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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영평상
2022 영평상
  • 손시내 | 영화평론가
  • 승인 2022.11.30 1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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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매년 선정하는 영화평론가상(이하 ‘영평’) 10선은, 그해 한국영화의 지형을 보여주는 동시에 비평의 시선이 가닿고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 가늠하게 하는 척도가 돼왔다. 팬데믹의 지속으로 우리의 일상과 함께 극장 상황 역시 장기적 변화를 겪고 있는 이때, 한국영화는 어떤 지형도를 보여줬을까? 영화를 바라보는 눈길은 어느 곳에 머물렀을까? 2022년 영평 10선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가나다 순)

 

▲ <범죄도시 2> (이상용 감독)

 

▲ <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비상선언> (한재림 감독)
▲ <소설가의 영화> (홍상수 감독)
▲ <오마주> (신수원 감독)
▲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박동훈 감독)

 

▲ <킹메이커> (변성현 감독)
▲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감독)
▲ <헌트> (이정재 감독)
▲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올해 영평 10선에 이름을 올린 영화들은 한편으로는 몸집을 불리고 영화적 무대의 확장을 꾀하며 상업영화의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체의 속성을 탐구하고 서사의 지평을 탐색하며 예술의 가치를 되새긴다. ‘사극’과 ‘시대극’으로 분류할 수 있는 영화의 포진은, 역사가 여전히 이야기가 펼쳐질 무궁무진한 무대로 끊임없이 귀환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 같다. 동시에 나름의 방식으로 국민과 시민을 호명하고, 국가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성찰하는 흐름도 엿보인다. 불안과 두려움의 시대에 강력한 영웅과 리더의 존재에 대한 열망이 감지된다는 것도 새겨둘 만하다. 

재난의 습격, 악인과 적의 출현이 이런 서사와 설정의 배경이자 조건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근래 우리가 겪어온 현실의 사건들을 이와 떨어뜨려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사이로 개인들의 이야기와 몸짓에 집중하려는 시도들이 반짝인다. 한국어 화자가 아닌 감독 혹은 배우의 활동이 모종의 국제적 감각을 불러오며, 영화에 일정한 거리와 시차를 드리운다는 점 역시 함께 언급해둔다. 영화사(史)와 영화 문법의 틈새에서 픽션의 장을 발견하고 모험하는 영화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건 매우 귀중한 일이다. 

물론 서로 다른 10편의 영화를 몇 개의 키워드나 단일한 경향으로 섣불리 묶는 행위는 여러 위험을 내포할 것이다. 다만 올해 우리에게 찾아온 영화들이 어떤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보여줬는지 가늠해보는 일은, 우리가 영화와 함께 한 시간을 돌아보는 비평적 시선을 다듬고 벼리는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다. 

 

<범죄도시2>, 마동석 캐릭터가 돋보인 상반기 최고 흥행작

주연배우이자 기획, 제작, 각색 등 영화 전반에 참여한 마동석의 존재가 두드러지는 <범죄도시2>는 상반기 최고의 흥행작이자 올해 유일의 ‘천만 영화’이며, 계속해서 확장돼갈 시리즈의 가능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 작품이다. <범죄도시2>는 2017년 개봉한 <범죄도시>(강윤성 감독)와 함께 마석도(마동석 분)라는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변주되고 확장되는 일종의 세계관을 형성한다. 캐릭터의 매력과 액션 장르의 쾌감, 군데군데 웃음이 터지는 유머 코드와 함께, 매번 그 양상을 달리하며 그칠 새 없이 발생하는 현실의 범죄가 이 세계관의 지속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마석도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재거나 따지지도 않고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다. 그는 힘세고 강하다. 음울하지도 어둡지도 않다. 그는 사연 없는 영웅이자, 영화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통쾌하고 강력한 주인공이다. 그는 형사이면서도 법과 제도의 공백을 힘으로 상쇄하는 존재다. 극장가에 잠시나마 활력을 불러온 영화의 중심에 이런 캐릭터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의미심장하다. <범죄도시2>는 해외에서 발생한 자국민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으면서 영화의 무대를 자연스럽게 확장한다. 더 과격해진 육탄전과 도심을 질주하는 추격전의 쾌감과 함께, 강해상(손석구 분) 등 새로운 캐릭터와 장이수(박지환 분) 등 익숙한 캐릭터의 등장이 시리즈물의 요건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비상선언>, 국내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항공기 테러를 조명

