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세계가 한국 와인 시장을 노크하다
세계가 한국 와인 시장을 노크하다
  • 김유라 기자
  • 승인 2024.03.11 17: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 3대 와인 박람회 비넥스포(VINEXPO) 개최

지난 2023년 10월, 국내 와인 업계의 시선이 온통 코엑스로 쏠렸다. 와인 생산자와 유통사, 바이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국제 와인 박람회 ‘비넥스포(Vinexpo)’가 마침내 한국에 상륙했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시작된 비넥스포는 이탈리아의 빈이탈리(Vinitaly), 독일의 프로바인(Prowein)과 더불어 세계 3대 와인 박람회로 꼽힌다.

한국 와인 시장이 급성장한 이후, 전 세계의 와인 공급사들은 한국을 새로운 공급처로 눈독 들이고 있다. 한국의 바이어들 또한 우수한 와인을 들여와 국내 소비자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이들의 니즈(Needs)를 한 쌍의 퍼즐처럼 맞춰줄 비넥스포가 손을 걷어붙인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번에 열린 ‘비넥스포 미팅즈 코리아(Vinexpo Meetings Korea)’는 제목처럼 ‘미팅’에 초점을 맞췄다. 행사는 외국의 와인 공급사들과 국내 바이어들이 처음으로 한데 모이는 열정적인 비즈니스의 장으로서 기획됐다.

주관사인 ‘비넥스포지엄(Vinexposium)’의 부대표 로랑 보스(Laurent Bos)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비넥스포’ 등 다양한 와인 관련 국제 무역 행사를 주최하여 대화의 장을 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비넥스포 미팅즈 코리아는 한국과 같이 성장하는 단일 시장에 전 세계 와인 및 주류 생산업체를 끌어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해외의 와인 공급사와 국내의 바이어들을 연결시켜주고, 계약이 체결될 수 있게끔 이야기할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죠.”

 

비넥스포 미팅즈 코리아의 생생한 현장에서

비밀스러운 ‘와인 비즈니스의 세계’를 엿보다


 

방문 신청자만 입장할 수 있도록 굳게 지켜지는 문, 일렬로 늘어선 테이블과 긴박하게 움직이는 정장 차림의 사람들.... 와인 공급사 ‘Wine Monopole’ 소속 케빈 스게(Kevin SEGAY)가 보여준 스케줄표에는 하루 동안의 미팅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비넥스포 미팅즈 코리아의 캐치프레이즈는 ‘비즈니스 매칭 서비스’다. 비넥스포지엄과 함께 행사를 기획한 ‘프랑스 국제전시협회 한국지사(PROMOSALONSKOREA)’의 김선의 대표는 미팅 시스템에 대해 설명했다. “외국에서 온 와인 공급사가 호스트, 국내의 바이어가 게스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바이어가 관심이 가는 업체를 선정해 미팅을 신청하면 저희가 스케쥴을 맞춰드립니다. 모든 미팅은 사전조율이 원칙이지만, 현장에서 공급사와 바이어가 서로 시간이 맞으면 자유로운 미팅도 가능합니다.”

분 단위로 촉박하게 돌아가는 이 B2B(기업 간 거래) 엑스포는 만남과 대화의 연속이다. 바이어가 약속된 시간에 공급사의 테이블로 찾아가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미팅’이 시작된다. 공급사 관계자는 이 순간을 위해 비행기를 태워 가져온 와인 제품들을 펼쳐 보이며 설명을 시작한다. 포도가 자란 토양, 숙성 방식, 와인에 얽힌 스토리까지, 와인에 대한 A to Z를 1시간 내외의 시간 동안 풀어낸다.

프랑스 와인 유통사 ‘Gironde et Gascogne’의 수출 매니저 엘렌 뒤랑(Hèlène Durand)은 가장 추천하는 상품으로 자신들의 로제 와인을 뽑았다. 그는 와인을 따라주며 말했다.

“한국에서는 로제 와인이 큰 인기가 없다고 들었는데 정말 유감이에요. 화이트 와인의 산뜻함과 레드 와인의 풍미를 지녔는데 말이죠. 매우 상큼한 맛이 느껴질겁니다.”

