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터키의 시인이자 작가인 에르잔 Y. 일마즈가 쓴 작품이다. 일마즈는 다른 필명으로 다양한 상상의 세계를 탐험해 왔다. 그의 작품은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였던 베케트의 유머와 종종 비교되곤 한다. 이 단편소설은 그의 독특하고 조용한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2023년 가을부터 그는 핀란드에서 정치적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길은 멀고, 내 가방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어. 하지만 그날은 평소처럼 시작됐어.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내가 자주 가는 찻집에 가려고 집을 나서려는데 두 살 많은 형이 내게 말했어.
“오늘 차 좀 빌려줄래? 아이들이랑 나들이를 가려고.” 나는 형에게 차 열쇠와 차량 등록증을 건네주고, 집에 돌아갈 시간을 정하지 않았어.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밤이 됐어.
사실, 대단한 거리는 아니었어. 겨우 6km 정도? 6,000m, 60만cm였어. 한 번은 17km를 걸어본 적도 있었어. 내가 일하던 마을에서 시내 중심까지 말야. 그때는 무척 더운 10월이었고, 그늘 하나 없는 길을 걸었어.
시청에서는 아이들에게 선물로 줄 신발 사이즈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내가 너무 늦게 답장을 보내는 바람에 내 리스트는 거절당했어. 아쉬운 마음에 여러 신문사에 감동을 줄 만한 편지와 함께 신청서를 보냈는데,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하지만 아이들은 나중에 받은 선물 덕분에 그해 내내 기뻐했어.
언제나 즐거움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어. 나에게도 늘 유쾌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이 무슨 바보여서가 아니야. 그냥 괴짜들일 뿐이야. 셀림은 그중 한 사람이야. 그는 보석 같은 돌들을 모아서 바벨탑을 만들었어. 마치 신이 세상의 언어를 뒤틀어 버린 것처럼 말이야.
그때 어느 건설회사가 셀림을 설득했어. 자신들에게 그 돌을 팔라고. 하지만 여전히 돌에 미쳐있는 셀림은 꿈쩍도 하지 않았어. 다만, 누군가가 셀림의 돌에 대한 열정을 식게 했는데, 돌 대신에 유리에 그를 중독시키고 말았어. 그렇게해서 ‘석기 시대’를 넘어선 거야. 그런데 셀림은 참 운도 없지! 셀림에게서 유리 창문을 구입했던 마을 사람들은 요즘 잠에서 깨어나면 창문의 유리가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을 눈으로 봐야 했으니까.
“이스탄불을 두 눈을 감고 들었어.”
시내 마을버스 막차가 끊긴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길을 걷기 시작했어. 마을에 살아서 좋은 점이 많지만, 교통 문제는 정말 불편해. 그래서 나는 대출을 받아 멋진 차를 샀지. 아, 지금 그 차가 있었다면… 아니, 그 차에 내가 타고 있었다면, 이렇게 불평하지 않을 텐데.
어쨌든, 지금부터 6km를 걷는 동안 당신이 내 동반자가 될 것이야. 이 길은 혼자서 견디기 힘들어. 걷기 시작하여 100미터쯤 걸었을까. 아뿔싸, 신발 밑창에 구멍이 났다는 걸 알았어. 아스팔트, 콘크리트, 심지어 작은 돌멩이들의 거친 느낌이 온몸에 전해왔어. 너무 아팠어. 형에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할 수도 없었지.
그는 도심에서 운전할 만한 실력이 안되니까. 게다가 지금 그가 어디 있는지 누가 알겠어? 신만이 알겠지. 이 도시에는 택시가 거의 없어. 한 번은 택시를 몇 시간 동안 기다린 적이 있는데, 결국 오지 않았어.
아직 갈 길이 멀어. 발이 아프고, 가방도 무거워서 뭔가에 집중하지 않으면 이 고통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어. 그래서 뭔가 간략하게 이야기할 거야. 당신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도록 말이야. 이야기는 고통을 잊게 하거든.
