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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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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윤진 |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22.05.3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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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배려의 정치경제학』 (안치용ㆍ이윤진 지음, 마인드큐브)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사회적 가치란 말이 점점 더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고 아직 사회적 가치에 관한 의미 있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사회적 가치가 포기할 수 없는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의제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 요즘은 기업에도 사회적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가치 창출이 기업 경영 목표에 포함되는 전반적 경향의 영향이다.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했는데 그것이 사회적 가치와 상충하는 사태가 빚어지는 것 또한 기업은 피하고 싶다. 사실 기업에게 후자가 실용적으로 더 중요하다. 이도저든, 쟁점은 사회적 가치 자체보다 사회적 가치 측정이 된다.

영국의 통신기업 BT와 독일의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 퓨마는 CSR 선도기업으로서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은 경영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궁극적으로 자신들이 생산하는 ‘순 사회적 가치(Net Social Value)’를 높이고자 했다. 순 사회적 가치란, 기업이 사회에 주는 긍정적 사회적 가치에서 부정적 사회적 가치를 제외한 수치, 순효과 수치다.

BT와 퓨마는 순 사회적 가치의 측정과 활용방안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방법을 택했다. BT는 CSR 활동 중 정보접근 격차 해소, 즉 정보접근 포용성(Digital Inclusion) 향상을 위한 프로젝트 ‘Get IT Together’가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창출하는지, 그 사회적 가치가 투자 대비 얼마나 이익을 내는지 파악하려 했다. 한층 효과적인 사회적 투자를 하기 위함이었다.

사회적 가치는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므로, 그 전부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BT는 대표적인 사회적 가치로 △확신 △사회적 격리 감소 △독립성 △시간 효용성 △비용절감 △편의성 △고용증진 등의 사회적 편익(Social Benefits)을 선정했다. BT는 ‘Get IT Together’ 교육 참여자 전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얻은 1차 자료로부터 교육의 주관적ㆍ비계량적 효과를 파악하고, 이것을 계량화하기 위해 이미 다른 기관이나 연구에서 발표한 비용화 기제를 사용했다.

‘고령자의 독립성 향상’이라는 사회적 가치의 측정을 예로 들어보자. 설문을 통해 측정한 교육효과를 수치화하고자, 영국 정부가 설립한 비영리조직 ‘Independent Money Advice Service’가 발표한 시간당 돌봄서비스 고용원가를 적용했다. 이렇게 계산된 총 사회적 가치를 총투자금액으로 나누면 ‘사회적 투자수익률(SROI)’이 계산된다. BT가 2012년 자료로 계산한 결과 42만 파운드 투자에서 150만 파운드의 사회적 가치가 발생해 SROI가 3.7대1로 나타났다.

BT의 SROI 접근법은 사회적 가치 측정 및 활용 기법들 중 하나다. 그 특징은 첫째, 투자금액과 결과를 비교해 투자의 타당성을 판단하고 그 활용 방안을 찾는 것이다. 둘째, 조직 전체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사회적 회계(social accounting)와 달리 특정 프로젝트의 분석에 적절한 기법이다. 셋째, 특정 프로젝트가 생산하는 긍정적 사회적 가치를 투자금액과 비교함으로써 투자 관련 부정적 사회적 가치인 외부효과를 고려하지 않는다. 넷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개별 CSR 활동의 사회적 가치 측정과 타당성 검증을 가능하게 하며, 이를 통한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해 전략적 가치가 뛰어나다.

퓨마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2011년에 환경손익계산서(EP&L, Environmental Profit & Loss)를 발표했다. 퓨마는 공급사슬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부정적 외부효과) 측정 결과를 손익계산서 형태로 작성 및 발표했다. 측정대상을 물과 에너지 사용에 한정하고 다른 사회이슈들은 미래계획으로 미뤘다는 한계가 있지만, 연차보고서에 반영되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측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퓨마는 자사의 사업장뿐 아니라, 4단계에 걸친 공급업체의 활동에 쓰인 물과 에너지까지 파악해 사회적 비용을 계산했다. SROI 접근법과 마찬가지로 기존 연구에서 제시한 단위당 가치를 적용했다.

퓨마의 사회적 가치 측정은 BT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퓨마는 프로젝트별 사회적 가치가 아니라 기업 전반의 활동에 따른 기간별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자 했다. 둘째, 사회적 가치 중 긍정적 가치인 사회적 편익은 측정하지 않고 사회적 비용을 측정했다. 셋째, 퓨마는 기업활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비(非)시장 방법으로 측정해, 손익계산서에 포착되는 비용뿐 아니라 기업이 궁극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외부비용을 공시함으로써 사회책임에 진정성을 보이는 전략적 효과를 거뒀다.

