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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인간 명품이 되다
아이돌, 인간 명품이 되다
  • 한유희 | 문화평론가
  • 승인 2023.06.3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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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 is not a proxy for the general economy.”

LVMH 최고재무책임자 장 자크 귀오니는 명품 경제의 특수성을 한 문장으로 명징하게 말한다. 즉, 명품은 소비문화의 일반적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이며 사회이론가였던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사회』에서 언급한 바대로, 모든 사물은 특정한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기호 가치를 지닌다. 명품의 소비 행위는 사용 가치보다 기호 가치가 우선시된다는 현상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사회학자였던 부르디외는 ‘구별짓기’로 소비심리를 설명한다. 즉, 명품의 소비는 내가 속한 계층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국 사회에서의 명품, 명품 소비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우선 부르디외가 언급하는 문화자본은 장기간 축적될 때 취향과 실천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그가 상정하고 있는 고급문화 또한 명확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는 대중매체 혹은 대중문화를 우회해 생긴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우세하다. 문화자본이 개인의 감성적이고 정신적인 가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대중매체를 통한 유명인들의 삶이 ‘고급문화’의 이미지로 상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고급문화가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급’은 ‘고가’의 물건을 구매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대체된다는 뜻이다. 이는 곧 사치가 대중화되고 일반화될 수 있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즉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대중매체를 통해 확산되고, 개인이 구매를 실천해 계층의 가치를 소비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명품은 즉 나의 계층과 고급문화에 대한 거리를 설정할 수 있는 행위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명품은 어떻게 아이돌과 연관성을 지니게 되는가. 한국인의 독특한 아비투스에 의한 자부심과 동일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문화예술평론가 이동연(1)은 한국적 아비투스를 설명하면서 한류·글로벌 스타를 통한 자부심, 소비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 현상을 설명한다. 한국인의 일상에 각인된 문화적 아비투스로 인해 명품을 대표하는 아이돌은 자부심의 대상이 되고, 소비를 통한 동일성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명품과 아이돌의 상부상조

 

<명품 브랜드 앰버서더가 된 블랙핑크. 왼쪽부터 리사, 지수, 제니, 로제>

최근 많은 수의 K-pop 아이돌이 명품 브랜드의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그룹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이 샤넬의 글로벌 앰버서더로 기용되면서, 아이돌은 명품 브랜드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다. 이후 가장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그룹은 걸그룹 블랙핑크다. 모든 멤버가 명품 브랜드의 글로벌 앰버서더로 발탁됐다. 제니는 샤넬, 지수는 디올, 로제는 티파니와 생로랑, 리사는 셀린느와 불가리. 이외에도 방탄소년단은 그룹 자체가 루이비통의 글로벌 앰버서더가 됐고, 데뷔한 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걸그룹 뉴진스 또한 5인 모두 명품 브랜드의 앰버서더로 선정됐다. 특히 뉴진스의 경우 평균 연령이 17세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앰버서더라고 거창하게 표현하지만 결국 ‘홍보대사’다. 브랜드 제품을 홍보하고, 브랜드 행사에 참여하고, 브랜드의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가 K-pop 아이돌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중적이지만 고급스럽게, 따라하고 싶지만 유니크하게. 이율배반적 조건을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리포베츠키는 사치의 문화』에서 사치 부분이 계층화돼 있고, 분화돼 있으며, 다양화돼 있는 시장처럼 체계적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금 시대에서 명품은 일반적인 대중의 접근을 보편화시키는 동시에 가격과 이미지 정책을 통해 사치품에 대한 강렬한 꿈을 유발하고, 유혹(2)하는 두 가지의 방법으로 유통된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다. 

아이돌은 양가적인 명품 유통에 가장 잘 들어맞는 카드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K-pop 아이돌은 SNS에서 영향력이 상당하다. 그들이 입고, 먹고, 드는 모든 명품 아이템들은 SNS 게시물을 통해 빠르게 전파된다. 명품이 보편적인 이미지로 게시되는 것이다. 동시에 한정판이거나 미출시된 희소한 아이템들을 명품 회사에서 아이돌에게 ‘선물’하는 방식을 통해 명품은 희소가치를 높인다. 동시에 명품 회사들에게 대접을 받는 아이돌들의 위상 또한 높아지게 된다. 결국 아이돌이 앰버서더로 선정돼 자신이 홍보하는 명품을 SNS에 게시하는 것만으로도 명품 회사와 아이돌 모두는 ‘급’이 높아지는 상황이 연출된다.

 

아이돌, 성공과 욕망의 서사체

돌이켜서 아이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아이돌은 ‘기획’을 통해 만들어진 상품이다. 대형 연예기획사의 철저한 사전 기획과 관리 매니지먼트가 아이돌이라는 정체성(3)을 전제한다. 즉 연습생 시스템을 통해 선발된 멤버들만이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는 것이 한국 아이돌의 기본적인 특성인 것이다. 하나의 아이돌 그룹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연예기획사에도, 아이돌 멤버들에게도 험난하다. 우선 아이돌 그룹을 준비하는 ‘연습생’들을 트레이닝 시켜야 한다. 연습생들의 숙소, 식비, 레슨까지 포함한다면 연습생 한 명당 매달 최소 200만원이 소요(4)된다고 한다.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는데 기본 5억 이상이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데뷔하고 난 후, 살아남는 아이돌 그룹은 한 해에 1~2팀 뿐이다.

