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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이 소환한 한국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현재
<오징어 게임>이 소환한 한국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현재
  • 송영애 l 영화평론가
  • 승인 2021.10.2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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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포스터

2021년 9월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9부작 <오징어 게임>(황동혁 감독)이 화제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 인기 원인 분석, 매출과 이익 추정 등에 이어 국내 망 사용료, 매출 분배 문제까지 많은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나는 관련 뉴스를 접하며, 여러 번의 데자뷰를 느꼈다. 한국영화와 드라마 관련 기억이 소환됐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 이슈가 소환한 한국영화와 드라마, 감독 등을 통해 다양한 경계의 소멸, 참여 인력의 기회 확대, 대중의 일상 변화 등을 확인해볼까 한다.

 

<승리호>, <스위트홈>, <대장금>, <씨받이>, 그리고 경계 소멸

넷플릭스가 진출한 190여 개 국가 중 90개국에서 <오징어 게임>이 ‘오늘의 TOP 10’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를 접하며, 여러 한국영화와 드라마가 떠올랐다. 그중 극히 일부가 <승리호>(조성희, 2021), <스위트 홈>(이응복, 2020), <킹덤>(김성훈, 2018), <기생충>(봉준호, 2019), <올드보이>(박찬욱, 2003), <대장금>(MBC, 이병훈, 2003), <겨울연가>(KBS, 윤석호, 2002), <쉬리>(강제규, 1999), <씨받이>(임권택, 1987), <오발탄>(유현목, 1960) 등이다. 모두 해외에서의 인기나 수상 소식이 국내에 대대적으로 소개됐다.

넷플릭스에서 독점 공개된 영화 <승리호>를 비롯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스위트 홈>, <킹덤> 시리즈 등의 경우, 스포츠 게임의 기록 경신 소식처럼 소개됐다. 얼마나 많은 국가의 넷플릭스 ‘오늘의 TOP 10’에서 1위를 했는지, 그리고 미국 TOP 10에서 몇 위를 했는지가 ‘최초’, ‘최고’ 등의 수식어와 함께 전해졌다.

비슷한 상황은 한국영화의 영화제 수상 소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기생충>이 2019년 칸영화제를 비롯해 2020년 아카데미시상식 주요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최초’, ‘쾌거’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올드보이>가 200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을 때도 그랬고,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임권택 감독 등의 영화가 유럽 영화제에서 소개되거나 수상했을 때도 비슷했다. 

 

<씨받이 디지털 리마스터링> 포스터

198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강수연 배우가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때도 생각난다. 당시 큰 화제였는데, ‘세계 3대 영화제 최초 수상’이라는 수식어가 등장했다. 그 이전에는 해외 영화제 초청을 받은 영화들이 화제가 됐다. 그중 <오발탄>은 4·19 이후 무사히 개봉됐지만, 5·16 이후 상영금지 판정을 받았는데,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초청 덕에 검열기관이 ‘국위 선양’을 이유로 국내 상영금지를 해제했다.

꽤 오랫동안 한국영화와 드라마는 해외에서의 평가에 반응해왔다. 미디어와 대중, 업계의 반응 등을 단순화나 일반화하려는 건 아니지만, 꽤 오래 반복된 경향으로 참고할 수 있다. 국내보다는 해외, 아시아보다는 유럽이나 북미에 호감을 보여 온 경향을 ‘사대주의’나 ‘식민주의’라 바라볼 수도 있으나, 영화와 드라마 분야에서 후발주자로 제작을 시작한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반응, 더 나아가 다양한 작품 제작을 위한 동기 부여로 평가할 수도 있다. 덕분에 해외 인기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보편적 공감이 가능한 완성도 높은 작품의 제작 노하우가 축적된 측면이 있다. 

