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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보낸 초여름 한철
섬에서 보낸 초여름 한철
  • 이상엽 | 사진작가
  • 승인 2022.05.3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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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새로 쓰는 24절기 - 6월 하지/소서

섬을 여행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교통수단이 발달한 요즘에는 마음만 먹으면 빠른 비행기나 고속철도 등을 이용해 최남단 부산까지도 몇 시간이면 도착하지만, 인천 근해의 백령도만 해도 언제 도착할 수 있을지는 하늘만이 아는 경우도 있다. 

 

운무에 쌓인 백령도. 6월에 찾은 백령도는 아직 여행객이 적고, 농업과 어업 등 생업에 바쁜 주민들로 분주했다.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일단 국내 선박 ‘페리(Ferry)’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 평균 30노트(시속 55km) 정도니 육지에서 가장 멀다는 가거도까지는 목포항에서 직항으로 3시간이 넘게 걸린다. 물론 이것도 바다가 잔잔했을 때다. 서해와 남해는 겨울에, 동해는 여름에 풍랑이 자주 치며 연착은 기본이고 아예 섬에 묶여버리는 일도 흔하다. 이러니 제주도나 강화도, 진도 같은 큰 섬을 제외하면 홍도 같은 먼바다 섬들은 그 명성에 비해 가본 사람이 드물다.

하지만 섬은 매력적이다. 뭐가 매력적이냐면, 첫 번째가 그 막막한 고립감이다. 작은 섬은 확실히 바다에 둘러싸여 유배됐다는 느낌을 절절하게 전달해 준다. 마치 흑산도에 갇혀『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이 된 듯한 심사를 맛볼 수도 있다. 동시에 복잡한 도시의 삶에서 탈출했다는 해방감도 든다. 둘째는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이다. 식생도 다르고 민가의 생김새도 다르다. 확실히 여행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래서 섬으로 갔다. 기후변화로 인한 절기의 바뀜을 섬에서 한번 느껴볼 요량이다. 

 

까나리와 물범의 섬, 백령도

6월의 첫 번째 절기는 하지다. 하지는 낮이 가장 긴 절기이니, 이는 기후 절기가 아니다. 매년 6월 21일 경이 하지다. 정오의 태양도 가장 높고, 일사 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날이다. 하지만 절기 상 나타나는 기후로 보면 하지는 이제 6월 초순이다. 이는 장마가 시작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고대부터 하지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를 올렸는데, 모내기를 마쳐야 하는 농사꾼들에게는 한 해 농사를 가름하는 절박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왕도 무사할 수 없었다. 민간에서는 무당들이 신성한 지역에 제물로 바친 동물의 피를 뿌려 더럽혀 놓으면 그것을 씻기 위해 비를 내린다는 생각으로 개나 돼지, 소 등을 잡아 그 피를 바위나 산봉우리 등에 뿌려놓는 풍습이 있었다. 섬들 중에도 기우제를 올리던 곳이 있으니 바로 백령도다. 섬 인구의 80%가 농업에 종사하며 한 해 쌀만 2,600톤을 생산하는데 생산량의 대부분을 육지에 판다. 사실 백령도는 생각보다 큰 섬으로, 항구에서 내지로 깊숙이 들어서면 육지의 여느 농촌 마을과 다르지 않다. 

 

하지의 백령도는 저녁 8시에도 해가 지지 않는다. 주변에 해를 가리는 산이 없는 섬에서는 백야를 느낄 수 있다.

6월의 어느 날 도착한 백령도는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해수면과의 온도 차로 인해 계속 운무가 발생한다. 포구는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까나리 잡이로 바쁘다. 이때는 농번기의 농부보다 어부들이 더 바쁜 시기다. 우리가 흔히 액젓으로 접하는 까나리는 동해안 지역에서 ‘양미리’라 부른다. 이 까나리는 냉수성 어족으로 백령도 부근에 형성되는 황해 냉수대를 찾아 몰려온다. 그리고 이 까나리를 찾아 점박이 물범이 백령도를 찾는다. 아마도 남한에서 물범 같은 희귀한 해양 포유류를 볼 수 있는 곳은 백령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최근 백령도 일대의 해수 온도 변화로 까나리와 물범 모두 위기에 처했단다. <한국 기후 변화 평가 보고서 2020>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역은 이상 고수온 현상이 2016년부터 두드러지고 있으며, 특히 서해와 남해의 연안 해역을 중심으로 이상 고수온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공위성으로 관측한 최근 6월 평균 해수면 수온의 평년 편차 분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해역의 월평균 해수면 수온이 평년에 대비하여 1~4℃ 높게 나타났다. 

이 때문에 까나리가 통상 백령도 앞바다에 나타나는 시기였던 4~6월이 계속 앞당겨지고 있다. 황해 냉수대가 점점 일찍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부들과 물범은 까나리 생태계가 걱정이다. 언제까지 백령도가 까나리로 넘치는 풍요로운 바다로 남을지 말이다. 

