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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시간’, 한여름의 지친 심신을 힐링한 뜻밖의 전시
‘나무의 시간’, 한여름의 지친 심신을 힐링한 뜻밖의 전시
  • 성일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4.08.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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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시간: 내촌목공소, 남희조, 허회태>

예술의 전당 전시에서 처음으로 목공소와 예술가들이 협업한 ‘나무 작품’들이 한여름의 지친 심신을 치유해주며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세상에 본 적 없는 힘과 깊이가 있는 가구”라고 격찬한 내촌목공소, 베니스 비엔날레의 단독 초청 남희조 작가, ‘이모그래피’ 창시자 허회태 작가가 함께한 전시 ‘나무의 시간’.

독특한 전시회에 무심코 들어온 관람객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입구에서부터 나무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을 보면서 발걸음을 옮기다가 출구로 나올 때쯤, 자연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인 나무의 매력에 그만 자신도 모르게 ‘나무의 시간이 곧 힐링의 시간’임을 깨닫고, 다시 전시실로 발걸음을 돌려 오랫동안 작품을 가슴으로 느껴본다. 전시회에서 자주 목격되는 모습이다.

전시회는 ‘나무의 시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내촌목공소 작품으로 시작한다. 강원도 산에 나무를 직접 심어 벌채하고 제재한 뒤 건조해 다듬어서 가구부터 집까지 만들어내는 내촌목공소의 작품들이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다. 식탁, 의자, 책꽂이, 싱크대, 장롱이 투박하지만 묵직하고 무늬와 결이 담백해서 몇백 년의 세월에도 끄떡없어 보인다.

 

옛 조상들이 고안해낸 접합 방법인 짜 맞춤 결구를 적용하여 못이나 나사 없이 목재와 목재가 단단히 이어져 있다. 꾸븐낭개(태운 나무)로 만든 긴 벤치와 수십 개의 검은 의자들은 태초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듯 오묘하고 성스럽다. 홍천 인근에 내촌목공소가 아일랜드 건축가 그룹 그라프톤과 함께 지을 예정인 소전문화재단의 문학인 레지던시 두내원 프로젝트의 목재 구조물도 콘크리트 철근을 배제한 채 목재의 이음만으로 이뤄져 새삼 신선한 놀라움을 안겨준다.

 

『나무의 시간』으로 2022년 녹색문학상을 받은 에세이스트이자, 내촌목공소의 설립자인 김민식 작가는 “나무는 돌과 흙만큼이나, 또 어떤 생명체보다도 존재의 역사가 길다”라며, “더욱이 나무는 살아있을 땐 자연의 숨구멍이 되고, 죽어서도 귀한 쓰임새를 다한다”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나무의 시간은 자연의 시간이고, 인간의 시간이며 작가인 그에겐 삶과 사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회에서 내촌목공소의 나무 작품들 속에 한평생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탐구해온 두 화가의 작품들이 어우러진 것은 자연의 각별한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의도에서다. 이들의 미적 결합은 단순한 작품의 전시를 넘어, 사유와 성찰의 유기적 공간으로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빛을 더욱 발하는 나무와 자연의 위대함,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궁극적인 조화를 보여준다.

 

회화, 조각, 설치, 도예 등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답게, 이번 전시회에서도 남희조 작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부식된 철판 위에 자연의 변화에 따른 아름다움을 채색해, 자연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장을 제공한다. 특히 캔버스에 삼배를 조각조각 이어 붙인 사람 키 높이의 작품들 앞에서는 인간이 나고 죽기까지 걸치는 옷은 결국 삼배 서너 필이면 족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고, 친환경적인 삶과 자연적인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

글씨인 듯 그림인 듯, 붓질 한 획으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해내는 ‘이모 그래픽’(emography. 감정과 서법의 합성어)의 창시자 허회태 작가의 작품들 앞에서는 글씨가 꿈틀거리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말을 걸어온다.

 

‘글이 있는 전시’를 지향한 이번 전시회에서는 6개의 섹션에 김민식 작가의 글 12편이 덧붙여져 있다.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새것은 없어라 꾸븐낭개, 서가 그리고 읽는 사람, 내 공간에 들어온 나무 한 그루, Kitchen 최초에 불이 있었으니, 하늘과 사이 나무의 공간. 이렇게 섹션별로 하나씩 지나면서 김 작가의 글과 함께 내촌목공소와 남희조, 허회태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온 것처럼 나무와 자연의 아늑한 시간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든다.

작품마다 설명이 친절하게 적혀 있어 사진 지식 없이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나무에 거의 문외한인 필자는 김민식 작가에게 무턱대고 질문했다.

 

- 왜 나무들이 이리 단단하고 묵직해요?

“함수율이 5%대라서 그래요. 함수율은 목재 내에 함유하고 있는 수분을 백분율로 나타낸 값인데, 수치가 낮을수록 단단하고 오래갑니다. 내촌목공소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나무를 잘 건조하는 것입니다.”

 

- 왜 나무를 태워서 가구를 만드나요?

“꾸븐낭개 가구의 경우 일부러 강원도산의 참나무를 태워 만든 작품들입니다. 나무를 사용할 때 습기를 줄이고 튼튼하게 만들 수 있어 나무를 태우는 거죠.”

 

- 왜 가구에 못질 흔적이 없는 거죠?

“우리의 전통 한옥과 가구는 자연성을 중시했어요. 가급적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짝을 맞추는 거죠.”

 

- 왜 험한 산속에서 힘들게 벌채를 하세요? 값싼 나무를 수입해서 쓰시면 되는데…. 

“한국적인 것을 나무에서 시작하고 싶어서예요. 그래서 저희 가구는 비싸고 무겁고 기능적이지도 못합니다. 환경과 생명에 관한 논의는 차치해 두고라도, 경제적 효율성과 저의 작업은 많은 갈등 관계에 있습니다.(웃음) 처음에 가구를 만들 때, 북미에서 건조되어 들어오는 참나무, 호두나무, 물푸레, 단풍나무 등의 활엽수,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의 나무가 예쁘고 견고하기에, 그걸 사서 가구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김용택 시인의 시를 읽고서 한국성에 대해 고민하며 우리 산야의 나무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왜’로 시작하는 질문을 이어가다가 김 작가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 왜 힘드시게 목공 일을 하세요?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실존을 고민했지요. 원목, 목재 가공제품의 글로벌 트레이딩으로 크게 성공했으나 즐겁지 않았습니다. 산속의 나무를 선별하여 용도에 맞는 목재를 내 손으로 만드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손으로 하는 일, 즉 몸 움직임이 정신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기획, 디자인, 제작은 5년 전부터 아들이 맡아서 합니다. 20~30년 후에 사용할 나무까지 제가 선별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저를 벌목공이라고 해요. 즐거운 일입니다.”

전시장을 나오니, 나무와 함께한 시간이 아쉬운 듯 출구 쪽에서 어떤 이들은 내촌목공소와 두 작가의 작품으로 만든 다양한 굿즈들을 고르고 있고, 또 어떤 이들은 내촌목공소의 푸른 아름다움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무더위가 걷히면 내촌목공소를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전시회는 9월 29일까지 열리지만, 강원도 홍천군 백우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내촌목공소에 가면 자연 속의 나무의 시간을 더욱 진하게 느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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