라는 프레임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봐 왔다. 외부의 틀에 끼워 맞춰야 했던 삶은 늘 무언가 부족했다.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과 책임감의 무게가 개인의 삶을 짓눌렀다. ‘에이지리스’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에이지리스’ 사회는 자꾸만 젊게, 어리게 살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비문화는 ‘젊게 사는’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첨단 IT기기·서비스를 이용하고 젊은이들의 문화를 향유해야 한다고 부추기며, 외모지상주의는 우리가 자연스러운 노화에 불안을 느끼고 동안에 집착하게 만든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는 말은 어느새 남녀노소 불문하고 환영받는 칭찬이 됐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영화 <은교>의 대사는, 영화 자체에 대한 논란을 잠시 미뤄두고도 생각할 부분이 많다. 나이로 젊음과 늙음을 구분 짓고, 젊음은 지켜야 할 소중한 것, 늙음은 최대한 막아내야 할 징벌로 여겨야 할까.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연령별 세대에 갇히지 않는 태도는 시야를 넓히고 궁극적으로 삶을 바꿀 수 있지만,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와 나이를 거슬러 젊어지려는 ‘욕망’은 다르다. 나이에 맞는 삶의 틀에 나를 욱여넣어야 했던 문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등장한 ‘에이지리스’는 젊어지려는 욕망과 강박으로 변질되고 있다. 

미국의 사업가이자 시인,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은 78세에 쓴 <청춘>이라는 시에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이라며, 그것이 있다면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다”라고 했다. 이 시는 같은 연령대 내에서도 세대 차가 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변화하길 멈추고,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리지 않고, 일정한 나이와 그에 맞는다고 여겨지는 역할에 삶을 가둔 채 자신을 들여다보길 멈춘다면 내부가 일찍 늙어버리는 일도 가능하다. 반대로 앞서 언급한 것을 지속한다면 몇 살이라도 청춘일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젊음은 첨단문화와 동안이 아니라, 계속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태도다. 

이는 단순히 삶에서 나이를 배제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몸 상태의 변화나 생애주기에 따른 삶의 준비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개개인의 몸과 삶의 상태,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나이로 획일화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 삶에 찾아오는 변화의 속도를 인지하고 매번 변화한 삶에 따라 프레임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 동물, 남자, 여자와 같은 분류처럼 나이로 사람의 삶을 가르는 것보다 개별 삶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젊음에도 나이듦에도 다양한 모양이 있다. 

 

다양한 삶의 모양

‘에이지리스’ 사회는 늙음에게 젊음을 좇으라고 하지만, 반대로 늙음에 대한 이해는 모두에게 부족하다.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되, 지금 자신의 삶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도록 돕는 잡지 <나이이즘>에서 인터뷰한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남경아 관장은, 50대 이상 역시 20대와 같은 방황의 시기를 겪는데도, 그들에게 맞는 새로운 경험과 정보, 관계망이 준비돼 있지 않다고 했다.(3) 우리는 젊음을 바라보지만 나이 든 삶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에이지리스’가 젊음에 치중하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노화의 과정과 나이 든 삶은 화려하지 않기 때문일까. 

최근 비슷한 시기에 열린 두 전시는 공교롭게도 둘 다 노인에 주목했다. 박성연 개인전 <You are here>(2020.12.22.-2021.2.6. 씨알콜렉티브)에서 작가는 돌아누운 아버지의 등과 가지런히 모은 어머니의 두 손이 들숨과 날숨에 따라 들썩이는 모습을 담은 영상과 간병을 위한 도시락을 싸는 손짓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작디작은 생의 움직임, 돌봄과 배려의 의미를 물었다. 또한, 임선이 개인전 <품은 시간과 숨의 말>(2021.1.21.-2.21. 스페이스소)에서는 흰 벽과 소금이 깔린 바닥으로 온통 새하얀 공간 속에 오래된 샹들리에들을 설치한 작품 <녹슨 말>이 눈에 띄었다. 샹들리에들은 약 6분간 천천히 점멸을 반복하는데, 깜빡이는 불빛들이 마치 느린 호흡과 말 같다. 작가는 이를 통해 에너지가 넘치던 젊음을 거쳐 점차 느려져 가는 노인들의 시간을 표현했다. 

두 작가는 가려진 노인들의 삶을 사소한 움직임으로써 선명하게 시각화했다.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우리는 삶이 그곳에 존재함을 목격한다. 시간이 흘러 사라지거나 악화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것이다. 녹슨 샹들리에에 머물던 빛은 느리고 희미하지만 분명 빛났다. 빛의 종류와 주파수가 다를 뿐, 어떤 시기의 삶도 고유의 빛이 있다. 

오늘의 ‘에이지리스’는 그런 삶의 디테일을 지우고 최첨단의 문물을 모두 받아들이며 젊게 살라고만 강요하는 듯하다. 그러나 나이는 쌓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삶도 쌓인다. 시간으로 쌓은 경험은 가치가 있지만, 꼭 나이와 비례하지는 않는다. 나이로 표상되는 시간은 그저 새로움을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일 뿐, 경험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다. 물론 우리가 영화 <프리키 프라이데이>나 <아빠는 딸>에서처럼 서로의 몸을 바꿔볼 수는 없어도, 서로의 삶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는 있다. 젊음이 늙음을, 늙음이 젊음을 이해할 필요도 있지만, 젊음도 젊음을, 늙음도 늙음을 알아야 한다. 각 세대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모양 역시 드러나야 한다.

진짜 ‘에이지리스’란 마치 시술로 주름살을 제거하듯이 인생에 쌓인 나이를 제거하고 삶의 다양한 요철을 팽팽하게 밀어 버리는 것도, 젊음에 대한 강박으로 피터팬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도전하고 지속하는 자유의 문제이며 그 도전과 지속의 방향 역시 자신만의 결정이어야 한다. 

나이라는 숫자에 나와 타인의 삶을 규정하거나 역할을 부여하지 않으며, 구속을 없앤 자리에 생겨난 여유를 오롯이 자신의 삶에 쏟는 것, 그렇게 쌓아온 삶의 모양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의 모양 역시 존중하는 사이에서 개개인이 빛나는 수평적 사회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결국 어느 나이라도 자기 빛을 제대로 내는 삶이 ‘에이지리스’의 삶이 아닐까. 그렇다면 ‘에이지리스’의 삶은 비단 나이 든 사람에게만 권할 것이 아니다. <청춘>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난다.

“영감이 끊기고/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글‧김지연
예술과 도시에 깃든 사람의 마음, 서로 엮이고 변화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범위를 한정 짓지 않는 글을 쓴다. 홍익대 예술학과와 경북대 로스쿨을 졸업했으며, 미술전문지 『그래비티 이펙트』의 미술비평공모에 입상했다. 미디어아트 전시 《뮤즈》 시리즈를 기획했고, 책 『마리나의 눈』, 『보통의 감상』을 썼다. 


(1),(3) ‘나이듦, 새로운 관점과 준비가 필요해요 –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남경아 관장 인터뷰’, <나이이즘>(1호), 2018
(2) ‘청년은 레트로, 어르신은 최신IT! 에이지리스(Ageless)’, 기획재정부 블로그, 2020.2.28.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을 받아보시고, 동시에 모든 PDF와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PDF와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