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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교사의 인권, 서로를 지탱하는 학교의 기둥
학생과 교사의 인권, 서로를 지탱하는 학교의 기둥
  • 목수정 | 작가
  • 승인 2023.07.31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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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의 사망 이후 전국학부모연합회 소속단체에서 활동하는 일부 보수 성향 학부모들과 청주시민단체 ‘행동하는 학부모 연합회’ 대표는 젠더, 성 평등, 인권 등을 다룬 어린이·청소년 도서가 ‘유해도서’라며 공공도서관에 열람 금지 및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도서관들은 민원을 제기 받은 도서출판 117종의 유해성 유무를 결정해달라고 간행물윤리위원회에 의뢰하고, 지난 18일에는 대한출판문화협회에 공문을 보내 유해성 유무의 의견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들 보수 성향 학부모들이 금서로 낙인찍은 책들 중 한 권인 『10대를 위한 빨간책』을 번역한 작가 목수정씨는 “현대판 분서갱유의 섬찟함을 느낀다”고 말했다.(-편집자 주)

 

책으로 성벽을 쌓은 파주 지혜의 숲 도서관

40대 이후 세대들은 대개 학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주로 교사들에게 두들겨 맞은 경험, 그들의 차별에, 막말에, 부당한 처사에 상처받은 경험들이다. 그땐 교사라는 직업이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때론 존경받기도 했지만, 경멸당하기도 했다. 걸핏하면 약자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대가를 치르게 돼 있다. 그런 폭력적 교단의 피해자는 학생일 뿐 아니라 교사 자신이기도 했다. 즉 사회 전체였다.

68혁명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을 때, 유럽의 교육계도 그 혁명의 물결에 함께 했다. 세상의 모든 역겨운 권위주의를 향한 항명이었던 68혁명 속에서 교사들과 학생들은 함께 권위적 교단이 저지르는 만행에 일제히 항거했다. 당시 덴마크의 교사들이 함께 썼고, 유럽 전역에 출간됐던 책 『10대를 위한 빨간책』을 2016년 내가 번역해 레디앙에서 출간했다. 50여 년 전 경직된 유럽의 교단을 개혁하기 위해 교사들이 쓴 이 책이, 2023년 한국의 보수 성향 학부모들이 줄지어 폐기를 요구하는 불온서적 목록에 올라가 있다고 한다.

 

21세기에 분서갱유와 마녀사냥이 웬 말인가?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학생 인권 조례가 교사 사망의 주범인 듯 몰아가는 단순 과격한 사고를 하는 자들이 대통령의 용궁에도, 저잣거리에도 있다고 한다. 일부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가 학생 인권을 주제로 다룬 120권의 책을 ‘유해 도서’로 규정하고, 이를 도서관에서 퇴출시키기 위해 행패를 부리는 중이며, 전국의 도서관들이 이들의 항의 전화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는 소식이다. 마치 중세의 마녀사냥과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21세기의 한국에서 함께 재현되는 듯한 모습이다. 

학생 인권이 올라가면 교사 인권이 내려가고 학생 인권이 내려가야 교사 인권이 올라갈 거라는 웃지 못할 시소 이론에 올라탄 인간이 극단적 사고에 경도된 소수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 사태에 대한 책임 회피와 정쟁을 위해 검찰 정권이 앞장서 이런 생각을 퍼뜨리고, 학부모라는 자들이 이에 선동돼 떠들고 나선다면 한국 사회는 심각한 반(反)지성의 소요 속에 빠져있다고 진단해도 좋을 것 같다.

그들 생각이 맞다면, 이미 50여 년 전부터 학생 인권이 재정비됐던 나라들의 교사들은 어찌 됐겠는가? 아이들 인권이 올라간 나머지 교사의 인권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교사들이 아이들의 인권을 위해 싸웠듯이, 학생들 역시 교사들의 권리와 적정한 처우를 위해 함께 싸우는 모습을 오히려 지켜볼 수 있었다.

