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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지옥행이 향하는 곳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지옥행이 향하는 곳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21.11.24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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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웹드라마 <지옥>

 

 

넷플릭스 웹드라마 <지옥>의 시점은 현재이지만 전근대적인 세상을 다룬다. 그것은 신()의 개입과 심판이 엄연한 중세적 세상이다. 그렇다고 <지옥>이 신의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신의 개입과 심판은 병풍처럼 깔리고, 그것에 대응하는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세속성을 그린다. 혹은 근대성의 기치를 내건 현대 사회의 전근대성을 포착하여 우화로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웹툰으로 먼저 만들어져서인지 웹드라마를 보는 내내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만화적 설정, 만화적 캐릭터가 영화를 지배했다.

<지옥>에서는 외형상 선과 악의 이분법이 분명하게 작동하지만 명목과 실재가 일치하는 건 아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또는 제 꼬리를 무는 뱀처럼 이분법의 세계는 물고 물린다. 그럼에도 만화적이고 신파적 감성을 통해 종국에 인간승리를 말한다는 점에서 대중의 기호에 편승한 단선적 세계관이 표명된다. 과장과 생략, 황당한 세계상과 과감한 비약을 특징으로 한 만화적 구성을 기본으로 이러한 비대칭이 표명된 게 아마 인기의 비결이지 싶다.

 

역전된 고지

 

<지옥>은 그 제목에서 드러나듯, 신적인 섭리 또는 기독교 세계관이 기능하는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고지<지옥>에서 중요한 오브제이다. 고지(告知)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고지는 수태고지의 고지이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 잉태를 알려주는 복음서의 가장 은혜로운 장면의 하나이다.

<지옥>에서 고지는 전복된다. 성스러운 존재의 잉태를 알려주는 복음이 아니라, 죄인의 지옥행 즉 현생의 멸절을 통보하는 최고 심급 저주이다. 고지를 받는 이 또한 판이하다. 수태고지에서 고지받는 이는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us)인 마리아이지만, <지옥>에서는 인간 중에서 죄인이 고지를 받는다. 죄인이 진짜 죄를 지었는지는 극중에서 논란이 되며 <죄인> 시즌1의 주요 모티브가 된다.

고지 전달자의 차이 또한 눈에 띈다. 성서에서는 하나님의 사자인 대천사 가브리엘이 고지하고, <지옥>에선 초자연적 존재가 고지를 맡는다. 만화적 설정인 초자연적 존재가 천사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반대의 이미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악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극에선 일종의 신의 현현으로 간주된다.

 

 

<지옥> 시즌1에서 고지는, 단 한 번의 예외를 빼고는 실현된다. 고지실현의 단 한 번의 예외라는 극적인 상황이 <지옥> 시즌1 후반부 줄거리의 축이다. 신의 고지를 무효로 만든 한 번의 예외가 인간의 노력으로, 혹은 인간의 희생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이 시즌1의 핵심이다. 여기서 희생은 사랑을 뜻하며 나아가 역설이 된다. 고지실현의 저지라는 역설의 정점에서 인간의 아이가 살아남으며 <지옥> 시즌1이 끝난 것은 바둑 용어로 그렇게 될 자리였다.

시즌1 전반부는 김신록이 열연한 박정자가 핵심이다. 이번에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새롭게 세계에 입증한 김신록은 칭찬받아 마땅할 연기를 선보였다. 전반부의 압도적인 시연의 희생으로 역할을 다한 듯한 박정자는 시즌1이 끝나면서, 타고 얼마 남지 않은 유해에서 꾸물꾸물 부활한다. 시즌1 대미의 이 기이한 부활은, 고지를 받아 응당 죽었어야 할 신생아의 생존과 맞물려 <지옥> 시즌2의 얼개를 구성할 전망이다. 박정자 부활 장면은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연상호 감독 때문인지 어쩔 수 없이 좀비의 탄생처럼 느껴진다.

<지옥> 시즌1은 좀비영화라고 하기는 힘들다. 만화답긴 하지만 일반적인 극영화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즌2는 연 감독의 특기인 좀비물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왜일까.