<비상선언>은 10편의 영화 중 가장 강력하게 재난의 습격과 생존의 문제를 지시한다. 절체절명의 항공기 테러라는 소재는 굵직한 배우들을 대거 기용한 멀티 캐스팅과 맞물려 재난의 여러 국면과 다양한 개인의 서사를 한 편의 영화 안에 줄줄이 엮어내는 조건이 된다. 탈출이 불가능한 비행기 안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위험한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은 우리 시대의 크나큰 비극인 세월호 참사와 코로나19를 동시에 연상케 한다. 

그뿐만 아니라 <비상선언>은 비행기 내부와 외부에서 양산되는 각종 혐오의 풍경 역시 담아내며 현실과의 거리를 성큼 좁힌다. 테러가 벌어지는 비행기는 물론 다양한 시각적 스펙터클의 장이다. 그중에서도 기장의 사망으로 인한 비행기의 360도 회전이 만들어내는 아수라장은 일찍이 한국영화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심지어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에 대한 공격의 위험마저 가시화되며 <비상선언>은 비행을 소재로 삼은 영화가 그려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한편 <비상선언>은, 악의와 혐오의 반대편에 선 직업인의 원칙과 인간적 숙고에 가치를 두려는 영화다.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 분)와 형사 인호(송강호 분), 부기장 현수(김남길 분)와 사무장 희진(김소진 분), 마침내 조종대를 잡게 되는 재혁(이병헌 분)이 각자의 자리에서 하는 선택과 결정, 활동들은 시민적 믿음의 산물로 보인다. 그런데도 재난의 상황은 쉽사리 타개되지 않는다. 무엇이 그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그들을 죽음의 위협 속에 내버려 두는가. 국가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사회를 줄곧 떠도는 절박한 질문은 좁은 비행기 안을 무겁게 잠식한다. 

 

<한산: 용의 출현>, 한산도 대첩의 거북선 해전을 생생하게 재현

<비상선언>이 하늘을 무대로 삼았다면 <한산: 용의 출현>은 바다로 간다. <한산: 용의 출현>은 역사 속에서 영화의 무대를 찾으려는 시도이면서, 미지의 영웅을 상상하고 실체를 만들어내려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순신이 이끈 역사적 전투 명량대첩, 한산대첩, 노량대첩은 서로 다른 배우를 주인공으로 삼아 각각의 영화로 완성됐거나 완성될 예정이다. <한산: 용의 출현>은 2014년 개봉한 <명량>에 이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1597년 명량대첩을 배경으로 했던 전작으로부터 5년 앞선 시기를 다루며 전쟁의 양상을 뒤바꾼 한산도대첩의 과정을 상세히 그린다. 

개별 전투의 구체적 묘사와 함께 그 전투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전쟁의 전반적 흐름을 담아내고자 한 시도를 주목할 만하다. 이순신(박해일 분)뿐 아니라 일본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 분) 또한 서사의 전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는 그처럼 개별 전투를 넘어서 전쟁 자체를 그려내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영화는 각각의 진영을 오가며 전략, 전술의 시간을 공들여 보여준다. 동시에 일종의 첩보전 형태를 띠며 진행되는 주변 인물들의 활동을 통해 시점의 변화에 유연하게 접근한다. 

