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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지옥>으로 미리 보는 2022년 K-드라마의 미래
드라마 <지옥>으로 미리 보는 2022년 K-드라마의 미래
  • 김민정 l 중앙대 교수
  • 승인 2022.01.2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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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으로 기세등등하게 뻗어나가는 것을 보며 함께 즐거워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K-드라마가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은 갑과 을의 위계서열이 중심축을 이루는 지극히 한국적인 세계관을 토대로, 부의 불평등과 불공정이라는 전 세계인의 공통된 이슈를 내세워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주제의식, 캐릭터, 인물 구도, 서사 패턴 등 드라마의 모든 것이 K-드라마의 성공공식을 가장 잘 따른 ‘모범’ 작품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글로벌 신한류 열풍을 이끈 K-드라마의 공통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작품, 그것이 바로 <오징어 게임>이다. 그런데, 그 점이 문제였다. 

K-세계관의 자가복제. <오징어 게임>은 그동안 한국 드라마가 걸어간 길, 그래서 익숙하다 못해 진부하고 상투적으로 비칠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정녕 이제 내려올 일만 남은 것인가.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인 흥행 돌풍은 K-드라마가 이룬 최고의 성과인 동시에, K-드라마가 풀어야 할 큰 과제임이 분명했다. 

 

<오징어 게임>과 <마이 네임>, 그리고 <지옥>

다행이었다. <오징어 게임>을 보고 탄식했다면 <마이 네임>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지옥>을 보고는 감탄을 내뱉을 수 있었다. 역시 K-드라마! 

2021년 10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 네임>은 언더커버를 모티프로 한 장르물로 한때 넷플릭스 세계 TV프로그램 3위에 랭크되며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K-드라마만의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약하다”라는 혹평과 함께 국내외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오징어 게임>이 ‘데스 게임’이란 장르물에 K-드라마만의 특수성을 내세워 글로벌 신한류 열풍에 합류했다면 <마이 네임>은 ‘언더커버’ 장르물의 서사 원형을 차용해 콘텐츠의 무국적성을 강조한다. ‘K’라는 위대한 유산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K-드라마’만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혹평은, 역으로 장르 다양성을 확보하며 K-드라마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호평으로 전환될 수 있다. 

2021년 겨울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은 <마이 네임>보다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간다. <지옥>은 한국적 특수성보다는 문화콘텐츠의 보편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통해, 그동안 K-드라마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서구 문화권 시청자까지 공략한다. 

<지옥>은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사람들이 지옥행 고지를 받으면서, 집단적 혼란에 빠지는 가상의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지옥행 고지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기독교를 연상시키는데, 이때 기독교는 한국인에게는 특정 종교로서 특수성을 가지지만 미국과 유럽을 위시한 서양 문화권에서는 보편적 사회문화로서 작동한다. <지옥>은 기독교적 세계관이라는 토대 위에 신과 인간의 문제를 올려놓음으로써 동서양을 잇는 ‘디지털 실크로드’ 넷플릭스의 종착지가 되기를 자처하며 지금껏 문화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영미권 국가를 대상으로 정면 대결을 시도한다. 

 

사적 복수와 다크 히어로

‘세계’ 시장을 겨냥한 ‘한국’ 드라마 <지옥>은 두 개의 층위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한국 드라마의 최신 트렌드인 ‘사적 복수와 다크 히어로’의 맥락에서 <지옥>이 차지하는 사회문화적 좌표다. “하나님이 너 때리래”를 외치며 적폐세력을 처단하던 2019년 <열혈사제>의 김해일 신부를 시작으로 2021년 <빈센조>, <모범택시>, <원더우먼>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인기 드라마 다수가 다크 히어로의 사적 복수를 보여줬다. 현 체제 안에서 공적 복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개인이 나서서 직접 악을 심판한 것이다. 

2021년 겨울, 다크 히어로물의 최전선에서 <지옥>은 사적 복수가 일상화된 가상사회를 배경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극 중 평범한 사람들이 괴생명체에 의해 지옥행 선고를 받고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상황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이때 종교단체 새진리회는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고, 인간이 만든 법이 죄인을 단죄하지 못하니까 신이 나선 것이라며 불안과 공포에 빠진 사람들을 설득한다. 

극 중 예고 살인을 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범죄자, 그러니까 제각각 살인자, 폭력범, 사기꾼, 강간범으로 밝혀진다. 폭력적인 죽음 방식에 경악하던 사람들도 점차 그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직접 사적 복수에 나서기 시작한다. 사적 복수의 실천은 새진리회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소수 집단 ‘화살촉’에서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로 빠르게 확산한다. 사적 복수의 일상화와 맞물려 다크 히어로의 대중화가 이뤄진 것이다. 

