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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기승… 에어컨 공화국의 여름 나기가 남긴 것
코로나 기승… 에어컨 공화국의 여름 나기가 남긴 것
  • 목수정 | 작가, 파리 거주
  • 승인 2024.08.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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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한 달을 서울에서 지냈다.

매년 여름, 한국을 찾을 때마다,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기쁨에 들뜨는 한편, 마음 한구석에 켜지는 빨간 불을 감지한다. 심장을 얼어붙게 하는 에어컨 무장 국가에 발 딛기 전, 단단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 한산한 서울 지하철에 올라타 최대치로 가동 중인 에어컨 바람을 접할 때면, 산 채로 냉동되는 물고기의 심정에 매번 빙의하게 된다. 버스, 지하철, 택시, 카페, 식당, 도서관, 심지어 10초 정도 머무는 현금 지급기 박스 안에서도 겨드랑이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순삭’시키는 ‘에어컨 빵빵’의 환경은 쾌적하다고 느끼기 이전에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라는 질문을 내게 던진다.

모두가 겪을 무더위의 고통을 덜기 위해 공공장소에 빠짐없이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은 분명,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더위를 식히는 것을 넘어, 한기를 느끼게 할 정도로 낮은 온도에 온 나라 에어컨이 맞춰져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번에도 아이와 함께 서울 도심의 도서관에 갔다가 두 시간을 채 견디지 못하고 나왔다. 일부 카페는 에어컨의 찬 바람을 막게 하려고 숄을 비치해 두기도 한다. 하루 종일 냉방 버스를 운전해야 하는 버스 기사들은 필시 긴 팔을 입고 있다.

사람은 적정 체온을 유지해야 원활한 신진대사를 유지한다. 체온이 1도 내려가면 면역력은 30% 떨어질 만큼 인체에 치명적이다. 에너지 대사율이 감소해 혈액 순환에 문제가 발생하며, 냉방병은 물론, 감기 바이러스, 대상포진에도 쉽게 노출된다. 찌는 듯한 더위와 얼리는 듯한 찬 바람이 끊임없이 교차하도록 설정된 한국의 여름은 인체 면역력을 박살 내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그 결과는 한여름에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19(혹은 여름 감기)로 여지없이 드러난다. 내가 가진 어떤 상식으로도 이 과도한 냉방 사회에 대한 전 국민의 암묵적 동의를 납득할 수 없으나, 이에 맞서 일일이 싸울 수도 없다. 하여 나는 한 달의 한국 체류가 평화롭게 흘러가도록,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주문을 건다. 매서운 에어컨 바람에도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에어컨 없는 파리 올림픽 선수촌, 죽을 수도 있다”

그렇게 마음 다잡으며 한국에서 며칠 지낼 무렵, 페이스북을 통해,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한 기사를 접했다.

7월 10일 자 <SBS> 8시 뉴스는 “폭염에도 ‘노 에어컨’…선수만 고생, 파리 무슨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전하고 있었다. “40도를 넘나드는 더위 속에 이번 달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에서는 선수촌에 에어컨이 없습니다. 탄소배출을 줄이겠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선수들만 고생시킨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연일 4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에 에어컨이 없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놀랄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기사가 나온 날과 그 전날, 파리의 최고기온은 26도였고, 7월 한 달 평균 최고 기온은 25.8도, 평균 최저 기온은 16.0도였다. 파리 기온이 섭씨 40도에 근접한 날은 없었다. 올림픽이 열리던 17일간(7.26~8.11) 30도를 넘어서는 날이 닷새 있었으나, 그런 날에도 아침, 저녁으론 기온이 떨어지며 선선한 날씨를 이어갔다.

소위 열대야는 없었다. 더구나 습하지 않은 보송한 여름이기에 해가 쨍쨍한 낮에도 그늘 속에 있으면, 거의 더위를 느낄 수 없다. 전형적인 파리의 여름 날씨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기자에게 전혀 의미 없었다. 에어컨 없는 선수촌 폭로(!)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SBS는 이틀 뒤 다시 한번 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파리 올림픽 선수들 죽을 수도….”

기사가 나온 당일(12일) 파리 최고 기온은 섭씨 20도, 최저 기온은 섭씨 14도로 오히려 아침저녁으로 서늘하다고 느낄 수 있는 날씨였다.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는 대신, “차가운 지하수를 선수촌 내부로 끌어 올려 실내 기온을 바깥보다 6도 낮게 유지하겠다”는 파리 올림픽 위원회의 답변에 대해, 기자는 “하지만, 40도에서 6도를 낮추면 34도입니다”라며, 마치 평균 기온이 40도인 듯 보도했다.

