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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3주년 연중기획 (7) - 연결과 소통, 확장의 길 위에서 K-미술을 생각하다
창간 13주년 연중기획 (7) - 연결과 소통, 확장의 길 위에서 K-미술을 생각하다
  • 정연복 | 미술평론가
  • 승인 2022.05.31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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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3주년 연중기획 7]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K-문화콘텐츠는 어디로?
총론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팝 : 임진모 음악평론가 
영화(애니메이션 포함) : 김중기 영화평론가, 영화공간 ‘필름통’ 대표
드라마 : 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웹콘텐츠(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등) : 신정아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기획위원장, 방송작가 
문학 : 유성호 한양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월간 ‘쿨투라’ 편집주간 
출판 : 김성신 출판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출판위원장 
게임 : 
남기덕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 
미술 : 김원숙 미학박사, 예술 비평가 
연극 : 
이은경 연극평론가 
무용 : 정옥희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무용 연구자 
뮤지컬 : 최여정 문화평론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트코로나 콘텐츠기획단 팀장 
전통공연예술 :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 예술위원 
클래식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오페라 : 이소영 솔오페라단 단장 
제언 – 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학부 교수

 

“얼마나 많은 훌륭한 인간들이 이곳에 존재하는가!”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우냐! 오, 멋진 신세계여.....”
-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5막 1장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됐을 때 맨 처음 떠오른 소설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였다. 20여 년 전 읽은 기억에는 인공부화와 자유로운 섹스, 약물 소마로 모든 정신적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려 한 미래사회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한 책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책 전체에 계속해서 셰익스피어가 인용된다. 헉슬리는 상상 가능한, ‘무미하기 짝이 없는 미래사회’라는 틀을 빌려 셰익스피어에 대한 경의를 펼치고 있다. 이 경의는 결국 인간의 탄생, 사랑, 고뇌, 고독, 슬픔, 죽음에 대한 모든 문학, 예술, 철학에 대한 경의다. 인간은 늙지 않아서, 고통이 없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늙고 외롭고 상심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위대한 존재다.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고통을 겪지 않아서가 아니라 고통을 통해 성찰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모든 대면활동이 전면 중단되고 전 세계인이 집에 ‘감금’되면서 인터넷 기반 문화콘텐츠들이 폭발적으로 소비됐다. 전 세계인들이 함께 <오징어게임>에 열광하고 다양한 후기를 나누는 등 인간사회에 대한 보편적인 감상이 활발히 공유되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단절’이 세상 사람들을 ‘연결’하는 현상을 목도했다. 한편, 대형 공연장 수만 관중의 뜨거운 환호 속에서 공연하던 BTS는 온라인 콘서트를 통해 500억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니 새로운 매체에 발 빠르게 적응하는 이에게 ‘위기’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콘텐츠의 운명이 비슷한 행로를 보여준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나 왓챠, 웨이브, 티빙 등 다양한 OTT 방식의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영화나 드라마, 웹툰과는 달리 박물관과 전시 분야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프랑스 루브르의 경우, 2020년 3월 2일 문을 닫았다가 7월 7일 개관 후 10월 30일 다시 폐관했고, 2021년 5월 19일 여타 문화시설과 함께 다시 문을 열 때까지 총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관람객을 맞이하지 못했다. 비단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박물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박물관들이 디지털 아카이브를 다양한 방식으로 방출하면서, 그동안 보조적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데 그쳤던 디지털 이미지나 VR, AR 체험, 온라인 전시 등을 적극적으로 재정비하는 계기가 됐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전 세계 박물관들이 친절하게 공개하는 고화질의 소장 작품들과 온라인 전시는 2년 이상 세계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단비와 같았다. 특히 2012년부터 시작된 구글 아트 앤 컬처(구글 아트 프로젝트에서 2021년 이름이 바뀜)는 2022년 5월 현재, 전 세계 2,000개 이상의 기관과 협력해 1만 3,380명 예술가의 작품을 고화질로 제공한다. 박물관 공간이 VR 영상으로 돌아다닐 수도 있다. 구글 아트 앤 컬처에 ‘Korean artiste’로 검색을 해보면 7,564개의 작품이 나오고, 한국사립미술관협회, 백남준아트센터, 청주공예비엔날레 등에서 제공한 온라인 전시회가 꽤 올라와 있다. 전반적으로 화질이 좋고, 설명을 듣거나 읽으며 어렵지 않게 관심 있는 콘텐츠를 둘러보도록 돼 있다. 

