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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해 표기 공식화, 이러다가 독도 내줄라
일본해 표기 공식화, 이러다가 독도 내줄라
  • 주강현 l 해양문명사가
  • 승인 2023.08.3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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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공식화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독도나 동해 표기 등 일련의 한일 문제에는 역사적 필연과 우연이 잠복돼 있다. 비분강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차분한 설명과 엄밀한 분석이 필요할 때다. 

 

프랑스 왕실 수로학자 벨렝 Jacques-Nicolas Bellin 이 1747년 제작한 고지도. 동해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로 '한국해'로 표기돼 있다.

우리는 당연히 동해(East Sea)라고 부르는 곳을, 현행 세계지도의 90% 이상이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하고 있다. 방향을 가지고 해양명을 정한 경우는 의외로 많다. 영국과 아이슬란드 사이에 북해가 있다. 중국에서도 오방 개념으로 바다를 많이 칭했다. 이슬람적 세계관에서는 빛깔을 담아 북의 흑해(Black Sea), 남의 홍해(Red Sea), 서의 청해(Caspian Sea)가 있으며, 지중해는 백해(White Sea)가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동해 명칭이 쓰인 역사는 얼마나 됐을까. 당 이전의 중국 고지도나 문헌에는 한반도 동부해역을 단순히 해(海), 또는 대해(大海)로 표기했다. 

『당회요』에는 소해(少海, 혹은 小海)로 나온다. 원대에 잠시 경해(鯨海, 고래바다)로 불리다가 명청시대에는 동해로 불리기 시작했다. 한국이 일관되게 사용해온 동해라는 명칭은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동명성왕편에 처음 등장한다. “동해에 가섭원이라는 땅이 있는데, 토양이 기름져서 오곡이 잘 자라니 도읍으로 정할 만하다(東海之濱有地 號曰迦葉原 土壤膏 宜五穀 可都也).” 

 

2천 년 넘게 표기되어 온 ‘동해’ 

삼국 건립 이전인 기원전 59년부터 사용한 표기이므로, 근 2000년 넘게 동해라 불러온 것이다. 광개토대왕비문에는 ‘東海買’(동해 물가라는 뜻)가 등장한다. 동해라는 일관된 명칭을 쓰고 있다. 통일신라는 물론이고 고려, 조선을 관통하면서도 동해 명칭은 흔들림이 없다. 왕조가 변하고 강역의 범주가 변했어도 동해 명칭은 의연하다. 한반도에서 제작된 모든 지도에 동해로 명기된다. 이천 년을 뛰어넘는 명칭의 장기지속성이 기록으로 분명히 입증된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동해를 주장하는 강력한 역사적 근거이다.

16~18세기 후반까지 유럽 지도에서 동해를 통칭한 것은 우리가 통념상으로 부르는 동해가 아니라 동양해(Oriental Sea, Mer Orientale)였다. 조선해나 한국해도 두루 쓰였다. 일본해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한국해는 1571년, 바즈 두라노가 제작한 해도에 ‘Costa de Corai’로 표기됨으로써 처음 등장했다. 1595년, 랑그렌(Henricus F. van Langren)이 판각한 ‘동인도지도’에서도 우리나라를 ‘Corea’로 명기했다. 같은 해 떼이세라가 제작하고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 1527~1598)가 출판한 지도책에서도 ‘Corea’로 표기했다. 17세기 포르투갈이나 영국에도 한국해가 다수 등장한다. 1615년 포르투갈 에레디아의 아시아 지도에도, 영국의 탐험가이자 지도 제작자였던 로버트 더들리(Robert Dudley)의 『신비로운 바다』 해도에도 한국해(Mare di Corai)로 명기된 것이다. 

1694년판 영국 세계지도에서는 ‘동양해(Oriental Sea)’로 표기했다. 동양해라는 명칭은 17세기 후반 당빌이 그린 지도처럼 한국, 일본, 중국 연안해와 동해를 지칭하는 범용어였다. 

1714년판 허만 몰(Herman Moll, 1654~1732, 영국의 지도 제작자, 조각가 및 발행인)의 중국 지도에서 한국해(Sea of Corea)로 명기했다. 1734년 러시아 키리롭프의 아시아 지도에는 한국해라 표기했다. 1739년 독일 하시의 러시아 전도에서는 동해를 ‘작은 오리엔탈해’로 명기했다. 1748년 영국 해리스는 『13세기의 마르코폴로의 항해와 여행』이란 지도에서 동해(Eastern Sea)로 명기했다. 1752년 영국 보웬의 지도는 당시 영국이 인식하던 세계표준지도를 의미하는데 동해를 한국해(Sea of Korea)로 명기했다. 

