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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석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린 석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이상엽 l 사진작가
  • 승인 2022.01.2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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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새로 쓰는 24절기- 2월, 우수/경칩

연재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에 달력을 보고 의아한 사람들이 있었을 듯하다. 이 기사의 꼭지 제목과 달력의 절기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첫 번째 연재 기사에서 밝혔다시피 이 기사의 절기는 지난 30년간의 한반도 기후변화를 적용한 것이라 달력의 절기와 다르다. 대체로 봄과 가을은 비슷하고, 여름은 5개월 정도로 늘었다. 겨울은 오히려 3개월 정도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30년 평균이다. 당장 모두 들어맞을 수는 없다. 올겨울만 해도 예년과 달리 혹한이 왔고 새벽 온도가 1주일 내내 영하 10도 이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래도 예전처럼 한강 물이 꽁꽁 언 일은 없었다. 낮에는 기온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00년 동안 중 최근 30년의 기온 변화는 낮게는 0.3도에서 높게는 무려 4.1도까지 올랐다.

 

함박눈이 쌓인 고기초등학교. 일제강점기 시절 고분리와 손기리가 합쳐 생긴 마을이다. 먹는 고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지나가던 객지인들은 고기초등학교 이름에 한번 웃고 만다.

강수량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은데, 여름보다 초가을에 비가 더 많이 오고 겨울에 눈이 조금 더 내린다. 필자가 여기 고기리(경기도 용인시)로 이사 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눈이었다. 한번 오면 많이 오고 산에 둘러싸여 잘 녹지 않는다. 그래서 평생 서울에서 구경한 것보다 눈을 더 많이 본다. 특히 2월에 눈이 푸짐하게 내린 것 같다. 아이들이 다니던 고기초등학교에 매년 2월 졸업식이 있을 때면 대설경보가 내리곤 했다. 그러면 이 동네 유일한 대중교통인 마을버스는 고기초등학교 입구에서 회차해 버린다. 체인이나 겨울용 타이어를 끼지 않은 승용차들은 벌벌 기거나 미끄러지기 일쑤다.

 

우수에 물이 풀린 달래강

우수는 눈과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절기이니 비로소 봄이다. 달력에 기록된 우수는 2월 20일 경이지만 기후변화로 절기도 변해 2월 초면 우수다. 우수가 되면 수달이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 바위에 늘어놓는다고 한다. 수달과 물이 풀린 강이라면 떠오르는 곳이 있다. 충북 달래강이다. 필자에게는 개인적으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인 70년대, 아버지가 캠핑 도구를 마련해 가족이 함께 야영을 하던 곳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카메라를 챙겨 충주로 내려갔다.

아직도 찬바람이 부는 2월 겨울인데 달래강은 유려하게 흐른다. 달래강은 최상류인 보은 속리산 지역에서 속리천, 청원에선 박대천, 괴산에선 괴강 등으로 불리다가 충주시 달천동에 이르러서야 달래강이 된다. 요즘 ‘차박’이 유행이라 달래강에도 명소가 있다. 8개의 칼처럼 서있는 봉우리, 수주팔봉 앞이 그 명소다. 문제는 너무 차를 몰고 들어와 주변 환경이 파괴되면서 현재는 차박이 금지됐다고 한다. 여튼 수주팔봉은 팔봉이 아니다. 1960년대 농지 증산을 한다고 봉우리 몇 개를 절개해 버렸다. 그래서 굉장히 불균형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 앞에서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충주 달래강의 전경이다. 참으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지역이다. 강에는 여러 민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이를 잡아먹는 수달도 산다. 달래강의 달자는 분명 수달에서 연유한 것이 틀림없다.

달래강은 한자로 감천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달달한 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이 충주를 지나다 갈증으로 맑게 흐르는 강물을 마셨는데 그 물맛이 달고 좋아 감천이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식 기록으로 보면 달래강은 ‘수달의 강’이란 뜻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수달의 강이란 의미로 ‘달천’이라 기록되었고, 조선 초부터 강 근처에서 수달피가 만들어져 진상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달천은 도달할 달자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달래강 전역에 수달이 서식한다. 지금이야 수달은 보호종이 될 정도로 줄어들었는데, 이 수달이 달래강에서 서식하는 것은 그만큼 생존에 유리한 점이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달래강에 물고기들이 많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가끔 혼자 이 달래강에 내려와 견지낚시를 하며 직장생활의 괴로움을 풀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달래강 민물고기 매운탕은 지역 맛집이기도 하다. 우수에 달래강에 들러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바위에 늘어놓는 풍경을 발견하면 좋으련만, 이는 하늘이 도와야(!) 가능한 일이다.     

 

철암역 뒤편에 백년 가까이 쌓인 폐탄 더미. 쓸 만한 것을 퍼서 연탄 등을 만든다. 한국 에너지 생산의 1등 공신이었던 탄광이 바로 여기 있었다.

