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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민주화시대의 새로운 도전
포스트 민주화시대의 새로운 도전
  • 조희연 l 서울시 교육감
  • 승인 2023.01.3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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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가 잉태한 내재적 딜레마(1)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도처에서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경쟁력과 효율성을 앞세운 산업계와 친기업 정권의 목소리만 크게 들릴 뿐, 교육전문가의 철학과 정책은 왜곡되기 십상이다. 최근 서울시 교육감 3선 연임에 성공한, 그리고 보수 정권과 보수 언론에 의해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조희연 교육감이 본지 특별 기고를 통해 자신의 교육관을 분명히 밝혀왔다. 본지는 그의 글을 2월호와 3월호에 나눠 게재한다.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나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21년 12월 퇴임할 당시, 독일 아동들이 던진 질문이라고 한다. 여성 과학자 출신인 메르켈 총리는 16년 동안 재임했다. 독일에서 2000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총리는 으레 여성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아동들이 “군인이 아니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나요?”라고 질문하던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대통령은 으레 군인 출신이라고 여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처럼 미디어가 발달한 시절도 아니었기에, 문민정치가 자리 잡은 외국 사례를 접하기도 어려웠다.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16년 동안 재임했다. 

 

민주화 시대의 전기와 후기

한국의 현대사는 해방과 전쟁을 거쳐 전후 분단체제가 출현 및 정착하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권위주의(독재) 및 산업화 시대,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전환기로 하는 민주화 시대로 나눌 수 있겠다. 민주화 시대는 기본적으로 그 이전의 권위주의와 산업화 시대에 대한 기억과 그것의 부정적 유산의 극복을 주요 과제로 삼은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민주화 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나눠보고자 한다.

민주화 시대 전기는 독재(그리고 그것과 결합된 산업화 시대의 모순)에 대한 명확한 기억이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고, 독재의 유산(그리고 그것과 결합된 산업화의 모순)의 극복에 다수의 국민이 공감하는 시기다. 반면 민주화 시대 후기는 이런 과제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모순과 딜레마적 상황들에 직면하게 되고 독재에 대한 명확한 기억을 지닌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감수성이 출현하고 그 속에서 민주화 ‘이후’ 시대(혹은 포스트민주화 시대)로 이행해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쿠데타로 시작된 권위주의 통치가 끝난 계기는 1987년 6월 항쟁이었다. 1987년 대선에서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군인 출신이었으나, 권위주의 해체와 민주화라는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1993년부터는 한국에서도 문민정치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현행 9차 개정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의 산물이다. 헌정 체제가 크게 바뀔 때마다 새로운 공화국이 출범했다는 표현을 쓰는데, 1987년 이후로는 줄곧 제6공화국 체제다. 젊은 세대에게는 제5공화국, 제6공화국 등의 표현 자체가 낯설지 모른다. 이는 지금의 제6공화국 체제가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방증(傍證)이라 하겠다. 내 또래 세대는 공화국 앞에 붙은 숫자가 여러 번 바뀌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만 6세였던, 즉 초등학교 신입생이었던 이들이 2023년 만 42세가 된다. 글자를 익힌 뒤로는 군사독재를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가 이미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역사 78년 가운데 6월 항쟁 이후 시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48퍼센트다. 민주화 시대의 부침도 바로 이런 세대변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이후 역사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제6공화국 시대였다. 한마디로 ‘장기(長期) 민주화 시대’인 것이다. 

 

당당한 전투적 시민의 등장

주지하다시피, 87년을 전환점으로 하는 민주화 시대에 우리 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중 하나는, 권위주의 시대의 억압 속에서 주눅 들고 ‘군기 잡혀’ 있던 국민들이 권리의식으로 무장한 시민(Citizen)으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기에는 관(官)이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나, 그런 관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경찰서와 동사무소 앞을 지나며 뭔가 주눅 들어 하던 국민들은 이제 조금만 불친절하면 “민중의 지팡이가 왜 그러냐”고 삿대질을 할 정도로 당당해지고 주체화(?)된 전투적(militant) 시민이 됐다. 자신의 권리와 이해관계가 국가에 의해 침해되는 것에 분노하고 당당하게 말하고 투쟁한다. 

