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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현대사를 다루는 팩션 시대극의 한계-<행복의 나라>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현대사를 다루는 팩션 시대극의 한계-<행복의 나라>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4.09.0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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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나라>는 태생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영화일 수 있다. 시대 배경, 인물, 주제 등 여러 측면에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영화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행복의 나라>는 우리나라 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과 겹치는 점이 많다. <행복의 나라>는 10·26 직후 진행된 김재규와 박태주 대령의 군사 재판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남산의 부장들>과 <그때 그 사람들>이 다룬 이후의 사건이면서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서울의 봄>보다는 앞선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에서 촉발된 현대사의 격랑은 <박하사탕>과 <택시운전사>로 이어지고, 그 범위를 조금 넓히면, <변호인>과 <1987>, 나아가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전두환 암살 시도를 소재로 한 <26년>으로 그 흐름이 연결된다. <행복의 나라>는 현대사의 빈 공간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영화인 셈이다. <남산의 부장들>부터 <26년>까지 연속해서 영화를 본다면, 한국 현대사의 큰 줄기와 각 사건의 역사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행복의 나라>는 ‘사이’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소재, 시대, 주제, 인물 등 여러 측면이 앞에서 언급한 몇몇 영화들과 겹치거나 혹은 다른 영화들의 중간지대에 있다. 인물의 관점에서 보면, 정인후 변호사는 전삼두와 박태주 대령 사이에 있는 존재이다. 실제로 정인후 변호사는 시대의 야만성을 대표하는 절대 악인 전삼두와 군인정신에 투철한 원칙주의자인 박태주 대령 사이에서 고군분투한다. 즉 <행복의 나라>는 재판에서 이기고 지는 것에만 의미를 두었던 정인후 변호사가 박태주 대령의 세계를 통과하면서 전상두와 대립하고, 이를 통해 정의와 역사의식에 눈을 뜨는 인물로 변화하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행복의 나라>는 정인후 변호사의 성장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군인정신의 관점에서 보면, 박태주 대령과 전삼두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행복의 나라>에서는 박태주 대령과 전삼두가 직접 부딪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두 인물의 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행복의 나라>의 정인후 변호사는 익숙한 캐릭터이다.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와 매우 유사하다. 정인후와 송우석은 돈 혹은 재판에서의 승리만을 추구하던 세속적인 변호사에서 시국 사건과 관련한 인물의 변호를 맡으면서 내면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물이다. 속물로까지 불리던 변호사가 시대의 폭력에 희생당한 인물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변호인>의 국밥집 아들과 <행복의 나라>의 박태주 대령의 표면적인 행적은 다르지만, 그들은 야만적인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관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닌 인물이다. 두 영화는 법정 드라마로서 검사와 변호사의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는 점도 유사하다. 군사정권의 앞잡이인 검사와 판사, 인권변호사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는 설정도 비슷하다. <행복의 나라>는 상관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했던 박태주 대령의 군인정신을 부각하고, 나아가 ‘옳고 그름’의 문제를 탐색한다. <행복의 나라>의 이러한 선택은 <서울의 봄> 혹은 <변호인>과 차별성을 지니면서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행복의 나라>는 법정 드라마라는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법정 장면의 비중이 크지 않다. 실제 역사에서 박태주 대령의 재판이 단심 군사 재판이었기 때문에 영화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적었을까? 그렇다고 해도, <행복의 나라>가 법정 장면을 조금 더 부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법정 장면 대신 한남동 공관, 골프장, 국방부로 서사 공간을 확장하면서 이야기의 초점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정인후 변호사가 정 총장이나 전상두 합동수사단장을 만나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이는 영화적 상상력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수용 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러한 인물과의 만남에서 정인후 변호사가 보여주는 퇴행적인 행동이 문제가 된다. 정인후 변호사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파워 게임을 이용해서 재판에서 이기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박태주 대령이 풀려났다면, 과연 박태주 대령은 정인후 변호사의 행동에 동의했을까?

 

<행복의 나라>에서는 특히 골프장 장면이 아쉬움을 남긴다. 이 장면은 ‘이기고 짐’의 세계에서 ‘옳고 그름’의 세계에 진입했던 정인후 변호사가 세속적이고 퇴행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그로 인해 영화의 흐름이 역류한다는 점에서 불편하기까지 하다. 이 골프장 장면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태주 대령을 살려내려는 정인후 변호사의 의지 혹은 그의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의미를 지닌다. 야만의 시대를 만든 인물에 대한 매서운 질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장면은 정인후 변호사의 행적의 일관성을 해치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정인후 변호사가 전상두를 만나는 장면의 개연성, 즉 정인후와 같은 인권변호사가 전삼두를 만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 아니라 정인후 변호사의 행동과 대사가 서사의 일관성을 해친다는 점이 문제이다. 무엇보다 전상두를 향한 정인후 변호사의 절규는 과유불급이다.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장면은 인물이 대사와 행동을 통해 주제를 직접 설명함으로써 영화의 여백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역할을 한다. 정인후 변호사의 마지막 변론 장면도 이와 비슷하다.

<행복의 나라>는 주인공의 감정의 진폭이 큰 영화이다. 여기에 액션과 유머 코드까지 가미되어서 장르적으로 혼란스럽다. 10·26과 12·12 군사 정변은 사건의 개요와 관련 인물에 대한 평가가 거의 마무리된 상황이다. 전두광이든 전상두이든, 한국영화에서 ‘전두환’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격은 대동소이하다.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두환’과 반대편에 있는 다른 캐릭터의 입체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행복의 나라>에서 정인후 변호사는 전형적이고 익숙한 캐릭터이고, 박태주 대령은 단선적이고 평면적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캐릭터와 캐릭터가 갈등하고 부딪쳐서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부족하다. <서울의 봄>과 <변호인>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행복의 나라>가 팩션 시대극으로서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대사의 중요 사건을 다룬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1970~80년대만 해도 MZ 세대에게는 먼 과거로 느껴질 수 있는데, 영화를 통해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다만 현대사를 다루는 영화도 이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실제 사건 혹은 인물과 심리적, 서사적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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