물론 성공의 비결은 ‘잘 만든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잘 퍼뜨린 것’ 역시 크다. 즉 2021년 10월 현재 해외에서도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가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산업과 기술의 발전으로 폭넓은 노출이 가능해진 덕택이기도 하다. 극장 판권과 TV 판권, 온라인 판권까지 해외에 판매되면서 국가별 개봉시점이나 첫 방영시점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공간과 시간의 경계가 소멸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가 국가와 문화의 경계 소멸을 가속하고 있다. 글로벌 OTT를 통한 공개는 세계 규모의 공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판권 수출, 개봉이나 방영 추진 등의 단계도 생략해버린다. 여러 언어로 제작된 자막과 더빙도 제공해, 언어의 장벽도 한꺼번에 낮춘다. 그 결과 작품은 더 많은 국가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노출될 수 있다. OTT와 계약도 해야 하고, 구독자의 재생 선택도 받아야지만, 일단 공개 규모는 양적, 질적으로 어마어마하다. 작품에 따라 반응의 규모 역시 거대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처럼 말이다. 

나아가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는 꽤 오랫동안 제작 장비부터 공개방식까지 차이가 컸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드라마는 지상파 TV 채널에서 공개됐다. 일부 영화는 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지만, 개봉 이후 극히 일부 영화의 경우였다. 이후 대부분의 개봉 영화가 비디오로 출시되고, 영화 전문 케이블TV 채널을 통해 방영되는 시기를 거쳐,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영화와 드라마는 첫 공개방식만 다를 뿐,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공개방식이 비슷해졌다. 국내외 OTT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적어도 첫 공개방식에 있어서 영화와 차이가 없다. 시리즈의 경우에도 전 회차가 동시에 공개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OTT를 통해 콘텐츠를 감상하다 보면, 영화는 단막극, 드라마는 시리즈라는 정도만 차이가 보일 뿐이다. 그리고 한국어 대사나 자막으로 감상하다 보니, 해외 작품의 경우 국적을 아예 모르고 보기도 한다.

 

황동혁, 허진호, 한준희, 박찬욱, 한지승, 김수동, 그리고 기회 확대

또 다른 차원의 경계 소멸, 정확히는 영역의 확장과 그에 따른 기회 확대의 가능성도 감지된다. 연기, 촬영, 조명, 음향, 편집, 미술, 음악 등 제작 인력 역시 영화와 드라마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다.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사례가 적긴 하지만, 연출도 마찬가지다. 그중 극히 일부를 적어보자면, 황동혁, 한준희, 허진호, 박찬욱, 김영준, 양윤호, 한지승, 김수동 등의 영화감독이 지상파 TV, 케이블 TV, 종합편성 TV, OTT 용 드라마를 연출했다. 

<오징어 게임>은 <마이파더>(2007), <도가니>(2011), <수상한 그녀>(2014), <남한산성>(2017) 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다. 2008년 영화 시나리오로 완성한 이 작품은 당시 제작이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로 제작됐다고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연출한 영화감독으로는 <D.P>를 연출한 <차이나타운>(2015)의 한준희 감독, <킹덤> 시리즈를 연출한 <끝까지 간다>(2013), <터널>(2016) 등의 김성훈 감독, 곧 공개 예정인 <지옥>을 연출한 <부산행>(2015), <반도>(2020) 등의 연상호 감독 등이 있다. 2016년에 국내에 진출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중 영화감독의 연출작이 적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포스터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8) 등의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인간실격>은 현재 jtbc에서 방영 중이다. <올드 보이>, <아가씨>(2016) 등의 박찬욱 감독은 영국 BBC에서 방영된 <리틀 드러머 걸>(2018)을 연출한 바 있다. <조용한 가족>(1998),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밀정>(2016) 등의 김지운 감독은 현재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를 연출 중이다. 

영화감독의 드라마 연출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실상 제작이 거의 중단된 영화계 상황, 국내외 OTT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확대 상황이 맞물린 측면도 있다. 그렇다고 최근에서야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이미 이전부터 지상파TV와 케이블TV 등에서 영화감독이 드라마를 연출했다. 

2006년에는 <고스트 맘마>(1996), <하루>(2001) 등을 연출했던 한지승 감독이 SBS 드라마 <연애시대>를 연출했다. 당시 영화감독의 드라마 연출이 큰 화제가 됐다. 한지승 감독은 작년에 방영된 jtbc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2020)도 연출했다. 그 밖에 양윤호 감독은 KBS 드라마 <아이리스>(2009)를 연출했고, 김영준 감독은 SBS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2010) 등을 연출했다. 당시 드라마 제작 방식이 외주 제작으로 변환되는 상황에서, 차별화를 추구한 외주 제작사의 전략 중 하나였다. <아이리스>와 <아테나>는 당시 TV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대규모 액션 장면을 선보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80~90년대 KBS의 <TV문학관>, MBC의 <베스트극장>에서 필름으로 제작하는 단막 드라마에 참여한 박철수, 정지영, 홍기선 등의 영화감독도 있었고, 1970년대 TV 방송국에 입사한 김수동 영화감독 등도 있었다.