‘중산층 행동주의’라는 표현이 있다. 『근대의 가을-제6공화국의 황혼을 살고 있습니다』저자 장석준이 쓴 표현인데, 민주화 시대의 특징이 집약돼 있다고 본다. 민주화 이전 시기에는 죽기를 각오하거나 투옥·제적 등 각종 고초를 각오하는 전투적 국민들만 ‘행동적’일 수 있었다. 그러나 1987년을 전환점으로, 중산층도 이제 ‘행동적’인 시민이 됐다. 

제6공화국 출범으로 민주화 시대가 열린 1980년대 후반은 이른바 3저 호황 시기였다. 석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과 금리가 낮았다. 또 미국 달러 대비 원화 가치의 절상 폭이 일본의 엔화 등에 비해 낮았다. 이처럼 유리한 대외 환경 속에서 국제 수지는 사상 첫 흑자를 기록했다. 당시 언론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고 보도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정점을 향해 가던 1980년대는 역설적으로 경제적 호황의 시대였다.

 

경제적 호황, 민주노조운동, 중산층, 시민운동의 부상 

1987년은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해인 동시에 7월, 8월, 9월 노동자 대투쟁이 있던 시기다.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는 구호는 정치적 민주화 이후 민주노조 운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당시의 한국 사회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층 민중의 대표적인 존재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기존의 어용노조에 도전하면서 ‘민주’노동조합의 깃발 아래 모여든 것은 민주화 이후 시대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고도성장기에 불이 붙은 노동조합 운동은 임금 상승으로 이어졌다. 생산직 노동자가 중산층에 진입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아울러 사무직 역시 확대됐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수출 대기업은 대졸 신입사원 채용을 크게 늘렸다. 민주노조 운동과 함께 생산직 임금이 오르면서 사무직 소득도 함께 올랐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는 학점이 아주 낮아도 쉽게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게다가 종신고용 문화가 견고하던 시절이므로, 일단 취업만 하면 오래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월급을 모으면, 부모의 도움 없이도 아파트와 자동차를 장만하고 자녀 학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가난한 청년도 중산층에 진입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민주화 시대의 전기에는, 중산층의 경제적 향상과 그 지속이 민주화운동의 긍정적 영향과 결합되면서 중산층의 진보적인 정치적 지향으로 나타났다. 

이 무렵에 등장한 시민운동은 민주화 시대의 한 특징이라 할 만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등 지금도 한국을 대표하는 시민운동 단체들이 생겨나거나 두드러진 활동을 하게 된 시기가 1990년대 초중반이다. 여기엔 1991년 말 소련 해체로 시작된 현실 사회주의 붕괴 역시 영향을 미쳤다. 이른바 ‘중산층 행동주의’를 배경으로 이런 시민운동은 다양한 시민적 삶의 영역으로, 그리고 시민적 주제로 확대돼 갔다. 

아울러 문화 영역에서도 금기가 풀렸고 다양한 창작 활동이 벌어졌다. 표현의 자유는 ‘보편적 기본권’이라는 공감대가 확대된 덕분에 쟁취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기부터 음악과 영화 분야에 재능 있는 청년들이 대거 뛰어들면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BTS의 음악, 봉준호 감독의 영화 등 한국 문화예술인들의 성취가 세계시민의 사랑을 받게 된 계기 역시 민주화 이후 시대에 마련됐다. 문화평론가들은 50년 만의 야당 정부인 김대중 정부하에서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분단 시대적 금기의 약화, 그리고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이 현재의 K-문화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한다.

앞서 필자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들이 지금 사회의 중추가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42세는 정부, 기업, 언론,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등에서 간부 역할을 할 법한 연령이다. 현재 20~30대의 이른바 MZ 세대가 보기에는, 1987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들뿐 아니라 초등학생이었던 이들까지도 조직 안에서 기득권을 지닌 기성세대인 셈이다. 따라서 지금 젊은 세대가 경험하는 부조리 가운데 상당 부분은 민주화 시대에 형성됐다고도 할 수 있다. 

