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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미술 이야기] 보이지 않는 것의 속을 보여주는 예술적 명상과 나무의 꿈꾸기
[안치용의 미술 이야기] 보이지 않는 것의 속을 보여주는 예술적 명상과 나무의 꿈꾸기
  • 안치용
  • 승인 2024.02.1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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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말환 화가

북유럽 신화에는 위그드라실이라는 이름의 나무가 나온다. 나무 자체가 세계이기에 세상을 이루는 세계수, 혹은 생명의 나무로 해석한다. 거대한 구주물푸레나무이며 우주를 뚫고 솟아 있어 우주수라고도 하고, 생과 사의 세계를 뚫고 자라는 거목이라고도 한다. ‘거대한이란 표현을 썼으나 얼마나 거대한지 측정할 수 없기에 무한이란 뜻에 가깝다. 무한은 곧 신이다.

어원을 살펴보면 위그드라실이 신 또는 신성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위그드라실의 위그는 북유럽 신화의 최고 신인 오딘, ‘드라실은 말[]을 뜻한다. ‘오딘의 말이다. 세계 창조 후에 오딘이 심은 나무로 세 개의 웅대한 뿌리가 있어, 하나는 지하의 나라(또는 안개의 나라), 또 하나는 인간 세계, 마지막 하나는 신들의 나라로 뻗어 있다고 한다. 코카서스 지역의 나라 조지아의 전통 신화에도 세계를 이루는 3가지 공간인 하늘과 땅과 지하가 하나의 커다란 나무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주지하듯 성서의 에덴동산의 한가운데에도 수천 년 동안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한 유명한 나무가 있다.

화가 안말환은 나무의 화가로 통한다. 안 작가는 자신이 그린 나무들이 혼돈 속에서 불안하고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아무런 의심 없이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신선한 숲,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깨끗한 당신의 호흡이 되기를 바란다. 신선한 숲이 고양되면 신성한 숲이 되고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깨끗한 당신의 호흡은 다른 말로 물아양망(物我兩忘)이 되니, 의식하든 안 하든, 그의 그림은 모종의 신성에 닿는다. 그 신성은 엄숙하거나 두렵지 않고 따뜻하게 보듬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신보다는 북유럽의 신들을 생각나게 하는 종류이다. 애초에 물아양망이라는 것이 물과 아의 구분을 폭력적으로 없애자는 게 아니라 물과 아를 제대로 인식하며 공존하자는 인식을 담았다. 배척이 아니라 상생의 인식. 안말환의 그림에서 관람자가 느끼는 정서가 아마 그러한 것이지 싶다.

Dreaming41001 97.0x162.2cm Mixed media on canvas 2024
Dreaming41001 97.0x162.2cm Mixed media on canvas 2024

 

안 작가의 ‘Dreaming41001’‘Dreaming’ 연작의 하나로, 나는 이 그림에서 위그드라실을 떠올렸다. 중요한 것은 ‘Dream’이 아니라 ‘Dreaming’이다. 만일 생명수라는 것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그 행위가 동사이어야 함은 너무 당연하다. 여기서 안 작가가 실제로 생명수를 그리려고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Dreaming’ 연작이 모두 ‘Dream’이란 명사에 머물지 않고 ‘Dreaming’ 동사, 정확하게는 동명사를 표방한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말이나 영어나 동명사는 명사이지만 동사 성격을 지닌 일종의 특별한 품사이다. ‘Dreaming’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국어학자 최현배(崔鉉培)우리말본에서 ‘-명사형이 결과 또는 사실의 서술을 주로 나타내는 데 반해서 ‘-명사형은 방법 또는 과정에 초점을 둔 표현이라고 지적한 것을 기억할 때 꿈꿈보다 꿈꾸기가 더 어울린다.

