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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조정석의 매력과 <파일럿>의 유쾌한 비행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조정석의 매력과 <파일럿>의 유쾌한 비행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4.08.12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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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하늘을 유쾌하게 가르며, 조정석의 매력을 날리다

2024년 여름 극장가에 코미디 폭탄을 투하한 영화 <파일럿>은 조정석의 전매특허인 유쾌한 에너지와 감칠맛 나는 연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름 성수기 극장가는 늘 기대되는 대작들이 넘쳐나지만, <파일럿>은 그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1960년대 한국의 여장 남자 코미디 영화와 1980~90년대 할리우드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여장 남자 코미디의 전통을 이어받아, 현대 한국 사회의 젠더 문제를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려낸다.

주연을 맡은 조정석은 하늘을 나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던 파일럿 한정우 역을 맡아, 절망의 끝에서 재기하기 위해 여장까지 불사하는 인물을 연기한다.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를 넘어, 한순간의 실수로 인생이 뒤바뀐 한정우의 처절한 상황을 조정석은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함께 진정성 있게 그려냈다. 특히, 여동생으로 변신한 뒤 펼쳐지는 일련의 코믹한 상황은 조정석의 연기 내공이 빛나는 순간들이다. 그의 ‘장르가 곧 조정석’이라는 평가가 단순한 마케팅 표어가 아님을 이 작품은 확실히 증명한다.

 

젠더 문제를 향한 유쾌한 접근

<파일럿>의 줄거리는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은 한정우가 여동생의 신분으로 위장해 재취업에 성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설정 자체가 흥미를 끈다. 특히, 젠더 문제와 사회적 이슈를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가볍지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정우가 여성으로 변신해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 한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성차별과 불평등을 생각하게 만든다.

 

한정우가 자신의 여동생 신분으로 위장해 새로운 항공사에 취업하는 과정은 다소 뻔할 수 있지만, 조정석의 연기 덕분에 설득력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들은 코믹하면서도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다. 특히, 과거 동료들과의 관계 변화, 그로 인한 갈등과 웃픈 상황들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 <파일럿>은 웃음을 선사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로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한정우가 겪는 여러 난관은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그 속에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불평등과 편견이 숨어 있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가볍게 풀어내면서도 그 무게를 간과하지 않는다.

 

코미디로 승화된 현실의 무게

영화 <파일럿>은 2012년 개봉한 스웨덴 영화 <콕핏 Cockpit>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원작은 여성 우대정책, 직업 수행 능력, 성별에 대한 선입견 등 민감한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파일럿>은 원작이 다룬 민감한 사회적 이슈들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장남자 코미디라는 설정에 집중하면서 가벼운 터치로 지나쳐버린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여름철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젠더 문제에 대한 이슈를 새롭게 제시하고자 한다.

<파일럿>의 주인공 한정우는 성별 할당제를 이용해 재취업을 시도하며 여장남자로 변신한다. 이 과정에서 그의 변화는 단순히 겉모습에 그치지 않고,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점차 여성의 입장과 고충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담아낸다. 영화는 코미디의 장르적 특성을 활용해 이러한 변화 과정을 가볍고 유쾌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1982년 개봉한 영화 <투씨>와 1994년의 <미세스 다웃파이어> 같은 여장남자 코미디는 사회적 타자의 입장에 서게 된 주인공이 그들의 곤경을 이해하고 동조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이들 영화는 외적인 변신만으로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단순화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파일럿> 역시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장남자 코미디라는 설정을 활용하면서도 성별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점이 아쉽다.

영화 <파일럿>이 비판받는 두 가지 주요 지점은 첫째, 주인공이 단순한 말실수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둘째, 조정석의 여장 설정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첫 번째 비판은 영화 속에서 여성 승무원들의 외모를 평가하며 ‘꽃다발’이라 칭한 발언이 문제가 된다는 점인데, 이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다. 김한결 감독은 이러한 반응에 대해 “정우의 발언이 회사에서 잘릴 정도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다”며, 영화가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 작은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비판은 조정석의 여장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그의 외모와 체격 때문에 여성으로 보이지 않아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젠더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정우가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과 그의 변화는, 관객들에게 여성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여동생의 신분으로 재취업한 후 만나는 동료 여성 파일럿 윤슬기(이주명)와의 동료애는 이 영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며, 코미디 장르 속에서도 진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영화 <파일럿>은 여장, 양성평등, 내부고발 등의 소재를 다루면서도, 코미디라는 장르적 특성을 유지하며 이를 가볍게 풀어낸다. 물론 이로 인해 영화가 다루는 주제의 무게가 줄어들 수 있지만, 관객들은 이 점을 영화적 허용으로 받아들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조정석의 능숙한 코믹 연기는 복잡한 감정을 유쾌하게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는 뮤지컬 <헤드윅>에서 다져온 드랙퀸 연기를 통해 여장남자라는 설정에 완벽하게 녹아들며, 한국 사회의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낸다. 조정석의 연기는 <파일럿>의 가장 큰 장점으로 그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담백한 절제력은 코미디 장르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그의 연기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 영화의 윤리적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전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전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전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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