다만, 한국사립미술관협회에서 올린 자료 이외에는 작품 설명이 한국어로만 제공된다는 점은 상당히 아쉽다. 온라인 전시회나 이미지는 한국 미술이나 작가에 대해 관심 있는 비 한국어권 사람들도 꽤 검색할 텐데, 이미지 외에는 정보를 얻기가 용이하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사이트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제공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미술에 대해 잘 모르고, 막연한 호기심만 가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우리의 작가와 작품들, 전시회 소식에 관한 좋은 정보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언어적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일상’과 ‘경험’으로서의 예술

온라인을 통해 우리는 작품을 보고 기억하고 정보를 얻는다. 키워드를 넣으면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작품들이 단 몇 초 만에 내 앞에 나타난다. 내 방에 가만히 앉아 파리, 뉴욕, 런던의 박물관들을 돌아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 이미지와의 만남과 미술관에서의 공간적인 체험은 많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VR 전시실을 돌아다녀 봐도 아직은 조작하기가 쉽지 않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수월하게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가 아닌 가본 작품들은 내 앞에 ‘현존’하지 않고 스크린 ‘위’에 떠있을 뿐이다. 작품과 나의 만남은 평면적이다. 스크린 위의 이미지는 자신이 어떤 작가, 어느 시대의 어떤 작품이라고 항변한다. 내가 결코 침투할 수 없는 다른 세계에서, 일방적이면서 다소 폭력적으로 내 앞에 있다. 그 작품과 내가 어떤 상호적인 관계를 맺기는 어렵다. 

구체적인 공간에서 작품을 직접 만나는 것은 이와 다르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어떤 특정한 시간에 작품을 보기 위해 어떤 특정한 공간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림을 보는 일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일상은 아니지만, 내 삶을 이루는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일상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내 눈앞에 있는 작품과 나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 작품과 관람객의 입체적인 만남은 바로 이 시공의 동시성에서 나온다. 관람객은 일상을 멈추고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일상과 예술이 서로 스며들도록 한다. 마주 보고 느끼고 대화하고 스며드는 이런 체험 없이, 예술은 예술이 아닐지도 모른다.(1) 

다시 말해, 예술이라는 카르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술적 체험이 중요한 것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디지털 아카이빙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다양한 디지털 매체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 갈 수 없었던 전 세계인들에게 예술에 대한 갈증을 채워준 것은 사실이지만, 작품은 어떤 ‘공간’과 ‘시간’에서 ‘입체적으로’ 만나야 관람객 개개인에게 고유한 체험이 된다는 점에서 전시회로 가는 발길은 팬데믹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된 첫해, 거의 모든 것이 취소되고 연기되면서 많은 전시공간이 문을 닫았던 것과 달리 2021년부터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다양한 주제의 전시회들이 전국 각지에서 야심차게 진행됐다. 좋은 전시회와 훌륭한 콘텐츠는 차고 넘친다. 문제는 콘텐츠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깊이 있게 우리 시대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해주느냐 하는 점이다. 21세기 전례 없는 팬데믹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허구한 날 모네와 르누아르, 샤갈만 보여줄 것인가? 어차피 관광객이 오지 않는 틈을 타 세계 유명 박물관에서 통째로 빌려온 작품들을 손쉽게 시대순으로 나열만 해놓을 것인가? 물론 여행이 어려운 작금의 시대에 세계 곳곳의 박물관에서 가져온 100여 점의 작품들을 우리나라에 가만히 앉아 본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같은 콘텐츠도 어떤 ‘큐레이션’으로 전시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관람객에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 시대의 전시회들을 꼼꼼히 되짚어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예측해보는 것도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시대 미술의 거울로서의 전시회

