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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미장센 대가의 영화적 유희의 정점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미장센 대가의 영화적 유희의 정점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21.11.14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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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평) '프렌치 디스패치'

 

이런 유형의 영화를 ‘대략난감’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겠다. “올해 최고의 마스터피스”와 같은 극찬을 받았고 칸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땐 기립박수를 받았다. 감독은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한 당대의 대표적인 예술영화 감독이고, 개봉 전부터 호평이 쇄도했다. 한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예상보다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재미없다고 대놓고 말하기는 힘들다. 대단한 영화라고 알려져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몰취미해 보일 것 같기도 해서이다.

웨스 앤더슨이 연출과 각본을 맡은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이야기다. 나로 말하면 관심 깊게 보았지만 좀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연히 나쁜 영화는 아니다. 아니 잘 만든 영화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 마뜩잖은 기분이 남은 이유는 뭘까. 답은 앤더슨 감독의 말에서 찾아진다.

앤더슨 감독은 “해보고 싶은 것들을 <프렌치 디스패치>에 모두 담았다”고 말했다. ‘미장센의 대가’로 불리는 감독답게 반듯한 대칭 구도와 상응하는 동화적 색감을 기본으로 애니메이션, 미니어쳐, 컬러와 흑백의 능수능란한 전환까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현란한 연출 기법을 구사한다.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는데, 107분의 상영시간 내에 무려 4개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4개를 연결한 플랫폼 기능의 스토리 얼개를 포함하면 5개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문라이즈 킹덤> 등의 전작을 통해 미장센과 영상미를 내세워 영화 애호가들을 열광케 한 앤더슨 감독. 그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프렌치 디스패치>에 모두 담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영화인이나 ‘찐’ 영화팬이라면 당연히 <프렌치 디스패치>의 그의 시도에 열광하겠지만 그저 영화팬이라면 열광하고 싶은 마음이나 흔쾌히 열광하게 되지 않는다. 아이스크림 그릇에 욕심을 부려 너무 많은 것들을 꾹꾹 눌러 담다 보니 누군가에겐 ‘아이스크림 떡’처럼 느껴진 형국이다. 높은 영화적 완성도는 인정하더라도 영화를 위한 영화가 됐다는 극찬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에 찬양 일색인 건 아니지 않은가.

 

각각이 한 폭의 그림 같은 4개의 에피소드

구술된 기사로 영상화한 4개의 에피소드가 영화를 채운다. 생략과 선 굵은 터치에 의지하는 스토리는 특별한 게 없다. 하나로 꿰기 애매한 4개의 에피소드를 영화가 관통하는 동안 통일된 주제의식을 감지하게 되지는 않는다. 각각을, 또 전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영화적 방법론에 감탄할 뿐이다. 말한 대로다.

서사를 기준으론 베니시오 델 토로가 천재 화가 ‘모세 로젠탈러’를 연기한 에피소드를 가장 ‘전통적인’ 영화처럼 느낄 관객이 많지 싶다. 감옥에 갇힌 천재 예술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뮤즈인 교도관 ‘시몬’으로 분한 레아 세이두와 베니시오 델 토로의 호흡이 좋았다.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세 번이나 받은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현재 상한가를 올리는 젊은 배우 티모시 샬라메를 통해 그려낸 68혁명이 감각적이었다.

상상한 대로 영상은 그림이라고 해도 좋았다. 대구로 대사는 시적이었다고 하면 좋겠지만,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기발하고 맥을 끊어내는 유형의 대사가 많았다. 맥을 적절하게 끊어냄으로써 유머와 위트가 산출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요리사로 분한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스티브 박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침대에 누워서 하는 대사가 그나마 소위 대사다운 대사라고 할까.

 

풍미가 있었습니다.

무에 들어간 맹독 소금에…풍미가 있었습니다. 난생처음 맛본 풍미

쓰고 꿉꿉하고 알싸하고 매콤하고 기름진…흙의 풍미

그런 맛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딱히 유쾌하지도 않고 맹독성이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풍미였습니다.

내 나이엔 아주 드문 일이죠.

 

용감한 게 아닙니다.

전 그저…모두를 실망시키기 싫었을 뿐입니다.

전 외국인이니까요. 이 도시는 우리들로 가득하죠.

저도 외국인입니다. 빠뜨린 뭔가를 찾아 헤매고 두고 온 뭔가를 그리워하죠.

운이 따른다면 우리가 잊은 것들을 찾아낼 겁니다.

한때 집이라 불렀던 곳에서

 

‘풍미’를 논한 첫 단락의 대사는, 지금 느끼기에 앤더슨 감독의 연출 의도를 구겨 넣은 듯하다. 앤더슨 감독의 연출과 달리 극중에서 요리사가 자발적으로 독을 먹지 않았지만(자발적이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독약을 먹고도 맛을 생각하는 ‘장이’정신과 <프렌치 디스패치>의 연출방법론은 통한다.

극강의 비주얼리스트 감독으로 통하는 그는 자신의 명성에 부합하게 <프렌치 디스패치>를 찍는 동안 130여 개 세트를 제작해 촬영에 사용했다고 한다. 촬영은 프랑스 중서부 도시 앙굴렘에서 진행됐는데, 앤더슨 감독은 앙굴렘 주민 1,000여 명을 섭외해 영화에 등장시켰다. 이 정도 집념까지도 디테일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이 영화가 “빠뜨린 뭔가를 찾아 헤매고 두고 온 뭔가를 그리워하며, 운이 따른다면 우리가 잊은 것들을, 한때 집이라 불렀던 곳에서 찾아낼 것”을 결의한 작품인지, 혹은 영화라는 미디어를 통해 찾아내는 데 실제로 성공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장이’의 영화를 좋아하는 ‘쟁이’ 영화팬이라면 칸영화제의 관객처럼 일어서서 손뼉을 칠 만한 영화임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글·안치용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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