한편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엄청난 규모로 재현된 ‘해전’이다. 새로운 거북선의 등장과 함께 학익진이 펼쳐지는 후반부의 전투는 단연 올여름 극장가를 한껏 적셨던 대단한 스펙터클이다. <한산: 용의 출현>이 해석해낸 이순신은 그 스펙터클 속에서 고요히 자리를 지키며 중심을 잡는 새로운 종류의 영웅이다. 

 

<헌트>, 인간사회의 그늘… 역사의 민낯을 드러낸 첩보액션영화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으로 공개 전부터 이목을 끌었던 <헌트>는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1980년대 초의 풍경에서 영화적 무대를 발견한다. 간첩 색출, 독재 정권, 민주화 운동 등이 교차하는 <헌트>의 무대는 총격과 도주의 액션을 최대치로 허용하는 동시에 역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질 장을 마련한다. 남파간첩 동림의 존재를 두고 안기부의 두 차장, 박평호(이정재 분)와 김정도(정우성 분)가 맞붙는다는 기본 설정은 우리가 첩보물에서 기대하는 스릴과 액션을 양껏 제공한다. 거대한 스튜디오 같은 취조실의 풍경은 이 매혹적 무대가 정교하게 세공됐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강렬한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한편, 영화를 구성하는 굵직한 요소들은 모두 실제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이야기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국면을 어설프게 건드리거나 에두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헌트>는 꽤 대범한 영화다. 극 중 인물들은 영화가 꽤 진행될 때까지 서로가 흘리거나 감춘 단서들을 좇아 의심하고 방어하는데 전력을 다하지만, 역사의 공유자인 관객은 사건의 실체에 훨씬 빨리 가닿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두 명의 요원 혹은 스파이의 유능한 전략과 현란한 임기응변 대신 그들의 삶에 드리운 그늘과 얼룩을 더 오래도록 대면하게 된다. <헌트>는 영리한 첩보 액션물인 동시에 역사의 잔해 속에서 슬픔을 움켜쥔 피 묻은 손에 대한 영화다. 

 

<킹메이커>,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로서의 대중’ 문제 제기

총이 아닌 말의 싸움을 담아낸 <킹메이커> 역시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영화의 배경으로 삼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선거를 가까이서 도왔던 참모 엄창록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는 영화는 김운범(설경구 분)과 서창대(이선균 분)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 둘의 관계에서 서사의 동력을 발견한다. 대의를 믿는 정치인과 네거티브 전술을 불사하는 정치 참모의 이야기는, 매혹적으로 재현된 역사적 국면이 안기는 시각적 쾌감과 더불어 수단과 목적의 딜레마에 관한 거대한 질문을 스크린에 불러온다. 

동시에 이 영화는 투표라는 민주주의 사회의 절차에 집중하면서,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로서의 대중’이라는 문제를 은밀하게 제기한다. 영화가 1961년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목포 지역구 선거, 대선 출마 선언과 당내 경선,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이르는 다분히 현실 반영적인 긴 여정을 담아내는 동안, 두 남자의 관계는 변화를 거듭한다. 서로에게서 믿음과 희망을 발견했던 김운범과 서창대는 결국 빛과 그림자처럼 등을 져야 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킹메이커>는 그런 두 남자의 행로에서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적 질문을 발견하는 스타일리시한 시대극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쉽사리 의미화되지 않는 대중이라는 미지의 형상과 정치의 관계를 물으며 영화가 그 문제를 다룰 수 있는지 자문하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북한 출신 천재와 남한 영재 고교생이 수학을 통해 쌓는 우정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현실의 남북관계를 배경으로 삼는다.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에서 경비로 일하는 리학성(최민식 분)에게 남한과 북한은 모두 각각의 방식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곳이다. 북한 출신 천재 수학자인 그가 보기에 조국은 학문의 자유를 추구할 수 없는 땅이며, 학문의 자유를 찾아 당도한 남한은 돈과 성공의 논리가 모든 것을 잠식한 나라다. 영화는 스도쿠책을 벗 삼고 낡은 테이프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을 들으며 숨죽여 사는 리학성과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학교에 입학한 한지우(김동휘 분)가 수학을 매개로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그려낸다. 우연한 계기로 학성에게 수학을 배우게 된 지우. 외로운 소년은 무뚝뚝한 남자의 마음을 두드리고, 아무것도 묻지 말라던 남자는 어깨를 늘어뜨린 소년에게 점차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영화가 가장 활력을 얻는 대목은 리학성이 수학 그 자체의 매력에 흠뻑 몰두할 때다. 하지만 그토록 순수한 바람으로 이루어진 그의 세계는 현실에서 결코 영토를 얻을 수 없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한편으로 과도한 입시 경쟁이 낳는 폐해를 비판하면서,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에 대해 질문한다.