2021년 5월 4일에서 9월 22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은 환경문제를 미래의 미술관 개념에 대한 반성으로 끌어안은 속 깊은 전시회였다. 박물관 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전시회는 “미술관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은 생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하고 미술관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현실적 실천 방안 마련을 도모하기 위한 시도이자 실험으로, 그 실험의 과정과 결과물을 공유하고 미래 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전시” 이다.

전시장 입구부터 가벽을 조립식 모듈 벽만 사용했고, 그 위에 합판과 석고를 덧대지 않았다. 따라서, 전시에 사용한 가벽 전체가 재활용 가능하다고 한다. 작품 설명도 이면지에 손글씨로 작성했다. 전시회를 기획한 최상호 큐레이터에 따르면, 국공립미술관 전시를 마치고 해체하면 5톤 트럭 4대 분량 폐기물이 나오게 보통인데, 이 전시 철수 시에는 100리터 종량제 봉투 5개로 충분했다고 한다.(2) 

전시실로 들어서면 자연과 인간, 땅은 황폐하게 하면서 자본의 축적과 생산성만 추구하던 80년대의 비판적 성찰을 보여주는 신학철의 <황혼>(1982), <시골길>(1984), 손상기의 <난지도>(1982), 임옥상의 <하수구>(1982) 등을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폐기물을 활용한 소일 솔턴의 작품 <움직이는 이미지를 이해하는 몇 가지 방법, 허영심을 위한 몇 가지 방법>(2020) 등과 서로 공명하고, 조재선의 <되찾다>(2021) 같은 작품을 통해 어떻게 문명 속에서 환경을 되살릴 것인지 물으며 문제의식을 확장 시키고 있었다.

 

<지속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부산현대미술관

하민지의 <가로막는 장애>(2019)는 마치 일러스트 같다. 이 작품은 그로테스크하게 인간의 탐욕을 위해 살고 죽는, 기계화된 동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계장치에 얽힌 동물들은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팬데믹 상황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 참혹하다. 쓰레기 더미와 폐기물, 재활용 물이 가득한 전시실은 환경문제와 지속 가능한 지구라는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을 전시회 및 전시공간에 대한 성찰과 연결 지은 듯하다. 위선적이고 권위에 찬 ‘제도’로서 탁월하게 풀어놓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아닐까. 

 

미술관을 넘어서는 미술관, 장소성에 대한 고민

미술품 관람은 특별한 사람들만 접하는 ‘난해한’ 것, 예술에 대해 잘 알거나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만 접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접근성이 뛰어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때로는 어떤 정보나 의도도 없이, 우연한 만남처럼 생각지도 못한 문화적인 경험을 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울산시립미술관 소장전의 전시 장소를 관광객이 많이 찾는 대왕암 공원 안, 낡은 구 울산 교육연수원 건물로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부 철거가 이뤄진 낡은 조리실, 40~50년은 됐을 법한 강의실, 강당 등에 산업도시로서의 울산의 정체성에 어울리는 다양한 디지털아트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전시실 창문엔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소나무와 어우러져 넘실대고 있지만, 전시실의 작품들은 때로는 현란하고 때로는 황량한 현대문명의 풍광을 펼쳐준다. 불안전한 철거로 인해 민낯이 드러난 조리실에 전시된 <이례적 산책 II-황금의 연금술>(문경원&전준호 작품)은 선박에서 나온 고철로 만든 조각과 영상이 결합된 작품이다. 전시 작품은 전시된 공간(울산이라는 도시와 철거 중인 낡은 연수원 건물)과 어우러져 직관적인 작품 이해를 도왔다. (3)