결국 아이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인기도 인기지만 아이돌을 탄탄히 받쳐주는 팬덤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아이돌 그룹을 안전하게 데뷔시키기 위해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까지의 전 과정을 노출시켜 인지도를 쌓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는 방송사에도, 각 기획사에도 상부상조인 전략이다.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는 것이 당연시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프로그램을 접하는 대중 모두가 연습생들의 ‘급’을 나누는 것이 익숙해지게 되는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 내에서 연습생의 ‘급’은 외모, 실력 외에도 소속된 기획사의 규모와 영향력에 의해 나뉘게 된다. 각각의 프로그램마다 등급을 나누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순위를 매겨서 하나의 그룹을 만들어내는 것은 동일하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돌 멤버로 발탁되는 연습생의 ‘성장’과 ‘성공’의 서사다. 자신의 실력을 적극적으로 어필해 대중 혹은 팬덤의 선택을 통해 결성되는 그룹인만큼, 팬덤은 양육의 주체로 존재한다. 나의 선택과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야만 나의 멤버가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회차마다 성장하는 연습생이 하나의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 활동하는 것은 ‘성공’ 그 자체를 의미한다. 아이돌 팬덤이 형성되면서 팬들은 자신의 아이돌에게 유독 ‘명품’을 조공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팬의 마음이자, ‘급’이 되는 멤버라는 점을 ‘사회적’으로 증명시키기 위해서다. 이후 선물을 받거나 명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고, 최후에는 명품의 앰버서더가 되는 아이돌이 되는 것을 소망하는 것이다. 성공한 아이돌의 정점이, ‘인간 명품이 되는 아이돌’이라는 점은 ‘급’이 높아지길 원하는 바와 동일 선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Winner takes all

승자는 모든 것을 독식한다. 아이돌과 명품은 ‘급’을 나누고 ‘급’을 드러낸다는 기준점에서 동일하다. 아이돌이 명품 앰버서더가 되면서 아이돌은 더더욱 선망의 소비재로 작동한다. 고급화된 상품이 되는 것이다. 최근 아이돌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초대 손님으로 아이돌이 출연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은 작금의 아이돌, 앰버서더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노래와 랩 실력이 뛰어난 것보다, 잘생겨야만 ‘앰버서더’가 돼 돈을 엄청나게 많이 받는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아이돌조차 명품의 앰버서더가 된다는 것에 의미를 ‘고급화’ 혹은 ‘물질화’로 환원해 직시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재미를 위한 발언이었겠지만, 아이돌이 직접적으로 ‘앰버서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농담으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다. 결국 ‘급’이 높은 아이돌만이 독식할 수 있는 자리라는 공공연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 발언이다.

아이돌 팬덤 입장에서 나의 아이돌이 명품 앰버서더가 된다는 것은 계급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아이돌이 입지한 위치를 인정받는 증명이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타 아이돌들의 명품 앰버서더에 대한 비난과 견제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주목할 것은 아이돌 팬덤 간의 단순한 반목이 아니다. 명품에 대한 이미지와 아이돌에 대한 이미지를 평가하는 잣대가 생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명품 브랜드가 선정한 앰버서더를 부적합하다면서 까내리거나, 지나치게 찬양하기도 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아이돌과 밀접한 아이돌 팬덤에서는 앰버서더를 하고 있는 명품 브랜드로 또다시 급을 나누며, 아이돌의 수준과 위치를 가늠한다는 점이다.

대부분 아이돌이 앰버서더를 한다는 점을 비판할 때, 명품에 익숙해지고 과소비하는 것만을 주목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승자독식이라는 문법에서 체념하거나 선망하는 것이 관습화된다는 것이다. 계층을 계급화하고, 하나의 취향을 공고화해 오히려 소비의 다양화 혹은 소비의 가치에 새로운 접근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결국 ‘명품’만이 명품으로 존재해 계급을 드러내고 차별화하는 가치로 남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SNS를 통해 성취감보다는 열패감과 불행함을 얻는데 익숙하다. 대리 만족이 아닌, 대리 불만족의 시대다. 타인의 소비는 곧 나의 불행과 동일해진지 오래다. 현대 사회는 명품이 대중적 기호이자 차별적 기호로 작동할 수 있는 최적의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다. 특히 이미 동경의 대상인 아이돌이 인간 명품이 됐다는 점은 결국 승자독식의 가치를 일원화시킨다. 좋은 것, 가치 있는 것은 ‘명품’에 있고, 더 나아가서 ‘명품’ 그 자체가 돼야 한다는. 더불어 그 ‘급’은 언제나 나눠져 있으며, 항구적인 계급으로 남을 것이라는. 

 

 

글·한유희 
문화평론가. 제15회 <쿨투라> 웹툰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2021년 만화평론 공모전 우수상 수상. 경희대 K-컬쳐 스토리콘텐츠 연구원으로 웹툰과 팬덤을 연구하고 있다. 


(1) 이동연, 「한국인의 일상과 문화 아비투스」, 『문화과학』 61권, 문화과학사, 170쪽.
(2) 질 리포베츠키, 엘리에트 루, 유재명 옮김, 『사치의 문화』, 문예출판사, 2018, 15쪽.
(3) 이동연 외, 『아이돌』, 이매진, 2011, 117-118쪽.
(4) KBS, <9층 시사국> ‘지망생을 지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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