댓글로 드러나는 독자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이래서 공산주의가 무서운 거다”, “이것은 타국 선수들을 탈진시켜 메달을 독식하려는 프랑스의 음모다”, “저런 결정한 인간들 집엔 다 에어컨 빵빵 틀면서 살 거다”, “센강은 똥물이고 프랑스는 거지들 득실거리는 후진국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이 과도한 한기에 대한 불만이 여행의 즐거움을 잠식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나와 정반대로, 이 익명의 다수는 선수단 숙소에 에어컨을 제공하지 않는 프랑스를 향해 폭탄이라도 날릴 기세였다.

물론, 근거 없는 정보인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라는 기자의 전제가 빌미를 제공했지만, 파리까지 날아간 다른 모든 한국의 특파원들은 이 오보를 시정하는 대신, “에어컨 제공 않는 선수촌”을 테마로 수십 개의 기사를 만들어 온 국민이 같은 분노에 접속하게 했다. 기사의 효과는 명백했다. 그날 이후, 내가 만나는 모든 한국인들은 파리 올림픽 위원회의 만행에 공분을 표했으니.

이런 기사가 하나였다면, 개인의 일탈이겠으나, 모든 한국 언론이 한 입으로 같은 얘기를 했고, 실제 파리의 기후가 어떤지 확인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은 상황에서, 독자들 또한 기꺼이 그 장단에 맞춰 반응했다면, 이는 분석을 필요로 하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된다. 그 기사들과 댓글들이 일제히 수렴하고 있는 한 가지 확신은 “그래서 우리나라가 제일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이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빈틈없이 가동 중인 에어컨은 우리가 선진국임을 증명하는 자부심의 중요한 근거라는 사실이다.

 

파리 아파트엔 에어컨이 없다

사태를 관망하는 동안, 오랜 기억의 회로 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재미있는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2002년, 지금의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그의 별장이 있는 부르고뉴로 향했을 때다. 그의 차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수년째 세차를 하지 않은 듯, 해묵은 먼지가 두텁게 차를 뒤덮고 있었고, 차 안엔 낙엽이며 종이 쪼가리 등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당시 7월 초의 파리 날씨가 어땠는지와 상관없이, 그의 차에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몹시 화나게 했다. 이 남자가 이 정도로 시대를 역행하는 괴팍한, 반사회적 인물인가? 새삼 심각하게 그와의 만남을 고민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고, 다른 프랑스인들의 차에 올라탈 기회를 갖게 되면서, 거기에도 에어컨이 없거나 있어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알게 된다. 이 나라 기후가 딱히 에어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 여름이지만, 대륙성 기후의 여름과 지중해성 기후의 여름은 같은 여름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은 5년쯤 산 후에야 비로소 명백해진다. 이 동네 사람들이 다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며, 이들이 추구하는 럭셔리한 차의 전형이 있다면, 에어컨 빵빵한 최신형 차가 아니라, 빈티지 오픈카라는 사실도 서서히 알게 된다.

에어컨 없는 그의 차에 대해 내가 보인 짜증은 더위에 대한 신체적 반응과 무관했다. 단정한 세단, 더위를 차단하는 냉랭한 차 안의 에어컨 바람은 90년대 이후 우리가 도달한 안락한 삶의 수준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하물며 여기는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 인식하던 나라가 아니던가. 거기서 우리가 수십 년 전 지나온 꼬라지(?)를 발견하는 것은, 한국이라는 역사 공동체에 30년 넘게 일원으로 참여해 온 나에게 불가역적인 거부감을 유발하는, 사회심리학적 차원에 속하는 반응이었던 셈이다.

파리 올림픽 선수촌을 취재한 기자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는 동포들에게 에어컨도 없이 선수단을 초대한 파리올림픽위원회의 만행을 알려야만 했고, 40도 운운하며 기온을 뻥튀기한 것은, 한국의 동포들이 맘 편히 분노할 수 있도록 친 양념, 기자적 센스였을 뿐이다. 옆에서 누가 그 어떤 합리적 설명을 건넸다 해도, 기자는 마땅히 분노를 느꼈을 것이고, 심지어 20도의 날씨에서도 40도의 무더위를 느꼈을 것이다.

