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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와 <미나리>를 통해 '인간 존엄'의 길을 묻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 리뷰
위안부 문제와 <미나리>를 통해 '인간 존엄'의 길을 묻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 리뷰
  • 김유라 기자
  • 승인 2021.03.03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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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를 왜곡한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세계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안은 무엇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는 전면의 “역사를 모욕하지 마라” 기사를 통해 램지어 교수의 '태평양전쟁 당시 성(性)계약'논문에 대한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의 반박글을 단독 번역, 게재했다. 또한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의 선구자?’와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외 다양한 글을 실어, 인간 존엄과 그것을 실현해나갈 길을 물었다.

 

한국인이 알아야 할 이야기

 

<‘쓸쓸한’ 소녀상의 뒷모습> - 뉴스원

 

“역사를 모욕하지 마라”(알렉시스 더든)

램지어의 논문에서 ... 성착취와 극도의 폭력이 그런 계약에 다른 것이라고 판단한 일은 놀라울 따름이다. '유엔과 국제 앰네스티가 "반인륜적 범죄"로 인정한 역사적 사실에 '계약'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야말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영화 <미나리> 포스터

 

‘세계주의 속 한국의 정체성, <미나리>’(정재형)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백인만의 나라가 아니고 누구나 같이 자국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같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자유로운 국가여야 한다는 믿음, 그런 평등주의가 감독에겐 있다. 한국계 이주민들은 한국적인 문화를 유지하며 뿌리를 내리고 왕성하게 성장할 것이다. ‘미나리’의 상징은 그런 것이다.

 

새로운 저널리즘의 길

<회색 타원-레드 프레임, 1989-1990 - 로버트 맨골드

 

‘분열을 팔아야 먹고 사는 언론’ (세르주 알리미 외 1인)

“노골적으로 말하면, 예전에는 보편적인 현실관을 주력상품으로 삼던 언론이 이제는 ‘분열’을 팔아서 먹고산다는 것이다.” 이제 <뉴욕타임스>의 관심은 신문을 하나의 완결된 총체적 매체로 간주하는 ‘오래된’ 독자가 아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단편적인 기사 링크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받아보는 ‘커뮤니티’(공동체)를 유혹하는 데 골몰한다.

 

알렉스 그로스, <포자>, 2014년

 

‘허위정보, 혼란의 거울’(소피 외스타슈)

“로크포르 치즈는 코로나 19 치료제가 아니다.”, “2018년 노벨상 수상자는 중국이 코로나19를 만들어냈다고 발언한 적이 없다.” 프랑스 정부 웹사이트 내 펙트체크 서비스, ‘데장폭스’에 게시된 주제들이다. 정부는 인터넷에서 ‘가짜뉴스’만 제거하면, ‘나쁜’ 투표, 불신, 맹신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발행되자마자 뭉치로 폐지로 판매되는 신문들

‘한국 저널리즘의 제 2막’(성일권)

페이크뉴스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은 ‘무엇이 진실인가’이다. 멀티미디어화로 가속화하는 신문의 위기 속에 ‘슬로우 매체’라 할 잡지의 시대가 도래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지난해에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자매지이자 테마무크계간지인 <마니에르 드 부아르>를 비롯해) 굵직한 잡지들이 등장해, 바야흐로 ‘잡지의 부흥기’가 도래했다는 분석이다. 

 

인간, 존엄성을 향한 움직임

 

<빨강, 파랑, 초록 빔> - 돌링 킨더슬리

 

‘존엄성을 위한 카바리야’(티에리 브레지옹)
재스민 혁명 후 10년이 지난 지금, 아랍의 봄은 오지 않았다. 국민은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고 부패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의 부재와 신용을 잃은 정치계, 오명을 쓴 구역만이 남아있다. 뉴스조차 눈길을 주지 않는 카바리야에 대해 사람들의 좋은 평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풍접초가 많이 난다고 ‘카바리야’로 불리는 수도권 지역의 확장은 독립을 몇 달 앞둔 1955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프레데리크 로르동)

다양한 지배관계가 복합하게 얽혀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사회운동을 세분화하기는 어렵다. 하나에 대항해 투쟁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투쟁운동에도 참여한다는 의미가 된다. 모든 투쟁이 평등하다는 인식이 없다면, 패권에 도전하는 세력이 하나로 뭉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평등’이란 양과 질을 모두 추구하는 평등을 말한다. 정당성의 무게는 같지만 각 사회운동의 활동 범위는 제각각이다.

 

<말레이시아 샤알람의 탑글로브 본사에 전시된 장갑들>, 2020 – 림 휴이 텐

 

‘말레이시아 공장 이주노동자들의 눈물’ (페테르 벵상)

“직업소개소는 이민자에게 겉으로만 그럴싸해 보이는해외 일자리를 주선하고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등쳐먹는다. 노도자가 고용주에게 전적으로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고용주다 이 시스템을 익히 알고 있다.” 서구 기업은 해외로 이전한 공장이 늘어나면서 저임금 노동자를 마음껏 부리고 있다. 전 세계 공급망 사이에서 강제노동은 만연해있다. 

‘예금을 도둑맞은 우크라이나 서민들의 고통’(로라 디아브)

“대체 우리 돈은 어디로 간 겁니까? 어디로 간 거냐고요!” 마리아 크리멘코바(65)세의 목소리는 비탄으로 가득했다. 우크라이나 국립은행(NBU)이 2014~2017년 시행한 은행 구조조정으로 우크라이나 시민 16만 명의 예금액이 증발했다. 피해자의 대다수는 마리아처럼 중산층이었다. 은행이 정리된 후, 마리아는 6만 4,000달러를 잃었다. 12년을 꼬박 모아야하는 돈이다. 

 

저항이 불러일으킨 지각변동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의 선구자?'(엘렌 리샤르)

나발니는 지난 8월 시베리아를 출발한 비행기 안에서 독살 당할뻔했으나 목숨을 건졌고, 독일에서 치료를 받았다. 영구적 망명을 거부하고 올해 1월 러시아로 돌아온 그는 스스로 예상했던 대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존경을 자아내는 행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발니가 러시아의 다른 야권 정치인들이 자주 누리지 못하는 반향의 수혜자인 것은 사실이다.

 

<검은 선은...>, 2019 – 아웅 민트

 

'군부독재에 도전하는 미얀마 청년들(크리스틴 쇼모 )

“악이 퍼지던 밤이 지나 아침이 되자, 다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2021년 2월 14일, 라민 오 미얀마 프로듀서는 트위터 계정에 미얀마의 경제 수도 양곤의 거리에서 군부독재에 맞서는 시위대의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몽둥이로 무장한 남자들이 어둠을 무기삼아 혼란을 조장하고 있는 동영상도 함께 올렸다. 이 불한당들의 목적은 2월 1일 일어난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 참가자들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글·김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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