목재가 아닌 나무는 언제나 과정이며 성장의 방법론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무처럼 보이는 이 그림이 실제로 나무를 그렸는지 아닌지 또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만일 그림을 보며 위그드라실이든, 선악과이든, 혹은 고향 동산의 나무이든, 나무 비슷한 것을 떠올린다면 동시에 ‘Dreaming’을 상기하는 게 적절하다. 나무의 등가어로서 ‘Dreaming’만한 게 없으니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지인과 위그드라실의 뿌리가 닿은 세 세계가 다르지 않다. 멀리서 보면 하얀색 계통으로 보이는, 화면의 상단에서 중간까지를 지배한 타원이 신들의 세계, 또는 신성의 영역,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깨끗한 당신의 호흡이 도달할 곳이라면, 줄기는 땅과 하늘을 잇는 인간세상이 된다. 지하의 세계, 혹은 땅과 인간세상은 구분된 듯하지만 분리되지 않고 연결된다. 인간이란 것이 저 높은 곳을 염원하지만, 땅에서 태어나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깨끗한 호흡을 꿈꾸기를 멈추지 못하다가 결국 땅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다. 그림을 보며 이러한 단절(하늘과 인간 사이), 구분과 연결의 공존(인간과 땅 사이)의 회화적 형상화에 감응하여도 좋고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떠올려도 좋다.

타원 모양의 위와 노랑 안개 느낌의 아래를 잇는 줄기에 세월의 흔적이 완연하다. 수종에 따라 나무의 껍질은 다양한 모양과 질감을 보이는데, 사람으로 치면 주름살이다. 주름살이 아름답게 자리한 얼굴에서 예상하는 충직한 삶의 흔적이 나무에서는 나이테로 구현된다. 어떤 나이가 어떤 나이테를 품고 있는지는 나무가 베어진 다음에 확인할 수 있는 게 난점이다. 부름켜가 한층 한층 쌓이며, 그냥 되는 대로 쌓이지 않고 염원과 신성한 호흡을 품으며 ‘Dreaming’을 간직한, 위그드라실을 닮아가는 나이테가 만들어지면, 어쩌면 그림처럼 나이테의 타원 모양 단면을 들어 우리에게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신성이란 것이, 신의 자기진술이라기보다 신의 드러냄을 인간의 방식으로 받아들여 재해석한 것이기에, 현현이든 계시이든 그 에피퍼니(epiphany)는 상상컨대 자신의 속을 보여주기 위해 일도양단으로 제 몸을 잘라 그 단면을 관람자에게 보여주는 제의적 행위를 닮았다. 제 몸을 양단하는 삶을 나이테로 제시할 때 아래쪽을 들어 보여줄 것인가, 위쪽을 들어 보여줄 것인가. 물아양망이란 말이 다시 튀어 오르는 것으로 보아 이 양단의 에피퍼니야말로 신의 호흡에 근접한다. 나무의 꿈꾸기를 그리는 작업은, 위든 아래든, 보이지 않는 것의 속을 보여주는 예술적 명상에 가깝다.

나무를 정의할 때 좁은 의미로는 목질 기둥을 가졌으며, 이 기둥이 길이(혹은 높이)뿐만 아니라 형성층(부름켜)이 있어서 몸이 굵어지는 쪽으로도 두 번째 생장하는 식물을 뜻한다. 계절별로 나무의 성장 속도가 달라서, 즉 여름에는 빠른 속도로 쑥쑥 자라고 늦여름이나 가을부터는 잘 자라지 않기 때문에 조직의 재질이 달라진다. 봄이나 초여름에 자라난 부분은 색이 옅고 부드러운 재질이고, 늦여름 이후 생장한 조직은 색이 짙고 단단한 재질이어서 나이테가 생긴다. 나이테는 나무의 성장흔인 셈이다.

나이테를 만드는 부름켜는 체관부과 물관부 사이에 있다. 체관은 잎에서 광합성한 양분을 아래로 내려주고 물관은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위로 올려준다. 나무 안에서는 계시(체관)와 염원(물관)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성장의 고통을 나이테로 전환하는 본원적 ‘Dreaming’이 일어난다. 보이는 그림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의 속을 포착하려는 작가의 분투가 성공적이었다면 관람자는 이 그림에서 ‘Dreaming’을 읽어낼 수 있다. 하얗다는 단어를 사용한 타원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작가의 분투와 그의 세계 성찰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인간의 뇌를 연상시키는 수관부는 시냅스와 도파민의 명멸하는 전장이다. “숲에 들어가 보면 아프지 않는 나무가 없다는 작가의 말을 소환하게 된다. 타원의 윗부분이 완결되지 않은 것 또한 모종의 열린 결말로 염원의 가시적 한계와 계시의 무한함을 암시한다

0-3.Dreaming40107 65.1X100.0cm Mixed media on canvas 2023
Dreaming40107 65.1X100.0cm Mixed media on canvas 2023

 

