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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제 역할을 포기하면 민주주의는 망가진다”
“언론이 제 역할을 포기하면 민주주의는 망가진다”
  • 강형원 l 재미 언론인
  • 승인 2023.05.3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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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2회 수상한 재미언론인 강형원 기자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은 포토 저널리스트 겸 칼럼니스트인 강형원 기자는 5월 9일 서울 인사동 관훈클럽의 ‘좋은 기사 연구 모임’에서 열린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자유로운 언론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한국 언론의 순치적인 보도행태를 지적했다. 전직·현직 언론인이 모여 언론의 바람직한 역할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해 발족한 ‘좋은 기사 연구모임’은 매월 독보적인 활동을 해온 유력언론인의 초청 강연을 열고 있다. 최전선의 역사현장을 카메라에 담아온 강 기자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폭동이었던 LA 4·29 폭동을 비롯, 9·11 참사, LA 지진 현장, 격변의 북한과 남한 사회 등을 취재하며 미 주류 언론에서 이름을 떨쳐왔다. 본지는 독자 여러분과 더불어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고자 그의 강연 요지를 발췌해 게재한다. (편집자 주)

 

이상적 사회, 언론의 독립에 달려있어

 

<2002년 6월 1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순방에 동행하기 위해 에어 포스 원에 탑승하기 직전 강형원 기자> © 조 마켓(Joe Marquette)

미국에서의 언론의 정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보도(free & independent press)’입니다. 언론은 외부 압력으로부터 독립된 자유를 가진다는 것이죠. 한국에서 와서 깜짝 놀란 것이 있습니다. 언론들이 자유롭게 취재할 수는 있지만, 외부의 압력에 너무나 많은 영향을 받는 사실입니다. 한국적인 환경에서 취재의 자유 같은 모든 요소가 잘 작동한다고 가정했을 때, 언론사들이 비영리적으로 운영되기만 한다면 완벽한, 이상적인 사회가 될 것입니다. 

미국 언론도 경제적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미국의 전통적인 환경에서는 언론의 윤리에 관한 매우 엄격한 원칙이 작동합니다. 한 번은, <LA타임스>의 편집장(Editor, 신문의 전체 내용을 책임진다 - 역주)이 사임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LA의 ‘스테이플스 센터’ 개관 소식을 알리는 기사와, 그곳의 광고가 같은 날 신문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LA타임스>의 한 기자가 이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편집장과 CEO를 직접 취재했고, 그들이 해당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막지 못했음을 폭로하는 분석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결국 편집장은 직무 유기로 판명돼 사임했습니다. 이처럼 미국 언론계에서는 광고국과 편집국 사이의 벽이 매우 높습니다.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절대로 알아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미국 언론의 기본자세입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그렇지 못한 언론이 있지요. 그것은 독자들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뉴스미디어의 정의는 전통적인 미디어 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와 웹미디어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언론인들이 제일 많이 쓰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트위터’인데, 이 트위터를 느닷없이 일론 머스크라는 사업가가 사서, ‘트위터 블루’(공공기관, 기업, 단체, 유명인사 등의 계정에 주어지는 표식)를 상품화했습니다. 과거 트위터 블루 계정은 공식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젠 돈을 지불한 사람이라면 어떤 검증도 없이 이 표식을 가질 수 있어요. 아주 혼탁해진 겁니다. 이런 것이, 사업이 언론에 개입하면 생기는 문제입니다.

 

시민의 분별능력, 언론의 의무

민주주의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언론을 통해 계속 정치·사회적인 역사 교육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그것을 현재 정치상황에 적용해 분석하는 것. 그런 지식을 총정리해 이 사회에 “쏟아내는 것”이 언론의 역할입니다. 설령 학교에서의 교육이 부족했더라도, 언론이 메워줄 수 있는 것이죠. 가령 미 45대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처럼 자극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이 나오면, 언론이 역사와 전통에 견줘 그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1801~1809년 재임)은 “신문이 없는 정부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후자를 택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민주사회에서 정권은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지만, 언론은 불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언론은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데 아주 막강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권자의 ‘분별능력’, 이는 언론이 매일 책임져야 하는 몫입니다. 분별능력이란 사실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갖춰야 그 사회가 건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사회의 가장 큰 취약점이기도 합니다. 한국 언론이 이 부분에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한국적 주체성은 ‘주인의식’에서 시작된다

 

