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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베리드>에 이어 <정이>에서도 발견되는 폭력성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베리드>에 이어 <정이>에서도 발견되는 폭력성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3.12.05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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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포스터

김용화 감독의 <더문>(2023)에서 시작해, 던칸 존스 감독의 <더문>(2009),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의 <베리드>(2019)에 이어 이번에 이어갈 영화는 연상호 감독의 <정이>(2022)다. <정이>가 떠오른 이유는 <더문>(2009)의 샘과 <베리드>의 폴이 겪은 일이 <정이>의 정이(김현주)와 서현(강수연)이 겪은 일과 닮았기 때문이다.

 

- <더문>과 <베리드>가 담아낸 폭력성

<더문>에서 샘은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걸 모른 채 지구에 있는 가족을 위해 달 기지에서 홀로 근무 중이다. 그러다 알게 된다. 그가 그리워하는 가족은 자신의 실제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도 샘이 아니라 샘의 복제인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가 지구귀환용 캡슐로 알고 있던 건 복제인간 처리기였다. 회사가 그와 한 약속은 모두 거짓이었다.

<베리드>에서 폴은 이국땅에서 일하던 중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당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산채로 매장당했다. 관에 누운 채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애쓰는 중에, 그는 전화로 계약 해지를 통보받는다. 회사는 계약 해지 시점이 납치 전이라며, 회사는 납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회사는 그의 구출을 돕기는커녕 그를 버렸다. 혹시 자신이 살아남지 못해도, 가족에게 지급되길 기대했던 보험금이나 보상금에 대한 폴의 기대 역시 짓밟혀 버렸다.

외로움과 공포를 극복하며 애쓰는 샘과 폴은 탐욕스러운 회사로부터 기만당한 것이다. 샘과 폴이 맞닥뜨린 상황이 더욱 폭력적인 이유는 이 모든 상황이 그들이 직접 선택한 것으로 세팅되었다는 점이다. 계약이나 서약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기만당하기를 허락한 셈이 됐다. 모든 건 그들이 자초한 걸로 보인다.

 

- <정이>도 담아낸 폭력성

<정이>에서 정이(김현주)와 서현(강수연)이 담당한 업무는 지구와 인간을 위한 일 즉 공공을 위한 일로 보이지만, 그들은 공적 기관 소속이 아니다. 전쟁 영웅이었던 윤정이 팀장은 연합군 최고의 군인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용병이었다. 딸 서현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정이>에서 어린 서현

크로노이드 사는 수술을 막 끝낸 서현에게 전투에서 식물인간이 된 정이의 뇌 정보를 제공하라고 요청한다. 미성년자인 서현을 대신해 할머니가 동의하는 것으로 보이나, 이는 이미 엄마 정이가 동의한 일이기도 했다. 정이의 뇌 정보가 제공되는 대가로 크로노이드 사는 서현의 교육을 책임지겠단다.

그러나 성인이 된 서현은 끔찍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동안 수없이 생산된 정이 관련 상품이 이젠 성적 노리개까지 영역을 넓힌단다. 무엇보다 서현이 팀장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이 프로젝트’ 실험에서 정이의 뇌 정보가 이식된 로봇이 처절하게 싸우고 다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쉽지 않다. 로봇 정이는 자신이 로봇인 걸 모른다. 그저 임무 수행을 위해 처절하게 전투 중이다. 외모는 서현이 기억하는 엄마 정이의 모습 그대로다.

 

<정이>에서 정이 혹은 로봇 정이

샘과 폴, 서현은 회사와의 관계에서는 철저하게 약자다. 무기력해 보일 정도다. 그들은 자신들이 맺은 계약, 동의를 기반으로 회사는 권리를 획득했고, 그 권리는 폭력으로 행사된다. 그리고 샘과 폴, 서현은 그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 그래도 희망은 있는가?

비록 폴에게는 기회가 없을 듯하지만, 샘과 서현은 각성한다. 그리고 연대한다. 흥미롭게도 그들의 연대는 종을 초월한다. 샘은 로봇 거티와 협력하고, 서현은 로봇 정이와 협력한다. 거티는 샘의 정체를 알고 있었는데, 샘은 거티를 친구로 여겼지만, 거티는 회사의 지시에 따라 샘을 감시하고 관리해 왔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힘을 합친다.

서현은 그저 로봇이라고 생각했던 로봇 정이가 여전히 엄마로서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흔들린다. 식물인간이 되기 직전 딸의 수술 결과를 걱정하던 정이로서 로봇 정이는 그저 딸 걱정 중이다. 서현은 그런 로봇 정이와 함께 연구소를 탈출한다. 자신이 로봇이고, 자신이 갖고 있는 기억에 따르면 서현이 딸 서현이라는 걸 아마도 알게 된 걸까? 두 사람은 직접적인 대화를 나누지는 않지만, 절절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돕는다.

영화에서 권력 집단과 대립하는 개인은 종종 등장하는데, 과거, 현재,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 모두에서 등장한다. 개인이 이길 때도 있지만, 무지막지한 폭력의 잔혹함이 새삼 확인될 때도 있다.

극영화를 다큐로 볼 필요는 없겠으나, <더문>, <베리드>, <정이>에서 목격하게 되는 시간과 국경을 초월한 폭력이 현실에서는 사라지길 바라본다. 아마도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이지만, 연대의 힘을 믿어보고 싶다. 그런 희망을 갈망하게 하는 영화 <정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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