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행정 서비스의 비대면화 - 제도적 ‘학대’
행정 서비스의 비대면화 - 제도적 ‘학대’
  •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 승인 2022.03.02 1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공 서비스의 디지털화는 이제 시민권 신청, 세금 납부, 거주허가 취득 등의 필수 절차에도 적용된다. 그런데 공공 서비스 외에도 일상(여행, 예약, 계정 유지)의 디지털화는 어떤 이들에게는 특별한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필요한 장비가 없거나, 사용기술이 부족한데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이들에게는 말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주창한 ‘스타트업 국가’는, 이들에게는 모국에서의 망명선고인 셈이다.

권리보호관 클레어 에동은 행정당국과 행정 서비스 이용자들의 관계에 대한, 디지털 기술의 역할 증가 보고서 서두에서 “우리 행정관들의 당직실에는 지친 사람들, 때로는 절망에 찬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마침내 사람을 만나 직접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1)라고 운을 뗀다. 켄 로치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가슴 아픈 장면을 기억하는가? 노년의 실직자가 컴퓨터로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스트레스가 지나쳐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만다. 

이렇게, 디지털화로 인해 더욱 비인간화된 행정 서비스를 접하고 절망하는 일이 프랑스에서 매일 반복되고 있다. 프랑스인들 중 1,300만 명, 약 20%가 디지털 기술과 씨름 중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이들의 존재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2) 노인, 농민, 프롤레타리아, 외국인,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 죄수 등 기존 사회질서에서 이미 잔인하게 배제된 이들이 행정 디지털화로 인해 또 다시 희생자가 된다. 반면 기업의 경영진, 고소득자, 고학력자들은 모두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폰을 갖추고 있으며 디지털 행정에 기꺼이 참여한다. 

이미 사회적으로 불안한 상황에 있는 이들이, 공공 서비스에서 배제되고 소외되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보건 비상사태에서 재택근무, 원격교육, 인터넷을 통한 진료 예약이 일반화되면서 기술 소외 계층도 늘어났다. 이와 같은 취약계층 배제는 때로는 민주적 삶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예를 들어 환경운동가들이 자신들의 대통령 선거 후보자를 결정하기 위해 “모두에게 열린” 온라인 투표를 실시할 때 드러난다. 이 “모두에게 열린” 투표에 참여하려면, “투표 링크를 받기 위한 개인 이메일, 투표 인증 코드를 받기 위한 휴대폰 번호, 참가비 2유로 결제를 위한 신용카드”가 필요하다. 

에동은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느 누구도 행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권리와 혜택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많은 이들에게 “강요된 비대면화”는 효율성보다는 “일종의 제도적 학대”에 가깝다고 단언한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번역·김루시아
번역위원


(1) “Dématérialisation des services publics: trois ans après, où en est-on ? 공공 서비스의 비대면화: 3년 후, 우리는 어디에?", 권리보호관 보고서, 2022년 2월 16일.
(2) Julien Brygo, ‘Work, family, wifi 언택트 사회에서 안녕하신가요?-노동, 가정, 와이파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0년 6월호.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