<1987년 서울에서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모습>  © 강형원

‘한국’이라는 정체성은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합니다. 제가 1987년에 한국에 돌아와 민주화 운동을 경험했습니다. 이때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느꼈는데, 한국인들은 오직 민주주의를 요구할 뿐 약탈 등의 재산피해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려면 말단 경찰에게도 강력한 권한을 줘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데모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질서가 유지됐습니다. 이후 근접 취재를 통해 한국 대통령이 선서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미국은 대통령 선서를 성경에 하는데, 한국 대통령은 ‘국민’에게 하는 모습을요. 천지인(天地人) 사상이 문화적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군주도 많았습니다. 일전에 수원 지역에서 취재하던 중 알게 된 사실인데, 조선의 정조 대왕이 화성을 지을 때 70만 명의 인부를 동원하면서 이들을 22개의 직종으로 나누고 훌륭한 인부에게 일종의 인센티브를 줬다고 합니다. 정조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이미 구상했던 겁니다. 또 훈민정음과 한국어에는 어떤 문자나 언어도 따라오지 못하는 명료함과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의 한국 사회를 보면, 나라의 주인이 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이들이 몇몇 있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사람은 너무나 많지만 나라의 주인이 되겠다는 사람은 통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 관련 정책을 살펴봐도 ‘통일’이라는 단어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70년 전 강대국들이 그어놓은 선을 아무도 넘지 않은 채 지키는 걸 보면, 이 땅의 뿌리 깊은 사대주의가 없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군 복무하는 청년들의 막대한 희생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세대에 대한민국을 넘겨줄 때, 어떻게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1992년 4월 29일 로스앤젤레스 폭동 첫날 밤 페이리스 마켓(Payless market)의 주인인 코넬리우스 페투스가 이웃 업소 에이스 글라스(Ace Glass)의 불을 끄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 강형원

언론이 가장 핵심적으로 독자들에게 강조해야 하는 것은 ‘사회참여의 책임감’입니다. 이게 무너지면 나라가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LA폭동을 살펴보면 시민들의 주인의식과 사회참여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LA폭동이라는 한흑갈등은 미국의 빈부격차와 흑백갈등이 번진 것입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사회복지예산을 대거 삭감하자 계층갈등이 폭발했어요. 월남전 참전 용사가 전쟁 후유증으로 경제활동을 못해 길거리에 나앉아도 도움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결국 폭동이 일어났고, 화살은 한인에게 돌아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문화적인 장벽을 넘지 못한 이민자들이 많았습니다. 폭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한인들이 지역 발전에 기여하지 않고, 흑인 동네에서 장사하며 돈만 벌어간다고 생각해 분노했습니다. 반면 추수감사절 파티를 열고, 지역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사회참여를 한 한인들에게는, 흑인들이 먼저 찾아와 그들의 상점을 지켜줬습니다. 

 

<1992년 L.A. 4.29 폭동 당시, LAPD 경찰이 철수한 한인타운을 지키는 한인청년들의 모습>  © 강형원

그렇다면 이 위기를 한인 이민자들은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한인 남성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직접 총을 들고 나가서 지켰습니다. 미디어에 공개된 이런 모습들은,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개선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미국 TV에는 멋진 아시아인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당시 <LA타임스>에서 일한 저는 당시의 기록으로 1993년 퓰리처상(언론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였습니다. 1992년까지 미 주류 언론에서 소수민족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값진 일입니다.

 

언론은 리더, 역할과 책임 무거워

이 사회에서 언론은 리더입니다. 때문에 언론은 진실성, 투명성, 도덕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지, 입으로만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맥락으로, 사진기자들은 연출하지 않습니다. 제가 평생을 바쳐온 포토저널리즘은 ‘언제’, ‘어디서’, ‘어떤 맥락으로’ 사건이 벌어졌는지 사진 한 장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의미를 찾아내 담아내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역사적 자료를 찾아보면 가장 확실한 정보는 사진입니다.