을씨년스런 폐광 도시 철암

경칩은 우리에게 익숙해서인지 정겹게도 느껴진다. “개구리가 깨어나는 절기.” 놀랄 경(驚)에 벌레 칩(蟄)의 단어는 ‘천둥이 치고 땅에서 벌레가 놀라 깨어난다’는 뜻이다. 비가 오고 대지가 생명으로 깨어난다는 것이다. 요즘 변화된 절기로 보면 대충 2월 말이 경칩이다. 옛 사람들은 들에서 씀바귀를 캐고 저수지에서 개구리 알을 건져 국을 끓였다고 한다. 이때쯤 특별한 먹거리 중 하나가 고로쇠물이다. 한반도 곳곳에 자생하는 단풍나무과의 고로쇠나무들은 이때쯤 많은 물기를 품고 있어 인간들은 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한다. 달달한 액체는 메이플시럽을 만드는 원료가 되기도 하는데, 1960년대 설탕이 귀하던 때 이런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로쇠나무는 적합하지 않았다. 설탕 대용은 물 건너갔고,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져 고로쇠물 음용이 1990년대부터 유행이 됐다. 강원도 장성에도 이런 고로쇠물이 마을 단위로 채취된다기에 절기 취재차 들렀다. 그런데 내 파인더에 더 흥미롭고 들어 온 것은 고로쇠나무가 아니라 철암리의 슬픈 폐광이었다.

철암리는 오래된 폐광의 을씨년스런 풍경의 소도시다. 철암에는 북서쪽에 연화산, 북동쪽에 백병산, 남쪽에 두골산, 중앙에 시루봉이 솟아있다. 새뜨리, 피내골, 좁시골, 매산골, 버들골, 새터 6개 자연마을이 합하여 이루어진 작은 도시로, 태백시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한때 전국 석탄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지역으로 근대산업사의 상징인 철암역두 선탄시설이 있다. 광업으로 한때 흥청거렸을 때는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도 했다. 지금도 철암역 뒤편에는 산처럼 폐탄이 쌓여있다. 캐낸 탄 덩어리 중에 돌이 많이 든 것을 괴석, 부스러진 것은 분석이라 해서 폐탄장에 버린 것이 80년이나 됐다. 하지만 이것도 돈이 됐던 시절이 있었다. “폐석 장에 아침·저녁이면 장성읍 철암리 일대 3백여 가구의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이 괴탄을 주워 철암리 일대의 각 접객업소에 팔았다. 이들은 새벽에는 7시까지, 저녁에는 5시 이후부터 어두운 시간대에만 수집했다.” 1974년 한 신문에 실린 기사 중 한 대목이다. 지금도 폐탄 적치장에는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오가는 것을 보면 쓸 만한 석탄을 골라 활용하는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석탄 생산량은 제한되고 있다. 당연히 석탄을 태울 때 나오는 각종 오염 물질들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국내산 석탄 수요가 사라질 때까지 연탄용은 149만 톤, 발전용은 340만 톤 정도로 제한해 생산하기로 했다. 그런데 수입량을 보면 놀라자빠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석탄 수입은 세계 4위, 소비는 5위, 1인당 소비는 2위이다. 한해 석탄 수입량만 1억 2,359만 4,168톤에 이른다. 자그마치 생산량의 25배를 수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을 제외하고 석탄 소비가 큰 나라들은 주로 중국, 인도 등 신흥 공업국들이다. 이들도 현재는 석탄 소비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에너지를 얻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 석탄이기 때문이다.

 

억울하지만 석탄 중독을 탈출해야

 

 

장성읍 철암동은 지금도 검다. 도시 전체가 검은 빛이다. 석탄으로 울고 웃던 이곳의 업보이다. 인간이 일부러 환경을 파괴하기 위해 석탄을 이용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분명해졌다. 석탄은 이제 캐내지 말고 땅 속에 잠들어 있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백수십년 전 우리는 ‘열역학 제2법칙’이라 알려진 엔트로피의 원리를 얻었다. 오스트리아의 열역학 연구자인 루드비히 볼츠만이 엔트로피를 발견했다. 열역학 제1법칙이 에너지보존의 법칙이라면, 2법칙은 열이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한다는 법칙이다. 이는 모두 산업혁명기에 석탄으로 물을 (열로) 데워 수증기를 이용해 (일로) 동력을 움직이는 과정을 연구하던 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것들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유럽인들은 석탄을 통해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막대한 부를 쌓았으며 과학기술을 축적해 이후 석탄을 버리고 새로운 에너지 시장으로 넘어갔지만,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대부분의 저개발 국가들은 그 시점부터 석탄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60~70년대 석탄 개발에 열을 올리던 우리를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기후변화 시대에 그 마저도 사용하지 못하고, 신기술도 미처 갖지 못한 채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할 입장에 놓인 것이다. 어찌 보면 개발도상국들은 참으로 억울할 것이다. 지금까지 지구 대기에 탄소를 뿌려 온난화를 일으킨 것은 바로 산업혁명기부터 20세기까지 석탄을 사용한 유럽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지구에 살면서 함께 살고 함께 죽을 운명이니 변화는 불가피하다. 석탄 중독에서 헤어 나올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하는 길 밖에 없다. 누구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도 말로만 변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석탄에 중독된 에너지 시스템을 조속히 바꿔야겠다. 경칩의 절기에, 해지는 철암은 땅도 하늘도 검다. 

 

 

사진/글·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논픽션 글을 쓴다. 우리 땅 변경을 기록한 사진으로 2015년 <일우사진상>을 수상했고, <파미르에서 윈난까지>(현암사)는 2011년 올해의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늘 기록은 힘이 세다 믿으며 예술노동자로 산다. 지금은 비정규노동센터의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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