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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전어를 좋아했을까?
며느리는 전어를 좋아했을까?
  • 이상엽 l 사진작가
  • 승인 2022.08.31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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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새로 쓰는 24절기 - 9월 백로 추분

평생 이런 비를 본 적이 있을까?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백 년 만에 내린 폭우라고 하니까. 지난 8월 8일 밤부터 9일 새벽까지 나는 용인 고기리 작업실에 있었다. 작업실 옆은 광교산에서 내려오는 동막천이 흐르고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여기가 넘치는 비는 본 일이 없었다. 그저 쏟아지는 비를 조심스레 걱정하는 정도였다. 

 

용인 고기리 이종무 묘 가는 길. 장수 이 씨 시조 이임간의 증손으로 대마도를 정벌했던 인물이다. 집안 중시조로 마침 이사 간 집 근처에 묘가 있었다. 가끔 산책 겸 들른다.

서울과 경기남부 지역에 시간당 150mm 이상의 비가 쏟아진다는 뉴스를 듣고 문을 열어보니 도로는 강물이 되어있었다. 옆 동막천이 거의 넘칠 정도가 되다 보니, 갈 길을 잃은 산물이 낮은 도로를 길 삼아 폭포처럼 흐른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곧 물이 넘쳐 이 건물의 여러 사무실이 침수될 위기였다. 모래주머니도 없는데, 물길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일단 공사장에 까는 부직포를 잘라 여러 사무실의 문을 틀어막기 시작했다.

작업이 끝날 무렵 결국 물은 한 뼘 넘게 차올랐지만, 그런대로 방수가 됐다. 간신히 내 작업실은 구했지만 고기리 주변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하천을 넘은 물은 도로와 제방을 무너뜨렸고, 어마어마한 양의 모래가 뒤덮었다. 동막천과 저수지가 만나는 저지대 길가의 차는 둥실둥실 떠다니고, 상가는 완전히 잠겼다. 

사실 내가 살았던 10년간 이런 수해는 본 일이 없었고 고기리 주민들도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도대체 이런 수해가 발생한 원인은 뭘까? 백 년 만에 폭우가 온 것은 기후변화의 결과일 터이고, 고기리에 물이 넘친 것은 난개발로 인한 배수의 문제일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모두 인재다. 문제는 이런 재난이 백 년에 한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한 기후 변화로 매년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백로에 찾은 시조묘

 

명색이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된 묘인데, 주인 없는 묘인 양 잡초만 우거졌다. 후손들이 돌보지 않는데 국가가 돌보라는 것도 염치가 없다.

이제 절기 이야기를 해보자. 9월의 절기는 백로(白露)와 추분(秋分)이다. 여름의 기세가 강해진 요즘은 이 두 절기가 한 주 정도씩 미뤄진다. 9월 초까지는 여전히 여름을 느낄 수 있다.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한다. 대충 9월 중순이면 새벽에 산책을 하면 바지 단이 흠뻑 젖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백로 무렵이면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를 시작하고, 고된 여름농사를 다 짓고 추수할 때까지 잠시 일손을 쉰다. 그래서 가족들과 아주 특별한 성묘를 가기로 했다. 내 시조묘다. 

내 시조는 고려 때 사람 이임간인데, 이성계와 같이 쿠데타를 벌여 조선을 창업하는데 한몫을 했다. 그의 증손자 종무가 일찍 아버지와 함께 왜구를 소통하는 일에 소질이 있어 관운이 트이더니 대마도까지 정벌해 후세에 많이 알려졌다. 우리 집안 중시조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명장인지는 나로서도 의문스럽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도 10여 년 전 내가 이곳 용인의 고기리로 이사를 온 후 알게 된 것이, 이종무 묘가 집에서 걸어서도 갈 지척에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시묘살이 하러 왔구먼.” 집사람의 이야기는 빈정거림이 아니다. 정말 신기하니, 자주 놀러 가자는 것이다. 원래 그의 묘는 전북 장수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파묘를 할까봐 유골을 수습해 북으로 피난을 가다가 한양을 앞두고 왼쪽 오지로 찾아들어가 지금의 고기리 숲속에 묘를 쓴 것이다. 하여간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이 돼있다. 그래서 물난리가 난 후에 가족들과 함께 묘를 찾았다. 야산 꼭대기에 묘를 쓴지라 한참을 올라간다. 

200평쯤 되는 공간 중앙에 묘가 자리하고 양쪽으로 석상 둘이 호위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라 하기에는, 너무 손을 보지 않아 내내 자란 풀로 숲을 이루고 있다. ‘겨레의 인걸 100인’이라 노래 부르면 뭐하나? 집안 후손들도 관리하지 않는 것을. 휴대폰으로 경기도 문화재 관리과에 전화를 걸어 짐짓 관광객인 척하며 “문화재 관리가 뭐 이따위냐”고 성질을 냈더니 “곧 조치하겠다”고 한다. 그나마 벌초라도 하겠지. 우린 상석 주변의 이슬 머금은 풀을 뽑고 내려왔다. 