그림 ‘Dreaming40107’ 또한 ‘Dreaming’이다. 기본적인 구도가 똑같고 보이지 않은 것의 속을 해명하기 위한 노력이 마찬가지로 엿보인다. 동일한 ‘Dreaming’이지만, 수관과 줄기를 구분하지 않고 나이테가 숨어있는 목질 부분까지 전체를 나무로 일체화한 점에서는 ‘Dreaming41001’과 차이를 보인다. 흥미롭게 ‘Dreaming40107’은 떡잎을 연상시킨다. 떡잎이 두 개다. 쌍떡잎식물의 줄기에만 세포 생성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름켜가 있기에 시작과 끝을 하나의 이미지에 담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 나무 아래 새들이 깃든다. 나이테가 늘어나듯 세계는 확장한다. 염원이 비상하고 있어 굳이 새가 날아오를 필요가 없다. 새는 사람처럼 땅 위에 서서 돌아다니며 굳건하게 삶을 다진다. 이 형상이 꼭 나무일 까닭은 없다. 떡잎이라고 하여도 무방한데, 그때는 삶의 시원에 관한 편안한 미술적 모색을 주장할 수 있다.

0-1.Dreaming50222  91.0x116.8cm Mixed media on canvas 2023
Dreaming50222 91.0x116.8cm Mixed media on canvas 2023

그림 ‘Dreaming50222’는 앞의 두 그림을 지양한다. ‘Dreaming40107’처럼 수관과 줄기를 일체화하지만 그 안에서는 해체를 선택한다. 암시적 불안이 명시적 균열로 전화한다. ‘Dreaming40107’이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통시성을 지향했다면 ‘Dreaming50222’는 삶의 단면을 포착하고 희로애락을 조감하는 공시성을 모색한다. 세계가 분열하지만 부서져 내리지 않는다. 세계에 대한 비관과 낙관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교차하는 작가의 붓끝에서 영롱하다. 하늘이 나직하고 땅이 차분한 반면 수십 조 개 인간 세포만큼이나 많은 염원이 하늘로 팔을 벌리듯 비산한다. 결국 나무는 인간이 된다. 또는 인간이 나무가 되는지도.

‘Dreaming’이 핵심이긴 하여도 외관상 나무이기에 사람들이 무슨 나무일지를 궁금해할 법하다. 안 작가의 마음에는 어린 날 방문하곤 했던 경기도 광주시 외할아버지 집 근처의 미루나무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그린 그림 속의 나무가 미루나무라는 얘기는 아니다. 특정한 나무를 그리지 않고 아마 나무의 이데아를 그리는 듯하다.

그의 그림에서는 두 개의 수직이 교차한다. 캔버스의 평면에 그려진 형상들이 계시와 염원으로 갈등하고 조화하는가 하면, 캔버스에 쌓인 얇은 층들이 나무의 나이테인 양 염원과 계시의 보이지 않은 질감을 구현한다. 돌가루와 다양한 재료를 혼합해 캔버스에 칠하고 말린 다음 그 위에 칠을 더하고 때로 파내며 촘촘하게 화폭의 나이테를 구축한다. 숨은 부름켜들이 생생한 나무의 이데아. 그것을 추적하는 게 안말환 작업의 특색이다. 나이테가 생겨서 나무의 키만큼 수직의 테두리를 만들어 기둥 안에 하나씩 축적하듯, 그의 나무가 모여서 ‘Dreaming’의 숲을 형성하는 중이다.

0.Dreaming 226028 80.3x130.3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Dreaming 226028 80.3x130.3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0-7.0Dreaming2240120 100x65.1cm Mixed media on canvas 2022.2024
Dreaming2240120 100x65.1cm Mixed media on canvas 2022.2024
Dreaming40110 100x65.1cm Mixed media on canvas 2023
Dreaming40110 100x65.1cm Mixed media on canvas 2023
Dreaming226090 70x130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Dreaming226090 70x130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Dreaming Trees1810052 162.2x97.0cm mixed media on canvas 2018
Dreaming Trees1810052 162.2x97.0cm mixed media on canvas 2018
0-19.Tree-Conversation1 97.0x162.2cm Mixed media on canvas 2010
Tree-Conversation1 97.0x162.2cm Mixed media on canvas 2010

 

 

 

·안치용

 

인문학자 겸 평론가로 영화·미술·문학·정치·신학 등에 관한 글을 쓴다. 크리티크M 발행인이다. ESG연구소장으로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을 주제로 활동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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