올 6월, 고교생활을 마감한 딸이 프랑스의 모든 공교육 시스템을 거치는 동안, 학부모인 나는 한 번도 교사의 개인 연락처를 가졌던 적이 없다. 어떤 학부모도 그럴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교사들에게 용건이 있으면 편지로 면담을 신청하고, 그들이 정해주는 날짜에 만나 상담을 할 수 있다. 

만일 시급한 사안이 있으면 바로 학교장에게 연락하거나, 각 학급에 있는 학부모 협회 대표를 통해 문제를 논의하고 필요한 절차를 밟는다. 매년 3회 걸쳐 진행되는 학급회의에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 대표들이 모여 각자의 위치에서 수렴된 의견들을 제시하고, 문제들을 시정하기 위한 토론을 진행한다. 

 

교원노조들도 역할을 제대로 수행 못해

전국 초등학교 교사 노조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99%의 초등학교 교사들은 교권이 침해됐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이는 시정해야 하는 문제다. 노조는 바로 그런 목적으로 존재하는 조직이다. 전교조를 비롯한 교직원 노조들이 왜 이런 문제를 지금까지 방치했는지 의문이긴 하다. 당연히 노조의 본분인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는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교사로서,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다. 

전교조 출신의 교육감들이 앞장서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원 노조들이 여태껏 그들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문제였으며, 이번을 계기로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교원들의 권익이 향상되고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면,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는 조금 더 행복하고, 안전하며, 즐거운 공간이 된다.

중요하지만 늘 간과되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현격히 그리고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공하는 보건의료빅데이터 개방시스템 자료를 살펴본 결과 2021년 ADHD 환자 중 5~19세 소아청소년 환자는 7만 1,469명으로 2020년 6만 299명 대비 약 18.5%p 증가했다. 2017년 4만 9,501명과 비교하면 약 44.4%p 증가한 것이다. 2021년 성비는 남성 5만 6,240명, 여성 1만 5,229명으로 남성이 여성의 약 3.7배에 달한다.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주민등록 인구통계에서 5~19세 연령의 인구와 비교해 보면 5~19세 인구의 1.03%가 ADHD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전문적인 의학 지원을 받지 못한 소아청소년들의 부적응 행동이 나타나고 있다. 좋은교사운동의 조사에 따르면 신체적 공격, 언어적 공격(욕설, 폭언), 교실 이탈 순으로 부적응 행동이 있으나 학교에서는 거의 속수무책이다. 이는 교사의 역량이나 영역을 넘어선 문제이고, 실제로 교사들의 증언들을 살펴보면, 반에 한 둘씩 있는 이런 아이들로 인해 교실 전체가 심각하게 방해받고, 교사도 학생들도 지쳐간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한국에서 유난히 높은 발병률을 보이는 이 두 가지 정신질환에 대해 의학계는 같은 소리를 반복한다.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유전적 요인일 수도, 환경적 요인일 수도…” 그런데 왜 한국에서 이토록 많이 발생하는가? 우리 사회가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분서갱유로 반지성의 광기에 휩쓸리기 전에, 아이들을 체벌할 “권리(!)”를 부활시키자고 광분하기 전에, 왜 이 나라 아이들이 특히 더 아픈지 밝혀야 하지 않을까?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과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분신 사망 사건은 닮은 구석이 있다. ‘어떤 사람들의 인권은 밟아줘도 된다’고, ‘자신들은 더 특별한 권리를 가졌다’라고 생각하는 아픈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발생한 비슷한 결의 사건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피해자들(때로는 교사, 때로는 경비원)의 인권을 특별히 더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감옥 안의 수인이든, 형벌을 내리는 판사든 똑같은 인권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그들의 성별과 직업과 연령과 인종과 상관없이 그들의 인권은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사건만 터지면, 기둥도 뿌리도 없이 흔들려 중세시대로, 또는 천 년 전쯤으로 회귀해 버리는 우리 사회. 1948년 태어난 세계인권선언 정도만이라도 다시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 :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우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글·목수정
한국과 프랑스의 경계에 서서 글쓰기를 하는 작가 겸 번역가. 주요 저서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야성의 사랑학』, 『파리의 생활 좌파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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