 

기후변화로 꽃게는 흉년, 전어는 풍년

백로가 지나면 추분이 온다. 낮과 밤이 절반인 추분은 황도와 적도의 중간점을 가로지르는 날이라 늘상 변화 없이 9월 23일 경이다. 하지만 추분의 기후는 10월 초로 늦춰졌다. 기후변화 탓이다. 추분과 춘분은 모두 낮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지만 추분은 낮의 길이가 약간 길다. 여름의 끝자락이 남긴 열의 흔적이다. 이때는 우리 최대의 명절인 추석과 거의 비슷한 시기로 만물을 거두는 시기다. 논밭의 곡식을 거두고, 고추도 따서 말리고, 호박을 따고, 깻잎과 고구마순도 거둔다. 산채를 말려 나물로 준비한다. 이때는 농촌은 물론 어촌에서도 축제가 벌어진다. 특히 가을이 제철인 수산물은 서해안이 으뜸이다. 바로 꽃게와 전어가 주인공이다. 

 

연평도 바다 풍경이다. 멀리 북한이 보인다. 연평도와 북한 사이는 NLL이 그어져있고 이 사이로 중국 배가 불법조업을 한다. 하지만 이런 불법조업을 감안해도 수온 상승으로 인한 꽃게의 개체 수 감소는 매년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둘은 기후변화로 인해 희비가 엇갈린다. 서해안의 수온이 꾸준히 올라가면서 찬물을 좋아하는 꽃게는 계속 조업량이 줄어들고, 따뜻한 바다를 좋아하는 전어는 남해안에서 서해안 동해안 등지로 북상을 하고 있다. 현재 전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은 경남 사천이 8월에, 충남 서천이 9월이다. 여름 전어가 등장해 가을까지 전어는 내내 잡히는 것이다. 덩달아 며느리는 무척이나 바쁘게 친정집과 시댁을 오가야겠다. 

사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속담에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 “며느리 친정 가면 전어 구워 먹는다”가 있다. 백로와 추분 때는 농사일이 한가해져서 선조들은 며느리들에게 친정에 다녀오라고 휴가를 줬다. 그런데 마침 이때가 전어 철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친정집에 간 며느리는 자기 빼고 전어를 구워 먹을까 급히 시댁으로 돌아오려 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 돌아오기 전에 아들하고 급히 먹어치우려 했나 보다. 실제 그랬다기보다는 전어를 두고 우스갯소리로 만든 말일 것이다. 그런데, 며느리는 정말 전어를 좋아했을까? 

 

일상을 바꿀 수 있을까?

 

연평도의 꽃게는 9월부터 11월까지 조업 가능하다. 이때 알을 밴 암게를 쳐주는데, 그나마 조업 생산량이 계속 줄고 있다. 꽃게는 수온이 높으면 개체 수가 준다. 

사실 꽃게는 흉년이고 전어는 풍년인 기후변화를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이에 대처하는 여러 방법 또한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체제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는 별로 하지 않는다. 즉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기후변화를 대처하려 한다는 것이다. 사실 전 지구적으로 자본주의는 보편화 돼 있고 그저 자유주의 우파와 자유주의 좌파가 경쟁하고 있는 듯 보이기에, 누가 더 덜 피해를 볼 것인가를 다투는 정도다. 아마도 일상이 불편해지는 것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현대인의 관성 때문에 정치인들도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기후를 보면, 과학자들이 예측한 거시적인 변동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게다가 기후변화가 이 지면을 통해 늘 말해온 것처럼 가난한 자들에게 훨씬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것은 대다수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떨어지는 착취율을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착취 방법을 동원하게 만든다. 20세기보다 21세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가난해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런 경제 격차를 줄이기 위해 누진성이 강한 과세를 주장했던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2019년 출간한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통해 명백하게 자본주의 극복과 체제 전환을 요구했다. 그것이 백 년 전 볼셰비키 혁명은 아니지만 이에 버금가는 급격한 전환 없이는 당대의 모순을 극복할 길이 없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 역시 이번 물 폭탄을 보면서 기후가 체제를 전복하는 일이 SF 영화에서나 있는 게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바꿀 준비를 해야 한다. 

 

 

사진/글·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논픽션 글을 쓴다. 우리 땅 변경을 기록한 사진으로 2015년 <일우사진상>을 수상했고,『파미르에서 윈난까지』(현암사)는 2011년 올해의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늘 기록은 힘이 세다 믿으며 예술노동자로 산다. 지금은 비정규노동센터의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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