 

<이례적 산책 II-황금의 연금술>(문경원&전준호 작품) (울산시립미술관 소장작품)

예술적 체험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한정되지 않는다. ‘탈 맥락화’(4)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맥락’ 속에 다시 돌려놓음으로써 관람객이 작품을 더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느끼고 ‘살(리)게’ 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20년 10월 14일부터 2021년 6월 27일까지 펼친 <MMCA 예술놀이마당>도 같은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기획이다. 김도희, 최재혁은 <예술가의 밭_산고랑길>(2020, 흙, 식물(파니쿰 레흐브라운, 참억새 그리실리무스, 참억새 아티지오 외)을 전시관(국립현대 미술관) 바깥의 자연이라는 ‘맥락’ 속에 놓아둠으로써 자연의 생명력을 예술적으로 체험하도록 이끈다. 

최재혁은, 모두가 참여하고 모든 것이 연결되는 경계 없는 미술관을 “완성된 예술을 전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술 행위가 일어나고 기록되며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5)이라고 말한다. 

 

연결과 소통, 확장의 길

대구시립미술관이 야심차게 기획했던 <모던라이프>는 연결과 소통, 확장의 길을 펼쳐주는 큐레이션이 돋보였던 전시다.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로 2021년 10월 19일부터 2022년 3월 27일까지 개최됐다. 이 전시회가 흥미로운 것은 대구시립미술관의 소장품과 프랑스 남쪽 도시 생폴드방스에 있는 매그 재단 소장품의 전시를 통해, 서구의 미술과 우리의 근현대 미술을 겹쳐 보고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콜라보 전시이기 때문이다.

 

<산>, 1955~1956년, 청동, 매그 재단 - 제르멘 리시에

전시실을 들어서면, 한가운데에 제르멘 리시에의 <산>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기이하게 생긴 두 존재는 사람, 동물, 곤충을 혼종 교배한 듯한 독특한 형상을 띠고 있는데 힘겹더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치 장 뒤비페와 최영림의 회화, 자코메티의 조각이 너와 나, 조각과 회화,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머물지 말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고 관람객에게 손짓하는 것처럼 보인다. ‘탈-형상화’에서 ‘기원’에 이르기까지 8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에는 자코메티, 후안 미로, 페르낭 레제, 피에르 술라주, 크리스탕 볼탕스키, 샤갈이 이응로, 이배, 이우환, 박서보, 유영국이 어우러져 있다.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이 꽃 피는 데 서구 미술의 변천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모던라이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 작가들은 서구 미술의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공유하면서도 다양한 소재와 양식의 실험을 통해 동양 특유의 세계관을 풍성하게 펼쳐줬다. 가령 숯을 이용해 나무의 생명력과 소멸의 영원한 순환 문제를 천착하는 이배의 작품들과 하얀 캔버스 위에 검은 글자들 혹은 굵고 작은 획을 그은 듯한 작품들(피에르 술라주, 앙리 미쇼, 한스 아르퉁)은 서로 마주 보며 대화한다. 유영국의 <작품>(1973)과 파블로 팔라주엘로의 <Omphale II>(1962)는 벽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산 혹은 사막의 분출하는 에너지와 열기를 따로, 또는 함께 발산하는 듯하다. 