공권력에 기댈 수 없는 무력한 현실과 그런 현실에 절망한 대중에게 통쾌한 해법으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지옥>은 사회비판 요소가 가미된 킬링타임용 드라마로 읽어낼 수 있다. 지옥행 시연방식이 다소 폭력적이긴 하지만 표현수위에 있어 상대적으로 제약이 적은 OTT드라마란 걸 고려했을 때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6부작으로 구성된 시즌 1의 5회차에서 <지옥>은 스토리의 방향을 확 틀어버린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생아가 지옥행 고지를 받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죄를 지어 지옥행을 선고받는 것이라는 새진리회의 해석에 오류를 설정함으로써 <지옥>은 그동안 우리가 ‘속 시원한 엔딩’이라며 뜨거운 환호를 보내던 다크 히어로의 영웅담에 과감하게 제동을 건다. 지금 우리 안의 믿음과 신념이 과연 옳은 것일까. 세상에 절대 선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지옥>은 선과 악, 시와 비 등 이분법적으로 재단된 세상에서 파생된 획일화된 사고와 경직된 문화가 초래할 수 있는 최악의 비극에 대해 경고한다. <지옥>에서 발견되는 이런 장르적 차이화(差異化)는 한국 드라마 스스로 관념적 도그마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자기성찰력의 발로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혼돈, 그 창조적 힘에 대하여 

대중성을 장르적 특장점으로 삼는 드라마는 당대 시민들의 문화와 의식이 투영된 한 시대의 표상이다. 다시 말해, 글로벌 신한류를 이끄는 K-드라마는 한국 사회와 현실을 반영하는 한국 드라마인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 사회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한 세계 공통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오징어 게임>은 중심이 아닌 주변부가 세상을 구원하는 K-드라마만의 세계관을 통해 최근 미국과 유럽, 중국과 제3세계로 이어지는 세계 정치 지형의 변화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지옥>은 권력 투쟁에 얽힌 인류의 오랜 역사를, 중세와 르네상스를 아우르는 신과 인간의 문제에 빗대어 깊게 파고든다. 이때 <지옥>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수천 년의 세계사를 관통하는 권력의 본질 즉, ‘그 누구도 영원한 권력을 가질 수 없음’이다. 이름하여 ‘절대성의 부재(不在)’. 

극 중 지옥행 고지를 받은 신생아를 두고 모두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시즌1의 엔딩에서 부정한 여자라고 비난받으며 공개석상에서 최초로 죽임을 당한 미혼모 박정자가 부활한다. 죽은 박정자의 부활은 신의 아들 예수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 역시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한 그 시대의 미혼모라는 점을 깨닫게 함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절대성의 모순을 폭로한다. 이를 통해 <지옥>은 죄와 벌, 선과 악, 미와 추, 귀와 천, 시와 비 이 모든 것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사는 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말하고 싶은 게 뭐야. 복잡해서 모르겠어”라고 신에게 절규하는, 지옥행 고지를 받은 화살촉 회원, ‘원칙 없는 세상은 종말’이라며 집단적 멘붕 상태에 빠진 새진리회 사제들,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아 <지옥>을 이끌어나갈 것이라 기대했던 정진수(유아인 분)와 배영재(박정민 분)의 죽음으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주연과 조연 사이에서 의지할 곳을 찾아 방황하는 화면 밖 시청자들까지… 절대성의 세계는 드라마 안과 밖에서 사정없이 무너져 내린다. 

흥미로운 것은, <지옥>에서 절대성으로 환유되는 신은 단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신에 관한 모든 것은 인간이 마음대로 덧붙인 해석임에 불과하다. 즉,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다. 신은 그저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의 사건이고,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다. ‘신’이라 불렸던 절대적 진리가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곳은 모든 가치가 뒤범벅이 된 위태로운 카오스의 세상일까. 아니면 다양성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세상일까. 이러한 물음을 통해 <지옥>은 인간의 자율성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권력의 중심은 미국도 유럽도 중국도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도 아니다. 그 누구도 아니다. 주변이 중심을 구원한다는 것은 주변이 중심을 대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권력의 단순한 이동은 억압의 대상이 억압의 주체로 바뀌는 것일 뿐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주변이 중심을 진정으로 구원하는 방법은 주변이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변방을 중심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 억압의 주체였던 중심을 해체하면서도 그 주변을 또 다른 변방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 중심은 하나일 수도 없고 하나여서도 안 된다. 모든 인간의 언어와 모든 문화의 문법이 제각기 중심이 되는 새로운 세계, 그리고 그 세계를 품어내는 새로운 드라마월드. 그러므로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과거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대범한 용기와 열린 태도다. 

세계의 모든 창세신화는 카오스에서 시작됐다. 혼돈은 무질서한 상태가 아니라 새로움을 창조하는 생명력이며 다름을 포용하는 역동성이다. 평화로운 카오스와 위험천만한 다양성, 상대성의 서로 다른 두 얼굴은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인 흥행 이후 K-드라마가 반드시 지나가야 할 통과의례다. 비록 <지옥>이 <오징어 게임>만큼 세계적인 반향을 끌어내진 못했지만, K-드라마의 성공공식을 그대로 적용한 <오징어 게임>의 성공이 완전한 성공이 아니듯,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 <지옥>의 다소 아쉬운 흥행실적도 실패가 아니다. 

정치풍자극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정통 사극 <태조 이방원>, 판타지 <불가살>, SF <고요의 바다>… 세계 드라마의 정상에서 <지옥>이 재현해낸 혼돈의 창조적 힘으로 2022년 K-드라마의 외연은 현재 무한확장 중이다. K-드라마의 신화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글·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분주히 오가며 나만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2021), 드라마비평집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사용법>(2020) 드라마이론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2018), 논픽션<한현민의 블랙스웨그>(2018), 소설집 <홍보용 소설> (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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