지금 여기, 한 명의 영웅이 있어. 하지만 그는 당신이 알고 있는 아이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같은 영웅과는 거리가 멀어. 그는 그저 스쿨 맨, 말라깽이 교사일 뿐이야. 구멍 난 신발을 신고, 얼마 되지도 않는 가방 무게에 끙끙대는 이 영웅은 사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는 별로 상관이 없을 거야. 나는 그냥 이야기가 너무 없어 보일 것 같아서 영웅을 들먹인 거야. 영웅은 아니지만 나는 바르게 걸으려고 노력했어, 사람들이 내가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지 않도록 말이야. 잠시라도 말이야.
나는 그때 문득 내가 전 여자친구 집 근처에 있다는 걸 깨달았어. 헤어졌지만 그 여자친구는 내 마음에 여전히 남아있었어. 나는 가방 바깥쪽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어. 단축 번호 5번을 꾹 눌렀어. 그녀의 전화번호를 저장해놓은 번호야.
일단 그녀 집에 가서 쉬고, 나중에 거하게 사랑을 나눌 생각이었지. 내 목소리에 관능적인 톤을 그윽하게 담으려 했어. 벨이 울렸으나 그녀는 통화 중이었어. 다시 걸어도 여전히 통화 중이었어. 다른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지만, 나는 침대에서 자고 싶은 마음에 질투심이 느껴졌어. 결국 절망적으로 풀이 죽어 구멍이 난 신발에 더 무거워진 몸을 의탁하고 다시 길을 떠났지.
“이런 건 이맘의 아들한테 어울리지 않아!”
내 가방은 여전히 무거웠고, 나는 점점 더 피곤해졌어. 이 가방에 뭐가 그렇게 많이 들어 있었나? 두 권의 단편집, 한 권의 소설, 한 권의 사진집, 한 권의 문학 잡지, 신문 한 부와 다이어리, 스케치북, 펜 다섯 자루, 연필심, 지우개, 안경, 열쇠들… 그리고 내일 앙카라로 가는 티켓 한 장이 있었어, 친구를 위해 산 것이었지. 그리고 드라이버도 있었어, 아버지가 부탁하신 거였거든. 가방 무게에 거의 걷지 못할 정도였어. 그때 내 앞에 한 노인이 걸어가고 있었어. 그는 깨진 소다병을 줍고 있었어. 그는 환경을 보호하고 있었어. 나도 환경 보호자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정말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어. 뒤로 가서 플라스틱병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릴까 생각했지만, 지치고 무거워진 몸 탓에 그렇게 조금이라도 뒤로 가는 생각 자체가 나를 불편하게 했어.
노인은 깨진 소다병을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앞의 쓰레기통에 버렸어. 어둠 속에서도 그 학교의 벽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들을 느낄 수 있었지. 그것들은 이제 학교의 일부가 되어 있었어. 칼에 찔린 친구들, 가성 소다 탓에 다리에 화상을 입은 소녀들이 생각났어.
한 번은 수염 난 남자가 내게 “공부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악마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난 진지하게 학교를 그만둘 생각을 했었어. 만약 그가 “공부해라”라고 말했다면, 나는 정말 학교를 그만뒀을 거야. 이건 내가 좀 청개구리 고집이 있는 편이라서 그런 것 같아.
이제 거의 중간 지점에 도달했어. 발이 아프고, 어깨가 무거워서 눈을 감은 채 이 문장을 되뇌었어. “이스탄불을 두 눈을 감고 들었어.”(1) 도랑에 빠진 이 시의 시인이 떠올랐어. 나는 더 조심스럽게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오르한 벨리의 신발 밑창도 이렇게 닳았을까?
어쨌든, 거의 다 왔어. 이제 되돌아갈 수 없어. 그 순간 왜 교사 연수원(2)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 나는 집과 그 건물 사이의 중간 지점에 있었고, 곧 도착할 거야.
고속도로 옆 주유소에 주차된 트럭이 눈에 들어왔어. 그 트럭의 진흙받이에 “네가 가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어. 나는 트럭에 다가가 속삭였지. “만약 ‘내가’ 앞에 하이픈을 붙였다면, 내가 너를 데려갔을 거야.”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어갔어.