2010년대 들어서 영화 촬영 현장에서 필름이 사라졌다. 촬영 장비의 디지털화로 기술적 장벽은 더 낮아졌다. 드라마가 영화보다 총 상영시간이 길고, 여러 회차로 구성된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드라마도 영화처럼 사전제작이 가능하고 제작비만 충분하다면 영화감독에게도 열려있는 분야다. 적어도 차기 작업의 선택지가 많아져, 기회가 확대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대중의 일상 변화

그렇다면 대중의 일상도 많이 변했을까? 앞서 살펴본 내용을 입장만 바꿔 생각해 보면, 관객 혹은 시청자, 구독자, 사용자로 규정될 수 있는 대중은 현재 매우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국경과 문화를 초월한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 등을 접할 수 있다. 국내외 OTT 구독자 수, 스마트폰 사용 시간 등의 증가 상황을 보면, 많은 이들의 일상이 변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마트폰만 있다면, 공간적, 시간적 제약 없이 어디서든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상영시간표에 맞춘 영화관 관람과 편성표에 따른 소위 ‘본방 사수’ 등 일부러 제약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봉, 첫 방송 이후에는 시간과 장소와 방식의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다. 언제 어디에서든 한 번에 또는 나눠서 시청이 가능하며 되돌리기, 일시정지, 반복 시청도 가능하다. 대중 역시 여러모로 선택지가 늘었다. 

게다가 SNS를 통해 감독, 배우, 배급사, 채널, OTT 등과도 직접 소통할 수도 있다. 대개 지켜보기 수준이지만, 신문, 잡지, TV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소식을 기다릴 필요는 확실히 줄었다. 기존 매체 즉 말 그대로 중간 매개물을 건너뛰고,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와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댓글을 통한 의견 피력도 가능하고, 더 적극적인 활동도 가능하다. 일례로 <오징어 게임>을 집에서 혼자 볼 수도 있지만, 온라인으로 함께 즐길 수도 있다. 직접 만든 달고나를 사진 찍어 SNS에 올리며 레시피를 공유할 수도 있다. 

변화와 유행을 따르는 것이 의무는 아니지만, 이와 관련해 대중이 과연 얼마나 일상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콘텐츠를 감상하고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 영화의 경우, 우리나라 관객은 최근 10여 년 동안 한국영화나 미국영화를 주로 봐왔는데, 최근 그 외 국가의 영화도 봤는지? 그리고 국내 방송법상 해외 드라마를 접하는 것도 매우 제한적인데, 더 다양한 나라의 드라마를 보게 됐는지? 그래서 세계를 향해 공감의 영역을 더 넓히고 있는지?

 

<더 포가튼 배틀> 포스터

예를 들어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 <종이의 집> (2017~)은 스페인 드라마이고,공개 당시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영화 <365일>(2020)은 폴란드 영화다. 2021년 10월 22일 기준, 한국 넷플릭스의 ‘오늘의 TOP 10’에 해외 작품은 2편으로 네덜란드 영화 <더 포가튼 배틀>(2020)과 미국 드라마 <너의 모든 것>(2018~)이다. 혹 봤는지? 보지 않았더라도 제목은 익숙한지?

<오징어 게임> 이슈를 통해,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고 즐기는 환경이 변화 중임을 새삼 확인했다. 우리 콘텐츠가 국경이나 문화 등의 경계를 넘어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길 기대하는 만큼, 인력들도 충분한 대가를 받으며 더 풍부한 기회를 얻기 바란다. 또한, 이 모든 변화의 원천인 대중도 적극적으로 다채로운 콘텐츠를 접하며, 누릴 건 누리고, 요구할 건 요구하길 바란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한 방향으로 변화되면 좋겠다.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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