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애국단체로 매끈하게 포장된 극우 세력의 폭력시위를 보면서, 지구 반대편의 극우 세력을 떠올려본다. 우리의 젊은 극우들이 거대한 권력과 자본을 쥔 늙은 극우들의 전위대로 ‘소비’되는 반면, 프랑스의 젊은 극우들은 뛰어난 정치력으로 집권을 넘겨보고 있다. 목적을 위해 동원하는 폭력과 정치력은 분명 다르다.
프랑스 정치의 정상에 순식간에 오른 조르당 바르델라의 정치력을 말하고 싶다. 겨우 28세의 나이인 그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대표로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중요한 정치 협상 파트너로 프랑스와 유럽연합의 기성정치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바르델라는 파리 외곽의 노동자 계층 지역인 센생드니에서 성장했다. 16세에 국민연합에 가입했으며, 이후 소르본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다가 제대로 정치를 하기 위해 중퇴 후 당내에서 빠르게 승진했다. 그의 정치적 부상은 신속했다. 당 대변인을 거쳐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국민연합의 대표 후보가 되었으며,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23세였다.
2022년 대선에서 마린 르펜이 마크롱에게 근소한 차로 패한 후, 바르델라는 국민연합의 당대표직을 이어받았다. 이 과정에서 당의 오랜 부대표이자 르펜의 전 연인이었던 루이 알리오를 제치고 당의 실질적 지도자가 되었다. 예측 불가의 프랑스 정치 상황에서 그는 다수당인 야당의 비협조로 난국에 빠진 마크롱의 국민 전환용 등판 요구를 받아 총리가 될 수도 있고, 마린 르펜이 차기 대통령이 되면 총리로 등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만일 바르델라가 총리가 되면 지난 200년 동안 유럽에서 가장 젊은 총리 기록을 세울 것이다.
프랑스와 유럽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이 바르델라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인종차별적인 나치를 연상케 했던 국민연합을 젊은이들의 선택 가능한 친숙한 정당으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그의 국민연합 메시지는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은 완전히 달라졌다.
바르델라는 세련되고 침착하며,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섰고, 지지자들은 그의 태도를 따라 물리력보다는 정책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는 틱톡에서 엄청난 팔로워를 확보했으며, 친근하게 와인을 맛보거나 술을 마시는 영상으로 매번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심지어 그가 사탕을 먹는 영상도 750만 회 조회되었다.
바르델라는 국민연합을 ‘선택 가능한 정당’으로 만들었다. 국민연합의 공약집에는 마치 총리 취임을 앞둔 인물처럼 바르델라의 화려한 초상 사진이 가득했다.
사실, 그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지도자인 마린 르펜이 당의 인종차별적이고 반유대주의적 뿌리를 청산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발탁했지만, 그 후 자신만의 정치력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국민연합을 그 어느 때보다 권력의 문턱 가까이 이끌었다. 지난해 7월 치러진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국민연합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 연합을 압도적으로 제압했고, 2차 투표에서 전체 의석 577석 중 143석을 얻었다. 좌파 연합 NFP(182석),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당 르네상스가 이끄는 중도 범여권 ‘앙상블’(168석)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이에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국민연합 의석수가 기존 88석에서 143석으로 급증했다”며 “‘변방의 왕따’였던 RN이 대중에게 존중받는 주요 정당으로 부상했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바르델라가 이끄는 국민연합은 때로는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NFP)과 힘을 합쳐 집권당이 추진하는 복지 혜택 축소 등을 우려해 강하게 반발하는 등, 생활 정치에 집중해 유권자들에게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도우파 성향의 프랑수아 바이루 전 법무장관을 신임 총리로 앉히고 새 내각을 꾸렸으나 국민연합을 늘 의식해야 하는 처지다. 바이루가 엘리자베트 보른, 가브리엘 아탈, 바르니에 전 총리에 이은 4번째 총리여서 바르델라의 의중을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바르델라의 부상은 극우 국민연합이 현대 정치 무대에서 완전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특히, 국민연합을 극우 독재 정권이었던 비시 정권과 연관 짓는 고령층 유권자들에게는 여전히 두려운 존재지만, 역사적 무게를 덜 느끼는 젊은 층 사이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민연합의 핵심 철학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이민자들이 프랑스의 사회 구조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의 시민권을 폐지하고, 공공복지와 고용에서 프랑스인을 우선 대우하겠다고 공약했다. 경제 정책에서도 그가 있는 국민연합은 대중에게 매력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전기, 연료 등 에너지 제품에 대한 부가가치세(VAT)를 20%에서 5.5%로 낮추고, 일부 필수 품목에 대해서는 아예 세금을 면제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의 발언은 브뤼셀의 유럽연합과 금융 시장을 긴장시키고 있으나 젊은 유권자들은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환호를 보낸다.