 

학원가를 배회하는 MZ세대 / 출처=뉴스1

민주화 시기의 딜레마, 새로운 모순과 도전

그렇게 민주화 시대의 전기가 전개돼 왔다. 그러나 민주화 시대의 후기는 여전히 과거의 유산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민주화 시대의 딜레마와 새로운 모순과 도전에 직면하는 시기였다. 전기는 ‘적이 존재하는 민주주의’였다고 하면, 후기는 이른바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였다. 후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모순과 도전 중에서, 2가지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고도성장기를 뒤로 하고, 국내적 수준에서의 1997년 IMF 재정위기와 글로벌한 수준에서의 2008년 금융위기로 상징되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변화다. 둘째는 박근혜 정부와 그에 대항하는 촛불시민혁명과 이후 이어지는 문재인 정부를 경과하면서 나타난 정치적 양상의 변화다.

주지하다시피, 1997년 한국은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IMF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재정적 위기의 급한 불을 끄면서, IMF 요구(IMF가 부여한 Conditionality)에 따라 산업, 금융 구조조정을 거칠게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한계기업들이 광범위하게 도산했고 수백만의 해고자가 발생했다. 고도성장의 기억만을 가진 국민들은 실직과 해고, 경제적 긴축 등의 새로운 시련을 일상생활에서 경험해야 했다. 

이 시기에 실직한 가장을 둔 학생 및 청소년 세대들은 ‘IMF 세대’라고 불릴 정도로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경제적 시련을 경험해야 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뛰어들어야 했던 세대들은 과거 반독재 민주화 세대가 누렸던 호황의 혜택은 고사하고, 높은 스펙을 지녔음에도 긴 취업 준비의 고통을 겪거나 새롭게 확산된 비정규직의 처지를 감내해야 했다.

 

체감 중산층의 상황변화와 하락

최근 출간된 『특권 중산층』(구해근 지음, 창비 펴냄)에는 “체감 중산층”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학문적, 혹은 행정적 정의와는 별도로 스스로 중산층이라 여기면 ‘체감 중산층’에 속한다. 앞서 소개한 1989년 갤럽 조사에서 스스로 중산층이라 응답했던 75퍼센트는 ‘체감 중산층’인 셈이다. 이 역시 중요한 지표다. 사회의 안정성은 ‘체감 중산층’ 비율과도 관계가 깊다. 

문제는 ‘체감 중산층’ 비율이 민주화 시대가 열린 뒤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줄어든다는 점이다. 당연히 IMF 위기 이후 이런 비율은 더욱 줄어들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87년 6월 항쟁과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권위주의가 해체되고 제6공화국이 시작됐다. 당시 항쟁의 주역은 크게 세 부류였다.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 당시 ‘넥타이부대’라고 불렸던 사무직 노동자와 재야 지식인, 그리고 민주노조 운동을 했던 대규모 공장 노동자였다. 이들 가운데 다수가 1980년대 말 호황 시기에 중산층에 진입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그리고 IMF 구조조정 이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 대학 설립이 쉬워지면서, 교수의 수가 늘었고, 재야 지식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제도권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대학생의 수 역시 크게 늘었으나, 중산층 진입을 보장하는 괜찮은 일자리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 

이처럼 민주화 이후의 시대, 30여 년 동안 누적된 변화와 새로운 현실의 출현으로 인해, 민주화 이후 시대의 비전만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기가 어려운 조건이 출현하고 있다. 이제 6공화국을 넘는 새로운 비전, 우리가 그것을 ‘7공화국’이라고 가칭해본다면, 그 수준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민주화 성공의 위기

‘중산층 행동주의’의 변화에도 주목해보자. 앞서 당당해지고 주체화된 시민에 대해서 언급했다. 권위주의 시기에는 시민들의 권리가 전면적으로 억압됐으며 개개인의 이해는 국가적 목표나 국가가 설정하는 당위성에 의해 쉽게 무시됐다고 한다면, 민주화 시기에는 개인의 권리와 이해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그것이 침해됐을 때는 분노하고 투쟁하는 전투적 시민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민주화 시기의 후기에는 그런 당당한 개인들이 상호충돌하는 상황도 나타나게 됐다. 나는 사실 이것이 민주화의 ‘실패의 위기’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성공의 위기’다. 주눅 들어있던 국민이 당당한 시민으로, 성공적인 변화가 진행된 것이다. 단지 이제 당당한 시민들의 상호충돌 양상이 부가된 것이다. 

