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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간 vs. 우리의 시간
그들의 시간 vs. 우리의 시간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1.04.3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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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지지자들에게 자기 이름 석자가 박힌 시계 돌리기를 좋아한다. 내 기억으로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거의 예외 없이 선물용 시계를 제작해왔다. 이른바 ‘문재인 대통령 시계’라 불리는 시계의 앞쪽에는 황금빛 무궁화를 사이에 두고 봉황새 2마리가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의 자필 서명이 박혀있으며, 뒤편에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이 시계는 미개봉 상태로는 50만 원, 중고가로는 30만 원대를 호가한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긴 시계를 지지자들이나 내방객들에게 선물로 돌리는 의미는, 임기 동안에 초심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약속을 지키겠다는 표시일 것이다. 지지자들 역시 손목에 찬 문재인 대통령 시계의 초침과 분침, 시침이 쉬지 않고 도는 모습을 볼 때마다 바쁘게 일하는 대통령을 떠올릴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며, 권력자라고 해서 시간이 더 많거나, 더 천천히 흐르지 않는다.

TV뉴스나 신문이 소개하는 대통령의 빽빽한 일정을 보면, 대통령이 시간을 분초로 쪼개 쓰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권력자는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검은 시간대’를 가져서는 안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임자 박근혜의 ‘세월호 7시간 공백’에 대한 정치적 자상(刺傷)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시간이 국민의 시간과 다르지 않음을 애써 보여준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가장 큰 실패로 꼽히는 부동산 문제를 살펴보면, ‘문재인 대통령 시계’는 어디가 고장난 것인지 우리의 시간과 자꾸 어긋남을 느끼게 된다. 

지난 4년 동안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거의 2배로 폭등해 서민층과 젊은 층의 지지 이탈로 이어지고 있음에도 “가격상승이 고점을 찍고 안정되고 있다”라는 안일함, 경제학의 기본원칙인 수요공급의 법칙을 무시한 채 임대 3법을 맹신하며, 양도세, 종합부동산세, 보유세, 상속세 등 부동산 세금만 거두면 수요를 저지할 수 있다는 오만함, 공급부족으로 인해 급증하는 수요를 투기세력으로만 바라보는 인식의 천박함, 재보선 참패의 원인을 한낱 보수화한 젊은 세대의 탈시대정신으로 보는 분석의 어긋남, 더불어 서민층과 청년층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대통령 비서실·장관·고위공무원들이 보유한 부동산 가격의 급등과 그 해명의 뻔뻔함…. 

게다가 이 정권의 최대 성과라고 자부하는 검찰개혁과 공공기관 개혁도 소문과 소음만 무성할 뿐, 아직 지지부진이다. 그럼에도 이 정권의 권력자들은 우리가 겪는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다. 이제 그들의 시간은 1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시간이 계속될 것이라고 여긴다. 문제는 그들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겉돈다는 사실이다. 

물리이론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시간은 산에서 더 빨리, 평지에서는 더 느리게 흐른다”고 말한 것처럼,(1) 권력이라는 정상의 시간도 너무 높은 곳에서 흐른다면 평지에 사는 우리의 시간과 맞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력이 우리의 삶에서 너무 높이 있거나 너무 멀리 있을 때, 권력의 시간은 너무 덧없이 흐른다. 지난 4년이 그렇지 아니한가? 5월이면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1년이다. 문재인 대통령 시계를 손목에 찬 권력의 시간이 역사 앞에 다시금 겸허히 태엽을 감고, 우리의 시간과 함께하기를 기대해본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파리 8대학에서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요 저서로 『비판 인문학 100년사』, 『소사이어티없는 카페』,『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20세기 사상지도』(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다.


(1)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쌤앤파커스, 2020),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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