제국주의 쟁탈전이 극성을 부린 19세기에 영국 화덴은 『세계 일반지도』를 펴내면서 동해를 ‘한국만(Gulf of Corea)’으로 명기했다. 1844년 러시아 수로국의 『북극해와 동아시아해』 지도에서는 한국해로 표기했다. 1845년에 영국의 윌드가 그린 『현대 일반지도에서의 아시아 지도』는 한국해로 명기했다. 

일본 쪽 사정은 어떠했을까. 다카하시 가게야수는 1809년부터 1810년까지 막부의 지원과 허가를 받아 제작한 공식 지도에서, ‘조선해’ 명칭을 썼다. 메이지유신 뒤인 1871년 요시히게 무라카미가 그린 세계지도에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를 ‘조선해’로, 일본 남부는 ‘대일본해’로 명기했다. 

 

일본해의 세계화는 제국주의 유산 

그렇다면, ‘일본해’ 명칭은 어디에서 왔을까?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일본해가 유럽에서 널리 사용됐으며, 일본 스스로도 일본해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테오 리치는 『만국곤여전도』(1602)에서 일본해로 표기한 사실을 주목했다. 『만국곤여전도』를 일본인은 서양인이 처음으로 ‘동해’를 ‘일본해’라 명기한 유력 증거로 내세우게 된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일본 근역을 그저 ‘일본해’라고 명기했을 뿐이고, ‘동해’ 해역에는 한국에 관한 설명을 달았기 때문에 여백이 없는 관계로 별도로 명칭을 적지 않았을 뿐이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 활약했던 알레니가 1623년에 제작한 『만국전도』에는 ‘동해’라고 분명히 명기했다.

프랑스 『라페루즈 세계탐험기』(1797) 이전에는 ‘한국해’가 다수였다. 그러나 동해를 직접 탐사한 라페루즈의 높은 신망 때문에, 그가 사용한 일본해가 유럽에 통용됐던 것이다. 즉, 일본해 명칭의 출발점은 일제의 식민지배와는 무관했다. 지도학자 이상태의 『19세기 서양지도 분석』에 의하면, 일본해 명기 지도도 상당수지만 동해 표시 지도도 상당함을 알려준다. 그가 분석한 고지도 104종 중에서 동해 표시 명칭 중 ‘Mer de Corée’가 25종, ‘Sea of Corea’가 41종으로 다수다. 재미있는 추이는 시대가 뒤로 갈수록 동해 표기가 줄어들어 14종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국제적 변화가 감지된다. 

여러 이유가 있으나, 특히 지볼트가 일본지도를 서양어로 번역하면서 ‘일본해’로 명기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볼트의 저서는 서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대부분 이 지도를 참조해 서양지도를 그리면서 ‘동해’가 ‘일본해’로 바뀌었다. 1854년 페리 제독에 의해 일본이 문을 열면서 차례로 수교한다. 조선이 문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입장이 반영된 일본해 명칭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출구가 됐다.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에서 처음으로 바다 명칭을 공식화시킬 때, 피식민지로서 입장을 개진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일본해가 국제 공인을 얻었다. 

즉, 1929년 IHO의 ‘해양과 바다의 경계’에 일본해 등재라는 사단이 발생했다. 몇십 쪽에 불과한 얇은 책자가 동해 호칭의 장래 운명을 바꾸어버린 것. 이처럼 일본해의 세계화도 제국주의 유산이다.

 

국제적으로는 동해/일본해 병기가 바람직

국제수로기구는 1921년 설립된 이래로 74개국이 가입돼 있다. 한국은 1957년, 북한은 1987년에 가입했다. ‘해양과 경계’는 해양지명의 표준화 교본으로 지명에 관한 한 ‘바이블’이다. 이에 기초해 세계 각국이 해도를 만들고, 더 나아가서 관광지도·특수지도·지도상품 등 2차 지도가 만들어진다.

한국 입장은 당연히 동해 표기다. 그러나 국제기구에서는 양국 간 논란이 있는 지명은 ‘병기’를 권장한다. 프랑스에서 논란을 제기해 기존의 영국해협 호칭을 ‘La Manche’로 병기해 해결한 사례가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동해 단독 표기가 정답임이 분명하지만, 지명 분규에 관한 양국 협의가 이뤄지기까지 잠정적으로 ‘동해/일본해’ 병기를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은 병기를 거부하고 오로지 일본해 단독 표기만을 고수한다. ‘일본해’ 호칭은 지리적·역사적으로 확립돼 있고, 국제수로기구에서 지지·사용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일본해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여러 나라 외교당국과 지도 제작회사, 언론계 등에 일본해 호칭을 요청하는 문서를 배포하고, 외무성·해상보안청 등 국가기관을 총동원하는 등 사력을 다한다. 이번의 미 국방부 발표도 일본의 치밀한 노력의 결과물로 여겨진다. 