앞서 중산층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들 중산층의 정치적 지향은 민주화 이후 시기에 있어 지배적으로는 진보적 지향을 보여왔다. 상향욕구는 현 체제를 비판하면서 변화시키고자 하는 개혁정당이나 진보정당을 향한 지지로 표현됐다. 중산층 아파트가 늘어나면 중도개혁정당이나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는 현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서울의 신흥 중산층 지역인 마·용·성(서울의 전통적인 중산층 지역인 강남 외에, 새롭게 중산층 아파트 지역으로 변화 중인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이라고 하는 신흥 중산층 지역은 점점 더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를 드러내고 있다. 중산층 아파트 지역이 늘어나면 이제 보수적 투표의 양상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것이 현저한 변화다.  

 

포스트 민주화 시대의 양상들

민주화 시기의 후기에 나타난 변화들은 이미 전기와는 다른 양상들이다. 이런 양상들이 누적되고 새로운 현실이 더해지면서, 이제 ‘포스트 민주화’라는 새로운 문제 설정을 하고 새롭게 응전해야 하는 단계로 이행 중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중산층과 MZ 세대의 사회경제적 조건 변화와 그 지향의 변화를 민주화 시기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적 지향으로 역전시킨 데는,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탄핵 이후에 출현한 문재인 정부 시기의 새로운 경험 때문이었다. 다양한 경험들이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 시기에 나타난 2가지 경험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먼저 부동산 정책이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지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부동산 가격의 급등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 부동산 가격의 급등은 지난 민주화 30여 년의 시기에 젊은 세대의 전제적 인식, 즉 젊은 시절의 고생의 성과로 주택 소유자, 혹은 아파트 소유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결정적으로 파괴했다. 문제는 이것이 진보개혁 정부의 정책 실패로 야기됐다는 것이다. 진보가 정책적으로 유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체감케 한 것이었다. 

이것은 중산층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민주화 시기의 진보개혁세력의 부동산 정책은 주로 부동산 투기를 다양한 정책수단을 통해 ‘규제’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주택 담보대출 규제, 분양가 상한선 규제, 종합부동산세, 보유세 등의 세금 중과를 통한 규제, 부동산 투기 과열지구의 지정을 통한 규제 등이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22차례에 달하는 ‘선한’ 규제들로 부동산 급등을 막을 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선한 규제들로 구성된, 진보의 부동산 정책의 패러다임적 붕괴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변화가 중산층 및 젊은 세대의 정치적 태도에 미친 부정적 영향이다.

 

도덕적 우위 구도의 균열

다음으로 민주화 시기의 도덕적 구도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민주화의 시기에는 개혁·진보세력(정당 등)의 보수세력에 대한 도덕적 우위의 구도가 지속됐다. 예컨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배경을 가진 386 세대 정치인들은 그들이 과거 엄혹(嚴酷)했던 시기에 제적·투옥되면서 행했던 민주화운동이 가지는 도덕성을 배경으로 독재의 전략을 가진 보수정당에 대항해 일종의 ‘정의(正義)의 전쟁’을 할 수 있었다. 대체로 독재의 후예인 보수세력에 대항해, 선한 반독재세력이 독재와 그와 연관된 산업화의 모순을 ‘적폐’라는 이름으로 극복하는 것이 민주화 시대의 도덕적 구도였다. 

그러나 민주화 시기에 누적된 상황들은 이런 도덕적 우위 구도의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조국 사태’를 계기로 중산층의 인식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도덕적 우위의 개혁진보세력 대 부패와 부도덕성으로 점철된 보수세력의 대립 구도가 이전처럼 명확하지 않게 됐다. 개혁진보세력의 입장에서 보수세력에 가한 높은 수준의 도덕적 비판은 이제 부메랑이 돼 개혁진보세력의 ‘내로남불’적 성격을 비판하는 논거가 됐다. 이 자체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보수세력이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진보개혁세력에 대해서 ‘쌤쌤’이나 ‘내로남불’이나 ‘이중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일정한 근거가 생겼다. 민주화 이후 시대에 존재했던 도덕적 구도에 균열이 생기게 된 것이다. 