나치나 비시정권의 아류로 지탄받았던 극우당을 현대화한 바르델라와 그의 극우 세력이 보여주는 세련된 변화를 지켜보니,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기를 손에 쥐고, 반공주의를 내걸며 빨갱이, 종북 및 친북 좌파 척결을 부르짖는 우리의 극우 어르신네와 젊은 극우들의 분노에 찬 얼굴들이 떠오른다.
개신교 목사는 교회를 버리고 법원 앞과 광화문 네거리에서 쿠데타 내란죄로 기소된 최고 권력자를 영웅화하고, 있지도 않은 빨갱이를 척결하자고 고함지르며, 젊은이들을 선동하고 있다. 어느 정신 나간 정치인은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곤봉과 군홧발로 시위 학생들을 때리고 짓밟은 백골단을 연상케 하는 젊은 극우들의 출정식에 참여해 이들의 시대착오적인 ‘빨갱이 사냥’ 선언에 힘을 실어주다가 비난받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세계화 시대에 프랑스 등 유럽의 극우 젊은이들이 자국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해외자본 및 이민자 규제, 사회보장 확대, 국가 주권 강화 등을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의 젊은 극우들은 1950년대의 이승만 정권 시절에서나 있을 법한 친북좌파 척결, 빨갱이 척결 등 철 지난 선전 선동 구호를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젊은 극우 리더 바르델라에 비견될 우리의 젊은 정치인들이 박근혜 정권, 이명박 정권과 윤석열 정권에 의해 ‘젊은 피’로 발탁되었으나,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준 정치 역량은 초라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그들은 젊은 남성들의 몰표를 잡기 위해 젊은 여성을 악마화하는, 이른바 ‘이대남 전략’을 구사해 윤석열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들이었으나, 결국에는 토사구팽의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 후 그들은 자신들의 젊은 정치력으로 얼마든지 늙은 극우들과 차별화할 수 있었으나, 막후에서 권모술수와 정치적 협잡의 잔재주를 부리면서, 과거 참신한 젊은 정치지도자들의 이미지를 상실했다. 늙은 극우들이 이끄는 대로, 젊은 극우들이 성조기와 이스라엘기, 태극기를 들고서 전국 곳곳에서 탈선한 목사와 정치인들의 구호에 맞춰 빨갱이와 친북 종북 좌파의 척결을 외치는 상황에서 그들은 과연 젊은 리더로서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고민하는 걸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중국의 시진핑 등 주변의 강한 지도자들이 죽기 살기로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우리의 젊은 극우들이 70여 년 전의 빨갱이, 좌파 망령을 쫓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3월호는 유럽 젊은 학생들의 저항, 독일 군국주의, 국가의 역할, 자유의 후퇴, 프랑스 극우의 발자취, 그리고 한국의 계엄 이후 바람직한 정권교체에 대해 집중 진단했다. 부디, 많은 젊은이가 진실한 텍스트의 행간을 읽으며, 우리 사회가 향하는 이정표를 가늠해 보길 바라 마지않는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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