 

일본 석학들도 ‘일본해’ 단독 표기 비판  

16세기 미수 허목은 척주동해비의 <동해송>에서 동해를 노래했다. 동해는 매우 장엄한, 어떤 영적인 무게로 다가오는 바다다. 양양 남대천변에는 동해신묘의 잔흔이 남아있다. 동해신묘는 국가 권력이 동해에 의탁한 성소였다. 양양의 동해신사, 황해도 풍천의 서해신사, 나주(지금의 영암)의 남해신사 그리고 바다가 없어 해신을 모실 수 없는 북쪽에는 강신(江神)으로 함북 경원의 두만강신사, 평북 의주의 압록강사를 모셨다. 동해묘는 정확한 터전이 확인되는 남한 땅의 유일한 국가적 해양 성소이며, 이 역시 동해 호칭의 역사적 근거 중 하나다. 

그런데 통감부 시절인 순종 2년(1908년)에 동해신묘에 철퇴가 가해진다. 천 년을 넘어 이어져 온 동해신묘에 대한 훼철은 제국주의의 동해 침탈이 신성 공간의 침해라는 형식으로 표징된 것이다. 훼철 당시에 동해신묘 중수기사비는 동강난 채로 개인집에 보관돼 오다가 근년에 제자리를 찾았다. 

일본이 주창하는 일본해에 관해서도 역사적 실체를 규명해볼 필요가 있다. 7세기 이전에는 일본국 명칭 자체가 어느 문헌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석학 아미노 요시히코는 일본명 자체가 ‘가상의 전제’로부터 출발했음을 비판하면서 일본해 따위의 이름이 성립불가함을 역설한 바 있다. 

“일본열도·연해주·한반도에 둘러싸인 내해를 ‘일본해’로 부르는 것은 참칭(僭稱)이다. 진(秦)이 변해 지명화한 ‘지나’와 달리, ‘일본’은 지명이 아니라 여전히 특정 국가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와는 무관하게 17세기부터 서유럽의 지도에 사용돼온 명칭이라고는 해도, 여러 국가가 둘러싼 이 바다에 특정한 국명을 붙임은 바다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언젠가 이 내해를 둘러싼 지역의 모든 사람들의 합의 아래, 이 바다에 어울리는 멋진 칭호가 정해질 날이 어서 도래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이미 청해(靑海)로 부르자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 에메랄드빛이 아름다운 이 바다의 특질을 잘 표현한 명칭이라고 생각한다.”

아미노 요시히코는 ‘일본해’를 두고 ‘분수에 넘치는 칭호를 스스로 이름’이라는 뜻의 ‘참칭(僭稱)’이란 단어까지 썼다. 그가 지적했듯 한국, 일본, 러시아 등으로 둘러싸인 바다를 특정 국가의 명칭으로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해 단독표기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도, 언젠가 이 내해를 둘러싼 지역의 모든 사람들의 합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아미노 요시히코의 지적에 동의한다.

 

미 국방부의 일본해 단독표기는 명백한 월권

현재 한국 외무부와 해수부가 공식으로 주창해온 동해/일본해 병기는 역사적 근거를 모두 포괄하고 일본의 입장도 포용하는 합리적 해결책이다. 그간 정부의 공식 입장에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고, 이 입장은 철회되지 않았다. 대일관계에서 양보를 거듭해온 현 정부의 동향에 반응해 미 국방부는 일본해 단독 표기를 공식화했다. 아마도 일본 측의 어떤 뒷작업이 있었을 것이다. 일방 발표는 미국의 월권이다. 우리는 잘 안다. 미군의 작전지도에 일본해로 명기된 사실을. 문제는 그 단독 사용명칭을 공식으로 발표했다는 데 있다. 우리는 또한 잘 안다. 미국은 내심으로 독도보다는 다케시마를 지지한다. 

하지만, 속마음과 공식 언표로 다케시마를 발표함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동안 동해 표기에서 남북은 공조를 취했다. 특히 독도 문제에서 북한은 강경한 자세를 취한다. 남북관계가 단절되면서 해양영토 문제에서도 공조가 사라졌다. 남북의 단절은 일본에는 틈새이자 기회다. 
그러나, 일본이 일본해를 주장하고 미국이 지지했다 해도 북한의 입장은 일관될 것이다. 해양주권은 함부로 다룰 과제가 아니다. 엄연한 해양영토 문제이고,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영토수호의 의무가 있다. 일본해 단독 표기 이후에 몰아닥칠 예상되는 파고는 독도 문제다. 헌법이 정한 영토수호의 의무로 미 국방부의 일본해 단독표기 발표에 엄중 항의해야 한다. 해양영토는 주권의 문제이지, 어떤 정권에서 양보할 수 있는 임의 처분 가능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주강현
해양문명사가. 제주대 석좌교수 및 해양문화연구원 원장 역임. 전 국립해양박물관장. 『해양실크로드 문명사(유럽 이전의 바닷길)』 (바다위의정원, 2023년)를 비롯해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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