전시회의 미덕은 전 지구적인 고통을 겪는 2022년 현재, 양차 대전을 겪으며 인간존재에 대해, 인류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대해, 예술의 본질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모색하며 꽃 피었던 ‘모더니티’의 궤적을 돌아보게 한다는 데 있다. 훌륭한 기획은 우리에게 뼈아픈 성찰을 하도록 이끌면서 미래로 나아가게 한다. 이와 같은 콜라보 전시회가 많이 기획돼 대구뿐 아니라 생폴드 방스, 파리, 런던, 뉴욕, 상하이 등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20년 1월 국립현대미술관장 취임 1주년을 맞이해 윤범모 관장은 “한국미술의 자존심을 살리겠다”라며 K-아트 프로젝트를 예고했다. 해외의 전시회를 국내에 도입하는 데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우리 미술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 알리겠다는 포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2년을 “미술 한류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다. 인류가 단절과 고립의 고통을 겪은 지 2년이 넘으면서 절망과 무기력에 빠지기도 했지만, 절망은 다시 일어설 희망을 품고 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만의 고립된 공간에서 새로운 시작과 연결을 꿈꾸며 작가들은 묵묵히 작업을 계속했을 것이다. 그 결과물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것이 위안이나 희망, 미래에 대한 비전일 필요는 없다. 한병철이『 고통 없는 사회』에서 일갈하듯, “예술은 낯설게 하고, 교란하고, 당황하게 하고, 고통을 줄 수도 있어야 한다.”

고통 속에서 우리는 다른 세상을 꿈꾼다. 코로나 이후 우리 일상은 더욱 낯설고 당황스럽고 충격적인 예술적 체험으로 가득할 것이다. 설렌다. 

 

 

글·정연복 

동덕여대 강의 전임 교수를 역임했으며 서울대, 아주대 등에서 프랑스 문화와 예술사를 강의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축제의 무대』 『예술속의 삶 삶속의 예술』이 있다. 역서로 장 보드리야르의 『섹스의 황도』, 에릭 리베르주의 『미지의 시간 속으로』, 다비드 프뤼돔의 『루브르 가로지르기』, 스테판 르발루아의 『레오나르도 2빈치』 등 다수의 ‘루브르 만화 컬렉션’을 비롯해 몰리에르의 희곡선 『상상병 환자』가 있다.


(1) 존 듀이는 사냥꾼들이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기억과 생각 속에서 온 감각과 정서, 판단을 동원해 사냥을 하듯 예술이나 미적 인식도 자아와 사물과 사건으로 구성된 세계가 완전히 상호 침투돼 하나가 된 경지 속에서 최상의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경험은 예술의 근원이요 예술의 싹이다.” 존 듀이, 『경험으로서 예술 1』(박철홍 옮김), 나남, 2016, p. 49~50.

(2) ‘라운드테이블: 팬데믹, 미술관, 전시 담론’(김유진, 송가현, 차승주, 채연, 최상호), in 『전시의 역사』, 국립현대미술관 연구 2021.

(3) 문경원&전준호는 2012년부터 자본주의의 모순과 역사적 비극, 기후 변화 등 인류가 직면한 여러 문제 속에서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펼치는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돼 많은 사람들을 매혹했던 <미지에서 온 소식-자유의 마을>을 기반으로 신작을 추가해 일본 가나자와에서 2022년 5월 3일 전시회가 시작돼 성공적으로 개최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머니투데이> 5월 6일 자 유승목 기자의 글 참조)

(4) 프랑스 대혁명 이후 루브르 박물관을 개관하는 과정에서 앙시엥 레짐을 찬미하는 작품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캉봉(Cambon, 1756~1820) 의원은 “박물관은 작품들을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맥락으로부터 분리시켜 순수하게 예술적인 가치로 보게 함으로써 그들을 보호하는 일종의 피난처”라고 함으로써 ‘탈 맥락화’ 논리를 펼쳤다. 가다머(Gadammer, 1900~2002) 역시 “예술이 삶의 모든 맥락에서 떨어져 나오는, ‘대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에 부응하는 것”이 바로 박물관 설립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박물관은 그 소장품의 역사를 은폐함으로써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Dominique POULOT, Une histoire des musées de France XVIIIe -XX siècle, p. 5. Hans-Georg GADAMER, L'Actualité du beau, Aix-en-Provence, 1992, p. 40의 재인용.

(5) 『예술놀이마당』, MMCA, 2020, 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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