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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우리가 곧 ‘이재명’이다
이재명, 우리가 곧 ‘이재명’이다
  • 성일권(<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5.05.03 0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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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꿈틀거리는 윤석열 사단의 위험한 곡예
- 공화국의 '법복', 피와 눈물로 쟁취한 민주주의의 상징

나는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의 정치 철학이 점점 보수화하는데 우려감을 갖는다. ‘연금 개혁’이나 ‘노동 유연화’ 같은 보수적 의제에 손을 대려는 그의 움직임은, 그가 대표해왔던 정치적 약자들의 언어를 점차 잃어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선, 그와의 철학적 차이를 따질 때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법정에 선 것은 이재명이 아니라, 민주주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한 정치인의 철학에 대한 평가 이전에, 민주주의 그 자체가 법복을 쓴 자들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꿈틀거리는 윤석열 사단의 위험한 곡예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 요직에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거나 검찰 출신으로 유사한 성향을 지닌 인물들을 다수 임명했다. 그 결과, 대법원은 더 이상 삼권분립의 균형자가 아닌 정권의 이해관계를 대리하는 정치적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이재명 대표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은 그 상징적 절정이다. 이 결정은 법적 판단이라기보다, 선거를 앞두고 야당 대표를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설계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법정에 선 것은 이재명이지만, 실상 그 뒤에 선 것은 민주주의 그 자체인 셈이다.

민주주의 선진국 어디에서도 ‘선거 직전 야당 후보 지우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판결의 본질은 ‘법대로의 정의’가 아니다. 그것은 정권이 사법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는, 사법 쿠데타의 전형적 형태다. 문제는 이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인가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익숙한 권위주의의 언어에 있다.

그러나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지식 엘리트층’이 예찬하는 서구 국가들을 보라.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91건의 형사기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연방대법원은 콜로라도주가 트럼프를 후보 명단에서 제외한 판결을 전원일치로 뒤집었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정치적 후보의 자격 문제는 유권자의 몫이다.”  미국 사법부는 ‘국민의 선택권을 대체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원리를 지켰다.

프랑스에서도 마린 르펜이 유럽의회 보좌관 허위고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 판결은 선거 이후에 내려졌다. 그 어떤 정치 세력도 선거 직전에 법적 수단으로 유력 야당 후보를 제거하지 않는다. 독일 또한 극우 성향 정당이나 문제적 정치인이 존재함에도, 선거 출마 자격 박탈은 철저히 유권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정권이나 사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가 ‘정치적 후진국’이라 일컫는 일부 국가들조차, 사법이 정치에 개입해 유력 야당 후보를 선거 직전에 퇴출시키는 일은 드물다. 이는 국제 기준에서 민주주의 훼손으로 간주되며, 국가 신뢰도에 치명적 타격을 입힌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지금 이 경계를 넘었다. 그것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법은 이제 ‘정의’라는 탈을 쓴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다. 영혼 없는 시험머신 같은 고시 출신 엘리트, 돈벌이를 찾아 대형 로펌을 드나들다 대법관이 된 자들, 권력의 단맛에 익숙한 판사들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법률 해석이라는 이름의 정적 제거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법대로 했다.” 그러나 그 법은 누구를 위해 해석되었는가? 무엇을 기준으로 허위와 진실을 나누는가?

국민이 선택한 유력 야당 대선후보를 유죄로 만들고, 내란 유죄인 권력자들의 거짓은 외면하는 그 법은, 이미 중립성을 상실한 사법 권력의 언어다. 이재명은 한 개인이 아니라 ‘정치적 가능성’이다. 이재명은 단지 흙수저에 서울 밖의 성남시장 출신의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기득권이 허락하지 않은 성장’을 이뤄낸 상징이며, 기성 정치 언어로 길 들여지지 않은 ‘다른 정치’의 가능성을 갖고 있기에 많은 유권자들의 심장을 뛰게 했다.

기득권은 그가 전혀 달갑지 않을 것이다.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선거로는 안 되니, 사법으로. 정치는 정권이 맡고, 정적 제거는 검찰과 대법원이 맡는 체제가 구축되었다. 그의 ‘말’과 그의 태도를 문제삼았다. 그리고 사법의 이름으로 그를 죄인 취급하고 있다.

우리는 왜 “우리가 곧 ‘이재명’이다”라고 외쳐야 하는가. 나는 그를 전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지점에서 정치철학의 거리감도 느낀다. 그러나 지금 그와의 거리보다, 그를 향해 날아든 판결문의 방향을 주목한다. 그 칼날은 이재명 한 사람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표현과 선택, 말할 권리와 거부할 권리를 겨눈 것이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법복', 피와 눈물로 쟁취한 민주주의의 상징

 

윤석열이 임명한 대법관들이 주도한 이 판결은, 헌법의 이름으로 헌법과 민주주의를 짓밟은 사건이다. 기억하라! 법관들, 당신이 입은 매끈한 법복은 저 멀리 동학혁명에서부터, 3.1운동, 4.19혁명, 5.18 저항, 6.10민주화 운동, 엄동추위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절대권력의 무법 통치에 항거해 피와 눈물로 쟁취한 공화국의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검찰 권력이 독주하면서 특정 정치세력의 ‘정의’ 독점이 과도할 정도다. 모든 권위주의 체제는 처음엔 ‘정의’를 말하며 등장한다. 그리고 끝엔 늘 ‘정의’의 이름으로 무너진다. 민주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선언하며 말해야 한다. 이재명, 우리가 곧 ‘이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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