기자는 안 이달고 파리시장의 과거 인터뷰를 인용하며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운동선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이를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 에어컨 미설치의 이유인 듯 설명했다. 물론 이달고 시장은, 올림픽 이전부터, 생태주의를 명확한 시정 노선으로 설정하고 실천해 가는 인물이다. 서울의 종로에 해당하는 파리 중심의 8차선 도로 리볼리가를 2개 차선만 남겨 놓고 모두 자전거에게 내준 것은 이달고가 아니라면 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그 결과 현재 파리의 자전거 이용자는 승용차 이용자를 3배 수준으로 앞선다. 그러나 에어컨 없는 선수촌은, 딱히 정치적 결단에 따른 놀라운 선택이라기보다, 프랑스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선에서의 판단이다. 한국 네티즌들의 상상과 달리, 파리의 거의 모든 아파트에는 에어컨이 없다. 파리 날씨에 익숙한 이곳 주민들의 상식은 그것이 필요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7월 중 최고 기온 평균치가 26도인 건조한 날씨다. 개인들은 선풍기 정도로 각별히 더운 며칠을 대비하고, 파리 올림픽 선수촌은 선풍기 + 차가운 지하수를 선수촌에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실내온도를 바깥 온도보다 6도 낮게 만드는 테크닉을 추가로 도입했다. 그 이상의 온도 차는 사실상, 각별히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유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의학적 상식이다.

 

2024년 7월 파리의 일일 최고·최저 기온

 

강력한 에어컨 바람, 열대야, 재창궐 중인 코로나19 

한국의 여름은 해마다 놀랍도록 더워지고 있다. 점점 더워지고 있는 지구는 국제적인 걱정거리이고, 기후변화는 인류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지만, 무더위에 대한 한국의 유일한 대책은 에어컨을 세게 트는 것뿐인 걸로 보인다.

한 일간지는 폭염 대책을 찾겠다고 모인 국민의힘 지도부가, 회의 시각인 오전 9시 현재, 이미 30도에 이른 바깥 기온에도 넥타이와 양복 정장을 착용한 모습으로, 섭씨 19도에 맞춰진 에어컨 앞에 모여 앉은 사실을 전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아무 대책도 찾지 못하고 회의를 마쳤다. 에어컨 섭씨 19도도, 정장 양복도 포기할 의사가 없는 이들에게, 에어컨 남용과 점점 더 올라가는 수은주, 창궐하는 코로나 사이의 상관관계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기자들이 파리의 선수촌이 제시하는 해법 앞에서 본 것은 오직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 뿐인 것과 마찬가지다.

에어컨 실외기는 에어컨이 가동될 때, 50~70도의 열을 바깥으로 배출하며 도시 열섬 현상을 만드는 주범이다. 에어컨을 틀면 틀수록 대기는 뜨거워지며, 특히 밤의 온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가 떨어진 후에도, 열대야가 이어지는 이유를 짐작하게 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전국의 진단기가 동날 지경으로 다시 창궐하고 있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지난 6월, 뉴욕에 사는 한국인 지인이, 딸을 데리고 파리에 온다하여, 넓은 주택을 가진 이웃의 집 한 층을 빌려주도록 주선한 일이 있었다. 6살인 그녀의 딸은 비행기 안에서 감기에 걸린 채로 파리에 도착했다. 이웃의 집에는 에어컨이 없고, 선풍기만 층마다 있었다. 정원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시원함이 느껴지는 집이었으나 그녀는 집에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에 경악, 아이를 데리고 당장 에어컨이 있는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그날 최고 기온은 섭씨 25도였다. 적당히 온화한 날씨였건만, ‘에어컨 빵빵 = 문명스러운, 그래서 안전한 세계’라는 기이한 믿음은 나란히 기후 악당 국가인 한국과 미국에서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어컨 부재는 개인 가정만의 일반적 현실은 아니다

파리의 지하철은 일반적인 에어컨 대신, 냉장 환기 시스템으로 더위에 대응한다. 이 방법은 더운 날일 때, 실내 공기를 바깥 온도보다 약 4도 정도 낮춰주는 효과를 갖는다. 바깥 온도와 실내 온도 차가 크게 날 때, 면역력에 치명타를 입힌다는 점을 고려하면, 바깥 온도에 연동하여 4도 낮게 조절하는 이 방식은 인체 건강을 섬세하게 고려한 방식이며, 일반 에어컨과 달리 바깥 기온을 상승시키지 않는 장점이 있어, 지구를 괴롭히지도 않는 착한 기술이다.