 

<브로커>, 불법 입양을 둘러싼 유사 가족 형성…적대에서 위로하는 관계로

<브로커>는 가족영화의 독특한 계보를 써 내려가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의 배우들과 함께 한국에서 찍은, 역시 독특한 가족영화다. 또한 배우 송강호에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제도가 포괄할 수 없는 현실의 틈새에서 서로가 서로의 구멍 난 지붕이 돼주는 고레에다식 ‘유사 가족’ 이야기는 한국이라는 새로운 영화적 무대를 만나 봉고차 한 대로 부산에서 월미도까지 먼 길을 잇는 로드무비가 됐다. 

인간적 매력을 지닌 불법 입양 브로커는, 줄곧 인간의 이중적 면모를 보여주는 데 집중해온 감독의 영화적 세계에서 그리 이질적이지 않은 설정. 각자의 과거와 상처를 안고 어설프게 브로커 행세를 하는 상현(송강호 분)과 동수(강동원 분)는 역시 상처와 비밀을 간직한 아기 엄마 소영(이지은 분)과 일시적 소공동체를 이룬다. 적대적 관계로 시작했으나, 이들은 크고 작은 소동을 거쳐 점차 마음을 열고 서로를 위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영화는 그처럼 영원히 판타지 속에 머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아기의 구매자를 찾아 떠난 일행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려는 경찰이 계속해서 일행의 뒤를 밟고, 과거에 벌어진 살인사건도 이들의 행복한 찰나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무엇보다도, 어떤 이들에게는 애초에 좋은 가정을 꾸릴 조건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을 불행하게 하는 근본적 요인이다. <브로커>는 그와 같은 현실 인식에 기반을 두되, ‘태어나줘서 고맙다’라는 인사와 ‘반드시 살아 남으라’는 당부를 깊게 새겨둔다. 

 

<헤어질 결심>, 시차의 감정 속에 커져가는 비밀과 미스터리

평단의 찬사와 관객의 밀도 높은 사랑을 동시에 받은 <헤어질 결심>은 미궁의 멜로 드라마다. 영화 곳곳에 흩뿌려진 단서는 평론가들에게는 분석의 쾌감을 불러일으키고, 관객들에게는 극장을 재차 찾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영화에 몰두하고 반복적으로 관람하면서 미묘한 정황을 파악해나가는 경험은 안개 같은 사랑의 한복판에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극 중 인물들의 상황과 공명한다. 크고 작은 단서들을 거두면 영화는 형사인 해준(박해일 분)과 살인사건의 용의자인 서래(탕웨이 분)가 서로에게 끌리는 이야기로 간단히 정리되지만, <헤어질 결심>은 그런 단서들 없이 성립하지 않는 비틀린 애정의 영화다. 

눈짓과 목소리를 쌓아 감정의 부피를 키우는 <헤어질 결심>은 한편으로 눈짓과 목소리가 교차되는 격자무늬 속에 사랑을 숨기는 안개의 로맨스이기도 하다. 번역기가 드러내는 언어적 차이, 사물의 시선과 시선들의 엇갈림, 장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날씨의 간극 등 다양한 디테일이 쌓이며 영화에 형성되는 시차의 감각은 커져가는 감정들 사이에 비밀과 미스터리를 심는다. <헤어질 결심>은 ‘서래’라는 독특하고 이상하며, 위험하고 매혹적인 여성 캐릭터를 우리에게 소개한 영화로도 기억될 것이다. 