 

‘못난이 농산물’은 버림받아야 하나?

 

미국 환경보호단체 NRDC에 따르면, 미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20%는 ‘못난이’라는 이유로 버려진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상품 가치가 낮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음식물의 양이 전 세계 음식물 소비량의 3분의 1인 13억 톤에 달하며 과일과 채소의 45%도 버려진다고 추산했다. 이렇게 버려지는 못난이 농산물은 생산할 때 물과 비료를 쓰고, 폐기할 때 막대한 메탄과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 프랑스 환경에너지관리청(ADEME)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만 2019년 현재 매년 약 1,000만 톤에 달하는 음식물이 폐기됐다. 산업 생산자와 제조업체가 만든 폐기물이 53%이며, 유통업자와 최종 소비자가 나머지를 만들어냈다.

프랑스의 대형마트 ‘엥테르마르셰’는 못난이 농산물을 시세에서 30~50% 낮게 책정해 판매하는 마케팅 정책을 2014년에 시작했고, 이때 ‘푸드 리퍼브(Food Refurb)’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푸드 리퍼브(Food Refurb)’는 음식을 뜻하는 ‘food’와 제품 공급이란 뜻이 있는 ‘refurbished’의 합성어다. 제조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작은 흠집이 생겼지만, 성능에 큰 문제가 없으면 손질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의미의 ‘리퍼브’를 음식에 적용했다. 

농산물에 이어 팔리지 않는 식품을 제공받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프랑스 식료품점 ‘음식물 쓰레기와 싸우는 식료품점(Nos Épiceries Anti-Gaspi)’과 버려질 위기의 식자재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영국의 ‘더 리얼 정크푸드 프로젝트(The Real Junk Food Project)’ 또한 널리 알려진 ‘푸드 리퍼브’ 단체다. 2013년부터 버려지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온 ‘더 리얼 정크푸드 프로젝트’는 2021년 현재 7개 국가에서 12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개장 이후 지금까지 약 5,000톤의 쓰레기를 줄였다고 한다.

미국의 월마트, 크로거 등 대형 유통업체도 30~50% 할인한 가격으로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덴마크의 시민단체 ‘단처치에이드(DanChurchAid)’가 운영하는 ‘위푸드(WeFood)’는 품질에는 이상이 없지만,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라벨, 용기 등이 파손돼 상품성이 떨어지는 제품을 30~50% 저렴하게 판매한다.

 

ESG가 세상을 구할 수는 없지만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계층 간 불평등 확대,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등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ESG에 대한 관심은 국내외에서 폭발적이다. ESG전환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지만 ‘폭발’의 직접적 계기는 자사의 ESG투자원칙을 천명한 2020년 블랙록 CEO 래리 핑크의 연례서한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그 사이에 ESG를 제목에 넣은 책이 쏟아졌다. 관련한 자격증도 10개가 넘는다고 한다. ESG위원회란 것도 우후죽순이다.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런 과열은 흔한 일이지만, 부작용을 줄이며 전진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특히 지식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정리된 책이 나와 공유되는 게 중요하다. 같이 일하는 ESG연구소 안치용 소장과 “조금 묵직하더라도 ESG에 관해 제대로 다뤄보자”라는 취지로 <ESG 배려의 정치경제학>을 출간했다. 우리의 이 작업이, 제대로 된 정보를 확산하고 오해를 걸러내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노희원ㆍ이찬희ㆍ장가연ㆍ장효빈ㆍ현경주ㆍ현예린 씨 등 평소 교류하는 총명한 대학생들이 리서치 어시스턴트(RA)로 참여해 도움을 줬다. 410개라는 주석 숫자가 말해주듯, 정확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한 이 책은 ESG 개념에서 출발해 ESG 이슈 및 사례, 관련 법규, 국내외 적용 방법, 향후 대응 방안 등 ESG 전반에 관해 촘촘히 다뤘다.

사회적 가치 측정과 못난이 농산물은 <ESG 배려의 정치경제학>에서 다룬 내용 중 중요한 변화의 장면이라 생각해 여기에 공유했다. 그밖에 정말 눈이 돌아갈 만큼 많은 변화를 포착해 책에서 소개했다. 변화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세상이 문제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배려의 정치경제학으로 여는 ESG 자본주의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것이 우문임을 이미 알고 있다. 안치용 소장이 서문에 밝혔듯,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현실이다. 피에르 브루디외의 말처럼, 희망하는 것은 금지되지 않았지만 그다지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기에, 공저자로 참여해 책을 내놓는 기분이 썩 밝지만은 않다. 

 

 

글·이윤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편집위원. ESG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며, <ESG 배려의 정치경제학> 공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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