<지옥>의 고지와 복음서의 고지는 설명한 대로 서로 대척점에 서 있다. 그렇지만 두 고지가 철두철미하게 상반된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조금만 드라마를 들여다보면 고지를 둘러싼 복음서와 <지옥>의 공통점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수태고지가 단 한 번의 예외적 수태를 전했다면, <지옥> 시즌1의 마무리 장면의 고지는 결과적으로 단 한 번의 예외적 상황인 고지의 미실현을 전함으로써 두 사건 모두 예외의 고지라는 공통점을 갖게 된다.

태어날 아이의 잉태와 신생아의 생존이란 두 사건은 연출자의 의도 안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눈이 내리는 가운데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남루한 곳에서 아이가 생존하는 장면은 복음서의 탄생을 연상시킨다고 하여도 의도 측면에서는 과하지 않다. 감독은 익숙한 구도를 비틀어 대중적 친화력을 행사한다. <지옥> 시즌2에서 그 아이가 어떤 형태로든 구세주로 등장할 것 같다고 느끼는 시청자가 많지 않을까.

 

죄와 지옥행

 

<지옥> 시즌1은 크게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박정자는, 지옥행 장면이 생중계되면서 죄인계의 전설이 된다. 극중에서 보듯 기념관까지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의 죄가 무엇인지는 규명되지 않는다. 관객에게는 박정자가 무죄로 느껴질 것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아이다. 정확하게는 음각화의 형태로 제시된 의미상의 주인공이고 실질적 주인공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등이다. 이 아이도 죄인이다. 문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소소한 인간적인 죄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박정자와 달리 신생아에겐 어떤 죄의 가능성이 성립하지 않는 데서 성립한다.

신생아에게 고지가 내려진 사실을 전해 들은 새진리회 수뇌부가 그럼 원죄를 도입하자고 말하는 등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며 우왕좌왕한 건 <지옥>의 죄는 기독교 서방교회에서 주장한 원죄가 아닌 자범죄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정식화한 서방교회의 원죄는 오랜 기간 정교한 교리화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드라마 속 새진리회는 극중에서 스스로 언급하듯 얼핏 개신교와 비슷해 보이지만, 원죄가 아닌 자범죄를 내세우며 차별화하고 고지와 시연이라는 신의 개입과 의도를 통해 인류의 지배적 종교가 된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죄를 지어서 죄인이라기보다 죄인이란 고지를 받아서 죄인으로 규정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분위기가 떠돌다가 결정적으로 신생아의 고지와 함께 그의 죄가 문제가 되며 신정은 도전을 받게 된다. 새진리회의 행동대격인 화살촉의 행태는 탈레반을 풍자한 듯하여 웃음이 난다.

 

 

작품 이름이 지옥이지만 <지옥>에서 정작 지옥은 그려지지 않는다. 극중에서 단지 지옥행만이 고지될 뿐 이 여행상품의 내역은 전혀 고지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므로 현세의 인간에게는 지옥행의 고지와 고지의 시연이 최악의 지옥도가 된다. 가보지 않는 저쪽 세계의 이름이 지옥이기에 이쪽 세계 사람들이 그곳을 천국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다. <지옥>에서 말하자면 비판하는 것은, 저쪽 세계를 빌미로 이쪽 세계를 지옥으로 만드는 사악한 무리이다. 재미에 치중한 드라마라 정색하고 비판이란 용어를 쓰는 게 좀 어색할 수 있겠지만, 굳이 따지고 들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지옥행의 시연을 초현실적인 존재 셋이 몰려다니며 행하는데, <오징어게임>을 보고 기독교 비하라고 주장했던 이들이 마찬가지로 삼위일체를 비아냥거리는 신성모독이라고 기독교 혐오를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지옥>이 결국 이쪽 세상을 그렸듯, 설령 천국과 지옥이 저쪽에 따로 있다고 하여도 이쪽 세상에도 그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다만 <지옥>을 보면서 복잡한 상념에 휩싸일 필요는 없고, 가볍게 킬링타임으로 즐기면 된다. 그게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다.

 
 
글 안치용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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