버스 정류장을 지나쳤어. 오토바이 한 대가 나를 지나쳤고, 운전자가 나에게 인사했어. 나는 그를 알아봤어. 그는 내 중학교 때 친구인 에민이었어. 그 자식, 적어도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물어봐 줄 수 있었을 텐데! 에민은 이맘의 아들이었어. 우리 고향에서는 늘 그 친구를 ‘이맘의 아들’로 불러 그게 곧 그 아이 이름 같았어. 하지만 결국 그는 그 ‘이맘의 아들’이라는 그 이상한 호명에 참지 못하고 폭발했어. 아흐멧 선생님이 그에게 일어나서 문제를 풀라고 했을 때, 그는 수학 노트에 나체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선생님이 그것을 알아챈 뒤 소리쳤어. “이런 건 이맘의 아들한테 어울리지 않아!”
그 말을 들은 에민은 일어나서 “그러니까, 이맘의 아들은 발기가 안 된다는 거야? 이맘들도 발기가 안 되는 거야? 나도 그렇게 태어났어?”라고 소리쳤어. 우리 모두 웃었지만, 그가 한 대 맞은 후에는 몇몇만 웃었어.
아, 내 발… 이제 차 한 대도 멈추지 않고 나를 태워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형제여, 내가 직진할 테니 태워줄게.”라고 말할 사람도 없었어. 나를 지나쳐 간 차량이 몇 대나 되는지 셀 수도 없었어. 좋은 사람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내가 마지막 남은 사람일지도 몰라. 한 번은 내가 차를 태워준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마치 내가 그의 운전사인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그를 차에서 내리게 하고 싶었어.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친절을 베풀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내 길은 멀다. 내 가방은 이렇게 무거웠던 적이 없었다…”
나는 집에 가까워졌지만, 아무 기쁨도 느낄 수 없었어. 500m가 남았어. 길은 아스팔트가 아니라 자갈로 덮여 있었어. 서커스 아티스트들이 유리 조각이나 못 위를 걷는 게 어떤 느낌일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어. 나는 해변을 상상하며 자갈길을 걷기 시작했어.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야. 하지만 발바닥이 타는 듯한 고통은 여전히 느껴졌어. 뜨거운 모래 위에서 뛰어야 할 것 같았어. 마치 기어가 잘못 들어간 자동차처럼 느껴졌어.
집 정원 문 앞에 도착했어. 나의 꿈이 현실이 되었어. 형이 전화를 했어. 전화가 끊겼어. 자신에게 전화해 달라는 신호였어.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어. 그는 “압두라흐만, 우리 교사 연수원에 있어. 너도 거기 있을 줄 알았어. 같이 집에 가면 될 것 같아서. 걱정 마, 내가 운전하는 게 아니야, 툰자이 형이 운전해.”라고 말했어. 나는 속으로 울었어. 내 신발 밑창을 위해 애가를 읊었어. 내 옷을 찢고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어. “아니 그러지 않아도 돼, 나 집에 있어.” 나는 전화를 끊었어.
방으로 들어가서 두 줄을 썼어. “내 길은 멀다. 내 가방이 이렇게 무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그때 전 여자친구가 전화를 걸어왔어. 긴 여정 동안 두 번이나 전화를 받지 않았던 그녀였어.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어. 그녀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지만, 나는 여전히 받지 않았어.
미안해, 당신을 여기까지 불러서. 내 집은 작아서 당신을 초대할 수 없어. 하지만 당신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없었을 거야. 이제 우리 동행을 잊자. 나는 이제 자러 갈 거야.
글·에르잔 Y. 일마즈 Ercan Y. Yilmaz
작가. 2024년 가을에 MEET 출판사(생나제르)에서 출간 예정인 소설집 『메트로폴리탄 자장가』의 저자. 이 단편 소설은 그의 소설집에서 발췌했다. 원제는 「Raisons pour prendre la tangente」.
번역·강태호
번역위원
(1) 가장 유명한 이스탄불에 관한 시 중 하나는 오르한 벨리(1914~1950)가 쓴 시로, 그는 1950년 11월 10일 밤, 술에 심하게 취한 상태로 앙카라를 걷다가 도랑에 빠져 사망했다.
(2) 교사 연수원은 교육부 소속으로, 교사들이 이곳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식사와 음주를 즐기며, 임시 숙소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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