하지만 차량 안에 승객이 꽉 차 있는 더운 날엔, 냉방 시설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단점도 있다. 현재 파리 14개 지하철 노선 가운데 7개 노선이 이러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 노선들은 전통적 선풍기 방식에서 점진적으로 이 방식으로 바꿔 가는 중이다. 이들이 더위 대응에 이토록 느긋한 것은, 파리에 섭씨 30도 이상의 더위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게 된 것이 비교적 최근이며, 시민들 인식 속에 “여름엔 더운 게 당연한 거다”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너무 더운 날 조금 덜 덥길 바랄 뿐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그들의 발달한 두뇌로 개발한 테크놀로지가 우리에게 비싼 대가 없이 허락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일 것이며, 그 이상을 바랄 경우, 우린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한 달 동안 이어지는 열대야, 여름에 다시 창궐하는 코로나 같은.

 

여름에 더울 권리의 회복… 어려운 과제에 입문할 때

우리가 사는 지구별엔 사계절이 있다. 한국은 또렷한 사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장점으로 삼아온 나라이기도 하다. 계절은 철마다 다른 곡식을 자라게 하고, 산하를 울긋불긋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이는 데에만 기여하지 않는다. 자연의 일부인 사람도, 그 사계절의 리듬 속에 살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름엔 햇볕을 넉넉히 받아 비타민 D를 비축하며, 다가올 가을과 겨울의 추위에 대비, 면역력을 튼튼히 하고, 추운 계절에 활발히 움직이지 못해 몸에 축적된 노폐물들을 땀을 통해 밖으로 배출하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8월 19일, 서울은 29일째 열대야를 겪고 있으며 이는 117년 만의 최장 기록이라고 기상청은 말한다. 밤에도 새벽에도, 기온이 섭씨 25도 이하로 떨어지지 못하게 만드는 그 직접적인 장본인은, 과도한 냉방으로 실내를 식히느라 동시에 대기를 더 뜨겁게 덥히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4~5월부터 켜기 시작한 지하철 에어컨은 10월,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올 때까지도 끄지 않는다. 마침내 그걸 끈 다음 날엔 난방을 튼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여름에 실내에서 양복 정장을 입고, 겨울엔 반팔티를 입고 사는 것을 자랑으로, 마침내 도달한 여유로운 삶의 상징으로 여긴다.

실내 온도를 자연에 맡기지 않고, 온전히 인간이 테크놀로지로 조절해야 한다는 사고가 우리 사회에 깊게 정착하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봄과 가을이 사라져 가고, 여름과 겨울만 남는 기후로 변해가고 있다고 푸념한다. 기후를 그렇게 만드는 주체가 바로 우리 자신임을 깨닫지 못한 채.

지구촌에 초대받은 모든 주민들은 자연이 더위를 선사하면 더위를, 추위를 주면 추위를 일단 받아들인다. 자연이 제시한 주거 조건을 수용하면서, 나무들은 잎을 떨구는 것으로, 어떤 동물은 겨울잠을 자는 것으로 저마다 적절한 적응의 해법을 찾으며 번성해 왔다. 인간은 집을 짓고, 난방기와 냉방기를 만들어 더위와 추위를 피해 왔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의 무한한 발전은 여름에 춥고, 겨울에 덥고자 하는, 자연을 전면적으로 거스르는 오만한 욕망까지 낳기에 이르렀다. 어머니 지구를 심각하게 공격하는 그 오만은 당장 살벌한 대가를 요구받는다.

도심에 나무를 더 심고,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겨울엔 더 탄탄한 단열과 따뜻한 옷으로 체온을 유지하는, 더위와 추위를 부정하는 대신 ‘완화’할 수 있는 방법 속에서 안락을 추구할 때, 우린 비로소 자연과 화해할 수 있는 길목에 들어설 것이다. 물론, 얼마나 어려울지를 안다. 전속력으로 앞을 향해서만 달릴 줄 알았던 사람이 속도를 줄여 달리는 것이, 가끔은 되돌아가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 우린 그 어려운 과제에 입문해야 할 때다.

 

 

글·목수정
파리에 거주하며, 칼럼 기고와 책 저술, 번역을 하고 있다. 2023년 최근 저작으로 『파리에서 만난 말들』 , 역서로는 『마법은 없었다』 (알렉상드라 앙리옹-코드 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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