예컨대 나는 교육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고교체제상의 상위학교인 자사고와 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이것이 국가정책이 됐다(물론 윤석열 정부하에서 이것은 역전되고 있다). 그런데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내가 이런 ‘급진적’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자식을 외고에 보냈다’라며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한다. 나는 물론 ‘애들 문제는 자사고가 대거 만들어지기 전에 일어난 일인데 비판이 과도하다’ 라는 식의 항변할 내용이 많다. 그러나 자사고나 외고의 전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할 소재가 최소한 생긴 것이다. 

이는 민주화 이후 시대 개혁을 선도했던 시민단체에도 적용된다. 보수언론의 작위적 부각도 큰 몫을 하지만, 개혁진보 정부하에서 급성장한 시민단체들 중 일부에 공격받을 만한 요소들이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일부 시민단체의 과잉과 일탈에 대한 보수언론의 대대적인 집중보도와 공격은 민주화 이후 시대의 시민단체의 도덕적 위상에도 변화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민주화세대가 기득권세대로 인식되는 상황

민주화 이후 정치 민주화의 진전은 만년 야당으로서의 위치를 강요당했던 개혁진보세력이 집권세력이 되는 기회를 제공했다. 개혁진보세력이 야당 세력이 아니라 집권세력이 되는 순간, 통치과정에서 발생하는 내재적인 문제점들을 안게 된다. 만년 야당으로서 권위주의 집권세력에 가했던 비판들은 이제 자신에게 적용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딜레마적 상황이 출현했다. 

돌이켜 보면, 반독재 민주화 세대인 소위 386세대, 현재 60대가 된 686세대는 이중의 의미에서 혜택을 본 세대다. 고도성장과 산업의 팽창기에 청년이었던 이들 세대는, 취업에 어려움을 크게 겪지 않았다. 특히 대졸자의 경우에는 취업난을 겪을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IMF 금융위기 이후 이런 조건은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에 가속화된 공장자동화는 노동력을 줄이는 이른바 생력화(省力化)의 과정을 동반했고,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는 직장을 잡을 기회조차 적었다. IMF 위기를 계기로 기업이 비정규직 인력 채용방식을 선택하거나 임금삭감이나 기존의 연공서열이 아닌 연봉제 방식을 도입하는 등 기업에 유리한 채용전략을 젊은 세대에게 강요했다. 젊은 세대의 경우 고용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열악한 고용조건을 강요당하게 됐다. 

386세대, 지금의 686세대는 이중의 혜택을 누린 세대로 젊은 세대에게는 투영된다. 선배세대는 고도성장과 산업의 팽창기에 직장 선택의 혜택이 있었으며, IMF 위기로 ‘자본의 대대적 역전 공세’가 있던 시기에도 노동조합의 조직력으로 자신들의 혜택을 방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화 시대의 대표조직인 노조가 열심히 투쟁해 성과를 낼수록 - 기업 자본의 응전을 매개로 - 젊은 세대와의 갭이 커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불이익은 비정규직 등 주변적 노동자층에게 강요된다. 

이에 따라 노동시장이 다층적으로 서열화되고, 젊은 세대는 이런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반독재 민주화의 정치적 정당성을 가지는 세대가, 경제적 측면에서는 젊은 세대와 구별되는 기득권세대로 인식되는 상황이 이런 이유로 대두된 것이다. 

 

3월호에 계속 ▶

 

 

글·조희연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남가주대학교(USC), 대만 교통대학교, 캐나다 UBC에서 교환교수를 지냈고,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로 2014년 재직 중에 서울시 교육감으로 선출되어, 2023년 현재 3기 교육감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투트랙 민주주의』(1-2권),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한국의 국가· 민주주의·정치변동』,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동원된 근대화』, 『태어난 집은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아야 한다』,  『일등주의 교육을 넘어』 , 『병든 사회, 아픈 교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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