 

<오마주>, 동시대 여성들에게 ‘끝까지 살아 남으라’는 성원의 메시지

<오마주>의 주인공은 세 번째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지만, 흥행에는 번번이 실패해온 영화감독 지완(이정은 분)이다. 영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연결되는 ‘영화하는 여성들’ 이야기를 지완의 시점에서 바라본다. 지완은 영화 <여판사>의 더빙 작업을 맡게 된다. <여판사>는 한국 최초 여성 영화감독인 박남옥에 이어 두 번째로 감독에 데뷔한 여성 홍재원의 작품이다. 이 홍재원의 모티프가 된 인물은 실제로 1960년대에 활동했으며, <여판사>(1962)를 만든 홍은원 감독. 그런데 지완은 작업 중 남아있는 필름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실된 필름을 찾아 나선 지완은, 흡사 탐정처럼 홍재원이 겪었을 시간과 서서히 마주해나간다. 홍재원이 생전에 자주 방문했다는 다방을 찾고, 그와 함께 일했던 영화인을 만나고, 프린트를 찾기 위해 오래된 극장으로 향한다. 과거를 살았던 이들의 몸에 새겨진 기억, 빛바랜 대본, 찬란한 얼굴이 담긴 사진, 주인 잃은 옷 등 그 과정에서 모이는 단서들은 지완을 거치며 다시금 생동하는 영화가 된다. 

<오마주>는 일하는 여자, 영화하는 여자, 꿈꾸는 여자의 쓸쓸하고 고독한 초상을 그리면서, 동시대 여성들에게 ‘끝까지 살아 남으라’는 응원과 당부를 전하고 그 스스로도 다짐하려 하는 영화다. 동시에 한 편의 영화란 무수히 많은 요소가 각각의 차이를 품은 채 창조적으로 결합할 때 발생하는 것임을 잊지 않으려는 미더운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가의 영화>, 말 사이의 어긋남… 기억의 불일치…구조화되는 과거 

<소설가의 영화>는 눈에 띄는 시공간의 뒤틀림이나 구조의 복잡함 대신, 배우의 존재와 연기를 통해 영화의 내외부를 미세하게 흔들며 틈을 만들고, 영화 매체의 곤란함을 엿보며, 영화의 성립을 가늠해보는 홍상수 감독의 최근 시도들과 궤를 함께하는 작품이다. <소설가의 영화>는 소설 쓰기를 멈춘 소설가 준희(이혜영 분)의 시간과 그가 만든 영화로 이뤄져 있다. 준희는 낯선 도시에서 지인들을 만나고, 평소 관심을 두던 영화배우 길수(김민희 분)와도 우연히 마주친다. 흥미로운 대화들과 술자리의 활기가 지나가는 동안, 준희와 길수는 함께 영화를 찍기로 약속한다. 

동시에 <소설가의 영화>는 말 사이의 어긋남, 기억의 불일치, 의문스러운 존재의 출현 등을 통해 매체가 근본적으로 품고 있는 덜컹거림을 작품의 표면에 기입한다. 인물들의 말을 통해 어렴풋이 구조화되는 과거란 과연 어떤 시간이며, 유리창에 달라붙어 카메라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녀는 과연 무엇을 보는 것일까? 한 편의 영화라는 세계를 구성적으로 믿기 위해서는 그 바깥 또한 모종의 일관성을 지니는 시공간으로 상상돼야 한다. 물론 그것은 사실 당연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소설가의 영화>는 관객이 그 이상한 일을 이상하게 감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귀한 영화다. 

 

 

출처: 2022 영화평론 특집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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