 

<9.11 테러 당시 미국 펜타곤이 불타고 있다> @강형원 기자

대한민국에 와서 대통령 취재를 할 때, 대통령이 차로 이동할 때, 기자 차량의 위치가 어디냐고 물으니 맨 뒤라고 하더군요. 맨 뒤에서 대통령을 어떻게 기록합니까? 제가 <LA타임스>를 떠나 <AP통신> 소속 사진기자로서 백악관에서 취재를 했을 때, 기자 차량은 대통령 뒤 다섯 번째였습니다. 리무진이 서자마자 기자들이 내려서 가면,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서 딱 취재를 시작할 수 있는 정도 거리입니다. 이건 “저 뒤에 가서는 우리가 일을 못한다, 앞에 넣어줘라”라고 우리 기자들이 요구해서 얻어낸 전통입니다. 이런, 진실성을 위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언론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부시 미 전 대통령이 어떻게 의회에서 ‘이라크 전쟁’ 선포를 받아냈는지부터 설명하겠습니다. 미국에서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것은 의회밖에 없는데, 이때 언론의 역할이 막강했어요. 저는 부시 행정부에서 언론을 이용해 먹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부시 행정부의 첩보를 근거로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미국 주류 언론이 이를 앞다퉈 보도했죠. 부시 행정부는 그 기사를 의회로 들고 가서 전쟁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전쟁 선포를 받아냈습니다. 문제는 다들 아시다시피, 이런 정보에 대한 팩트 체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당시 미국 외교관으로 일하던 조 윌슨 (Joseph C. Wilson) 대사입니다. 그는 니제르에서 조사하며, 이라크에 관한 정보에는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보복이었을까요? 당시 조 윌슨 대사의 아내는 CIA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요. 미국 행정부에서, 그것도 미국 역사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이 그녀의 실명을 언론에 슬쩍 흘려버렸습니다. <뉴욕 타임스>의 주디 밀러(Judy Miller) 기자가 그 이름을 단독 보도 했는데, 그 기사는 첩보의 신빙성을 더해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언론 자유에 입각한 행동이었더라도 이것은 국가기밀을 공개한 범죄였습니다.

이후 이어진 재판에서 기밀정보의 출처를 밝히기를 거부한 주디 밀러 기자는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갔습니다. 결국 부통령 비서실장이 기밀 누설을 자백했으나 곧 사면이 됐고요. 주류 언론에서 설 자리를 잃은 밀러는 <폭스 뉴스(FOX News)>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부시 행정부 매파들의 잘못된 정보를 보도했다”며 사설을 통해서 사과했습니다. 이미 이라크에서 수많은 희생을 낳은 뒤였지만 말입니다.

 

최근 대한민국 대통령실은 기자들에게 행사를 공개하기보다는 사진자료 등을 직접 제작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조명이나 구도가 연출된 사진들이 너무나 많이 공개되고 또 보도되는 이런 상황을, 사진기자로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요?

 

“일단 대통령실을 통해서 공개된 연출된 사진들이 그 자체로 언론윤리에 맞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뉴스’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피치 못할 상황을 제외하고, 기자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면 그건 뉴스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실 조명이나 구도 연출이 아니라, 기자가 들어갔는지 들어가지 않았는지에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2000년 12월 31일 메릴랜드 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차 안에 있다>  © 강형원

언론의 자유는 대통령이 도청 위험을 피해 방탄유리로 처리된 차량에 들어가 극비 통화를 하는 모습까지도 기자가 취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18세 이상의 성인의 이름은 모두 쓸 수 있다는 원칙에 입각해, 9.11 테러 3,000여 명의 희생자들의 이름도 전부 다 실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 국가에서 정보를 안 주면, 언론이 찾아내야 합니다. 이게 언론의 역할입니다.

대통령실의 연출된 사진에 관련해 오바마 미 행정부 당시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지만, 미국 기자들은 기자가 취재할 수 있는 행사라면 백악관에서 나오는 홍보물을 쓰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이 취재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보이콧을 하면 됩니다. 만약 한국의 모든 언론사가 대통령실 홍보 사진을 쓰지 않고, 그 자리에 텅 빈 공백을 남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 “<본지>는 언론탄압으로 인해 해당 사건을 사진으로 기록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면, 대통령실은 기자에게 모든 일정을 공개할 겁니다. 

 

 

강연·강형원
<LA타임스>에서 10년 근무했고, <AP통신> 워싱턴 DC 지국으로 스카우트된 후 미국 백악관 취재를 1997년부터 해왔다. 33년간 워싱턴 DC와 캐나다 토론토에서 <로이터통신> 등 주류언론사의 수석기자, 에디터로 일했다. 최근 한국에서 <tvN>‘유 퀴즈 온 더 블럭’(115회)에 출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6월부터 <EBS>'위대한 수업'에서 ‘포토저널리즘(Photojournalism)’을 주제로 한국인 최초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Visual History of Korea)』(2022, 알에이치코리아), 『민주화의 현장 (From the streets to the Olympics: Korea, democracy, and the 24th Olympiad, 1987-88)』(1989, 아트스페이스) 등이 있다.

정리·김유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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