몰도바의 와인을 유통하는 ‘카자야크(Kazayak)빈’의 에이드리언 코호카루(Adrian Cojocaru) 영업부장에게서는 와인에 얽힌 러브스토리도 들을 수 있었다.

“이건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따서 만든 와인입니다. 이들은 선생님과 제자였다가 훗날 연인이 된 운명적인 커플이죠.”

 

비넥스포의 주인공은 ‘바이어’


 

로랑 보스 부대표는 “행사의 주인공은 바이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현장을 누비는 바이어들의 눈빛은 와인을 분석하며 날카롭게 빛났다.

바이어는 공급사가 보여주는 와인의 맛, 컬러, 가격 등을 상세히 살피고 확인한다. 공급사가 중간 유통사인지,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직접 판매하는 지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행사에 참여한 한 바이어는 이렇게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와인에 깃든 장인정신을 높이 삽니다. 그래서 와이너리가 포도 재배부터 와인 제조, 수출까지 진행하는 것을 선호해요.”

시음은 당연한 일이다. 대부분의 바이어들은 와인을 시음할 때 삼키지 않는다. 테이블마다 잔이나 입에 남은 와인을 버릴 수 있는 작은 통이 마련되어 있다. 취하지 않기 위한 그들의 에티튜드다.

또 눈에 띄는 점은, 행사장의 사람들이 대부분 영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절대 다수의 와인이 외국에서 수입되기 때문에 와인 비즈니스는 무역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이 세계에서 영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행사는 성공적으로 치러졌지만, 공급사 중 와이너리가 아닌 유통 전문사가 많았다는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또 다른 바이어는 비넥스포라는 이름에 비해 행사 규모가 작았다고 말했다. “저희 포트폴리오에 프랑스 와인이 없어서 보르도 와인을 살펴보려고 방문했어요. 공급사가 좀 더 많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네요.” 이번 행사에는 11개국 30여 개 공급사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선의 대표는 이번 행사가 첫 단추를 꿰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국내 와인 엑스포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위주였다면, 이번 엑스포는 오롯이 B2B(기업 간 거래)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시도에요. 이 행사를 준비하는 데 1년여의 시간이 걸렸어요. 공급사들을 모으고 직접 바이어들을 초청했죠. 지금은 막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앞으로 비넥스포 미팅즈 코리아 2회, 3회도 더 좋은 모습으로 열릴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INTERVIEW

로랑 보스 비넥스포지엄 부대표와의 대화

 

<NARA> 편집진은 행사 전날, 주관사인 비넥스포지엄의 로랑 보스(Laurent Bos) 부대표와 만남을 가졌다. 1997년부터 비넥스포지엄과 함께하며 기술 이사, 운영 이사 등을 역임해온 그는 비넥스포의 살아있는 역사다.

비넥스포에서 연설 중인 비넥스포지엄 부대표 로랑 보스(Laurent Bos)
비넥스포에서 연설 중인 비넥스포지엄 부대표 로랑 보스(Laurent Bos)

 

삶을 풍요롭게 하는 와인의 힘

 

한국에서 열리는 비넥스포라니, 정말 고무적입니다. 이번 행사가 한국에서 열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비넥스포지엄은 이전에 싱가포르와 홍콩을 방문했고, 한국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세 번째로 방문하는 지역입니다. 그 이유는 한국이 특히 잠재력이 높은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주목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국은 홍콩과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와인 시장(양과 가치 기준)인데요.”

 

와인의 볼모지로 여겨졌던 한국이 이렇게까지 성장한 것이 놀랍습니다. 유독 한국에서 와인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와인이 가진 다양한 이야기가 한국인들에게 색다르게 다가갔을 것이라 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혼술’을 즐겨야 했는데, 이때 한국 와인 시장이 크게 성장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맥주나 다른 주류가 아닌 와인을 선택했을까요? 바로 와인은 단순한 술을 넘어선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와인이 제조된 지역부터 빈티지, 맛과 향까지....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기에 와인과 함께라면 더욱 다채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죠.

