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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 <서편제>를 다시 보며 느낀 변화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 <서편제>를 다시 보며 느낀 변화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2.04.18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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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4월에 개봉했던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를 오랜만에 다시 봤다. <서편제>를 다시 본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를 통해 <서편제>가 보여주는 다양한 변화를 살펴보고 싶다.

 

- 전시회 ‘위대한 유산: 태흥영화사 1984~2004’

 

전시회 소식이 들려왔다. 2021년 별세한 태흥영화사 이태원 대표를 추모하며 태흥영화사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자리로 한국영화박물관에서 4월 22일부터 9월 25일까지 개최된다고 한다. 태흥영화사의 대표적인 영화 <서편제>가 떠올랐고, 보고 싶어졌다.

태흥영화사가 제작한 36편의 영화 중 <서편제>를 포함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는 11편이다. 그중 <장군의 아들> 시리즈와 <서편제>는 1990년대 초반 한국영화 흥행 기록을 연달아 세우며 화제가 됐다.

1990년 개봉한 <장군의 아들>은 서울 관객 68만 명을 동원해, 1977년 김호선 감독의 <겨울 여자>가 동원한 서울 관객 약 59만 명을 오랜만에 넘어섰다. 같은 해 외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시네마 천국>의 서울 관객이 43만 명이었으니, 한국영화로서 매우 놀라운 기록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993년에 개봉한 <서편제>가 <장군의 아들>의 기록을 깼다. 한국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서울 관객 100만 명도 돌파해 104만 명을 동원했다. 당시까지 외국영화 중에서도 서울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한 영화는 <사랑과 영혼>(1990) 168만 명, <클리프 행어>(1993) 120만명, <원초적 본능>(1992) 113만 명 정도였기에 더욱 화제가 됐다.

현재와 같은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구축되려면 10여 년이 더 필요한 당시에, 비교적 정확한 수치 파악이 가능한 건 서울 개봉관 관객 수였다. 서울의 한두 개 개봉관에서 동원한 관객 수라서 요즘의 전국 관객 수로 환산한다면 훨씬 거대한 규모의 흥행이었다.

흥행 기록으로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없으나, 한국영화도 외국영화 규모의 흥행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일련의 사건이었다. 바로 태흥영화사가 제작한 <장군의 아들>과 <서편제>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 국민영화 <서편제>의 낯섦 혹은 새로움

 

<서편제> 개봉 당시 서울 개봉관 단성사 전경

특히 <서편제>는 개봉 당시 일종의 ‘국민영화’로 여겨졌다. 안 보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뉴스에서는 연일 흥행 기록과 정치인들의 영화 관람 뉴스 등이 보도되었다. 당시 <서편제>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일종의 유행어도 만들어 냈다.

물론 <서편제>가 수출을 많이 했다거나,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내에서 절대 넘볼 수 없을 것 같은 미국영화와 비슷한 규모의 흥행을 기록했으니, 일종의 기대를 담아낸 용어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여기서 ‘한국적인 것’은 ‘한국 전통적인 것’이 되지만 말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도 관련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하며, <서편제>를 다시 보았다. 다시 본 <서편제>는 여전히 새로웠다. 판소리를 포함한 국악은 당시에도 대중적이지는 않아서, <서편제>를 통해 ‘동편제’와 ‘서편제’의 존재를 알게 된다거나, 어렴풋이 알았던 노래를 더 길게 듣게 되었다. 누군가는 ‘향수’였지만, 누군가에는 ‘새로움’이었다. 그래서 마냥 ‘한국적’이라고 평가하기엔 당시의 많은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개봉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던 아버지가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이야기는 예술가들의 ‘한’을 표현하기 위한 극단적인 설정으로 받아들여지기는 하나, 그 폭력성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도 여전히 새롭게 느껴졌다. 지금도 국악은 덜 익숙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 영화 <서편제>에서 노래 <범 내려온다>까지

<서편제>를 보며, 긴 호흡으로 <진도 아리랑>을 비롯해 여러 노래를 듣다 보니, 최근에 화제가 됐던 노래가 떠올랐다. 바로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관광공사가 만든 유튜브 홍보 영상이 떠올랐다고 하는 게 맞겠다. 이날치 밴드의 노래와 더불어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춤을 볼 수 있는 그 영상 말이다.

약 30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두고 영화 한 편과 노래 한 곡으로 모든 변화를 단순화할 수는 없지만, 국악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동시에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적어도 국악을 대하는 태도 변화는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아마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태도였겠지만 강력하게 가시화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서편제>가 뿌리를 찾으며 득음하려는 예술가의 애환을 담아내며, 사라져가는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면, <범 내려온다>는 융합과 실험을 통해 관심을 끌어낸다. <서편제>는 전통 음악과 현재 영화의 만남이라면, <범이 내려온다>에서 <수궁가>는 베이스, 드럼과 같은 서양 악기와 만나고, 앰비규어스 컴퍼니라는 서양 현대 무용단과 만나 유튜브라는 플랫폼에 영상으로 소개됐다.

또한 <서편제>는 그 만남으로 ‘한’을 표현했다면, <범 내려온다>는 ‘흥’을 표현했다. 어찌 보면 둘 다 정체불명의 혼종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소위 말하는 온전한 오리지널 정체성이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든 상황에서, 음악이든 무용이든 영화든 모든 것은 늘 변한다. 그리고 동시대 혹은 여러 시대의 많은 것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뒤 섞인다. 더불어 세상도 사람도 비슷한 방식으로 변한다.

<서편제>와 <범 내려온다>는 미처 몰랐거나 익숙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결과물들이다. 다시 본 <서편제>에서 <범 내려온다>를 떠올린 데에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음악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서편제>에서는 과거에 좀 더 집중했다면, <범 내려온다>에서는 현재와 미래에 좀 더 집중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과 감상하는 이들의 자존감이 더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우리의 정체성을 과거가 아닌 현재에서 찾아낸다는 것, 덜 배타적이고, 뒤섞임에 대해 거부감이 덜 생긴다는 건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물론 일반화할 수 없고, 맞고 틀리고를 정할 수 없는 변화다. 

<서편제> 속 대사처럼, 판소리가 판을 치는 세상이 오진 않았으나, 다양한 시도가 판을 치는 세상은 왔다. <서편제>를 원작 소설이나 영화보다 뮤지컬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영화와 뮤지컬로 재탄생하며 창조된 음악과 감성의 힘은 강력하다. 다양한 시도가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어느새 30년이 다 되어가는 영화 <서편제>는 전통 음악과 영화의 관계 변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30년이 흘러 영화관 이외의 다양한 온 오프라인 공간으로까지 확대된 영역 변화도 실감하게 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한국영화의 이정표인 것은 분명하다.

 

이미지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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