 

섬이 천연기념물인 홍도

백령도와는 딴판으로, 쌀 한 톨 나지 않는 섬이 홍도다. 섬 자체가 산봉우리 형태니 가파르고 땅은 암석이다. 아마도 모든 주민이 어업에 종사하고 그저 부업으로 밭에 밀이나 보리를 심었을 것이다. 지금도 쌀이 없는 사정이 딱했는지 정부에서 홍도의 노인계층에 쌀을 무상 지원한다. 하지만 사실 홍도의 주민 전부가 종사하는 산업은 관광업이다.

홍도에 도착한 날은 6월 말 소서였다. 24절기 중 열한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하지와 대서 사이에 든다. 양력으로는 7월 5일 무렵이지만 기후의 변화로 6월 27일 경을 새로운 소서로 본다. 태양이 황경 105도의 위치에 있을 때며, ‘작은 더위’라 불린다. 이때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 이때가 홍도로서는 가장 흥청거린다는 여름 피서 시즌이 된다. 

 

홍도의 절경은 침식으로 만들어진 기암괴석에 있다. 덕분에 국내 관광이 활성화되던 70년대부터 대표적인 명소가 됐다.

홍도는 여러모로 특별한 섬이었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170호로 지정됐고, 유신정권 말기에 국내 최초로 쾌속선을 취항시켜 편도 8시간 걸리던 바닷길을 2시간으로 줄였다. 덕분에 80년대까지 홍도는 관광객으로 넘쳤다. 인구 400명 동네에 연간 20만 명이 몰려들었으니 말이다. 이러니 섬에는 불법 숙박 시설이 넘치고, 인심은 사나워지고, 돈에 눈먼 유람선 선주들의 만행도 빈발했다. 하지만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차츰 홍도의 명성은 사라졌고 코로나까지 겹친 요즘은 4만 명대로 관광객이 급락했다. 이러니 전만큼 벌이가 시원치 않자, 섬의 천연기념물 해제를 요구하거나 주택 90%가 불법 건축물인 것을 합법화, 양성화해달라고 조른다. 특혜 받은 섬에는 다시금 자본이 일렁이고 있다. 

그런데 변한 것은 인심만이 아니다. 자연도 변했다. 수만 년 변치 않는 저 기암괴석이야 그대로겠지만, 식물들과 동물들의 생태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괭이갈매기다. 우리나라의 흔한 텃새지만 이들이 특별한 것은 번식기에 육지 근처를 벗어나 먼 섬에 모여 알을 낳기 때문이다. 바로 홍도가 대표적인 괭이갈매기의 산란처다. 

그런데 점점 괭이갈매기들이 홍도를 찾는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 이유는 여럿일 텐데, 홍도 앞바다의 생태가 변하면서 먹잇감이 조금 일찍 찾아오는 것이거나, 갈매기 자체가 기온의 변화로 인해 번식기가 당겨진 탓일 수도 있다. 홍도는 바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식물들의 종류로 그 변화를 금방 알 수 있다. 섬 전체가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붉가시나무 등 상록활엽수로 채워진 것이다. 아열대식물이다. 드문드문 발견되는 소나무 종들은 곧 섬에서 사라질 예정이다. 숲이 주는 다양한 자원에 의지하며 살아온 인간도 생활과 문화가 달라진다. 아열대기후로 변한 남도 섬 지역의 주민들 생활은 과연 어떨까. 

 

섬과 인간의 공진화

 

 

홍도의 식생이 변하고 있다. 아열대기후로 바뀌면서 식물들은 이제 상록활엽수가 지배 종이다. 기후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남도의 섬이다.

섬 여행은 고립된 섬 생태계에서 기후변화를 읽을 기회를 준다. 하지만 섬은 매우 복합적인 시스템이다. 기후변화는 생물 다양성에 문제를 일으키고 이는 생태계 문제로 이어진다. 그리고 생태계 훼손은 지역 생활과 주민들의 생업에 영향을 준다. 주민들의 경제적・사회적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섬의 지속가능성이 파괴된다. 결국, 기후 위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섬의 자연 생태계의 복원과 함께 주민의 삶이 지속 가능한 섬으로 남는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사실 섬은 정지된 공간처럼 보이지만,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거대한 에너지인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자연의 해류, 수증기와 파도, 바닷속 어류 등을 대상으로 섬의 변화를 읽을 수도 있고, 주민의 언어, 생계, 문화를 통해서도 그 변화를 알 수 있다. 이 둘은 어쩌면 기후변화 시대에 서로 영향을 주면서 공진화(共進化)를 겪을지도 모른다. 섬에서 보낸 6월 한철이 의외로 무겁게 느껴진다. 

 

 

사진/글·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논픽션 글을 쓴다. 우리 땅 변경을 기록한 사진으로 2015년 <일우사진상>을 수상했고,『파미르에서 윈난까지』(현암사)는 2011년 올해의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늘 기록은 힘이 세다 믿으며 예술노동자로 산다. 지금은 비정규노동센터의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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