또 제가 한국에 와보니, 이곳 사람들은 외향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퇴근 후 외출하고, 지인들을 만나더군요. 오늘도 이 인터뷰 이후 작은 파티가 계획되어 있는데요(웃음). 이때 와인을 나누면 다양한 주제로 대화할 수 있어요. 이런 점도 큰 장점으로 어필된다고 봅니다.“

 

와인은 기후변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산업 중 하나입니다. 세계 와인 업계를 한눈에 바라보는 부대표님은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가요?

“와인에 쓰는 포도는 물과 토양으로부터 생산되기 때문에, 이 업계는 자연환경에 각별히 신경 쓸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10년 후, 어쩌면 당장 내년부터는 포도가 없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와인은 지속가능성과 가장 가까운 생산품 중 하나입니다.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보고되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와인 생산이 가능한 지역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와인 업계에 큰 타격일 뿐 아니라, 해결하기도 아주 까다로워요. 우리가 기후변화를 피해 끝없이 이사를 갈 수 있을까요? 와인 생산 설비뿐만 아니라 포도밭을 통째로 옮겨야 하는데요. 또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을 예로 들어보죠. 단순한 생활용수라면 그저 커다란 탱크에 저장해놓으면 될 일이지만 우리는 물을 땅과 포도나무에 붙잡아놓아야 할 겁니다.“

 

정말 시급한 상황이 아닐 수 없네요.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꼭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는 와인을 생산할 때 장비와 에너지가 필요하고, 와인을 수출입할 때도 탄소가 발생한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이밖에 자연친화적인 관점에서 ‘화학용품 사용’도 해결해야 할 이슈입니다. 이를 위해서 덜 화학적인 농업을 위한 다양한 품종개발 등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연신 유쾌한 모습이었던 로랑 보스 부대표는 환경이라는 주제에서만큼은 고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업계의 전반을 꿰뚫어 보는 자리에 있기 때문일까? 와인의 미래에 대한 그만의 고찰이 엿보였다. 다시 없을 기회이니만큼, 세계와 한국 와인 시장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한국 와인 시장 여전히 유망,

세계는 프리미엄화&무알콜 대세

 

과연 한국 와인 시장의 위상이 과거와는 다르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최전성기를 지났다며 조금은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부대표님은 한국 와인 시장의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

“한국 와인 시장은 코로나19 대유행기간 동안 가치가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비록 2023년에 판매 추세가 완화되기 시작했더라도 한국은 여전히 국제적으로 유망한 시장입니다. 현재 한국 시장은 지난 몇 년간의 성장의 혜택을 여전히 누리고 있습니다. 다만 와인에 대한 소비습관의 변화, 즉 유행의 절정을 지나온 점은 분명 관찰됩니다. 와인은 여전히 고급 음료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다양한 시도와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통주, 맥주가 그랬듯이 말이에요.”

 

글로벌 와인 시장의 전망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전 세계적인 추세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프리미엄화, 저알콜과 무알콜의 인기, 그리고 전자상거래의 영향력입니다.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붐을 이룬 전자상거래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증류주의 성장은 반등세에 올라섰고, 맥주가 특히 개발도상국 시장에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반면 와인은 여전히 종주국 격인 유럽지역에서 장기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죠. 그럼에도 희망적인 점은 소비자들이 와인을 덜 마시게 된 대신 와인을 탐색하려는 의지가 더 강해졌고 ‘적게 구매하지만 더 나은’ 소비를 선호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는 와인의 지속적인 프리미엄화 추세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젊은 세대의 ‘절제하는 음주’ 트렌드와도 일치하며, 무·저알코올 음료(와인 포함)의 인기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비넥스포 미팅즈 참가자들과 <NARA>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신다면요?

“이곳에서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와인을 나누는 즐거움을 알아가길 바랍니다. 또 한국을 방문할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김유라 

사진 프랑스 국제전시협회 한국지사 제공

 

* 해당 기사는 나라 셀라의 협찬으로 편집ㆍ제작되는 와인 매거진 <NARA>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김유라 기자
김유라 기자 kimyura@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